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분들을 위해 작은 자리 하나 차려봅니다.







멈췄다가 이내 다시 시작한다

그래봤자 똑똑한 척 하는 얼간이

손 끝으로 스스로에게 쾌락을 선사하며

넌 그냥 그게 정신이 번쩍 드는데 좋다고 하지만

그 더러운 수작의 희생자는 바로 네가 될 거야

넌 너 자신과 연애하고 너 자신을 차버리고 하는 거라고


문이 한 차례 벌컥 열리고

너는 발끝을 응시하며

숨을 곳을 찾아 들어온다

패배는 완성되었어

동전 넣는 텔레비전 화면 위로 너와 내 모습이 비친다

티비 속에 우리가 나올 때마다 공포로 얼어붙는 모습이


그건 전혀 놀랍지 않아, 사실

놀랄 이유가 없잖아?

무슨 문제라도 있나?

뭐가 잘못 됐어?

그냥 화면 속의 내 얼굴이 너무 못나보여서 그래

머리 끝에서 발 끝까지 

저 완벽한 찌질이를 보라지


그래서 걸어나온다

그 길에 마주친 사내는

내게 개인적인 지옥을 선사해줄 간수

날 무릎 꿇리는 게 즐거워 죽겠다지


모두가 병에 걸리고 싶어 죽겠는 거다


솔직히 전혀 놀랍지도 않군, 사실

놀랄 이유가 없잖아?

무슨 문제라도 있나?

뭐가 잘못되기라도 했어?

그냥 사진 속의 내 모습을 견딜 수가 없어

아주 꼴볼견이군 그래

도저히 눈뜨고 봐줄 수가 없어


모두 병에 걸리고 싶어 안달이라도 난 걸까

그럴듯한 병명을 얻으려 목숨을 걸고 있는 것 같아

모두들 병에 걸리고 싶어 죽겠는 거라고









........


엘리엇 스미스의 베이스먼트 앨범은

유작이라는 프리미엄을 갖다 붙이는 게 구차할 만큼 위대한 작품이지만

그 앨범에서 코스트 투 코스트가 제 베스트 트랙인 적은 지금껏 단 한 번도 없었는데

언제였던가

이상하게도 그 곡을 반복해서 듣는 꿈을 꾼 적이 있습니다

리브 잇 얼론,하는 희미한 코러스나

낫띵 뉴 포 유 투 유즈, 하는 운율을 입안에 가득 문 채로 깨어났던 적이










여기가 결단을 내려야 할 종착역이야

여기가 막다른 골목이라고, 아직 모르겠어?

그럼 가

가서 널 기다리고 있는 게 뭔지 네 눈으로 직접 확인해

새로운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쓸만한 건 조금도 남아있지 않다는 걸


더이상 널 즐겁게 해 줄 참신한 행동도 남아있지 않고

사실 널 어떻게 이용해 보겠다는 욕망조차 이제 내겐 없어, 알잖아

행여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남아있다 해도

어차피 너에겐 조금도 만족스럽지 않을테니까


자, 이제 가망이 없다는 걸 알았다면

그만 포기해

그냥, 내버려둬

그래, 잊어버려

그건 쉽잖아

아마 나 역시 모두 잊게 될 거라 믿어



그런데도 여전히 날 곁에 두는 건

결국 내가 우리 둘 모두를 파멸시키는 꼴을 보고야 말겠다는 건가

모자에 들러붙은 깃털을 뽑아내듯 그렇게 해

그래, 그게 우리 관계의 귀결이야

넌 결코 여길 떠날 수 없는 사람이고

난 그냥 네 동물원에 수용된 한 마리 짐승일 뿐이야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떠나라는 출발 신호를 발사하지 않으리란

너의 통보를 기다리는 것 뿐이지

지금 이 말은, 잘못하면

여기 있는 게 그다지 즐겁지 않다는 소리로 들리겠어

이 말을 하고 있는 게 내가 아니었다면 말이지


행여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남아있다 해도

널 만족시키기엔 한참 모자라기만 할텐데

어차피 그 사실을 바꿀 수 없다면

그냥 내버려두는 수밖에 없잖아

포기해

그래, 잊어버려

그건 쉽잖아

나도 다 잊어줄게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다 말야

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테니

너도 어떤 식으로 뭐가 되든 마음대로 해

어떤 수를 쓰든,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다 할게

그러니 넌 네 맘대로 살아

머리부터 발 끝까지, 한 치의 거스름도 없이


순회 목사는 다섯 번째 일요일마다 찾아왔지만

신께 고하건대, 어느날 설교를 듣다 난 졸고 말았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대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게 있긴 해?

다른 누구도 너에게 해주지 않는,

다른 누구도 너에게 해준 적 없는 일 중

내가 이미 너에게 해주지 않은

그런 일이란 게 아직 남아있긴 한 거야?






..................



꽃이 시드는 데에는,

꽃을 시들게 하는 데에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을 겁니다

화분 째로 들어올려 20층 창 밖으로 던져버릴 수도 있고

한 장 한 장 꽃잎을 뜯어 갈기갈기 찢어버린다거나

뿌리를 파헤쳐 짖이겨 버리는 수도 있을 테고

그리고


손바닥만한 볕도 들지 않는 방 안에 두고 문을 걸어잠근 채

눈부시게 활짝 피어나라고, 아름다운 꽃을 많이 많이 피우라고

마음을 다해 축복하는 방법도 있을 겁니다

햇빛 한 줌, 물 한 모금 나지 않는 방 안에 두고 문득 들여다보며

어찌 꽃 한 송이를 피우지 못하느냐 의아해하며

눈부시게 활짝 피어나라고

아름다운 꽃을 많이 많이 피우라고

진심을 다해



어느 쪽이든

꽃은 시드는 거죠







여기 올 땐 누구나 혼자였지만, 돌아갈 땐 모두가 둘이 되어 갔어

처음엔 우리도 그럴 줄 알고 왔는데, 너랑 나만 여전히 혼자구나

만약 네겐 아무런 희망도 없다는 말이 진심이라면

그러지 말고 내 곁에 있지 않을래?


왜 넌 그렇게도 뻔한 거짓말을 늘어놓니

네가 솔직하게 말해준다면, 나도 네게 모든 걸 털어 놓을텐데

네 말처럼 네가 정말 끝장난 거라면

네 옆에 있는 나는 도대체 뭘까


너무나도 오랜 시간을 아무런 소망도 없이 살아왔어

하지만 너와 함께라면 그게 뭐든 좋을 것 같아

네 말대로 네겐 가망이 없는 거라면

대체 넌 지금 나랑 뭘 하는 거니?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살아온지 너무 오래야

하지만 너라면 내게 무슨 짓을 해도 다 괜찮을 것 같아

네 삶은 끝났다는 너의 말이 사실이라고 치자

그럼 나와 보내는 시간들은 너에게 뭐니?

너는 대체 지금 나랑 뭘 하고 있는 거니?




..........................

저에겐 엘리엇의 죽음으로 시작해서 어느 누구의 죽음으로 끝나는, 하룻밤도 지새우지 못할 짧막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지만 사는 동안 그 얘길 할 수 있을 밤이 제게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런 밤이 필요나 한지도 사실은 모르겠습니다

그저 아무 노래의 후렴구를 흥얼거리는 것으로 대신할 수 없는 삶의 토막이, 진정 있기나 할까요




pictures of me

coast to coast

whatever (folk song in C)


all songs from elliott smith

translated by lonegun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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