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한참 절에 절하러 다니는 인연으로 어떤 노스님을 만났습니다. 3번 정도 각 2시간씩 대화를 나누었는데 참 좋은 시간들이었고 실제적인 유용한 조언도 들었습니다. 이 스님은 일타스님의 막내상좌였다고 하셨는데 나중에 검색해 보니 지금 조계종 종정인 진제 스님과 형님 아우님 하는 사이셨더군요 ㅎ. 8가지 이야기를 들었는 데 그 중 한가지가 어제 오늘 마음이 심란하신 어떤 분들께 도움이 될까 하여 소개합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불교를 "Science of mind" 즉 마음의 과학이란 입장에서 수용합니다. 이것은 공동체(세속)의 윤리와 마음의 움직임이 서로 상치될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이걸 전제로 스님 이야기를 전할까 합니다.

 

불교 특히 선불교는 그 입구에 이렇게 써 붙이고 시작합니다. "여기 들어 오는 자 알음알이를 내지 마라" "사량 분별과 양변을 여의어야 비로소 공부길이 열린다" 오늘 제가 드릴 말씀은 소위 思量에 대한 것입니다.

 

노스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처사님, 복은 짓고 빚은 갚아라는 말 들어 보셨지요? 그게 무슨 말인지 아세요?" 잘 모르는 제가 그냥 대충 말씀드렸더니 대뜸 제대로 모른다고 호통을 치셨습니다. "대개 사람들이 말이에요 자기 빚은 갚지 않으면서 복을 구하거든. 근데 빚 계산과 복 계산은 따로 계산해야 되요.서로 상계되는 것이 아니에요. 마음 속에서 내가 잘못한 것도 있지만 잘한 것도 있으니깐 대충 따까마시 해 갖고 결과적으로 플러스다 마이너스다 그렇게 계산하거든. 그거 다 씰데없는 짓이야. 그런 마음을 갖고 있으니깐 복도 안오는 거야. 마음이란 게 참 신기한 게 빚의 그림자가 있는 한 있는 복도 보이지 않게 되어 있어. 반드시 명심해 두세요. 빚 갚는 게 먼저인 거, 그리고 복은 구하는 게 아니고 스스로 지어 간다는 거"

 

저는 솔직히 좀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 이게 사량이란 거였구나. 재는 마음, 양쪽의 무게를 저울질하는 이 마음이 사실은 스스로 알고 있는 빚을 회피하려는 기동이란 지적이었던 거지요. 무언가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후로 비로소 절이 제대로 되기 시작했습니다. 참회란 말의 진정한 의미는 빚갚기라는 사실. 사량하지 않고 일단 내가 잘못했던 부분부터 무조건적으로 사과해야 한다는  이 가르침은 불쑥 불쑥 일어나는 어떤 마음들을 잡아 주었습니다..

 

저는 세속의 공동체 윤리를 존중합니다. 세속의 공동체 윤리는 알음알이,사량,분별 그리고 양변으로 이루어 집니다. 또한 저는 그 윤리가 구현되는 세상을 보고 싶어서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도 노력합니다. 하지만 그걸론 부족해요. 저는 부처의 세계와 말의 세계 그리고 물리력의 세계가 상하가 아닌 좌우일 따름이라고 생각하고 부처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믿습니다.

 

어느 여러분 사량하지 마세요 ㅎㅎ. 적어도 마음의 과학에선  그냥 cool해 집시다. 빚은 빚대로 재산은 재산대로 그냥 그 몫만큼 바르게 봅시다.

 

한가위 만큼 큰 마음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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