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의 '사다리 걷어차기'에 대한 더글라스 어윈교수의 리뷰에 대해서 씁니다.


미국에서 학부생이 국제경영을 배울 때는 대개 다섯개 교과서 중에서 하나를 쓰게 됩니다. 미국에서 가장 많이 쓰고, (출판사 주장에 따르면) 시장의 50% 이상을 장악하고 있는 선두주자는Charles W. L. Hill의 International Business입니다. Hill의 제자 (어쩌면 수제자)로서 Mike W. Peng이 쓴 Global Business입니다. 첫번째 책은 영국인, 두 번째 책은 중국인에 의해서 씌여졌습니다. 이 두 책을 읽으면 난감함을 느낍니다. 아무리 부인하려고 해도 자국 중심적인 서술의 흔적을 피할 수가 없기 때문이지요. 


이 Hill의 교과서를 잘 읽어보면, 보호무역과 자유무역에 대해서 서양의 경제사학자들이 어떤 모순된 입장을 가지고 있는가가 잘 드러납니다. 이 책의 Free Trade chapter는 자유무역에 대한 옹호로 시작합니다. 아담 스미스와 데이빗 리카르도가 일단 자유무역을 옹호하는 가장 기본적인 토대가 됩니다. 학부생들이 가지고 있는 기존의 사고방식을 바꾸게 한달까 하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학부생들은 상당수가 자유무역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외국인들이 나의 일자리를 뺏는다, 경쟁에 노출되게 된다 라는 인식에 기인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다음부터입니다. Hill의 교과서는 폴 사무엘슨을 소개하면서 자유무역이 선진국에게 결코 유리하지 않다고 불평합니다. 자유무역으로 인해서 소비자가 월마트에서 미국산 제품보다 10센트 싼 중국산 제품을 살 수 있다고 한들, 일자리를 잃으면 그 소비자는 10센트 더 싼 물건을 구매할 수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미국의 일반적인 노동자로서는 자유무역으로 인한 손해가 이득보다 더 크다는 것입니다. (이 책이 영미권의 입장에서 씌여졌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대목입니다) 그리고 교과서는 더 나아가 유치산업 보호론과 strategic trade policy를 소개합니다. 이 두가지는 보호무역이 경제학에 기반해 정당화되는 대표적인 이론입니다. 마지막으로 교과서는 자유무역이 좋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현실은 아니며, 정책 입안자들은 필요에 따라 보호무역을 위한 도구들 (관세, subsidy, Local content requirement 등)을 이용할 수 있음을 가르쳐주고 장을 끝냅니다. 후속 장에서는 지적재산권 보호 추세가 선진국에 의해 추진되어 왔다는 것, 그리고 저항이 있긴 하지만, 느리지만 그 방향으로 합의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요약하면, 미국에서 가장 범용하게 쓰이는 국제경영 교과서에서도, 1) 자유무역은 현실이 아니란 점을 밝혀 말하고 있고, 2) 보호무역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으며 3) 자유무역으로 인해 선진국이 손해 보았다고 불평하고 있고, 4) 보호무역을 정당화하는 이론과 도구를 가르친다는 것입니다. 미국 정치인들의 인터뷰를 보면, 보호무역주의자라고 낙인 찍히고 싶어하지는 않지만, 보호무역의 도구들을 '적절히' 이용하는 건 당연하다는 걸 인지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나는 free trader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대답합니다. 제가 보기엔, 대체적으로는 자유무역을 옹호하면서, 세부적으로는 '적절히' 보호무역을 추구하는 게 좋다는 입장인 듯 합니다. '악마는 각론속에 숨어있다'고 말한 송기호 변호사의 '한미 FTA의 마지노선'은, 그래서 온 국민이 읽어야할 책입니다. 


그러면 장하준 교수의 책으로 돌아와서, 그의 '사다리 걷어차기'가 훌륭한 이유는 이런 "교과서"가, 영미의 관점에서, 자기네의 경제사를 기반으로, 앞으로의 경제사를 자기네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만들어나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장하준 교수는 선진국의 경제 역사를 방대한 자료를 통해 깊이 봅니다. 그래서 저는 더글라스 어윈 교수의 비판이 부당한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점이 그러한가...


더글라스 어윈 교수는 다음의 세가지에 기반해서 장하준 교수의 저작을 지적합니다. 


