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agonist'

우리말로는 '악역', 전문용어로는 '대항마'..제2의 주연..

주인공과 대등하게 적대하면서 극을 이끌어가는 존재.

주연에게 가리워져 때로는 갖은 욕을 다 먹거나

혹은 불쌍해서 동정표를 얻기도 하는...장점과 단점이 공존하는 배역.

혹자는 '악역'이 쉽다고 하지요..그러나 연기하는 연기자 본인이 배역에 대해 '나쁘다, 불쌍하다'라는 감정을 집어 넣지 않고 본인 배역 그대로를 연기해야 하기 때문에

참으로 힘든 캐릭터 입니다. 한때 제가 한국영화를 극장에서 보거나 극장에서 못봤어도 몇번이고 비디오나 케이블에서 봤어도 참 재미있게 봤던 까닭은 주인공과 맞짱뜨는

악역의 포스 덕분인지도...

그런데 요즘 한국영화에는 이런 악역들이 없는것 같더군요...최근작을 꼽자면 '추격자'의 '4885'정도..?

 

제 개인적으로 한국영화 최고의 Antagonist를 꼽아봤습니다.

단, 단역급인 악역('타짜'의 '아귀'나 '아저씨'의 '종석'등)은 뺐습니다.

거론 순서는 개봉순 입니다.(공식 개봉시기,배역명,배우이름 순으로 기재됩니다.)

 

 

1. 장군의 아들(1990~1992/하야시/신현준)

- 36년 일제치하를 겪으면서 받은 돌이킬수 없는 상처로 이 영화 개봉당시 '일본'하면 완전한 적대국이었었습니다.

 (지금은 너그러워졌지요..독도영유권 주장과 위안부 할머니들을 인정 안하는 작태도 있지만)

  또한 일본인 역할도 다소 어눌한 역할이거나 순수100% 우리말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기도 합니다.

 (지금도 드라마나 영화에서 상당수 일본인 배역은 우리말을 사용합니다.)

 '장군의 아들'에서 히어로 '김두한'과 맞수 '하야시'는 전형적인 네셔널리즘의 대표적인 캐릭터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김두한역할을 맡은 박상민씨는 그대로 스타덤에 올랐고, 하야시역할의 신현준씨는 욕을 많이 얻어먹은것도 모자라

 어르신들께 실제로 맞았다는 실화가 있습니다.

 실제 하야시는 조선인 '선우영빈'으로 밝혀지긴 했어도 영화에서의 '하야시'는 정말 일본사람, 그 자체였습니다.

 일체치하에서 빼앗긴 종로를 되찾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김두한과 자신이 맡은 구역은 확실히 지키고, 내 사람이 아니면 냉정하게

 쳐내버리는 오야붕 하야시의 구도는 3탄 종반부에서 싱겁게 끝나지만 말입니다.

 

 

 

 2. 손톱(1995/혜란/진희경)

- 모든걸 가진 여자와 그 여자의 그늘에 가리워진채 살아온 여자의 대결의 영화입니다.

  제가 언급하는 작품들중에서 흥행면에서 재미를 보지 못했지만(서울관객 15만명), 남자들의 전유물이었던 '악역'을

  여성캐릭터에서도 부여했던 몇 안되는(혹은 최초의) 영화입니다.

  심혜진씨가 연기했던 '소영'은 부와 명예를 지닌 인테리어 오너 입니다. 유능한 대학강사인 남편도 있구요.

  약점이라면 아이를 가질만한 몸이 못되었다는것...

  반면 '혜란'은 불후한 가정에서 소영의 능력에 가리워져 살아왔고, 그녀의 행보만 쫒아 다니지만 '우울하고, 보기 싫은 예술작품'만 내놓습니다.

  끝내는 친한 친구였던 소영에게 '그래봤자 혜란이는 아무것도 아니다','넌 쓰레기'라는 말을 듣게 되면서 복수를 꿈꿉니다.

  그녀의 남편에게 접근해 아이를 가지지만 유산되고, 정신병원에 갇혀지내다가 탈출하여 만삭인 소영에게 다시한번 복수를 하지만

  결국 실패하고 자신이 유혹한 소영의 남편이 자기 아내만 들고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불타는 집에서 죽어가는것으로 마무리가 됩니다.

  항상 '태양'같은 인생을 살아온 소영과 '그늘'속에서 벗어나려고 했던 혜란의 모습과 대비되면서 슬픈여운을 받았던 영화입니다.

 

 

 

3. 은행나무 침대(1996/황장군/신현준)

- 악역이 주인공보다 지금까지도 깊게 기억되는 영화입니다.  현재 기점으로 보자면 '용서할 수 없는 캐릭터이자 답답한 캐릭터' 입니다.

  자신의 사랑을 위해 한 여자만을 쫓아다녔고, 천년전 한번, 현세에서 세번 사람을 죽였습니다.

 (현세-초반 강간하는 남자, 중반부 한석규로 착각하여 죽인 남자, 종반부 병원장..이렇게 세번)

 객관적인 기준으로 보자면 나쁜놈입니다. 하지만 그의 '사랑의 방식'이 주인공 '수현'보다도 능동적이고 적극적이었고, 진실되었죠.

