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직업 텔레마케터입니다.

2012.12.06 02:04

ML 조회 수:6746

일단 전 전화 영업사원입니다.신용카드 교체발급 업무를 하고 있지요.

 

사실 전 현 시국의 이십대들 치곤 굉장히 운이 좋은 편입니다.우석훈교수가 문재인 후보에게
‘시간제 임금을 받는 종일 근로자 모두에게 일백 오십만원 정의 월 급여를 허하라’는 내용을
요구하고 있는 모양인데,저 지금 일하는데서 백오십
받아요.가끔 느낍니다.나는‘상식적인 시급을주는 곳’에서 일하고 있다.감사할 일이다 라고요.

 

업종 특성상,경력단절 여성들을 많이 뽑고 가끔 장애인 분들도 계십니다.
그런 분들 볼때마다 자부심 생겨요.아,내가 차별이 없는 데서 일하는구나 하고요.
그리고 이십대 남성이 기혼 여성이나 장애인 등을 ‘동료’로 대할 수 있는 기회,이거 흔한 거 아니잖아요.생각이 굉장히 유연해졌어요.
여성 상사의 비율이 훨씬 많고 그들 대부분 존경할만한 인물이다보니 여성의 사회 진출에 대해서도 대단히 지지적인 입장이 된 것 또한 긍정적인 일입니다.

 

일이 쉽지는 않아요.모멸감 주시는 고객님들 하루에도 몇 번씩 만납니다.

‘나한테 쌍욕을 퍼부어도 나는 웃어야 한다’는 게 입사 초기엔 얼마나 상처였는지 몰라요.

하지만 그 덕분에 자존감을 지키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애초에 연애와 학업을 포기하고 이 일을 시작한 계기가 식구들 생계였는데요,

고객들이 절 무시하고 비웃고 욕하면 욕할수록 자부심이 더 커지더군요.

날 아무리 무시하고 나에게 욕을 해도 내 가치는 훼손될 수 없다는 자기 확신을 배운 겁니다.

 

물론 그래도 감정적으론 힘들죠.순간순간 기분 나쁩니다.

여덟시간 아홉시간씩 똑같은 말을 해야하는 건 남자직원 중 최장기 근로자인 저이지만 여전히 적응 안돼요.

하지만 어느날 깨달았죠.‘아,내 일은 생산직이자 감정 노동이었구나!’

네,제 일에서 노동학적 특수성을 발견한겁니다.갑자기 확 특별해지데요.

 

‘응대’일이다보니 세련된 사회기술을 배운 것도 중요한 소득입니다.

경청 안하면 이빨로 물어 죽이겠다고 덤벼드는 사람들 매일 상대하다보니 이젠 다른 사람 말을 듣고 상대의 감정에 공감하는 게 그냥 몸에 뱄어요.

 

여기 다니면서,백오십 벌어서 백오십 집에 가져다주고 출퇴근 교통비가 없어 저금통을 뜯다가 뜯다가
나중엔 침대랑 의자 사이사이를 뒤진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잠시 자기연민에 빠졌던 시간도 없지 않았습니다만

 

돌이켜보면 지금 제 직장은 저한텐 신의 한수였어요
그래서 감사하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 다니면서 주경야독해가지고 대학 졸업장도 땄고 생활에 규칙성이 생기면서 섭식장애 성중독 약물중독을 전부 고쳐

체중 50kg감량이라는 성과까지 이뤘으니,이정도면 신의 한수랄 만 하지 않나요.

 

이제 제 이십대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관리자 되면 월급이 이백 가까이로 오르는데 결혼 계획이 전혀 없어서 사실 그정도만 주셔도 감지덕지에요.

다만 서른 전까지 앞으로 2년은 그냥 백오십 받고 일찍 퇴근할래요.퇴근해서,서른 전에 돈 천만원 모으고,

부상 탓에 잠시 중단했던 보디빌딩을 다시 시작하고,영화평론을 계속 쓰고,토플 만점에 도전해보려 합니다.

무리하지 않은 꿈을 계속 꾸며 바라는 방향으로 조금이라도 움직이는 꼴을 보는게 사는 재미 아니겠습니까.
이제 이번주도 하강이군요.즐거운 목요일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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