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용어 정리

2012.02.17 02:28

남자간호사 조회 수:5105

업계 용어 정리라는 거창한 제목을 달긴 했지만, 사실 제가 일하는 업계(물론 간호계겠죠 ^^)에서 자주 쓰이는 용어 두 가지를 소개해볼까 합니다.


그 중 하나는 '탄다'라는 표현이고,

또 하나는 '짱돌'이라는 표현입니다.


1. 탄다 / 태운다.


'탄다'는 것은 간호계 전반에서 주로 쓰이는 용어입니다. 아니, 사실 간호계 외에서는 이런 표현을 쓰는 것을 본 적이 없어서, 간호계에서만 쓰이는 표현이 아닐까 합니다.

'탄다'는 것을 가장 쉽게 설명하는 단어는 군대에서 주로 쓰일 법한 표현인 '갈굼 당한다'가 있습니다. 아주 적확하게 대치되는 단어라고 볼 수 있지요.

'탄다'와 '태운다'의 차이는 '갈굼 당한다'와 '갈군다'와의 차이와 같습니다.


상급자가 하급자를 갈구고, 하급자는 상급자에게 갈굼 당하듯이,

선배 간호사는 후배 간호사를 태우고, 후배 간호사는 선배 간호사에게 탑니다. 


실례는 아래와 같습니다.

예1) 나 오늘 인계 하다가 검사 결과 빼놓고 말했더니 선배한태 활활 탔어.

예2) 아니, 오늘 신규가 일을 엉망으로 하는 거야. 도저히 정리가 안 되길래 하나 하나 지적하면서 좀 태웠어.


간호사들은 여자들이 대부분이 직업임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위계질서가 강합니다. 

더군다나 간호사가 하는 일은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어 있기에, 일을 못하는 것은 단지 일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안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에 간호사들은 강박적이다시피 섬세해지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각 전문 분야에 따른 의사들이 있듯이, 간호사들도 한 분야에 경력이 쌓인다면 관련 분야를 매우 자세히 알게 됩니다. (대신 그 외 분야는 거의 모를 가능성이 있음)

예를 들어 심장 파트 간호사라면, 심장의 해부학적 지식은 물론, 심전도의 미세한 차이와, 중요한 혈액 검사 결과까지 섬세하게 구분하는 지식이 요구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들이라고 해서 백과사전 두께의 심장학 책을 다 외울 수 있는 건 보통 사람들에겐 거의 힘들지 않습니까?

그럴때 경험과 지식이 쌓여가며 우선 순위가 파악되고, 중요도가 파악이 되는 거죠.

그런데 신규 간호사는 경험과 지식이 미천할 수 밖에 없고, 정말 일만 급급하게 하는 경우가 많죠. 그런데 또 이게 선배가 되면 정말 중요한 포인트를 놓쳐가면서 일을 하는 거로밖에 안 보이고, 또 위험해보이기도 하는 겁니다.

그래서 매콤하게 가르치는 거죠! 그래서 태우게 되는 겁니다만...조금 과하긴 합니다. 아마 한국 사회 전체에 은연 중에 퍼진 군대 문화의 잔재가 아닐까 합니다.



2. 짱돌


'탄다'라는 표현과는 달리 '짱돌'이란 단어가 간호계 전반에서 쓰이는 지에 대한 확신은 없습니다. 아마, 제가 한국에서 일했던 응급실, 혹은 응급실이 소속된 병원 안에서만 쓰이던 유행어였을 수도 있지만, 제 동료들과는 아주 자연스럽게 이 단어를 주고 받았습니다.

'짱돌'이란 단어는 일반적인 단어로 치환해 보면 '진상'이란 단어에 아주 적합합니다. 

하지만 제겐 '짱돌'이란 단어로 표현되는 감정의 절절함이 '진상'이란 단어보다 더욱 강렬합니다.

'짱돌'을 만났다고 표현한다면 그 짱돌을 환자로 받았어야할 간호사에 대한 동정심과, 그 환자에게 가졌을 답답함이 그냥 확 다가온달까요?


실례 및 응용 표현 들어가겠습니다.

예1) 아까 그 환자 완전 짱돌이야. 응급의학과 의사가 꿰매준다는데, 소리 막 지르면서 무조건 성형외과 기다리겠다고 난리 부리는 거 있지? 

 (이해를 돕는 설명을 덧붙이자면 종합 병원 응급실에선 전문의가 내려와서 환자를 보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보통 그 전문과 레지던트가 환자를 보게 되거든요. 성형외과 레지던트 샘들 무시하려는 건 절대 아니지만, 성형 외과 레지던트들보다 간단한 상처 봉합 같은 경우엔 오히려 응급 의학과 레지던트들이 더 경험이 많을 수 있거든요. 성형 외과에선 보다 큰 재건에 경험이 있을테지만요.) 


응용표현1) 오늘 응급실 완전 자갈밭이야. 짱돌들 천지야, 천지.

