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에 대한 세가지 잡담

2011.12.06 00:55

피로 조회 수:2920

12월, 크리스마스, 솔로.


뭐 이런 글들이 눈에 띄어서 그냥 생각나는 대로 지껄여봅니다.



#01.


12월은 솔로들의 몸부림이 시작하는 시기입니다.

뭐, 주변에 솔로들이 워낙 많다보니, 그리고 저 또한 솔로다보니 그 몸부림을 처절하게 관찰할 수 있는데요.


최근에 친구들이 마침내 '소개팅 앱'이라는 걸 시작했습니다;

앱이 랜덤으로 하루에 몇명씩, 남녀를 매칭시켜주는 프로그램이라고 하더군요.


재미있는것은, 그렇게 소개팅 앱을 실행시켜도, 실제로 연락하는 빈도는 극히 적다는 것입니다.

뭐,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겠지만, 사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덜커덕, 연락을 시작할 만한 사람을 찾다보니 아무래도 눈이 높아지는 것이겠지요.


그래도 굳이 그 앱을 통해서 연락을 해서, 소개팅녀(?)와 만나서 술을 마신 아는 형이 있기는 했습니다.

밤새도록 같이 있었다길래 좋은 발전이 있었나... 싶었는데 그냥 단순히 차가 끊겨서 같이 있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형. 어떻게 할껀데요 ㅎㅎ "

"싫은건 아니니까... 일단 계속 연락해봐야지."

"형 맘에 드는거야, 아님 맘에 안드는거야. 그것도 아니면 그냥 만나봐야겠다, 이런거야?"


제 질문에 형은 그냥 허허, 웃기만 하더군요. 좋다는 건지 어떻다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앱을 통해서라도 몸부림치는 솔로들의 절규들을 보면, 확실히 12월 이 즈음은 바쁜 시즌이긴 한 것 같습니다.



#02.


자꾸 다른 사람을 팔아먹는 것 같은 생각이 들지만, 또 다른 형 이야기를 해보죠.


이 형은 일단 키 크고, 잘생겼습니다. 너무 뻔한 수식어지만. 일단 외모는 그래요. 

하지만 제가 알기로 27년째 솔로이고, 아마 올 크리스마스에도 탈출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원인 또한 뻔합니다. '자신감 부족'이지요.

일단 키 크고 잘생겼다는 거, 거기까지는 스스로도 아는데. 여자랑 대화를 해본 역사가 거의 전무합니다.

그래서 평소에 남자들 사이에서 잘 웃기고, 유머러스한 이 형은 여자들 앞에가면 거의, '아무말도 못' 합니다.


매력이 없는 사람은 분명히 아닙니다. 

남자들끼리 있을때 너무 발랄하게 자신의 매력을 드러내다보니 사랑고백도 세번이나 받았죠. 남자들한테.

...이 형이 호모포비아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는데, 암튼 그 얘기꺼내면 절규합니다. 뭐 암튼.


그렇게 여자들과의 거리를 항상 두다보니, 이제는 여자들과 얘기하는 것에 대해서 공포심, 자신감부족, 막연한 "저 여자는 날 안좋아할거야"라는 선입견 등등이 박혀버려서 어떻게 구제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눈물좀 닦고) 이제는 "난 안될거야 ㅋㅋ"라는 자학개그를 마구 시전하고 있어요.

진짜 너무너무 재미있는데, 슬프네요.


그런데, 생각보다 외형 멀쩡한 남자들 가운데에서, 이렇게 자신감 부족으로 솔로의 무한루프를 계속 돌고 있는 남자들이 많습니다.

저 형의 경우에는 스스로, 여자와 대화를 잘 못한다는 단점을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멀쩡한 장점들을 보여주지 못하는 케이스. 굉장히 많아요.


이런 사람들에게도, 인연이라는 게 찾아올까요?

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작게보는 사람들에게는 인연이 잘 안오더라고요.



#03.


얼마전에 어떤 누나한테 고백했다 차였습니다. 10월 초였으니까 대충 두달정도 되었군요.

뭐, 여러 사정이 있었고, 그 때문에 안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더 미뤄둘 순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결과는 그렇게 끝났죠.

그러고도 가끔씩 연락하고, 여럿이서 얼굴볼때 같이 만나고, 잘 놀고 그러긴 합니다만 아쉬운점이 있습니다.


고백하기 전처럼, 둘이서 편하게 간단하게 맥주한캔씩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하던, 그런 시간들을 더이상 갖지 못했다는 점이죠.


글쎄요, 누나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연락할때는 그 때 얘기를 하면서 그리워하기는 하는데

막상 만나서, 그렇게 하자고 말을 못하겠더군요.(...네, 제 용기부족이죠.)


그래서 못내 아쉽습니다. 어쩌면, 고백하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좋은 시간들을 함께할 수 있던 인연이 계속되었을텐데.


늘 그런 것 같아요. 친구사이에서 연인사이로 넘어가는 그 문턱.

그 문턱 사이에서 인연은 한순간에 추락할 수도 있겠죠.


그래도, 도박같더라도 그 문턱을 또 다시금 넘어가고 싶다는 건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결론은, 그래서 저는 올해도 크리스마스를 친구들과 지내게 될 것 같다는, 그런 훈훈한 이야기지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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