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어렸을 때는 아니고,
초등학교 고학년 쯤 읽었던 어린이-청소년용 소설입니다.

한 도시가 있어요.
직업이나 육체적 특징을 골고루 안배해서 맺어진 부부들이 있구요,
(정신노동자와 육체노동자를 엮어주죠)
그들에게는 두명씩의 남-녀아이가 주어집니다.
이 아이들은 '낳는 엄마'라는 직업군이 직업적으로 낳은 아이들입니다.

아이를 양육하는 것은 철저히 메뉴얼에 따르게 됩니다.
가령 다섯살에는 사회성을 기르기 위해 단추가 뒤로 달린 옷을 입혀요.
서로가 서로의 옷을 매만져주어야 하는 것이죠.
부모는 자상하게 아이를 돌보아주지만 격렬한 감정표현은 하지 않습니다.
이 사회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실제적인' 그리고 '정확한' 것이기 때문에
꿈, 사랑 과 같은 단어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일컫는, 사용해서는 안되는 단어입니다.

학교에서 어떤 학생이 "배고파 죽겠다." 라고 말하자
선생님은 그 학생을 불러내서 엄하게 훈계를 합니다.
"아무도 굶어죽지 않습니다. 배고파서 죽겠다는 표현은 잘못된 표현입니다."

아이들은 교육을 받으면서 자라는데 매일 꿈에 대한 이야기를 부모님과 나누어야 합니다.
그 꿈이야기는 가족이 모두 함께 듣고, 이런저런 조언을
하기도 하구요,
사춘기가 되고 주인공이 아주 다양한 꿈을 꾸기 시작하자
어머니는 알약을 주고 이것을 먹으라고 합니다.
주인공은 알약을 안 먹고서 먹은 척을 하고, 더 다양한 꿈을 꾸게 됩니다.

학교를 졸업할 때가 되면
그 아이의 적성에 따라 직업이 배정되는데,
직업 사이에 소득의 격차나 사회적 불평등은 없는 편이지만
아이를 낳기만 하는 '낳는 엄마'로 배정받는 것은 아주 조금 창피한 일입니다.
(하지만 낳는 엄마가 되는 소녀들은 대개 아주 느긋하고 게으른 성격이라 크게 신경쓰지 않아요)

주인공에게는 특별히 직업이 주어지지 않아서 고민하던 때에
그는 '간직하는 자'(명칭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아요)의 후계자로 선포됩니다.
간직하는 자는 할아버지인데,
사실 주인공 소년 전에도 한 소녀가 후계자로 뽑혔었지만 불운한 사고로 사라지게 되었죠.
간직하는 자는 소년에게 여러가지 기억을 전해주는데,
꿈. 사랑. 노래. 빛깔과 같이 그 사회가 봉인해둔 것을 전수합니다.
그런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간직하는 자 만이 알 수 있는 비밀이죠.

주인공 소년은 혼란에 빠져요.
이렇게 명확하게 존재하는 어떤 뜨거운 감정-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이 사회는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

그리고 이 소년은
그 사회를 떠나게 되는데
소년이 사회에서 멀어질수록
그가 전수받았던 기억이
공기중으로 흩어지기도
강물을 따라 흘러가기도 하며
그 평화로웠던 무채색의 사회를 작은 혼란으로 물들입니다.

마지막 장면은
겨울밤 눈속을 걷던 소년이
한 집의 창문을 통해 쏟아지는 빛을 보며 쓰러지고
그 집의 문이 열리며 소년을 안으로 급히 데리고 들어가요.

이 소설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데
무비스타님이 아래 소개하신 핵폭발 영화를 보고 떠올린
'핵전쟁 이후 최후의 아이들' 과 비슷한 시기에 읽었었던 책입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반공돋네요.
하지만 사회주의/공산주의 체제를 무조건 악하게 그린 것은 아니었어요.
그곳에는 평화는 있었거든요.
다만 인간적인 색채가 부족하다는 것을
말그대로 빛깔이 없고, 시가 없고, 감정이 없는 사회의 모습을 빌어 표현한 것이었어요.

저는 사실 읽으면서
주인공 소년이 왜 도망가는지 이해가 안 됐었어요.

그 사회가 꽤 좋아보였어요.


그리고
그 주인공 소년보다 먼저 후계자가 되었던 소녀는
간직하는 할아버지의 딸이었던 것 같아요.
그 소녀도 시스템에 회의를 느끼기도 했구요.

듀게 여러분도 이 소설 기억하시나요?
제 기억에만 의존해서 쓴 거라 정확하지 못한 부분이 많을 듯합니다만,
이 책 제목이 뭘까요.

ps 낳는 아빠(정자제공자)가 따로 있었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때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이 사회에는 섹스라는 행위가 없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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