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엇그제던가, 커트 보네거트 관련 글이 올라왔지요. 소설과 문학에 백치인 저는 이 이름을 (역시나) 듀게 댓글에서 처음 접했고, 프레시안 100권 읽기 리스트 작성 와중 '아무리 그래도 소설도 좀 읽어야하지 않겠나' 하는 강박관념에 급 검색을 하다 걸린 추천소설(<마더나이트>)의 작가로 두 번째 접했으며, 닉 혼비의 <런던 스타일 책 읽기> 속에서 커트 보네거트의 마지막 책인 <나라 없는 사람> 관련 서평에서 세 번째 접했습니다.

 

이 쯤 되면 인연이다 (사실 인연이 아니라, 내가 몰라서 그렇지 그냥 아주 유명한 것 뿐일테지만;;) 싶어 <마더나이트>를 질렀습니다. 그리고, 마구 사들인 책을 잃지도 않고 책장에 전시하는 불상사를 막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 중 하나라고 다치바나 다카시가 추천한, '산 자리에서, 혹은 집에 오자 마자 바로 책의 초반부를 읽어 놓는다'를 충실히 따르며, 서문을 읽었습니다.

 

그리고...이럴쑤...서 만 달랑 읽고  '이 사람 책 다 몇 권임? 번역은 다 된거? 영어로 읽으면 안 어렵나?' 하고 찾아보고 있는 저를 발견했어요.  '이 사람 책은 다 읽는게 좋을 듯?' 싶었던거에요. 제 취향에 맞는 (혹은 누가 읽어도 즐거울?)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걸, 서문만 읽어봐도 알겠더라고요. 블랙유머 이야기가 많던데, 뭔가 글의 속도감이나 감정을 다루는 방식이 확실히.. 흠 ^^

 

유독 문학에 서툴러, '내 취향 소설'이라는 것도 없고 소설을 읽을라 치면 대체 뭘 골라야 하나 우물쭈물 했었는데 (대중 소설?은 잘 고르긴 합니다만, 그나마도 별로 안 좋아합니다.) 이렇게 좋아할 것만 같은 소설가가 생기니 기분이 좋아요.  나도 문학쪽에 슬슬 취향라인(!)이 생기는건가? '나 커트보네거트 읽는 여자야!' 희화화될 정도로 알려져버린 작가면 어떤가! 난 이제 막 발견했단 말이야~ 기쁜 마음으로 즐겨주겠어~~

 

 

2.

 

2011년 100권 읽기 프레시안 기사 밑의 베플에 보면, 이 운동/기사가 '역겹고..천박'하답니다. 흠, 댓글의 논조는 저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강도는 다르지만 기사를 처음 읽을 때 제 느낌도 비슷했거든요. 저도 한비야씨에 대해 중립보다는 좀 아래쪽의 감정을 가졌고 (비야씨 팬들은 죄송합니다;; 그래도 그 넘치는 에너지만큼은 정말 너무 지독하게 부럽습니다. 그 에너지 저 좀 나눠주세요..) '100권'이라는 구체적인 수치에 거부감이 생긴 것도 사실이었으며, 무엇보다 즐겁게 해야 할 독서가 '중고등학생 숙제'마냥 목표량이 정해지고 달려들어 해치워야 할 과제 비슷하게 되는 것 같아서 별로였습니다. 저 베플이 베플이 된 것을 보니 비슷한 생각을 하신 분들이 많으셨나봅니다. 당장 저 운동이 소개 되었을 때 듀게 반응만 해도 그랬으니까요.

