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P? 에프 아이 피? 핍?

2013.06.08 13:07

쵱휴여 조회 수:1285

0. 아아. 개막과 함께 드높았던 우리팀에 대한 기대는 최근 몇주간 산산히 부서졌습니다. 이제는 의도적으로 국내 야구에 대한 뉴스를 피합니다. 신기한게 있는데, 야구 사랑 총량 보존의 법칙이 있어서, 국내 야구에 대한 관심이 줄면, 야구의 다른 곳으로 관심이 갑니다. 해외 야구라든지, 야구 게임이라든지, 혹은 야구의 학문적인 부분으로요. 오늘은 FIP(Fielding Independent Pitching)에해 한번 써볼까 합니다. 첨언하자면 저는 FIP 계산 공식을 문신으로 새기고 싶어할 정도로 FIP 빠입니다.

1. 언제부터인지도 모를 옛날 옛적부터 투수를 평가할때는 모름지기 '평균자책점'을 가지고 합니다. 얼마나 대표적인 투수 평가 수단이면 또 다른 이름이 '방어율' 일까요. (심지어 %도 아닌데요.) 이 투수가 9이닝 풀로 한경기를 던진다고 칠 때 대충 '자책점'으로 몇점 정도를 주겠구나~ 를 나타내는 수치인데, 당연한 이야기지만 잘 던지는 투수가 더 자책점을 적게 주니깐 이게 낮은 선수가 좋은 투수인건 일반적으로 볼 때 맞죠.

2. 다만 몇가지 흠을 잡아볼까해요. 우선 '자책첨'을 가지고 말해볼께요. 2사 만루에 유격수쪽으로 땅볼이 굴러가는데, 유격수가 이걸 잡지 못해서 점수를 내줬어요. 근데 명백한 실책과 명백한 안타가 있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는 기록원의 주관에 따라 안타와 에러가 결정됩니다. 기록원의 주관에 따라 방금 내준 점수는 자책점이 될 수도, 안 될수도 있어요. 자 만약 기록원이 에러로 판단해 자책점이 아니었다고 해봐요. 그 다음에 그 투수가 그 이닝에 몇점을 내주더라도 이는 자책점으로 인정되지 않아요. 에러가 아니었다면 내주지 않았을 점수니깐. (한만두때도 실점은 11이었지만 자책은 6자책) 과연 이렇게 계산된 자책점을 기준으로 투수를 판단하는게 맞는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거죠. 

두번째는 좀 더 본질적인데, 홈런이 아닌 안타가 순전히 투수의 잘못인가? 에 대한 거에요. 찬호형 말씀이 '땅볼유도를 했는데 안타가되는건 나로썬 어쩔수없는 일이다.' 정가운데 실투는 우중간을 가르는 2루타가 될 수도 있지만, 야수 정면으로 간다거나, 기가막힌 수비로 아웃이 될 수도 있죠. 바깥쪽 기가 막히게 들어간 꽉찬 공이 빚맞아서 야수사이에 떨어지기도 하는것처럼요.

BABIP(Batting average on balls in play)라는게 있는데, 홈런, 삼진, 사사구를 제외하고 공이 페어지역으로 날아간 경우에 안타가 될 확률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게 리그탑급 투수나, 고만고만한 선수나 공이 페어지역으로 날아가서 수비수가 개입하게 된 경우에는 안타가 될 확율에 큰 차이가 없고 2할8푼 내지 3할 언저리로 수렴되었던 겁니다. 진짜? 홈런이 아니라면 공이 배트에 맞은 이후엔 류현진이나 박경태(외 각팀의 애증의 대상들)나 도찐 개찐이라고? 진짜! 투수의 능력과 홈런, 사사구, 삼진을 제외한 안타를 내주는 능력에는 큰 상관이 없다는 거죠. 한 조사에 따르면 BABIP에는 운이 44% 투수의 능력이 28% 구장이 17% 수비가 11% 순으로 적용된다고 합니다. 러프하게는 운칠기삼인거죠.

이렇게 변수가 많은 수치이다보니 한 투수가 실력의 큰 변화가 없는 상태임에도 평균자책점이 널뛰기를 하는 상황이면 저는 BABIP를 먼저 봅니다. BABIP가 비정상적으로 낮거나 높은 경우라면 아 올라갈 놈은 올라가겠구나. 내려올 놈은 내려오겠구나 싶죠.

3. FIP에서는 아직까지 제대로 파악하기 힘든 BABIP의 영역을 제외합니다. 투수의 능력을 홈런, 삼진, 사사구로만 판단하는거죠. 투수가 잘 던지기 위해 할 수 있는건 세게 던지거나, 정교하게 던지거나, 타이밍을 뺏기위해 던지는 것이 있습니다. 그렇게 던진다면 홈런을 내주지 않고, 사사구를 내주지 않으며, 삼진이 늘어날겁니다.

FIP의 공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얼핏보면 어려워보이지만 알고보면 참 간단합니다. 간단함이 FIP의 미덕입니다.

{(13 X 홈런) + (3 X 사사구) - ( 2 X 삼진)} / 이닝 + 상수

간단한 설명을 드리자면 각각의 이벤트에 곱하는 13, 3, 2,는 수년간 모은 데이터를 기준으로 한 9이닝 기준 실점 기대값입니다. 홈런 한방을 맞으면 13/9 점 정도의 실점을 할 것으로 보고, 삼진 하나를 잡으면 2/9 점 정도 실점을 덜 할 것으로 보는 겁니다. 상수는 리그 모든 투수에 적용되는 값인데, 리그의 모든 투수가 홈런, 사사구, 삼진이 없고 모두 맞춰 잡았다고 칠때의 평균자책점의 평균입니다. 그해 그해 달라지지만 대략적으로 3.0에서 3.2정도 입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FIP는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평균자책점에 비슷한 수치로 수렴됩니다. 즉 FIP가 2점대면 엄청 잘한다고 보면 되고 5점대를 넘어가면 아 이놈은 방출걱정해야 하는구나 하는거죠.

위에서 BABIP의 격변으로 영향을 받는 평균자책점에 비해 홈런, 사사구, 삼진은 상대적으로 선수의 실력에 따라 일정한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FIP도 상대적으로 더 일정한 값이 나오죠.

4. 평생을 평자책 기준으로 투수를 평가하며 살아오던 입장에서 받아들이기 쉽지는 않은 개념입니다. 처음에는 이게 뭔 개소리냐고 엄청 욕 먹었어요. 근데 한 10년 20년 동안 무수한 검증을 통과하면서 점점 FIP에 대해 우호적,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아직은 평균자책점의 위상에 비할바 아니지만, 조금의 스크레치는 낼 수 있을 정도까지는 된거 같아요.

5. FIP를 문신으로 새기고 싶을만큼 좋아하는 이유는, 이게 가장 정확해서는 아닙니다. FIP 가 못 반영하는 영역도 있고, 더 유용한 스탯이 나오면 FIP는 빠르게 잊혀질꺼에요. 하지만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에 비견될만큼 획기적이고, 다른 스탯에 비해 정확도도 뛰어난데비해 놀랍도록 간단하기까지 합니다. 정말이지...아름답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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