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년 제주도에서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이 다 신기하게도 종교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이 종교적이라는 말의 의미는 대략 이러합니다.

 

    인도인(현재는 영국 거주)이던 sat는 제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더군요 "I'm not a religious people, but a spritual man"   저는  세상에는 영적인 부분이 존재하고 그것을 통해 삶의 참 의미를 구하는 사람이라는 뜻 정도로 새깁니다.   제주에서 벛꽃동산 님께서 소개해준 별방촌에서 맛있게 저녁을 먹던 중  이 친구가 옆에서 다른 부부와 이야기하던 저의 금연 고민을 듣고는 비수같은 말을 하더군요.

 

    "금연을 하고자 하는 그 놈이 당신의 에고입니까? 당신 자신입니까?" 왜 그런 말을 하느냐라고 물으니 "에고가 하고자 하는  것이라면  당신은 절대 금연하지 못할 것이다. 단지 참는 것일 뿐이다."라 답하더군요. 동석했던 다른 부부가 이야기를 거드니깐 이사람 과거가 좀 드러났는 데 상당히 놀랬어요.영국에서 젊은 시절을 보낼 때 한때 록그룹 드러머까지 했고 그 생활 때 온갖 마약 손 안 대본게 없었다고. 자신도 에고가 그 마약류를 끊게 할때는 단지 참는 것일 뿐이었고 결국 다시 마약을 하게 되었대요. 근데 어떤 영적 체험에 의해 에고가 아닌 자기 자신이 마약을 끊기를 원한다는 것을 알게 되서는 거짓말처럼 진짜 마약이 딱 끊어지더라는 겁니다(그 후 15년이 흘렀는데 전혀 생각도 안난다 하더군요)

 

    겨우 하루 같이 지냈는데도 너무 너무 정이 들어서 헤어질 때 한국 이름 한가지 선사해 주었어요. '두루 두루' 라고  인도에서  영적 스승들을 '구루'라 부르는데에 착안해서 세계 여행 중인 그가 어떤 곳을 가든 '두루두루' 잘 통했으면 하는 제 바램을 넣었어요. 의미를 알려 주자 몹시 좋아하더군요. 머물고 있던 월정리 카페에 데려다 주면서 거기 알게 된 한국인들에게 한국 이름 자랑하던 큰 웃음 소리가 기억납니다.

 

    같이 동석했던 부부도 제주도에서 인연을 맺은 spritual man 이었습니다(사실 이 친구들이 sat를 소개해 주었어요) 바다 수영때문에 서로 안면을 텃는 데 알고 보니 수행자들이었던 거죠. 이 사람들은 기독교 계열이긴 한데 일종의 무교회주의자들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세종'선생 계열이더군요. 제가 이세종 선생을 안다 하니 몹시 놀라하면서  그 분을 이해할 수 있다면 더 이상 꺼리낌 없이 종교에 대한 토론도 가능하겠다 하더라구요. 밤늦게까지 서로가 각자 믿고 있는 종교에 대해서 교차 토론을 했던 즐거운 추억이 있습니다.

 

    이 부부가 놀라운 건 둘다 카이스트를 졸업한 이공계 계열의 최고 엘리트였다는 사실(남편은 핵물리쪽,아내는 생물쪽이었던 것 같아요). 나중에 확인해 보니깐 정말로 남편은 그 분야 책도 냈더군요. 일본에서 한 15년 이상 핵물리 연구소에 재직해서 그동안의 국내 사정을 거의 모르더라구요. 한마디로 부부 둘 일본에서 연구원 생활만 하던 고리타분한 사람들이었던 거죠. 그런데 어떤 계기로 확실히 하나님을 영접하고 나서 삶을 180도 바꾸어 기존의 삶을 완전히 청산하고 수행자로서의 삶으로 올인한 거죠

 

    1주일 정도를 같이 수영하고 근처 구경하고 같이 보냈는데 정말 그런 것이 느껴졌어요. 삶에 대한 어떤 두려움도 없이 모든 것을 온전히 하나님께 맡긴 사람들. 오직 기도와 헌신으로 하루를  보내는 사람들. 그때 김녕해수욕장에 온 피서객들은 다 이 부부들과 이야기를 나누더군요.전혀 종교적 색채는 없고 어떻게든 사람들을 도우려하는 선의만 느껴지는 사람들이니 누가  안 친해지겠어요.

 

    헤어질 때 어떻게 우리가 만났을까 참 신기한 인연이다 하니깐 그러더군요. 당신이 그런 사람이라서 그렇게 된거라구요. 자기들 눈에는 보인데요 그런 것이 ㅎㅎ..

