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글의 형태로 작성되어서 말투가 이런 것이니 양해 부탁드려요.)

최근에 개인적으로 특별한 경험을 했기 때문에 기록 차원에서 글을 남기고자 한다. 지난 금요일 저녁에 세르지오 레오네에 관한 다큐를 보러 가는 길에 전철역에서 올라가다가 턱에 걸려서 한바퀴 굴렀다. 이렇게 크게 넘어진 건 처음이었는데 다행히 낙법을 배우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낙법을 하는 식으로 바닥에 떨어져서 큰 부상은 면했다. 무릎을 비롯해서 여러 군데 타박상을 입었지만 말이다. 모자를 쓰고 있고 옷을 두껍게 입고 있었던 것도 큰 부상을 피하는 데 도움이 된 것 같다. 그래도 세게 넘어졌음으로 한동안 바닥에 앉아있다가 조금 괜찮아진 것 같아서 몸을 일으켜서 다시 극장으로 향했다. 극장으로 가면서 즉각적으로 데이미언 셔젤의 <위플래쉬>(2014)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극중 주인공 앤드류(마일즈 텔러)는 연주에 참가하러 가던 중 자동차 사고로 심하게 다치는데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서 결국 연주회에 참가한다. 다리를 절뚝 거리면서 걷는 나를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몸이 다친 상태이지만 너무 보고 싶었던 다큐라서 영화 관람을 포기할 수 없었다. 

아픈 몸으로 좌석에 앉아 프란체스코 치펠의 <세르지오 레오네: 미국을 발명한 이탈리아인>(2022)을 보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좀 전에 떠올렸던 <위플래쉬>를 만든 데이미언 셔젤을 비롯해서 엔니오 모리코네, 쿠엔틴 타란티노, 스티븐 스필버그, 클린트 이스트우드, 대런 아르노프스키, 마틴 스콜세지, 프랭크 밀러, 쥬세페 토르나토레, 자크 오디아르, 서극, 로버트 드 니로, 제니퍼 코넬리, 일라이 월락, 다리오 아르젠토, 레오네의 자녀들(안드레아, 프란체스카, 라파엘라 레오네) 등 수많은 사람들의 인터뷰 장면들이 이어졌는데 인터뷰 내용들이 무척 감동적이었다. 스필버그가 레오네를 이 정도로 좋아하는 줄은 처음 알았기 때문에 좀 놀라웠다. 심지어 이 다큐에서 스필버그의 인터뷰 분량은 레오네의 최고의 팬으로 알려진타란티노보다 더 많았다. 레오네가 세 자녀에게 매우 자상한 아버지였다는 것과 학창 시절 엔니오 모리코네와 동창이었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다. 다큐 속에는 모리코네가 <석양의 갱들>(1971)의 곡을 피아노로 치고 있을 때 레오네가 그 곡을 듣고 있다가 좀 더 부드럽게 쳐보라고 얘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제니퍼 코넬리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1984) 촬영 당시에 그녀가 최초로 접한 영화 촬영 현장에서 너무나 그녀를 자상하게 대해주었던 레오네를 떠올리며 눈물을 글썽인다. 다큐 속에서는 당연스럽게도 모리코네의 음악이 많이 흘러 나왔다. 모리코네는 레오네와의 협업 과정을 자세하게 설명해준다. <옛날 옛적 서부에서>(1968)의 긴 오프닝 시퀀스에 원래는 모리코네의 음악이 쓰였으나 레오네가 모리코네의 음악을 빼고 다양한 음향 효과들만 가지고 일종의 음악을 구성한 것을 보고 모리코네가 바로 납득을 했다는 일화도 등장한다. 이 일화가 등장할 때 화면에서는 <옛날 옛적 서부에서>의 오프닝 시퀀스의 장면들이 나오는데 그 일화를 들으면서 장면들을 봐서 그런지 몰라도 나는 이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가 가지고 있는 음악성에 대해 예전보다 더 실감하게 되었다. 

이렇게 다큐를 재미있게 보고 있었는데 뭔가 점차 북받쳐 올라 울컥 울컥 하더니 (아마도) 모리코네가 작곡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OST 중 하나인 ‘데보라의 테마’가 흘러나올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그 이후로 계속 울컥하는 심정으로 다큐를 봤다. 다큐를 보면서 돌아가신 부모님이 떠올랐고 나는 왜 이리 영화에 빠져 버렸을까 하는 생각을 비롯해서 내 안에 있는 온갖 감정들이 휘몰아쳤다. 스필버그의 말과 함께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다시 ‘데보라의 테마’가 흘렀는데 그때부터 나는 소리를 크게 내지 않으려고 꾹 참으면서 거의 통곡하듯이 울고 말았다. 전에 레오네의 영화들을 보면서도 이렇게 울어본 적이 단 한번도 없었기 때문에 스스로도 너무 놀라운 상황이었다. 애초에 내가 영화를 보면서 우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때 왜 그리 눈물이 흘렀는지에 대해 논리적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임상심리학자에게 심리 분석을 요청하고 싶은 기분이 들 정도로 오묘한 순간이었다. 집에 와서 ‘데보라의 테마’를 들었는데 또다시 눈물이 흘렀다. 이 음악을 들으면서 운 것도 그날이 처음이었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그날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은 내 마음을 후벼팠다고 해고 과언이 아니다. 물론 그날 나를 울게 만든 다양한 요인들이 있었겠지만 나를 울게 만드는 데 있어서 모리코네의 음악이 크게 작용한 것은 부인할 수 없을 듯싶다. 그 음악이 내 무의식의 영역을 건드린 것 같다. 그날 눈물을 흘리면서 음악의 힘을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다큐 속에서 레오네의 영화는 노스탤지아에 관한 것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그날 유난히 다큐 속에 나왔던 레오네의 영화의 장면들이 나의 노스탤지아를 자극했던 것일까. 나도 잘 모르겠다. 다큐를 보면서 레오네의 영화들은 이제는 더 이상 재현되지 않는 영화로왔던 영화의 시대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레오네의 영화들 중에 OST는 매우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정작 영화 본편은 크게 좋아하지 않았던 레오네의 유작인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를 꼭 다시 보겠다고 마음 먹었다. 레오네가 무려 15년 동안 준비했던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니 뭔가 애틋한 감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몸은 만신창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에 몰입해서 펑펑 울었던 것은 생애 최초로 있었던 일이다. 온전히 영화만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실감한 날이기도 했다. 따라서 그날의 관람은 내가 영화를 봐온 이래 가장 특별한 순간 중의 하나로 남을 것 같다. 그래서 이렇게 기록으로 남긴다. 

프란체스코 치펠의 <세르지오 레오네: 미국을 발명한 이탈리아인> 예고편: https://youtu.be/JtYHRjS1p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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