 

그런데 당시 '이제 좀 부지런해지자? 싶었던데다, 마침 구체적인 신년 계획을 세우지 못했던 상태라, 삐죽삐죽 기사를 읽고 있던 와중  '에이...뭐 그래도 100권 읽는다고 하면 30권은 읽겠지. 하다 못해 집에 있는 책 10권은 읽겠네. 그냥 올해 이거나 ..'' 하는 충동에서 반은 단순한 재미로(그날 넘 심심했었음) 반은 시큰둥하게  시작한  '100권 읽기' 운동은, 의외로 저에게 상당히 좋은 경험들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우선 책을 사서 쌓아놓기만 하던 제가 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독서쇼핑인에서 독서인으로 서서히 변화하고 있는 것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절대로 좋은 일이죠. (책 사는 빈도는 오히려 줄었어요-_- 이것도 좋은건가..) 그리고 '완선새거' 상태로 집에 놀고 있던 책들도 읽기 시작했습니다. 대표적으로 매 달 차곡차곡 쌓아만 놨던 오디오북들.. 출퇴근시간이나 이동 시간 동안 들으니 꽤 듣게 되더군요. 덕분에 아이폰을 산 후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 거라 우려했던 독서 시간은 오히려 늘었습니다. (WOW를 끊은 것도 컸던 듯?)

 

그리고 책으로 공부를 한다, 지식을 쌓는다는 것이 뭔지 아주 조금씩이지만 실감해가고 있습니다. 원래 책은 책을 부르기 마련이지 않습니까. 한 권의 책을 읽으며 관련 분야에 관심이 커진 상태에서 서점에 가거나 신문 잡지를 읽다 보면 참 신기하게도 (혹은 당연하게도) '지금 내가 관심있어 하는 것에 대한 대답'격에 해당하는 책이 손에 들어어고, 의도적으로 노력하지 않더라도 저절로 관련 분야에 대해 다양한 책들을 읽게 되지요. (그리고 당연히 독서 목록은 기존에 정했던 100권 리스트에서 한참 벗어나지요.) 그런 독서의 결과, 평상시 책 한 권을 읽고 끝냈더라면 '우와 신기하네 이런 것도 있대!' 하고 잠시 재미있어 하며 맛만 보다가 금세 까먹었을 특정 분야의 지식들이 휘발되지 않고 조금씩 머리 속에 남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 부터는 그 조각들이 서서히 모여 특정 분야에 대한 지도? 구조?를 그리기 시작하더군요. 음, 드디어 제가 책으로 무엇인가를 막 배우기 시작한거에요!  아직은 본격적으로 시작하지도 못했지만,  '아...책을 읽고 공부한다는 게 이렇게 하는거구나..' 하는 맛을 보게 된거죠. 정말 공부 제대로 해 왔던 사람들은 어릴 때 부터 이런 식으로 공부 해 왔을텐데 전 지금에야 어렴풋 '이렇게 하는거였군...' 알았으니, 어휴.... 하긴, 뭐 어때요. 누구랑 경쟁할 것도 아니고, 나 혼자 평생 즐거우려 하는건데.  시작이 반이죠 ㅎ

 

음, 또 다른 변화는, 이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잡지나 신문을 읽는 시간이 확 줄었습니다. 닉 혼비가 <런던 스타일 책 읽기>에서, 빌리버에 정기적으로 독서칼럼을 기고하면서 바뀐 변화들로 '한 권의 책을 읽고 난 후 다음 책으로 넘어가는 텀이 확 짧아졌다' (책 권수 맞춰야 하니까) '다른 분야에 시간을 덜 쏟게 되었다.' (당연;;)  '잡지와 신문 등 정기 간행물(?) 을 덜 읽게 된다' 를 들었더랩니다. 저에게는 저 세번째 부분이 크게 와 닿네요. 제가 주간지 잡지 사서 보는게 취미라면 취미라 (매 주 돈 쓸 곳이 있다는 것에 기뻐하는 인간 -_ㅠ) 주간지를 꼬박꼬박 두 세 권씩 사 봤거든요. 그런데 지난 이 주 간은 사 놓은 주간지를 1/5도 못 읽고 있습니다. 오늘도 듀게에 링크된 한겨레21의 '신용카드 기사'에 혹해 한겨레를 사긴 했는데, 과연 반은 넘게 읽을 수나 있을지 의문입니다. 보통 주간지는 이동 시 읽거나 화장실(-_-)이나 식탁에서 읽게 마련인데 (아닌가? ;;;) 이제 그런 시간과 공간을 책이 차지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지만, 주간지나 잡지 자체가 가지는 '책'과는 다른 시의적절함과 기타 매력이 있을터인데, 그걸 놓치는게 좋은건가 싶기도 합니다.

