제 유일한 재주는 삶을 핍진하게 글로 옮기는 것이죠. 그러나 저는 제 삶을 기술하지 않죠. 그런데 우울할 때 지독하게 우울한 글을 보면 마음이 풀린다는 댓글을 읽고나니, 슬픔이 절반으로 나뉘어지진 않지만 그를 알리는 것이 해악만은 아니라는 위로를 받았어요. 그리하여 마음의 바닥에 눅진하게 달라붙은 음울함을 떠내어 세세하게 펴보려구요. 그저 그런 이야기입니다.


운동을 시작한지 한 달이 조금 안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하고파서 운동을 시작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줄넘기가 재미있어 보였습니다. 생각해보면 동생의 삶과 운동간 연관성에 대한 꾸준한 암시가 드디어 효과를 봤는지도 몰라요. 삶의 고통 가운데 빠져나온 이들 중, 그 첫 발걸음이 운동이었다는 이야기부터 부쩍 운동덕후스러운 운동 도구나 운동 방법 그 사이의 운동하는 이만 느끼는 세세한 잡담 등을 듣다보니 타자의 욕망을 나의 욕망으로 받아들인지도 모르죠. 그런게 중요한 건 아니고, 여하튼간에 줄넘기가 정말 재미있어 보였어요. 그리고 실제로 줄넘기는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듀게에서도 작년 9월 쯤에 운동의 효용성에 대해 물어봤었더군요. 일년이나 지났지만 그 댓글들은 유통기한이 없더라구요. 특히 현자님과 스푸트니크님의 댓글에 힘이 났습니다.


상담도 신청했고 신청 당일 상담까지 합해서 4주차가 되네요. 매주 한 시간 상담이 있는데, 전 효과에 긍정적이지 않았어요. 오늘 상담이 있는 날이었습니다. 시간이 나서 10분 일찍 도착해 상담실에서 기다리며 책을 읽었어요. 상당히 읽어나가고 이상하단 생각이 들어 보니 상담 시간으로부터 20분이 더 지나있더군요. 안내 창구에 물어봤지만 연락이 안닿더군요. 이전까지 그런 일이 없었다고 하니 뭔가 큰 일이 생겼거니 하고 상담사에게 연락이 되면 불만을 가지거나 그러지 않았으니 괜찮다고 전해달라고 했어요. 재차 죄송하다고 하는데 그네가 뭘 할 수 있고, 또 상담사에게 무슨일이 있는지 어떻게 알겠어요. 뭔가 끔찍한 상상만 계속 일어나 무슨 일이 있었다고 연락이나 받았으면 싶더라구요.


그리고 오후에 이런 저런 일을 마치고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 왼쪽 가슴 심장의 살짝 위 쯤에 차갑게 무언가가 서서히 뭉치는 거에요. 거기에 배근육의 양 쪽이 위로 당기면서 살짝 배가 고픈듯 아프며 차가운 뭉치는 더 차가워졌습니다. 9시에 운동을 나가야 하는데 집에 들어와 옷을 갈아입는 것만으로도 힘들더라구요. 도무지 무슨 일인지 영문을 모르겠는데 고통스럽고, 한참 어쩔 줄 몰라하다가 백지 연습장에 느낌을 그림으로 그려 채워 넣었습니다. 허하다, 란 감정이 아닐까 이름 붙이고 그러다 보니 그나마 나아서 운동을 나섰습니다. 가까운 교정으로 걸어가는데 장딴지 근육 양 쪽에 서슬돋더군요. 다른 감각이 함께 하면서요. 마음의 이 편엔 도저히 못 하겠다 저 편엔 차분히 하자로 웅성거리는 가운데 몸은 걸어나가서 운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알지 못하는 저에게 상담은 정말 기다려지는 시간이었던 것이에요.


저는 사유와 표현에는 특화되었지만 기억과 행위는 잼병이에요. 그 격차는 한없이 저를 몰아세우는데, 운동은 오직 행위만을 연마하는 일이더라구요. 그렇게 몸이 힘을 얻게 되자 감각과 감정이 저를 따라잡기 시작하는게 느껴졌어요. 위의 서술에서 아셨을지 모르겠지만, 전 제 감각을 통해서 감정을 추측하는데 매우 서툴어요. 정말 심각하게 느껴졌던 일이 저는 우울하다고 생각했는데 배고프다는 감각이었던 적이 있었어요. 사실 제 자신을 자가진단 할 때, 우울증인가 아닌가를 판단할 수가 없는데 (어쩔 때는 확신하고 어쩔 때는 아니라 생각하고) 그 이유는 감정의 해석이 어렵기 때문이에요. 그래서인지 운동을 할수록 감각이 예민해지고, 감정을 추측할 정보를 더 많이 얻게 되더라구요. 시행착오를 거칠 기회를 더 많이 얻게된 거죠.


