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사장님(여, 46)이 거의 종교수준의 채식 신봉자.

어린 아들내미 아토피를 채식으로 완치시키고 나서 푹 빠져드신 것 같아요.

현재는 채식의 끝판왕이라는 비건이신데요, 그나마 탄수화물도 잘 안드십니다. 채식한지는 6~7년 되셨대요.

저희 회사는 점심마다 도시락을 싸와서 모두 동그랗게 모여앉아 먹는데, 사장님도 가끔 끼실 때가 있어요.

그분은 전직원이 싸오는 도시락마다 참견을 하십니다. 워낙 직설적이시고 톡톡 쏘는 말투인데,

 

1. 컵라면에 물부으면 : 왜 그 이쁜 몸에 쓰레기 음식을 몸에 들이부어?'

 

2. 누가 싸온 양념게장 뚜껑을 열었는데  : 어우 역해, 역해서 못 있겠다(코막고 도시락 뚜껑닫고 도망)

 

3. 맥도날드 앞에서 군침흘리는 직원 일동에게 : 전세계 사막화의 주범이 맥도날든거 알아?

 

뭐, 틀린 말은 하나도 없지만 잘 먹는 사람들이 코앞에서 듣기에는 좀 뭐한. 이런 류의 일화는 끝이 없지요.

그분 점심은 두부 3분의 1모에 직접 기른 유기농 채소와 유기농 쌈장-_;; 급기야 회사에도 친환경 슬로건을 내걸고서

재생용지 사용, 콩기름 인쇄를 추진하시더니 친환경사업부를 만드셔서 역시 비건인 실장님 하나를 휘하에 두고

이런저런 친환경 사업을 추진하고 계십니다. 그 실장님은 제 맞은편에 앉아계시는데, 어제 소고기 먹고싶다고

무심코 말했다가

-알면 안 먹고 싶을걸.

-네?

부터 시작해서 잠시동안 소고기를 먹기 위해 인류가 자행하는 반환경적인 악행에 대해 설명들었습니다.

음. 교인들이 전도할 때랑 느낌이 비슷하기도 했는데, 말은 맞는 말이고,

그렇지만 내가 소고기를 안 먹을까? 그건 아니니까...마무리는 '네에....' 뻘쭘.

 

최근에 사장님은 EM, 그니까 효소에 푹 빠지셨습니다. 어느날 전직원 소집, EM 프리젠테이션을 30분간 하신 후

식용 효소를 들여오셔서 전직원에게 싸게 공구하셨는데, 이건 마음에 들었어요. 맛없어서 못먹겠다는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달리 전 그럭저럭 입맛에 맞았고, 소화도 잘 되고 몸이 정화되는 느낌인 데다 술이랑 마시면 숙취가 없 

어쨌건, 사장님과 실장님은 365일 채식 캠페인중인 상태예요.

 

그치만 사장님 남편이신 부사장님은 비건이 되시기엔 넘나 대한민국 아저씨 평균입맛을 가진 남자.

직원들이 싸온 스팸이며 게장에 늘 눈독을 들이시는데, 사장님이 같이 계시면 눈치보느라 쉽사리 젓가락을 못 대시다

사장님이 사라지시자마자 폭풍 젓가락질을 하십니다. 가끔 채식 햄 이런 건 싸오시지만 부사장님 반찬은 대부분 삼색나물이죠:)

오늘은 점심때 두분 다 안계셔서 두분 얘기를 좀 했지요.

 

-부사장님 짜장면같은거 먹고싶으심 어떡하실까 모르겠어요.

-사장님 안계실때 혼자 몰래 시켜드신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선배가 이런 말도 툭 던집니다.

 

-사장님이 부사장님을 위해서 특별히 한달에 하루는 고기외식하는 날로 잡으셨대

-헐 밋프리데이가 아니라 프리밋데이네요-_-;;;;;;;

 

우리 사장님이랑 실장님의 넘치는 스태미너를 보면 사람한테 육류가 꼭 필요한 건 아닌가부다 싶기도 해요. 사람마다 체질이란 것도 있으니까.

그치만 우리 사장님처럼 수시로 주변사람들에게 홍보 및 캠페인 및...(신입들을 한달에 한번씩 채식식당으로 데려가세용) 이렇게 하시면,

고기에 죽고 못사는 어떤 직원들은 귀막고 으악 좀 그만해줘 이런 느낌도 가지나보더라구요. 전 환경문제에 그럭저럭 관심있는 편이라

'흐...흠....끊지는 못하지만 먹는 횟수는 좀 줄여볼까' 싶기도 한데. 듣다보면 육식하는 자체가 몸에 나쁜 게 아니라 건강한 고기를 구하는 게

건강한 채소를 구하는 것보다 많이 어려운 실정이긴 하구나, 라는 건 알겠더라구요. 채소는 직접 키울 수 있지만 돼지 소를 직접 길러서

잡아먹을 순 없으니:(

 

식습관이 인생관에 관련된 문제라는거, 저는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이 회사 와서 적극적인 비건들을 만난 후론, 그런 생각이 드네요.

꼭 모두가 채식을 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좋은 먹을거리를 구해서 먹으려는 노력은 자신과 지구에게 도움이 되는 일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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