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밴드

2011.09.23 01:04

lonegunman 조회 수:3201





특정한 순간으로 형상화되지 않는 어떤 거대한 덩어리가, 무게가 한꺼번에 덮쳐서 

도저히 언어의 형태로 전환이 되질 않네요

충격이라거나 서글프다거나 하진 않습니다

그냥 '해체'라기 보다는 어떤 순간

전세계에 흩뿌려져 있는 어떤 종류의 사람들이 길을 걷다가 문득 멈춰서서 같은 노래를 재생하게 만든

어떤 순간이 오늘이었던 거죠

문득 멈춰서서 손에 잡히는대로 그들의 음악을 켜고, 그 형상화되지 않는 무정형의 무게에 한 번 휘청이고

언어로 전환되지 않는 어떤 감정을 되새길 수 있는 공간이 오늘이었던 겁니다




떠오르는 이런 저런 생각들은 강물이 되고 

강물 위의 도시에는 꿈을 잃은 소녀만이 홀로 남아있죠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so.central rain 


앤디, 이 노래 듣고 있어요? 지금도 펀치와 씨름 중인가요? 

이봐요, 앤디, 지금도 엘비스 성대모사를 하나요? 

우린 두 번 다시 그 감동을 느낄 수 없나요 man on the moon 


비나 내려라, 비나 퍼부으라고

나의 행복을 되돌려 달라고 lotus


어쩌면 그댄 이미 날 변화시켰는지도 몰라 

그저 나 혼자 부정해왔는지도 leaving new york






 

<90년대 나우누리에서 주최한 최초의 알이엠 영상회, 2003년 다음카페에서 주최한 최후의 알이엠 영상회의 팸플릿입니다>





어느 밤, 나는 울음을 터뜨렸어

왜인지는 설명할 수가 없었어 daysleeper


난 내 머릿속에서 길을 잃었어

텅 빈 메아리만이 나를 관통해 hollow man


정말 멋있어, 넌 늘 그랬어

지금 네 옷자락에 매달린 채 애원하는 나를 걷어차버리고

그렇게 떠난 건 정말 잘한 건지도 몰라 all the way to reno


지금까지의 대화도 좋았지만, 정말 좋았지만

더는 머물고 싶지 않네요

왜 우린 그냥 판토마임으로 대화할 수 없나요 great beyond






2000년대 초반, 그냥 눈이 떠졌던 어느 새벽

생각없이 채널을 돌리던 티비의 보지도 않던 미국 방송에서 알이엠의 스토리텔러라는 프로그램이 방송 중이더군요

어떤 경우, 그런 일들은 그냥 일어나는 거죠

운명이라며, 두근거리며, 허둥대다 결국 녹화 테잎을 찾지 못해 포기하고

행여 한 순간이라도 놓칠까 마치 머릿속에 녹화하듯 집중했던 그 새벽도 기억이 나네요

유튜브에서 그때의 영상을 찾아보니, 그때는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했던 마이클 스타이프의 말들이 지금은 들리네요

그동안은 왜 찾아볼 생각을 하지 못했는지




'한 친구가 음성 메세지를 남겼더라고요, 좋은 사람인 것 같은데

이런 내용이었어요

-안녕, 나 오스트레일리아에 있어

여기선 모래가 내게 말을 해

꽃들이 내게 말을 해

그러니까 이제 나를 잉꼬사람이라고 불러줘

자넬 예서 만나길 고대하네, 안녕-

이 메세지를 한 삼십번은 들었을 거예요, 대체 누가 남긴 건지 알 수가 있어야죠

그나마 힌트가 될만한 건 잉꼬사람parakeeteer이란 단어였죠

그게 이 노래를 만드는데 영감이 되었어요, 잉꼬parakeet란 곡입니다


그 후에, 3년 전인가, 오스트레일리아에 투어를 가게 됐어요

거기서 아웃백, 코알라같은 거도 보고...