 

    작년 겨울에 인연을 맺은 호주친구도 희한하게스리 동양의 영적 전통과 한국 불교에 대해 관심이 지대한 사람이더군요. 이 친구랑 해인사 갔을 때 묘한 일이 있었어요. 진짜 한국 불교 수행승 만나니깐 미리 물어 볼 거 준비 좀 해라 하고 갔는데 이 친구가 첫 질문과 스님 대답을 듣더니만 더 이상 질문을 안하더라구요. 나중에 그 이유을 물어 보니깐 " 처음 대답을 듣는 순간 다른 질문들이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무슨 질문을 할 만큼 공부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다" 하더군요. 저도 딱 그 기분 알겠더구만요. 참스승을 만나면 자기가 보이는 거죠. 제가 딱 그랬으니깐요.

 

2. 종교의 핵심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세속과 마찰을 일으키게 되는 걸까?

 

   종교라는 말 자체는 "뿌리가 되는 가르침" 이라는 뜻입니다. 근데 이게 무엇일까요? 저는 그것이 "영적 체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되돌아 갈수 없는 변화에요. 비슷한 예를 들자면 처음으로 성적 오르가즘을 느낀 것과 같은 것입니다. 성적 오르가즘을 느끼고 난 후의 그(혹은 그녀)는 그걸 느껴보지 못한 사람과 내면에 있어서 현저히 다릅니다. 이건 그냥 아이와 성적으로 성숙한 어른 차이만큼 그 격차가 큽니다.

 

   문제는 이 영적 체험이란게 철저히 주관적일 뿐만 아니라 대단히 위험할 수도 있는 양날의 칼이란 거죠. 만약 성적 오르가즘을 신체가 다 자라지도 않은 아이들이 경험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대개 예상되는 것은 '중독'입니다. 불교식 어법으로 말한다면 끄달리는 거죠. 

 

   숭산스님의 수행기에는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스님께서 한참 참선하다 천장이 투명해지면서 푸른 하늘이 보이는 체험을 해요. 아 이제 뭐 되는 가부다 하고 스승이신 고봉스님께 가서 이야기를 합니다. 고봉스님이 가만히 들으시다가 갑자기 방망이로 눈에 별이 보일 만큼 후려칩니다. 그러고는 묻습니다  "아직도 하늘이 보이냐"라구요 머리통이 얼얼해진 숭산 스님이 당연히 "안보입니다"라고 답하자 그제서야 고봉스님은 "됐다. 천장이 천장으로 보이는 게 정상적인 공부다. 그런 현상에 마음 두지 말고 끄달리지 말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저는 이 "영적체험"을 맞을 인격적 정신적 성숙이 안된 사람들, 혹은 불순한 이유로 이 체험을 구하는 사람들이  그 체험을 하면 그것을 버릴 줄을 모르고 그것의 포로가 되어서 세속의 윤리 도덕과  주로 마찰을 일으킨다고 생각합니다..

 

    도법스님이 쓰신 글에 이런 부분이 있어요. 정확하진 않은 데 대충 이런 것입니다. 종교는 영적인 부분. 이성적 부분(철학적 부분).윤리적 부분 3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이 3가지가 서로 모순이 된다면 당신의 믿음을 의심하라. 의심을 허용하지 않는 종교는 가장 나쁜 형태의 독단이다.

 

    탄허스님은 그의 화엄경 강의에 참여한 당대의 석학들에게 서두에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무엇이든 물어라 단 물을 것이 없어지면 내 질문에 대답할 각오를 하라" 신과 나눈 이야기라는 책에도 이런 부분이 있어요. 저자에게 현신한 신이 말합니다 " 무엇이든 물어라 내 너 인생과 모든 역사와 시간을 다 뒤집어 보이더라도 너에게 설명해 주겠다" 사실 저는 그땐 종교인이 아니었지만 저 이야기에 몹시 감동받았어요.

 

    이런 저런 물음과 의심 그리고 세속적 윤리조차 허용하지 않는 종교는 종교가 아니고 광신일 따름입니다. 자질구레한 그리고 결국은 궁극적 절대 체험까지 가지 못하게  하는 주 장애물인  사소한 "영적 체험"에 사로잡힌 불쌍한 영혼들이 이 광신의 피해자이자 가해자들입니다. 그 스스로 지옥에 있으면서 천국에 있다 착각하고 타인에게 지옥을 강요하지요.

 

    저 개인적으론 공부 초기에 이런 체험들이 얼마나 치명적인 건지 직시했어요. 실제로 목숨이 위험하기도 했구요. 그 위험에서 벗어난 게 해 준건 오히려 저의 오랜 세속적 '이성'덕분이었습니다.

 

    영성은 종교인에 있어서 일종의 악셀레이터입니다. 그리고 이성과 윤리는 브레이크와 핸들입니다. 이 3가지가 같이 가지 않으면 반드시 사고가 납니다. 물론 종착지에 도착하면 이 세가지의 도구적 구별은 사라지게 됩니다. 글자 그대로 자유 자재해 지겠죠.

 

 

.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