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초능력 소년이 변호사들과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는 소재가 맘에 들고 또 하이킥 종석군이 나와서 보겠다고 맘 먹었던 드라마였지요.

근데 막상 시작하고 나니 왠지 귀찮고(...)

그냥 잊고 있다가 주말에 할 일도 없고 해서 iptv 다시 보기로 봤습니다.

그리고 4회까지 쭉 내리 달렸네요.


(이... 이런 느낌의 드라마였나;;;)


1. 초능력이라는 소재


초자연적인 능력을 지닌 인물을 주축을 끌고 나가는 이야기는 크게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그 능력을 그냥 신기하고 편리한 소재 꺼리로 삼는 경우와 그 능력에 뭔가 의미를 부여해서 거창하고 교훈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경우. 물론 뭔가 있어 보이려면 후자가 낫긴 합니다만, 전자의 경우라고 해도 그 능력에서 재밌는 아이디어를 많이 뽑아낼 수만 있다면 나쁠 건 없죠. 그리고 이 드라마는, 적어도 지금까지의 전개만 놓고 볼 때 분명히 전자에 속합니다.

 드라마 공식 홈페이지의 인물 소개에 '남의 마음을 읽을 수 있어 어려서부터 상처받고 세상을 불신하게된 어쩌고 저쩌고 중얼중얼' 이라는 식으로 주인공 박수하(=이종석)의 인물 소개가 적혀 있긴 합니다만. 개뿔이. (쿨럭;) 아쉽게도 그런 설정은 드라마 속에서 전혀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저 잘 생기고, 싸움 잘 하고, 착하고. 가슴 속에 삼천원 정도 품고 있는 와중에 어린 시절에 반한 연상의 여자를 위해 목숨까지 바칠 준비가 되어 있는 순정 만화에서 튀어 나온 주인공을 살짝 더 멋지게 꾸며 주는 소재일 뿐이죠. 동시에 어디까지나 법정물의 성격을 빌려 쓰면서도 사건 해결을 편하게 하기 위한 도구로 쓰이기도 하구요.

 게다가 이 능력, 참 오락가락합니다. 분명 상대방의 눈을 바라봐야만 사용할 수 있는 능력임에도 법원에서 정웅인이 등장하는 장면에선 쌩뚱맞게 그냥 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또 어떨 땐 멀리서도 한 번에 참으로 자세한 마음을 읽다가 또 어떨 땐 가까이서 빤히 쳐다보고도 아주 조금의 정보 밖에 못 얻기도 하고. 아무래도 작가들이 이 능력에 대해 그리 깊이 있게 고민하고 있는 것 같진 않아요. 안타깝죠. 잘 파고들면 '사토라레'처럼 독특한 물건이 나올 수도 있는 설정이라고 생각하는데 말입니다.


 하지만 뭐. 4화에서 악당 정웅인이 주인공의 이런 능력을 역이용해서 함정에 빠뜨리는 장면 같은 걸 보면 작가들도 나름대로 고민은 하고 있는 듯 하고.

 또 이런 뻔한 소재마저도 굉장히 독특한 것이 되는 한국 드라마의 토양을 생각하여 일단은 좋게 봐 줍시다;



2. 법정 드라마


 지금 드라마의 전개는 이종석 & 이보영을 위협하는 나쁜 정웅인 아저씨를 막아내고 때려 잡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긴 합니다만. 드라마의 기획 의도나 시놉시스 같은 걸 보면 그 쪽 이야기보단 '국선 변호사'라는 주인공 캐릭터들의 직업을 활용해서 억울한 처지에 당한 약자들에게 정의를 찾아주는 이야기를 의도하고 있습니다. 시작부터 이종석군 학교 친구들이 얽힌 사건으로 그런 이야기를 한 번 하기도 했구요. 그러니 아마 앞으로도 법정 장면이 큰 비중을 차지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죠.