제가 코알라를 만져보고, 코알라 오줌 냄새를 맡아본 뒤 확신한 건데

코알라는 최상위 존재입니다

환생을 믿는다면, 그래서 당신이 선하게 살다 죽어서 더 나은 존재로 태어나는 걸 거듭 반복하면

최종적으로 도달하게 되는 존재가 바로 코알라일 거예요

왜냐면, 코알라는 나무 위에서 살잖아요, 그리고 유칼립투스 나뭇잎만 먹고 살죠

유칼립투스 나무의 잎사귀는 환각제예요

그들은 평생 무기력하고 편안한 상태로 지내는데다가, 완전히 마약에 취해 있고

심지어 오줌 냄새도 좋은데, 전세계 사람들이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동물이라고 생각해주기까지 하죠!

고로, 코알라는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 중 최상위의 존재자입니다

우린 모두 코알라가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만일 이 코알라 이야기와

모래랑 꽃으로 인해 이름을 바꾼 여인의 이야기 사이의 연관성을 이해할 수 있다면

이 노래도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parakeet 입니다'





어느날 아침

당신은 침대에서 굴러떨어져 잠을 깹니다

멍청한 고양이 녀석이 물어버린 바람에

잉꼬는 거의 죽어가고 있어요

당신은 바람이 불어주길 몹시 바라며

씁쓸한 라임빛 잉꼬를 위해 부드럽게 창을 엽니다


창문을 열고

당신의 꿈 속으로 떠오르는 겁니다

마침내, 그대여

당신은 가까스로 숨을 쉴 수가 있죠


사고로 손목이 부러진 날

무언가 잘못 되어가고 있다는 걸 깨닫습니다

당신은 과거의 잔여물들을 정리했어요

그러나 아무도 당신이 사라진 걸 모르죠

90년대 초, 흑점의 폭발로 당신의 날개는 타버렸고

단파 라디오를 틀어봐도 헛바퀴만 돌 뿐이었습니다


꿈을 향해 날아오르도록 창을 열어요

그대여

이제 숨을 쉴 수 있을 겁니다


지표면을 정리하던 조물주는 부드러운 평지를 바다 속으로 옮기고

브리즈번의 눈부신 해안가 따뜻한 바람 아래 그들을 나란히 내려 놓았습니다

거기서 부처는 유칼립투스 나무 향의 잎사귀와 고수풀의 씨앗을 

손목 치료에 썼다고 하더군요


꿈을 향해 날아오르도록

창을 열어봐요

그대여, 이제 숨을 쉴 수가 있을 겁니다


당신은 아침의 평화로운 미풍에 잠이 깹니다

멍청한 고양이 녀석은 약초를 씹곤

나무에 오르지 못하고 있지요


창문을 열고

그대의 꿈 속으로 부유하십시오

그대여, 이제야 간신히 숨을 쉬는군요







오랜 검토와 고민과 숙고 끝에 비장하게

알이엠은 내 인생의 밴드야, 라고 처음 선언했던 어느 오후도 생각이 납니다

참 어려운 길을 택했구나, 라던 대답도 기억이 나네요

그때 저는 10대의 후반부를 향해 걸음을 떼던 참이었고

알이엠은 이미 두 손을 다 쓸만큼의 음반을 냈으며

한국에 정식으로 발매된 음반들은 워너 이후의 디스코그라피 뿐이었고

그 중에서도 제가 가진 거라곤 고작 해야 두어장의 앨범이 다였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숙고 끝에 

비장한 선언으로 한 귀퉁이를 접어둔 삶의 어느 장,

저는 가난했고, 알이엠은 위대했고, 시간은 영원했죠




20세기는 잠들었어, 아주 깊이

하지만 우린 두 눈을 부릎뜨고 있지 electrolite


나는 최후의 음반 수집가

세상이 멸망할 때 배경음악을 틀어야지 i'm gonna dj


바다는 강물의 목적지야

물방울들은 떠나야 할 이유를 알고 있어

강물은 언제나 바다로 가잖아

역류를 만난다면 그건 운명이겠지 find the river


이 얼마나 슬픈 행진입니까

이 얼마나 서글픈 행진인가요 new test leper






그런데 이렇게 조각 조각 맥락없는 포스팅을 해도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기록을 남길만한 곳이 없네요 

마음을 두면 그곳이 구원임을 알지만, 알기 때문에 더더욱 어디 마음 둔 곳이 없어서





못생긴 소녀들은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습니다 tongue


지친 나의 두 손과

다친 나의 심장으로

세상의 반을 돌아 여기까지 왔어 half a world away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노래를 듣고 신체적으로 아팠던 적이 세 번 있습니다