 '수현'은 자신이 과거에 '종문'이었던 사실을 다른 사람을 통해 알게 되고, 우연히 나타난 정체불명의 여자에 의해 다시 만나고

  현세에서 사귀는 여자와의 관계에서도 그다지 적극적이지 못했습니다.

  되려 현세의 여자친구가 자신의 목숨을 걸었던 덕에 재회했죠..

  과거에 사랑했던 여자를 불타는 침대속으로 보내버림과 동시에 '방관자'적 자세를 보여줬던 '수동적 캐릭터'였던 '수현'과는 정 반대로

  사모하던 여인을 함부로 대하지도 않고, 매로 환생하여 종문과 미단이 사랑을 나누는것까지 지켜봐야 했고, 영혼으로 떠돌면서 한 여자만을

  찾아다니고, 자신을 바라보지도 않는 여인을 위해 같이 불타는 침대속으로 들어가는 '능동적 캐릭터'인 '황장군'에게 많은 여성관객들은 열광했었습니다.

 

 

 

4. 쉬리(1999/박무영/최민식)

- 강제규 감독의 초기 영화에서 '악역'은 '전형적인 악역'으로 머물게 하지 않습니다.

  주인공과 대등한 구조를 이루면서 같이 극을 진행하는 역할로 만듭니다. 전작 '은행나무 침대'에서 '황장군'이 그랬다면, '쉬리'에서는 남한을 말살하기 위해 북파된

  '박무영'이 그렇습니다.

  배고픈 인민들은 굶어죽거나 국경을 넘어 몸을 팔을때 남조선 사람들은 맥도널도 햄버거와 코카콜라에 살이 쪄가는 남북한의 현실을 보여준 대표적인 캐릭터였습니다.

  '은행나무 침대'에서와 마찬가지로 한석규씨는 이 영화에서도 '리얼 히어로'이자 수동적인 느낌이 드는 OP요원 '유중원'역할을 선보이는데, 무기력한 남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는것 같아서 그다지 감정이입이 잘 안되었던 기억이 납니다.

 또한 자신 업무와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면서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채 또다시 방관자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었지요..ㅠㅠ

 역할자체의 매력은 '은행나무 침대'의 황장군 보다는 조금 떨어집니다만, '최민식'이라는 출중한 배우의 역량으로 '악역'을 '주인공'으로 승화시킨 몇 안되는 영화입니다.

 

 

 

5.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장성민/안성기)

- 이 영화에서 장성민은 영화상영 내내 대사없이 표정만으로 상황을 전개시키면서 박중훈씨가 맡은 '우형사'를 농락합니다.

  도심에서 살해사건이 일어남에도, 마약을 운반하는 중요한 역할임에도 그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인간적인 우형사가 극이 진행될수록 '그놈을 반드시 잡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게했던 신참형사 김형사를 식물인간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저는 캐릭터 자체보다는 이 당시 침체기였던 '안성기'라는 배우를 다시한번 끌어낸 영화였기에 과감히 언급순서에 넣었습니다.

 (사실 이 영화를 보기위해 헌혈을 15번 했었다는....ㅜㅜ)

 

 

 

6. 리베라 메(2000/여희수/차승원)

- 여희수라는 역할은 12년간의 교도소생활을 마치고 연쇄 방화를 저지르게 됩니다. 그의 범행으로 수많은 소방관들이 죽거나 다치는 일이 발생하지만

  이렇게 된 배경에는 어릴적 아버지의 무차별적인 학대에 견디지 못하고 불을 질러 자살을 기도한 누나와 끔찍한 어린시절의 기억 때문이었습니다.

  대규모 방화씬 및 일부 안맞는 연출력과 '단적비연수'라는 대작, 카리스마 대왕 '최민수'씨 때문에 차승원씨가 가리워진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영화 속 '여희수'는 당당하면서도 어쩌면 슬픈 캐릭터였습니다. 소방관으로써 '불'은 제거해야 할 대상이었지만, '여희수'라는 사람에게 '불'은 증오를

  없앨수 있는 유일한 도구였지요. 되려 최민수씨의 아우라가 차승원씨에게 눌린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7.공공의 적(2002/조규환/이성재)

- 조규환은 정확히, 2011년 현대인의 참 모습입니다. 물질만능시대에 완전히 쪄들어서 '인간적인 면'은 하나도 찾아 볼 수 없고, 부와 명예를 위해서라면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버릴것 같은 현재의 대한민국 국민의 이중성을 대표하는 캐릭터이지요. 상위 1%급의 펀드매니저에 유산을 다른 자선단체에 기부하려는

  친부모를 아무런 죄의식없이 처참하게 살해하고도 자기 자신은 빠져나가려는 이중성과, 그래도 자식이라고 지켜주고픈 어머니의 '다잉 메세지'는

  조규환이라는 캐릭터를 더욱더 잔혹한 캐릭터로 만들어주었습니다. 사실 이 캐릭터가 잔혹하고도 잔혹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이 당시 이성재씨는 선한역할에

  어울리는 배우였었거든요. 그런 배우의 기분좋은 배신감에 당시 관객들을 열광시켰고, '설경구'의 배우에게 가리워졌지만 자신만의 또다른 이미지를 보여준

  영화였습니다. 정말로 용서하기 싫지만, 이게 현실이라는것을 상기시킨 나쁜놈 캐릭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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