 근데 이 쪽으론 별 기대 안 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금 전개상 첫 번째 사건이 마무리 되고 두 번째 사건이 전개중인데. 드라마의 시작을 여는 역할을 했던 첫 사건이니만큼 나름대로 작가가 신경을 많이 썼어야 했을 것이고 또 그랬으리라고 생각합니다만. 너~무 너무 허술했어요. 사건 발생 당시에 학교에서 선생들이, 혹은 출동한 경찰들이 아주 기본적인 사실들만 확인했어도 사건이 될 수도 없었던 사건(?)이었구요. 그걸 또 검사란 양반이 아무 증거도 없이 정황만으로 밀어 붙인 것도 웃기고. 또 그러한 검사의 공소장을 보고 '우왕! 이건 벗어날 수 없어, 100% 유죄다!!'라고 외치는 변호사의 모습은 더더욱 웃기구요.

 그 와중에 윤상현이 맡았던 사건으로 또 뭔가 기발하고 따뜻한 느낌을 주고 싶었던 것 같은데. 글쎄요. 말도 안 되는 변론 퍼레이드로 유명한 '앨리 맥빌'에 나온 변론들 중 가장 허접하고 가장 진부한 걸 골랐을 때 아마 이와 비슷한 퀄리티가 나오지 않으려나 싶더군요. 작가분에겐 죄송하지만 그냥 제 소감이 이렇습니다. -_-;;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 드라마를 재밌다고 보고 있냐면요.


(글이 쓸 데 없이 길어지니 종석군 얼굴이라도 보면서 쉬어가시라고;)



3. 로맨틱 코미디, 혹은 그냥 로맨스랑 코미디


 의외로 이 드라마는 이 쪽 방면이 꽤 쓸만합니다.

 전 사실 이보영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정도를 넘어서 좀 싫어하는 편이었고. 윤상현은 매번 느끼하게 비슷한 역할만 맡아서 별로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이 드라마에선 둘 다 좋습니다.

 둘 다 예전에 맡았던 역할들과는 느낌이 많이 다른 캐릭터를 맡았는데 그게 기가 막히게 잘 어울려요. 이보영은 일단 어딘가 모르게 케이지&피쉬('앨리 맥빌'에 나오는 로펌입니다) 소속 변호사 같은 짓들을 하고 다니는데 그렇게 자존심 세고 허영심 있으면서 뭔가 찌질하고 격하게 허술한 캐릭터를 꽤나 잘 소화합니다. 다시 봤어요. 그리고 윤상현은 잘 생기지 않은 역으로 나오니 오히려 매력이 확 사네요. 연기 자체는 이전에 맡아왔던 허술한 코믹남 연기 그대로인데 스타일과 캐릭터 성격을 바꿔주니 똑같은 연기인데도 다른 느낌이 듭니다. 좋아요. 드라마 소개 글을 보니 나중에 가면 잘 생겨질-_-것 같은 분위기인데 제발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 둘의 조합이 참 좋습니다. 닳아빠진 현실적인 변호사 vs 이상적인 어리버리 변호사라는 뻔한 구도인데도 그 뻔한 구도를 여러모로 섬세하게 잘 살린다는 느낌이 들어요. 특히 정의감만 내세우던 윤상현이 피고인에게 속아 봉변을 당하고, 그걸 보고 킥킥거리던 이보영이 초능력 조언자와 어린 시절 앙숙의 등장이라는 아주 세속적인 계기로 갑자기 정의의 변호사로 나서고, 그걸 보고 윤상현이 감동받아서 존경을 바치고, 그러다가 윤상현의 2차 변론을 보고 이보영이 또 감동을 먹고. 이런 식으로 흐름을 만들고 그 흐름 속에서 둘이 서로에게 호감을 갖게 되는 과정이 아주 자연스럽고 설득력있게 그려지는 게 맘에 들어요. 무작정 그냥 '어머나! 싸우다 보니 정들었네요? 우린 운명이었나 봐요!!' 같은 식이 아닌 게 어딥니까. 한국 드라마에서 이런 거 은근히 드물어요.


