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늦게 쓰는 전주영화제 이야기.

2013.05.06 17:01

물풀 조회 수:1284


하루에 영화 세네개씩 보고 그러는거 쉽지 않더라구요.

중반부부터는 두통때문에 어질어질, 이번에 유난히 추운(따뜻하지 않은) 전주날씨때문에 감기도 달고 왔구요..

그래도 본 영화 얘기 하렵니다.





<마스터>

이번 영화제에서 가장 기대했던 작품입니다.
폴 토마슨 앤더슨의 오랜만의 연출이자, 호아킨 피닉스가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의 연기라니.
긴 일정의 마지막 영화라 집중력이 떨어져있었지만, 굉장히 압도적이었습니다.
내용은 2차대전에 참전했다가 종전 후 미국사회로 돌아와 방황하는 한 사람(호아킨피닉스)이 사이언톨로지(영화에서 이 이름은 나오지 않지만 그런것 같습니다)를 발전시키는 이름하여 마스터(필립세이무어호프만)를 만나면서 겪는 일입니다.
영화 끝나고 어떤 평론가께서 "이 영화는 종교영화도, 전쟁영화도 아니다. 이것은 사랑영화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정말 공감했습니다.
구체적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가족, 사회, 그리고 전쟁중에 모든것을 견딜수 있게 한 첫사랑마저 이제는 상처로 남은 그에게, 어떤 절대적인 존재를 만나게 되는 경이는 구원에 가까웠을겁니다. 그 마스터 역시 그에 대한 사명감과 묘한 동질의식을 가지고 그를 사랑합니다. 꼭 2차대전 참전병사와 사이언톨로지의 교주가 아니더라도 이 관계는 묘하게 익숙하고 처절하게 다가왔습니다. 두시간반의 러닝타임이 지나고, 어쩐지 '프레디'라는 사람을 이해한 것만 같았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쉬운 영화는 아니었지만, 그 이후로도 계속 생각이 나는 영화입니다.


<인 블룸>

1990년대 초반 그루지아를 배경으로 합니다.
그루지아 음식을 먹어본 적이 있었는데, 묘하게 맛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루지아는 좋은나라라고 생각하게 되었지요.
그렇지만 1990년대 초반, 소련 통치에서 벗어난 그때의 상황은 좋지 않았지요.
10대에 불과한 두 소녀가 겪는 일들은 두 아름다운 소녀들에 비해 참혹합니다.
빵을 배급해주는 공공장소에서 한 소녀가 납치되어도 사람들은 아무도 나서지 않고, 결국 그 소녀는 납치한 사람과 결혼도 하게 됩니다.
이러한 결혼이 좋을리가 없지요. 그리고 10대 소녀에게 결혼은 너무나 무겁고 버거울겁니다.
이러한 큰 사건 이외에도 전쟁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배경과, 곳곳에 등장하는 총기사건이 그 당시 무거운 사회 분위기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두 소녀는 단지 우정으로만 설명하긴 복잡미묘한 관계를 유지하며 이 시절을 살아갑니다.
인상에 남는 장면은, 친구의 결혼식에서 내내 퉁퉁부운 얼굴을 하고 있다가 결국 친구를 축복하는 춤을 추는 소녀의 장면입니다.
그 춤이 웃기고, 슬프고, 아름답고, 그랬습니다.


<에브리데이>

마이클 윈터바텀의 영화입니다. 마약때문에 교도소에 수감되어있는 남편과, 그를 기다리는 아내와 4명의 아이들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는 슬프라고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아이들의 표정에서 너무 많은것들이 느껴지거든요.
중간에 남편이 한번 크게 잘못했을때 (교도소에 마약을 반입했을때) 관객 모두 분노로 일그러졌습니다.
연출 방식이 특이합니다. 다큐멘터리 같기도 하고, 어떤 영화보다 영화적인 것 같기도 합니다.
중간 중간 나오는 영국 시골의 풍경이 아름답고, 누구도 탓할 수 없는 그 상황들과 아이들의 얼굴을 보며 울게 되는 영화입니다.


<성>

미하엘 하네케의 초기작이라고 합니다. 이양반 영화는 대부분 본것 같은데 이 영화는 개봉을 안했더군요.
카프카의 잘 알려진 소설이 원작입니다.
이곳이 어딘지도 모르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도 모르고, 타인은 정말 타인이고, 결국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아주 답답한 구조의 영화입니다.
측량사 케이, 그를 매번 따라다리는 조수, 성, 성의 클람, 클람의 정부, 모든 것들이 강한 알레고리를 품고 있습니다.
영화 내내 강한 눈바람과, 사람들의 훔쳐보는 눈, 서늘한 표정이 찌뿌둥하게 기억에 남습니다.
원작의 마침표와 같이 영화가 끝납니다.
 하얀리본, 퍼니게임을 연상시키는 분위기가 납니다.
아침 열한시에 보기엔 참으로 고달펐던 영화입니다.


<사랑해, 홍합>

으하하. 이건 정말 귀여운 다큐멘터리 입니다.
모래 한알에서 우주를 보는 사람이 있듯, 이 다큐는 홍합 하나로 세계를 봅니다.
이를테면 자연산 홍합이 좋은가, 양식 홍합이 좋은가,
홍합에 무엇을 넣어서 먹으면 맛있는가,
홍합은 왜그렇게 아름다운가 까지..
대부분은 유럽의 홍합 산업에 대한 내용이지만, 중간 중간 홍합을 집요하게 찍은 장면들과, 귀엽고 뽀송뽀송한 샹송의 조합이 정말로 변태스럽고 좋았습니다.
먹방을 기대하고 예매했지만, 정작 홍합을 먹는 장면은 별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먹는 홍합 한알에 대해 감사하게 만드는 귀여운 영화입니다.



<까미유 끌로델 1915>

줄리엣 비노쉬가 연기한 까미유 끌로델이라니, 기대했지만…
정작 두통때문에 영화 상영 중간에 나오는 민폐를 저질렀습니다.
그러나 초반 삼십분동안에도, 그녀는 아름다웠습니다.
이자벨 아자니의 까미유 끌로델이 격정적이고 파격적이었다면,
줄리엣비노쉬는 그 시절을 모두 겪은 사람처럼 조용하고, 겁에 질려있고, 어린아이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다시 볼 수 있으면 좋겠네요!


<말하는 건축가_ 시티홀>

정재은 감독의 전작 말하는 건축가를 보지는 못했지만,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새 시청사에 관한 내용이라길래 보았습니다.
짧은 건설기간동안에 부딪히는 문제들이 정말 머리아프더군요.
건축 디자인을 하는 사람에서부터, 시공사, 내부 미술작가와 시공기술자의 작은 갈등까지.. (이 장면은 웃겼습니다)
이런 문제가 시간을 가지면 조금 더 매끄럽게 해결 할 수 있을텐데요.
시청같은 상징적인 건물조차도, 이렇게 쫒기듯 뚝딱뚝딱 만들어내야하는 현실이 안타깝네요.
저도 새 시청건물을 보고 으엑.. 하는 반응을 보였던 사람인데, 조만간 다시 천천히 구경하려구요.




이 외에도 몇편 더 보았지만, 다음 기회에 :)

이번 영화제는 보이콧부터 해서 날씨도 별로 좋지 않고, 제 상태도 메롱;;이었지만
전주의 고즈넉함이 조금씩 들떠있는 분위기로 변하는걸 보는게 재미있었지요.

영화보다 더 기대한다는 전주 음식은 저는 뭐, 그냥 그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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