(자갈밭이란 표현은 제 기억에 따르면 어떤 간호사의 독창적인 표현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너무 센스있게 느껴져 기억해두고 있었죠.)






3. 오늘의 짱돌 에피소드.


 오늘 매우 힘든 밤근무를 마치고 퇴근했습니다. (지금 캐나다는 아침입니다)

 제가 보는 환자 구역 중 두 군데가 방으로 분리된 병실입니다. 그 중 한 병실이 비게 되자, 감독 간호사 샘이 지금 예진 구역에 좀 난폭한 환자가 있어서 다른 환자들하고 거리를 두어야 할 것 같으니 그 방에 환자를 넣겠다고 제게 귀띔을 해주었죠.

 이 환자는 참 난폭한 환자라고 하더군요. 저번 주에도 비슷한 문제로 병원에 왔는데, 하도 난리를 부려서 퇴원을 시킨게 아니라, 경찰에 신고해서 경찰이 잡아가게 했다는 싱싱한 에피소드가 있을 정도로요.

 이윽고 그 환자를 받았는데..난폭한 건 둘째치고 환자 상태가 너무 안 좋은 겁니다.


 한국 드라마나 영화에선 쓰러질 때면 심장 붙잡고 쓰러지고, 뒷 목 잡고 쓰러져서 사람들이 간과하는 경우가 많지만, 생명 유지에 가장 중요한 건 기도 유지입니다. 뇌로 산소 공급이 안 되면, 가장 빨리 죽음에 이르릅니다.

 심장 마비 때문에 죽는 게 아니라, 심장 마비로 인해 뇌에 피가 가지 못해서 산소가 전달되지 못해 죽는 거여요. 그래서 심장 마비 후 심폐소생술이 중요한 겁니다. 심장이 안 뛰면 흉부 압박을 통해 심장을 억지로 눌러 피를 짜낼 수 있으니까요. 

 어쨌든 심장도 물론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기도 유지라는 것이 포커스.

 

 근데 이 환자가 숨쉬는 게 영 별로인 겁니다.

 완전 헐떡이면서, 안색도 안 좋고요.


 그래서 오자마자 심전도 모니터 환자 몸에 연결하고, 산소 수치 기계도 손가락에 끼우니, 다행히 보기만큼 상태가 나쁘진 않더군요.

 

 그래도 너무 너무 헐떡이길래, 산소 줄 연결해서 코에 걸쳐주려니(산소 콧줄이 가장 기본이면서 환자에게 가장 편합니다), 이 사람이 그거 싫다고 고개를 흔듭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만성 폐 폐쇄성 질환이라, 마스크 연결해서(산소 콧줄보다 산소 농도를 높게 줄 수 있습니다) 산소를 주면 오히려 환자에게 해가 될 수 있어서 그렇게 주기는 좀 저어되더군요.


 그리고 모니터 상 수치가 나쁘지가 않아서 굳이 산소를 연결할 필요는 못 느꼈고요.

 그리고 동맥혈 결과도 괜찮았고, 또 폐음 청진하는데 의외로 또 괜찮았어요.


 그래도 환자 상태가 너무 안 좋아 보여서 다른 환자들에게 갈 수가 없었습니다. 이 사람이 가장 응급한 환자인거죠. (그 상황에 다른 환자들도 결코 안 급한 환자들이 아니라 속이 타들어가긴 했습니다만..다행히 다른 동료들이 도와줘서 문제는 없었습니다.)

 환자 옆에서 완전 1대 1 간호 수행이 되어버렸어요.


 난폭한 환자라길래, 시큐리티 옆에서 지켜보는 채로, 정맥 주사 라인 확보하고, 정맥 주사 주면서, 폐렴일 가능성에 대비해 항생제를 투입했습니다.  


 그리고 네뷸라이져 치료 처방이 나서, 네뷸라이져(증기 치료)를 주는데, 자꾸만 벗어버리는 겁니다. 

 이 사람이 정신이 혼미해서 답답해서 그런가 싶어 네뷸라이져 벗어버릴 때마다 살짝 살짝 다시 입과 코에 증기 들어갈 수 있게 해주었어요. 

 환자는 자꾸만 벗고, 벗으면 치료가 안되니까 저는 계속 다시 대줘야 하니 증기 치료 끝날 때 까지 옆을 지켜야만 했죠.


 이 사람 바지가 젖었는데(바지가 젖었다라는 표현에서 생각날 수 있는 이유로 젖은 겁니다), 바지를 갈아입히려 하니까 또 완강하게 거부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계속 숨이 차다고 해서 산소 콧줄 주려고 하니 싫다하고, 마스크를 씌워달라고 씌워달라고 씌워달라고 하도 그래서 위험성은 있지만, 의사 확인 하에 환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자 해서 산소 마스크를 드디어 씌워주니 벗어버립니다. 아니, 벗어버린다는 표현은 부족하네요. 산소 마스크 끈이 떨어져 나갈정도였으니, '산소 마스크 씌워준 걸 뜯어버렸다'고 표현하는 게 더 낫겠네요.


