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한 지 어느덕 석 달하고 닷새. 지난 주 수요일, 네번째 수술을 마쳤어요. 이제 이 병원에서 받을 일차적 치료는 끝이 났습니다. 무릎관절 뒤 

수술자국이 아물고 경추와 골반 뼈가 괜찮은 상태면 걷는 연습을 하재요. 대충 화장실 혼자 갈 수 있게 되면 퇴원을 졸라볼 생각입니다. 

 

   지금 마음속엔 두 가지 찜뽕, 해둔 위시리스트가 있습니다. 하나는 루이죠지와 함께 집에서 오붓이 추석을 보내는 거, 두번째는 구월 이십사일,

대학동기 및 후배들로 이루어진 개드립팸과 함께 에....엠티가는...거.

   루이죠지는 그간 맡아주셨던 분께 인사도 드릴 겸 직접 데리러 가고 싶은데, 그러려면 빨리 목발 짚고 어느 정도 걸을 수 있게 돼야겠죠.

   엠티...는....앞으로 한달. 좀 무리수인 것 같기도 하지만...애들은 너 스스로 움직일 수 없으면 안 간다고 냉정하게 잘라 말하지만...

바깥에서 흥청망청 놀고 싶어요! 고기 구워서 술 마시고 싶어요! 빵빵 터지는 궁문꽈 개드립 주고받으며 놀고 싶어요!

   ..............그냥, 빨리 나아서, 예전처럼 나잇값 못하는 한량라이프 즐기고 싶다는 얘기입니다려.

   아래는 엠티 추진하기로 한 대학후배 개똥이와 방금 한 통화내용.

 

-예 누나.

-응, 잤니? 목소리 왜 그래?

-아뇨, 지금 도서관이에요.

-헐? 너 공부하냐?

-네, 토익이요.

-.......토오오이이이익? 너마저? 어따쓰게? 왜?

-아 그게, 대학원 가려면 토익점수도 필요하더라구요.

-....와, 와. 우와. 개똥이 너마저. 토익. 우와. 쏙쏙이(개드립팸 중 여자동기)가 토익 800대 중반이란 얘기 듣고 갑자기 계급이 갈린 느낌이었는데.

-이제 막 시작해서 뭐, 어떻게 될 지 몰라요.

-개똥 누나가 말이지 고1때, 대학가는데 유리하대서 한달 학원다니고 토익을 쳤는데, 400점나오더라고. 그후로 토익을 깨꼿이 포기하고 오늘에

이르렀는데, 내 이십대 슬로건이 '토익책을 손에 쥐지 말자'임 ㅇㅇ

-뭐...누님이야 원체...

-암튼 개똥, 너까지 토익의 길을 가겠다니 갑자기 너와 나 사이에 그 어떤 선이, 샥, 갈린 듯한 느낌이 드는구나. 흑흑.

-에이 무슨 그런ㅡㅡ

-어쨌든 너의 첫 토익점수가 몹시 기대되는구나. 너 이래놓고 막 500 이렇게 나오면 평생 놀릴거다.

-제가 누님의 평생 장난감을 만들어 드릴게요, ㅇㅇ

-그리고 이십사일에, 애들 시간 비우게 잘좀 해봐.

-네, 그거야 뭐. 근데 누님, 술 드셔도 돼요?

-음, 병원에서 그 누구도 내게 술 마시지 말란 얘긴 하지 않았어. 그럼 딱히 금지아이템이 아닌 거잖아 홍홍홍홍홍

-...그럼 누님, 내일쯤 가서 좀 오래 놀아드릴게요. 필요한 건 없으시구요?

-내일 생각나면 얘기할게 홍홍홍, 그럼 공부 열심히 하렴.

 

...거의 그대로 복기했는데, 새삼 느껴지는 것이...개똥이는 참 착한 후배입니다, 그르네요. 게다가 저는 참 나잇값이라곤 못하는 철없는 선배로군요.

뭐 그래도 회사다님서 돈 벌 때는 제가 술도 3차까지 사주고 밥도 사주고 그랬습니다, 그러믄요(아 므야 덧붙일수록 땅을 파고 있는 느 느낌...)

 

 

   오늘은 엑스레이를 찍으러 침대째 1층 엑스레이실로 이동했어요. 움직이질 못하니까, 그동안은 엑스레이 기계를 병실까지 갖고 와서 찍었거든요.

그리고 병원에서만 감염된다는 슈퍼박테리안지 뭔지 그거 검출돼서 격리중이기도 했고. 3주째 음성판정 나와서 어제부로 격리는 해제됐어요.

 

   부쩍 어제부터, 병원 사람들이 절 보면 하는 말이 있어요. "와, 사람됐네. 웃기도 하네." 어젠 오랜만에 온 수간호사 아쥼마가 그랬고, 오늘은 절

엑스레이실로 옮겨주는 아저씨가. 입원한 지 세 달이 넘었으니 왔다갔다하는 병원 사람들은 거의 다 절 알아요. 엑스레이실로 옮겨가는 와중에도

마주치는 환자 보호자들이며 다른 병원 직원들이며(...물론 전 그들을 모릅니다, 한창 아파서 끙끙댈 때의 절 본 사람들인가봐요) 우와 바깥에도

나왔네, 이제 격리 풀렸나봐? 라며 안부인사를 건넵니다. 1층으로 이동하는데 통유리 너머로 바깥 햇빛이 쏟아져 병원 곳곳을 비춥니다. 세 달이나

있었는데, 병원이 어떻게 생겼는지 구석구석 살펴본 건 처음이에요. 그동안은 이동하더라도 너무 아파서 도무지 주변을 돌아볼 여력이 없었으니까.

섭식도 제대로 못하고 뭘 먹으면 곧바로 토하기를 두어 달, 이젠 초밥 한 팩을 혼자 거뜬히 비웁니다. 편식이 심해서 병원밥은 밥알 세는 수준이지만

(네이버 웹툰 '멍순이'에 나오는 꽃님이가 딱 저예요. 벱후가 추천하며 너 닮았음 ㅇㅇ 그랬는데 부정하려야 할 수 없게 닮았...) 암튼 피골이 상접했는데

애법 살도 붙고 힘도 생겼어요. 아령으로 팔근육 복기 프로젝트도 시작.

 

   유난히 좋은 바깥날씨도 눈에 들어오고, 엑스레이를 찍고 나서 왠지 기분이 상큼해진 저는 지금 등받이 없이 일어나 앉아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계속 누워만 있었으니까, 등근육이 약해져서 등받이를 쓰거나 팔을 짚지 않고서는 그냥 앉아있기 영 힘들었거든요. 근데 이상하게도, 어제까지만

해도 어지러워 힘들던 이 자세가 상큼한 기분에 힘입어 몹시 잘 유지되고 있습니다. 의사옹니가 방금 들어와서 "폴, 장과장님이 휠체어 타고 화장실

가도 된대." 라고 말해주었어요. 여인 J에게는 힘에 부친 일일 테니, 이따 아부지님의 도움을 받아 화장실 혼자 가기를 시도해 봐야겠습니다! 아싸라비야

깐따삐야 이제 곧 기저귀 졸업할 수 있는건가ㅠㅂㅠ

 

   주리주리 말이 길었지만 그래서, 병원일긔는 이제 마지막이에요. 이젠 으쌰으쌰 재활프로젝트에 들어갑미다. 내년엔 다시 힐을 신고 말거예요. 아좌!

 

 

+) 주인 닮아 주접인 우리 죠지...보고싶어요...흑. 옴마가 곧 데리러 간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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