운동은 보통 줄넘기와 달리기를 하고, 동생이 가르쳐준 반-턱걸이를 시도하는데, 달리는 와중에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어쩌면, 이렇게 가다보면 내 감정을 표출하게 될 때가 오겠구나, 하는 생각이요. 그러니까 운동을 하면서 내 자신을 위해 울 수 있게 되겠구나 하는 막연한 생각이 문뜩 떠오른 거에요. 저는 최근 감상적이 되어 영화 등의 가상적인 타자를 위해 많이 울었는데, 그건 제가 주체할 수 없이 일어나는 일들이었고 이건 내가 허용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겠구나 했어요. 오늘 달리면서 머리 뒤로 망상들이 마구 흘러넘어가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였습니다.


시작은, 과실이 없는 나무였어요. 근 구 년간 저는 과실을 맺어본 적 없는 불임자였습니다. 시도를 안 한건 아니에요. 아니, 어쩌면 시도를 차고 넘칠만큼 한지도 모르지요. 제가 했던 여러 공부, 공무원 시험, 학위 수료, 졸업, 자격 시도, 그 많은 것 중에 무엇도 성취하지 못한 삶을 구 년 간이나 지속해왔죠. 구질구질하고 끔찍한 나날이죠. 엎으면 일어서기부터 걸음마까지 다시 시작해야하는 공포가 기다리고 있죠. 저는 찐 씨앗이었고, 기울어진 오뚜기었어요. 그리고 저의 윤리적 근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개신교 사상이 무럭무럭 떠오르더군요. 신약에도 일하지 않는 이에겐 고통뿐이에요. 무화과 나무는 열매 맺기를 담보로 생을 연장하고, 삯을 받는 모든 이는 일을 어쨌든 하고, 땅에 심은 달란트는 불린 자에게 넘어가죠. 종막은 저주 받고 말라비틀어지는 무화과 나무가 장식하죠. 이런 청교도적 비유를 받아들인 것은 아니지만 이미 제 머리 속에 자리잡고 놓아주질 않는 겁니다.


(한켠에서 상상으로 성장하던 불임은 한국의 수많은 낙태아들을 넘어서, 상상의 아이들로 넘어갔어요. 낳고자 하는 아이와 실제 낳은 아이의 차이에서 생겨나는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들 말이죠. 그것은 시대 가운데 저출산과 고출산 양 쪽을 비난받는 여성들과, 이영도의 피를 마시는 새의 아실이 내린 결론, 그림자 자국에서 펫시의 분노서린 외침인, [너희는 드래곤을 육종할 수 없다. 나쁜 혈통은 도축하고 좋은 혈통만 남겨둘 수는 없다!]가 떠오르더군요. 뒤이어서 전체의 부분으로서는 미미한 한국의 자살자 수도 함께 말입니다.)


뛰면서 서럽게 소리내지 않고 울다보니 냉가슴이 식은 가슴 정도로 다스해지더군요. 그랬습니다. 일렬의 과정은 제 미래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진 않겠지만, 그저 그런 일이었어요. 제게 있어 감정은 멋 모르는 어린아이였었는데, 지금 와서보니 벙어리에 장님, 귀머거리에 발은 절더군요. 감각이 그녀를 부축해서 걷도록 만드는데 운동을 할수록 어떠한 선을 지나쳐가는 느낌이 듭니다. 감각은 아가씨인데 예전보다 묵묵하지 않고 말문이 틔여가며 씩씩해지는 기분이에요. 감정을 더 열심히 돕도록 노력해야겠죠.


종교는 일찍 아무것도 모르고 삼켜버린 독약과 같죠. 위가 괴물처럼 튼튼하다면 소화시켜낼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 해독은 매우 힘들고 평생 부작용이 남을 수가 있어요. 독약은 누군가에겐 독한 약일 뿐일 것이고, 저 같은 사람이라도 소화/해제하지 못할 수도 있단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살아야죠. 독의 증상은 어쩌면 이미 제 정체성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오래전에 자유기술 내지 아티스트 웨이의 모닝 페이지를 했던 적이 있었죠. 130일 넘게 하고 공책 8권을 남겼고, 그 효과는 확실했으나 지속하지 못하고 붕괴했습니다. 그 때의 저와 지금의 저는 많이 다릅니다. 결코 확신을 가지지 않죠. 다만 홀로 하는 것은 유지하기 매우 어려운 일임만을 배웠을 뿐입니다. 이 글은 뭔가 나아짐에 대해 서술한 글이 아닙니다. 붕괴되더라도 붕괴의 과정 자체도 이후 핍진하게 기술하겠다는 모종의 의지에요. 그저 제가 가장 잘하는 일과 제 삶을 일치시키고 그 모순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죠. 거기에도 허비되는 감정자원이 너무 많더라구요. 네, 어쩌면 전 듀게에서 잔인한오후를 연기하는 것에서 어느정도 물러서는 겁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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