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3. 헝거 게임 



얼마전 영화화가 되기도 했던 '영 어덜트 SF'소설 총 3부작 중 1부입니다. 오디오북과 한국어 번역본을 번갈아가며 듣고 읽었습니다. 영화는 안 봤고요.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세상이 폐허로 변한 후 미국이 있던 자리에는 판엠이라는 독재국가가 설립됩니다. 그 국가는 모든 부를 독점하는 캐피톨과, 그들의 원자재 생산 농노 정도인 13개 구역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어느 날  13구역이 반란을 일으키고, 진압되어 폐허가 되었습니다. 캐피톨은 이에 놀라 나머지 구역 사람들의 의지를 꺾고자 '헝거 게임'을 만듭니다. 매년 남은 12구역에서 남, 녀 아이들을 한 명씩 뽑아, 그 24명의 아이들이 서로 죽이도록 하여 단 하나만의 승자를 뽑는 게임이지요. 이 과정은 전국에 생중계 되고, 각 구역민들은 고통 속에, 또 캐피톨 주민은 흥분에 휩싸여 방송을 지켜보게 되지요. 


설정만 딱 보면 베틀로얄(만화판-_-)의 하드고어적 재미를 떠올리기 쉽지만, 의외로 피 튀기는 부분은 없습니다. 1인칭으로 이어지는 소설인지라, 주인공과 직접 얽히지 않은 다른 아이들의 죽는 정황은 알 수 없어요. 또 주인공 여자애의 무기는 직접 대고 쑤시는 칼, 도끼가 아니라, 멀리서 처리 가능한 '활'이기에, 주인공과 얽혀 죽게 되는 아이들의 최우도 별로 끔찍하지 않습니다. 그나마 무기로 직접 죽이는 경우도 드물고. 더구나 헝거 게임의 괴로움이, 살육전보다는 배고픈(헝거!) 상황 속에 물과 음식을 찾아 생존하는 쪽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무인도 생존기다운 재미가 더 크기도 합니다. 자연스럽게 피도 덜 튀고요.


 이 소설의 재미는 의외로 다른 곳에 있어요. 우선 주인공의 로맨스. '호감은 있지만 사랑하지는 않는 남자애와 어쩔 수 없이 러브스토리 연기를 해야 하는, 그리고 마음에는 고향에서 두고 온 남자애가 자꾸 걸리는. 그런데 둘 다 남친도 뭣도 아닌...'식의 10대 수위의 할리퀸적 로맨스가, 여주인공 심리묘사와 함께 펼쳐지는데, 이 이야기의 비중이 상당합니다. 중, 후반으로 가면 이게 핵심 이야기가 되버리고요. 또 '생방송되는 살육전'인 만큼, 리얼리티쇼를 둘러 싼 상황 풍자에서 오는 재미도 큽니다. 예를 들어 헝거게임이 진행되기 전, <아메리카 아이돌>스러운 외모 대변신(최고 스타일리스트가 촌녀를 공주로 변신시키는 과정 묘사가, 애 하나 죽어 없어지는 과정 묘사보다 10배는 깁니다-_-)과 라이언 시크레스트를 연상시키는 진행자와의 인터뷰라던가, 헝거 게임을 진행하면서도 끊임없이 시청자를 의식하면서 (시청자한테 잘 보이면 무기나 먹을 것을 선물로 주거든요.) '연기'를 해야만 하는 주인공의 심적 상황 변화라던가.


전반적으로 헝거 게임은 베틀로얄 + 소녀풍 할리퀸 + 리얼리티쇼적 설정을 솜씨 좋게 잘 버무려놓은 청소년 소설이에요. 소설 설정을 듣고 기대했던 풍성한 가능성을 많은 부분 날려버린 것은 아쉽지만, 청소년 소설임을 감안하면 (그리고 베틀로얄이 히트 친 일본의 변태성과 미국의 성향은 아주 다르다는 현실을 고려하면) 적절하게 수위 조절을 한 것 같아요. 그리고 '재미'면에서 상당히 괜찮습니다. 스토리 진행도 빠르고, 내부 심리 묘사도 괜찮고, 문장도 깔끔하고 좋으며, 사건들을 버무리며 독자들 감정을 쥐었다 폈다 하는 작가의 솜씨도 좋고, 특히 주인공 여자애가 우울증 엄마 대신 다람쥐며 토끼를 잡아 소녀가장 노릇을 하던 활 솜씨 좋은, 씩씩하고 든든하고 머리 좋은 아이라, 지켜 보고 있어도 짜증도 안 나고 충분히 응원할 만합니다. 그런 살육전 속에서도 끝까지 안 망가지는 건 청소년 소설이라 그런 거겠죠. 그런 걸꺼야.. 


영화는 안 봤지만, 영화 보다 책이 나을 것 같습니다. 영화에서는 '주인공 심리묘사'가 주는 재미를 잘 살리기 힘들 듯 하거든요. 괜찮게 읽(들)었습니다. 그래도 2,3권을 더 볼 생각은 없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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