너무 어렸고, 너무 예민했으며, 너무 뻔한 리스트라 웃을지도 모르지만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 핑크 플로이드의 컴포터블리 넘, 그리고 알이엠의 루징 마이 릴리전

서툰 솜씨로 사전을 뒤적이며 가사를 번역하고, 몇 번씩 곱씹어 읽고 듣고 한 뒤, 호되게 몸살을 앓았죠,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언제나 그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알이엠이 아니었다면 퀸이나 핑크 플로이드가 내 인생의 밴드가 됐겠지

하지만 그 어느 우주에서 그 어느 내가, 알이엠이 아닌 다른 밴드를 '인생의 밴드'라 부르고 있을까요

정말로 믿어본 적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 노래는 전세계적인 사랑을 받았죠, 우리 잘못은 아니에요, 어쩌다보니 일이 그렇게 된거지

누군가에게 반했을 때, 상대방이 당신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죠, 하지만 확신할 순 없어요

그래서 온갖 힌트를 뿌리고, 상대방이 거기에 반응해줄 거라 생각하죠, 하지만 확신은 못 해요

이 노랜 이에 대한 노래예요

돌이킬 수 없을만큼 멀리 와버려서, 거의 아이다호 크기에 맞먹을만한 힌트를 던져놓고도

상대방의 반응에 오히려 혼란만 느끼는 거예요

혹은, 전혀 반응하지 않는다고 느끼거나

혹은, 와, 드디어 무슨 일이 벌어지려나보다 싶거나...

이미 7천번도 넘게 설명했던 것 같은데 'losing my religion'은 남부의 관용어구죠

무언가 당신을 너무 심하게 몰아붙여서, 당신으로 하여금 최후의 신념까지도 저버리게 만드는 거예요

무언가 당신을 한계에 도달하게 만드는 거죠

이 노랜 거기에 대한 노래예요

가끔 이 노랠 종교적으로 해석하려는 사람들이 있는데

아니에요, 이건 그냥 사랑 노래입니다'






삶은 버거워
너 자신보다도 거대하지
넌 내가 아냐
그렇기에 내가 감당해야 할 그 거리감
너무나 먼 너의 눈빛
아니, 말이 너무 많았지
내가 그렇게 만든건데


구석에 있는 이가 나야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그 사람이 나라고
난 궁지에 몰렸어
너와 함께 견뎌내려 했었지
이제 내가 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어
아니, 너무 떠들어댄 것 같군
아직 충분히 말한 건 아니지만


네 웃음 소릴 들은 것 같아
네가 노래를 부르는 것도
난 네가 애쓰고 있다 생각했었는데


깨어있는 동안의 그 모든 속삭임들
이젠 고백하려 해
내 눈을 너에게만 고정시키려 했었지
상처받고 길 잃은 눈 먼 바보처럼
알아 내가 지나치게 말이 많다는 거
내가 그렇게 만들어 버렸다는 것도


생각해봐, 숙고해 보라고
이 세기적인 힌트들을
생각해봐, 가령 미끄러짐 같은 것
나의 무릎을 꿇게 만드는 것
이런 모든 환상들에도 불구하고
무너지게 만들어 버리는 그것
이제, 떠들만큼 떠들었어


너 혹시 웃은 거니
노랠 흥얼거리는 거냐고
네가 날 위해 애쓰고 있는 줄로만 알았어, 난


그건 단지 꿈이었던 거구나
꿈이었을 뿐인 거야


그래, 난 코너에 몰린 채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어
이제 정말 한계야
내가 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어
아니, 말이 너무 많았지
아직 충분치는 않지만