 

이러다 보니 '속독'이 아쉬워집니다. 전 책을 빨리 읽는 것에 대한 매력을 못 느꼈는데 (그래야 할 일이 별로 없었으니까요. 책도 잘 안 읽었고.) 깊이 있는 사색과 함께 천천히 읽어야 할 책이 아닌, 시의적절한 정보 습득을 위한 글 같은 경우는 빠르고 정확하게 읽어내는 속독 능력이 있으면 시간관리나 효율성 측면에서 참 좋을텐데 싶더군요. 중딩 때 다녔던 속독학원에서 시키는거 좀 제대로 해 놓을 것을..지금이라도 눈 운동부터 시작해봐-_-?;;

 

또 생긴 변화라면, 위에 커트 보네거트 건에서 썼다 시피 '구색과 권수를 맞추기 위해 읽기 시작'했다가, 의외의 분야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고 새 취향을 만들어나갈 수 있게 되었다는 점? 이런 일은 올해 내내 일어날 것 같아요. 특히 소설에서. (저에겐 워낙 신천지이니, 앞으로 몇 년 간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왜 이제야 나타났어!!' 싶은, 엄청 유명 버뜨 난 첨 봄 작가들을 줄줄 발굴 할 수 있겠죠.)

 

그리고 가장 좋은건, 이 프로젝프를 시작 할 때 제가 했던 1) 독서 후 잡글이라도 써서 흔적을 남기자. 2) 한 권의 독서 후, 그와 관련하여 생활 속에 하나 이상의 변화를 주자....는 다짐을 나름 지키고 있다는거에요. 특히 두 번째 결심. 삶 속에 '글로 읽고 배운 것'을 도입하려는 시도는, 저의 저질 의지력과 나이브한 노력으로 당연히 성공적이지는 않습니다만, 그래도 시도를 하는 과정 자체에서 얻는 것 또한 많더군요.  

 

하여간 시작한지 겨우 2 주가 지난 지금, 프레시안 기사 속의 '100권 프로젝트 경험자의 조언 - 나도 처음에는 100권 같은 수치를 꼭 정해야 하나 생각했는데...일단 한 번 해 보기나 해라. 이것 저것 새로운 것을 많이 배운다..'에 동의하게 되었습니다. 적어도 저에게는 참 좋았어요. 많이 배우고 있거든요.  아마 몇 권 책 읽기 같은 도전을 난생 처음 해보는 저인지라 더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원래 다이어트 같은 것도 처음 하는 사람이 효과가 가장 좋잖아요.

 

 

 

3.

 

권교정님의 <셜록>을 샀습니다.

 

아우...아후....셜록과 왓슨 완전 내 취향 고대로!! 왓슨 콧수염 밀어버린 셜록 정말 잘했어요!! (수염따위!!) 책 한 권에 걸쳐 이어지는 첫 에피소드는, 너무 고전적인 형태의 사건이기도 하고, 자세한 내용은 기억 안 나긴 하지만 나름 셜록 홈즈 시리즈를 꽤 많이 읽어 치웠던지라 '나도 천재?' 싶을 정도로 초장에 사건의 진상이 들어오기는 했습니다만...19C (맞죠? 18C인감?) 분위기와 어울리는 연출들과, 무엇보다 셜록과 왓슨(과 둘 사이의 캐미스트리)을 마음 껏 즐기면서 지하철에서 쪽팔린줄도 모르고 '꺅꺅'좋아라하며 너무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오랜만에 제가 좋아했던 한국 순정만화 작가님 책을 사서 읽으니까 참 좋더군요.

 

 아후, 이 책 읽고 나서 권교정님 만화책 지름신이 들려서 한 번 보기는 다 본 책들 (청년 네트..나 시가의 원전?????격이 된 그 만화라던가..) 을 막 사 모으고 싶어져요. 강경옥 선생님도 <설희> 연재 중이셔서 늘 기다리다 가서 잘 보고 있고.. 사실 전 유시진님 (광) 빠인데, 우리 시진님은 어디선가 연재 안하시는지...흑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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