 그리고 사실상 이 드라마 시청률의 1등...은 잘 모르겠어도 최소한 2등 공신 정도는 될 이종석군.

 캐릭터 자체는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그냥 순정만화에서 뽑아낸 성격을 순정만화스러운 비주얼의 배우에게 얹어 놓은 것에 불과하죠. 근데 일단 그 비주얼이 기가 막히게 잘 어울립니다. '늑대의 유혹'에서의 강동원처럼, 그냥 이종석은 이 드라마에서 비주얼과 존재 자체가 연기입니다. 

 이 분의 얼굴이 가만보면 좀 개구쟁이 어린애스런 구석이 있거든요. 잘 생긴 듯 하면서도 늘 어딘가 불완전하고 부실한 듯한 느낌이 있는데, 그런 이미지가 어린 시절 비극적인 사건을 겪고 그 때의 은인에게 집착하는 '몸만 다 큰 어린애' 캐릭터와 아주 잘 맞습니다. 덩치 크고 쌈박질 잘 해서 여주인공이 의지할만한 인물인 동시에 이런 미성숙한 면 때문에 여주인공의 돌봄을 필요로 하는 캐릭터인 거죠. 10대 여학생들이 이 드라마에 환장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 게다가 이종석은 하이킥, 학교2013을 거치면서 연기의 기본기를 잘 다진 것 같아요. 

 적어도 이제 더 이상 '시크릿 가든'에서의 전설의 발연기 걱정은 안 해도 될 듯. 잘 크고 있는 배우 같단 생각이 들구요.


++ 적다보니 그냥 배우들 얘기가 되어 버렸는데, 그런 주제에 김해숙씨 얘길 빼먹었네요. 이 분 최곱니다. -_ㅠ)b


(갑자기 스스로가 뭔 얘길 떠들고 있는지 모르겠길래 사진이나 끼워 넣었습니다;)



4. 스릴러


 이 부분은 그냥 정웅인(정웅인의 캐릭터)이 혼자서 온 몸을 내던져 담당해주고 있죠.

 요즘들어 정웅인이 이 드라마에서의 연기로 극찬을 받고 있는 걸 보면 좀 애매한 기분이 듭니다. 일단 이 정도 연기는 예전부터 충분히 하고도 남을 배우였는데 너무 과소 평가 받고 있었던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와 동시에 또 이게 그렇게까지 칭찬받을만한 연기인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어쨌거나 아주 적절한 캐스팅이었고 배우도 잘 하고 있단 얘기구요.

 

 지금까지는 이게 스릴러 위주에 코미디가 섞인 드라마인지, 코미디 위주에 스릴러가 섞인 드라마인지 애매해서 감이 안 오긴 합니다만. 스릴러 파트도 정웅인의 열연을 바탕으로 나름대로 충실하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정체불명의 메시지를 보낸 번호로 전화를 걸었더니 집 안에서 벨소리가 울리더라'는 도시 괴담스런 소재를 적절하게 활용한 장면 같은 부분도 좋았구요. 또 정웅인의 복수 준비를 빤히 알면서도 막상 일이 터지기 전까진 뭔가 제대로 대비를 하기 어려운 주인공들의 답답한 상황도 나름 설득력이 있어서 긴장감 조성에 보탬이 되구요.


 다만 벌써부터 정웅인 캐릭터가 너무 달려 버려서 도대체 앞으론 무슨 얘길 어떻게 전개할지 걱정이 되긴 하네요;;



5. 종합적으로


 일본 드라마 같단 느낌이 많이 듭니다. 같은 요일, 같은 시간대에 MBC에서 아예 일본 드라마 리메이크를 방영하고 있지만 오히려 그 쪽보다 이 드라마가 더 일본 드라마 같아요.