아, 심전도 모니터 연결해 놓은 줄은 이미 몸에서 떼여져 나왔고, 산소 수치 줄도 이미 손에서 떨어져 나왔습니다.

여전히 바지는 젖은 채 벗기지도 못했고, 이미 상의는 입고 있지 않습니다. 사실 바지도 반 쯤 벗거져 있어 치부가 드러난 상황이라 이불을 덮어줘도 이불을 던져버립니다. 그러니까 위에서부터 70% 정도가 노출된 상황인 거죠.


자, 간단하게 정리해보겠습니다. 

환자가 숨을 못 쉰다는 호소로 왔습니다.

네뷸라이져를 주니 자꾸만 벗어버립니다.

산소 콧줄은 싫답니다. 산소 마스크는 뜯어버립니다.

심전도 체크는 물론이오, 산소 수치 확인도 거부합니다.

환자 가운으로 갈아입히지 못한 것은 당연하고, 젖은 바지 벗는 것도 거부합니다.

그러면서 자꾸만 간호사를 불러서는 무언가를 호소합니다.


숨을 못 쉬어서 정신이 혼미해서 그런가 네뷸라이져 치료를 다시 하기로 했습니다.

네뷸라이져 용기에 약을 채워서 마스크에 연결하자...어떻게 하신지 아십니까?

절 바라보며 약이 담긴 용기를 뒤집어 약을 바닥에 쏟아 버리더군요.


3시간 동안의 설득 끝에 결국 바지를 벗기고 환자복으로 갈아입혔는데..10분 후에 보니 벌거벗고 있더군요.


선풍기를 가져다 달라, 자기 바지 주머니를 뒤져달라(그 안에 그 사람이 사용하는 마약 복용 도구가 있더군요. 물론 마약 복용을 용인하지 않았습니다) 등.


숨을 못 쉰다고 하는데, 막상 수치는 괜찮고, 심지어 치료를 해줘서 효과가 있어 기운이 나니까 절 더 괴롭히고;


몇 시간 째 고생하는 저를 보고 동료 간호사들이 다른 환자들 많이 도와주고 위로해주고 하더군요.



그렇게 긴긴 밤이 지나, 환자는 어느새 잠이 들었죠. 물론 벌거벗은 채로 말입니다.  아무리 가벼운 린넨을 걸쳐줘도 말 그대로 던져버리기 때문에, 환자 침대 양쪽의 사이드 레일을 올려서 그 양쪽 위에 린넨을 걸쳐 환자에게 무게는 최소한으로 가게 하고, 치부라도 최대한 보이지 않게 가리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습니다.


다음 근무 교대 간호사가 와서 인계를 주면서 경고에 경고를 주고 있는데, 감독 간호사가 와서 제가 몰랐던 소식을 업데이트 해주더군요.


이 환자는 보통 짱돌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병원에서만 알려진 짱돌이 아니라 경찰, 다른 병원 뿐만 아닌 지역 사회에 알려진 짱돌 중의 짱돌. 감독 간호사의 표현에 따르면 '레전더리'.

그러니까 짱돌로 따지자면 바위 중의 바위, 세상에서 가장 잘 알려진 '울산 바위'급 짱돌!


다행히 다음 근무 교대 간호사도 남자 간호사라(아마 감독 간호사 샘이 그렇게 배치한 거 겠지만요) 조금 맘이 편했습니다. 실제로 신체 상의 위협이 가해질 수 있는 상황이라 신체적인 완력이 필요할 수도 있는 상황이니까요.


전 이 병원에서 근무시작하고 여태까지 힘든 건 장난이었냐는듯, 가장 긴긴 밤을 보내었습니다. 

몸도 너무 피곤하고, 제 눈 앞에서 약을 쏟아버리던 그 순간엔 살짝 화도 치밀었습니다만, 물론 그 화를 겉으로 표현하지 않았죠. 어쨌든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엄청났습니다. 



그래도 덕분에, 다른 힘든 일이 닥쳐도 잘 이겨낼만한 큰 경험이 하나 쌓인 것 같고...솔직히 레전더리급 짱돌, 울산바위급 진상을 만나는 일이 쉽지는 않을 테니, 이보다는 낫겠죠.

아니, 제일 맘에 드는 건, 이 유명한 환자를 맞이해 무사히 근무를 마친 것 만으로, 동료들간의 평판이 좀 올라간 것 같습니다. ㅜㅜ

응급실 상관들에게 칭찬받으며 퇴근했어요. 흑흑. 몸과 마음은 힘든데, 그래도 다행히 칭찬받아 기분만은 좋습니다.


레전더리급 짱돌 때문에, '태운다'와 '짱돌'이란 표현이 생각나서 오늘 정리해보았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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