난 네가 웃고 있다는 걸 알았고
노래를 흥얼거리는 것도 들은 듯 했어
날 위해 애쓰고 있다는 것도 모두 착각이었던 걸 알았어


그건 단지 꿈이었던 거야
발버둥치며, 울던 건, 왜.. 왜였지
그건 단지 꿈일 뿐이야
꿈일 뿐이었던 거야
그냥
꿈이었을 뿐이야







특별히 충격적이거나 서글프거나 하진 않습니다

오히려 해체할 적당한 시기보다 더 지나왔다고도 생각해요

'오늘'이라는 특정한 지점을 그들이 직접 손가락 끝으로 지목하여

길을 걷다 문득 멈춰서서 전세계에 흩뿌려진 어떤 종류의 사람들과 함께, 마치 가상의 네트워크처럼 연결되어 그들의 음악을 듣는

순간과 공간을 제공해주었으니 감사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휘청이는 것은, 발끝에서부터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는 어떤 뜨거운 덩어리는

밴드가 아니라, 노래가 아니라, 인생인 거겠죠, 제 몫의


하지만 어쨌든, 아니라고 해도,

온 몸으로 거절과 거부와 방어의 신호를 내뿜으며

아무도 곁에 있지 않을 때

포기하지 않고 말을 거는 것은

언제나 음악, 음악이 아니었던가요






비밀스레 당신의 속눈썹을 세며

그 하나 하나마다 사랑한다 속삭입니다 at my most beautiful


만일 달이 두 개쯤 있어서 

서로를 바라보며 눈부신 태양 주위를 돌면 어떨까요

그 밝고 빈틈없고 영원할 것만 같던 꿈... nightswimming








난 괜찮다고 그렇게 말했던 건

순전히 그대 기분이 상할까봐 거짓말을 했던 거예요

사실대로 말하자면,

머리통이 으스러져 깨질 것만 같았어요

난 두 팔이 다 잘려나갔고

그러니 아무도 해칠 수 없어요

그댄 예의상 놀라는 척 해주는군요

난 그냥 다치기 쉬운 살갗을 핥기 위해 물러섰을 뿐


아직 끝낸 게 아니예요

난, 그대랑 끝낸 게 아니예요

도저히 그것만은 안 되겠어요







storytelling by michael stipe

all songs from r.e.m.

translated by lonegunman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6422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5015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3978
1076 새로운 본드걸. [10] 자본주의의돼지 2012.03.29 3315
1075 나후보는 이런 모습 원치 않을거 같군요 [6] 가끔영화 2011.10.08 3285
1074 할로윈 호박들 Jack 'o Lanterns [4] Q 2012.11.01 3279
1073 비틀즈의 'Sgt.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앨범이 왜 팝 역사상 최고로 평가받나요? [35] crumley 2011.01.05 3227
1072 한국에서 서핑을 하려면... [5] 자본주의의돼지 2012.10.20 3220
1071 내게 해괴하고 기이하고 기가막히는 표현 best 3 [17] SPL 2011.12.21 3216
1070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해밀턴 이야기 [4] 우말 2010.08.31 3213
1069 오늘 중국 구글 로고 참 이쁘네요!!! [5] soboo 2011.02.17 3212
1068 소심하게 올리는 트위터 신청... [25] 아.도.나이 2010.09.19 3211
» 인생의 밴드 [10] lonegunman 2011.09.23 3201
1066 '앤드루 가필드의 스파이더맨' 이미지 공개 [9] 브랫 2011.01.14 3189
1065 나의 지인이 내가 듀게에 올리는 글을 볼 확률? [24] 킹기돌아 2012.07.04 3182
1064 <블랙 스완> IMDB 트리비아 번역 [1] 빠삐용 2011.03.03 3176
1063 샤이니 신곡 Why so serious? 뮤직비디오 [11] fysas 2013.04.26 3170
1062 다크나이트 라이즈 IMDB 트리비아 번역 - 1 [3] 빠삐용 2012.07.25 3150
1061 100년 전 컬러 사진 - Boston Globe, Big Picture [8] 2010.09.09 3130
1060 쇠사슬에 묶인 메리 루이즈 파커 - 위즈 Weeds 시즌 7 프로모 (사진+동영상) [4] 프레데릭 2011.04.30 3109
1059 아만다 사이프리드 신작 [레드 라이딩 후드] 처음 공개된 스틸 [9] 보쿠리코 2010.11.14 3088
1058 LUNA SEA ... 좋아하시는 분들 계신가요 ㅎㅎ [9] 택배 2010.08.22 3087
1057 [미국 정치] 막판까지도 오통령한테 불안한 대선구도 [7] Q 2012.11.04 3081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