 초능력자라는 독특한 소재에다가 법정물 같은 전문가 요소를 끼얹고. 또 뭔가 참 연애 못 하게 생긴 남녀 주인공이 만나서 전혀 뜨겁지 않은 애매~한 호감을 발전시켜 나가는 러브라인. 평상시엔 빙구 같아도 필요할 땐 믿음직스럽고 존경스러운 인물로 변신하는 조력자들. 그리고 뭣보다도 네 컷짜리 연재 만화 주인공들처럼 개성이 과할 정도로 확실한 등장인물 설정들. 등등.

 (덤으로 매 회마다 노래 제목을 차용한 제목을 붙여 놓는 것도 어쩐지 좀...;)


 가만히 따지고 들자면 법정 장면이든 정웅인의 범죄와 복수 장면이든 주인공들의 성장 과정이든 아주 격하게 구멍이 많습니다만. 굳이 그런 것 따지고 들지 않게 하는 매력적인 등장 인물들이 있습니다. 유머 감각이나 타이밍도 꽤 준수하구요. 주인공들의 로맨스가 크게 억지스럽고 운명스럽지 않은 보기 드문 한국 드라마이기도 하네요.


 일단은 재밌게 봤고 또 당분간은 챙겨 보려고 합니다.

 자꾸만 작가가 조만간 약빨 다 떨어져서 자폭할 것 같단 불길한 예감이 들긴 합니다만. 뭐 그렇게 되면 그만 보면 되는 것이니;;



6. 덤으로 앞으로 전개에 대한 잡담이나 해 보자면


 수하 아버지가 왜 살해되었는지. 과연 정웅인이 '몸통'인 것인지. 그게 아니라면 배후엔 또 어떤 흑막이 있을 것인지. 떡밥 거리가 넘쳐나는데 사실 이 쪽으론 별로 기대가 안 됩니다. 아마도 수하 아버지도 그렇게 좋은 사람이 아니었던 거겠죠. 그리고 정웅인에게도 뭔가 애절한 사연이 있었을 거구요. 예를 들어 수하 아버지 때문에 일자리를 잃었다든가, 그리고 이보영이 증언해서 유죄 받고 감옥가는 바람에 이 사람 가정이나 인생이 파탄이 났다든가.

 그리고 결정적으로 정웅인이 수하 아버지를 살해하는 장면과 재판 과정이 하나 같이 말이 안 되어서 더 기대가 안 되기도 합니다. 아니 달리는 자동차를 90도 각도에서 쌩~ 하고 달려와서 정확하게 운전석을 들이 받는 게 가능합니까. ㅋㅋㅋ 고르고13도 그렇게는 못 할 겁니다.


 바라기로는 그냥 정웅인 이야기는 적당하게 양념 정도로 넣어 주면서 이보영 & 윤상현 & 이종석 셋이 힘을 합해 난감한 사건들을 해결하는 시리즈물로 흘러갔으면 합니다만. 한국 드라마들의 특성상 그게 가능할진 모르겠네요. 그렇게만 된다면 시즌제로도 만들 수 있고 여러모로 재밌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뭔가 할 말이 더 남아 있긴 한데 재미도 없고 뭔 소린지 알아 먹기도 힘든 산만한 글이 분량만 많아지는 데다가 가족분께서 작작 좀 쓰라고 하셔서 여기서 급작스럽게 끝입니다. <-



7. ...라면서 마지막 덤. ㅋㅋ


(이! 나! 영!!!!! ;ㅁ;/)


아무리 봐도 이 드라마의 제목은 이 노래에서 따온 것이 맞습니다.

첫 회 제목을 '너의 목소리가 들려'로 해 놓고 이후로 쭉 노래 제목들을 인용하는 것만 봐도 그렇구요.

4화 엔딩 때 나오던 노래의 분위기나 연주도 이 곡 분위기가 은근히 묻어나구요.

제 생각엔 그냥 델리스파이스에게 허락받고 주제가로 써도 되었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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