첫째, 과거의 명저들, 예를 들어 How the West grew rich The rise of the Western World와 정면대결하지 않았음을 지적합니다. 얼핏 들어 타당한 지적이고, 또 그랬으면 좋았겠지만, 이것은 고전 하나도 부족해서 두 개와 맞서 싸우라는 이야기와 다름 없습니다. 1. 안정적 정치 시스템과 2. 경쟁에 기반한 경제시스템의 중요성을 장하준이 부인하지는 않았다고 생각되는군요. 즉, 더글라스 어윈 교수는, "그저 타당한 이야기를 하는" 저작들을 대상으로 장하준 교수가 반대 논지를 전개해야한다고 주장한다는 생각입니다. 제가 보기에 장하준 교수의 싸움터 (battle ground)나 논지 전개의 강점은 이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유리한 싸움터로 옮겨와서 우리가 원하는 식으로 논지를 전개해라는 이야기로 보입니다. 


두번째로 더글라스 어윈 교수는  (미국의 교수 답게 미국의 케이스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미국의 성공은 유치산업 보호 때문이 아니고, 높은 식자율이나 토지 소유권 (자본주의의 중요 요소), 안정적인 정부, 사적 소유권의 안정성, 거대한 내부시장 때문에 비효율 적인 무역 정책 (즉, 보호무역주의) 조차도 미국의 성공을 막지 못했다, 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보호무역주의는 미국의 경제적 성공에 저해가 되어왔을 것이지, 도움이 되어오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높은 식자율이라든가 사적 소유권의 안정성, 안정적인 정부 등 미국의 성공요인을 열거하는 부분을 보면서 한숨이 나왔습니다. 미국의 경제성공의 초기 요인을 하버드 대학의 데이빗 교수는 (last name이 david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바빠서 정확한 레퍼런스를 찾을 수 없습니다.)는 NBER working paper에서 한마디로 말합니다. 광대한 천연자원 - 넓은 미개척지라는 것입니다. 미국이 내부시장이 거대하다는 것은 인정합니다만, 미국은 워낙 대단해서 그런 사소한 실수 (보호무역주의)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렇게 말할 수는 없지 않을까요? 만일 미국 정치 시스템이 그렇게 대단하고, 정치인들이 이성적인 판단을 해왔다면, 미국이 무엇때문에 자유무역주의에 어긋나는 정책들을 사용하고 있고, 또 앞으로도 사용하기 위해서 각개의 나라들과 외교전쟁을 벌이고 있을까요? 이번에 한미 FTA에서 트럭부분을 보호하기로 한 것은 GM노동자들을 위한 정치적 배려에서 나온 미국 정계의 '실수'라고 해둡시다. 예를 들어 미국은 80년대에 일본에게 VER(voluntary export restraint)를 압박했고, 일본은 이를 받아들여 미국에 일본물건을 수출하는 것을 자제하지않을 수 없었습니다. 또한 토요타에게 부품을 미국 현지에서 만들라고 압박을 넣어 (local content requirement) 토요타가 자동차 품질 저하를 무릅스고 미국에 공장을 짓지 않을 수 없었지요. 또한 예를 들어 덤핑 제소나 수퍼 301조는 어떠합니까? 덤핑에 관해서는 이야기가 길어지니 간단히 줄이겠습니다만, 덤핑 제소가 일부 국가들(특히 인도, 미국, 유럽)의 보호무역주의를 위해 작동한다는 혐의가 있다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더글라스 어윈 교수의 세번째 지적은 sample selection bias인데, 다시 말하면 성공적인 케이스 (survival) 에 대해서 연구할 뿐만 아니라 낙오그룹에 대해서도 연구하라는 말입니다. 분명 의미 있는 지적입니다. 제가 보기엔 장하준 교수 저작의 한계로 보일 뿐, 그게 치명적인 약점으로 보이진 않습니다. 그 부분은 다음 논문에서 연구하면 되는 정도의 한계로 보인다는 뜻입니다.


마지막으로 서구 중심의 경제사는 지적재산권 문제와도 큰 연관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선진국들은 국제적 지적재산권을 확보하는 게 앞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방향으로 국제교역의 논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선진국들이 중국의 저작들의 지적재산권을 전혀 보호하지 않았다는 점 (중국의 여류 문필가 다이 허우잉도 이 점에 대해서 자신의 딸 다이싱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한탄한 바 있습니다. 자기의 책이 미국에서 팔리고 있는데 돈은 미국의 출판사가 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적재산권이 보호받기 위해서는 서구의 기준을 충족시켜야한다는 - 즉 그들의 룰에 따라야 한다는 점 - 을 상기시키고 싶습니다. 지금 장하준의 저작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앞으로 국제사회에서 교역의 룰을 선진국의 룰대로만 따라가서는 안된다는 걸 가르쳐주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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