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월애랑 같은 해, 2000년에 나온 멜로 영화죠. 1시간 53분. 이번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어차피 다 아실 거라.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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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굳이 영어 제목을 Ditto 라고 해 놓은 건 사랑과 영혼 때문이겠죠.)



 - 먼저 1979년 김하늘의 이야기가 20여분 동안 흘러나옵니다. 신라대라는 가상의 학교 영문과 3학년이구요. 박용우 선배를 짝사랑하며 슬랩스틱을 하다가 그만 아마추어 무선 동아리에 굴러다니던 부품 하나 빠진 통신기를 득템해서 들고 와요. 눈에 띄는 미모 덕인지 생각보다 아주 수월하게 선배랑 잘 풀리는 가운데 어느 날 통신기에서 2000년 신라대 2학년 유지태와 연결이 되는 거죠. 그리고 이런 영화의 의무 방어전인 '상대방이 진짜임을 인정하기' 단계를 마치고 나선 두 사람 각자의 연애 상황이 꼬이면서 멜로 무드로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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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이 준'의 폭망 커플이 다시 뭉쳤다!!!)



 -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렇습니다.



 그냥 이 팬메이드 뮤직비디오 영상을 보세요. 이게 영화보다 낫습니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거의 모든 면에서 그래요. 



 - 일단 시작부터 당황하게 됩니다. 인트로 화면에서부터 강렬한 '방화' 포스를 풍기구요. 타이틀 뜨는 효과도 진짜 촌스럽구요. 화면 잡는 거나 편집이나 다 뭔가 나쁘지 않은 듯 하면서 나사가 반 개씩 빠진 느낌이랄까. 영화의 만듦새가 되게 투박합니다. 어떤 장면에선 대화 나누는 두 주인공이 머리 꼭대기 쯤에서 어색하게 화면에 잘려 있고. 또 중간중간 불필요한 장면이 몇 초씩 툭툭 튀는 편집으로 들어가 있고 뭐 그래요. 바로 전날에 봤던 '시월애'가 얼마나 괜찮은 만듦새의 영화였는지... 에 대한 깨달음이 뒤늦게 막 밀려옵니다. 무시해서 미안해요 시월애. 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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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대로 나온 짤을 못 구하겠는데요. 암튼 특히 하지원이 그 세기말-세기초 '트렌디'를 온몸으로 표현하는데, 그래서 가장 보기 난감합니다. ㅋㅋ)



 - '시월애' 대비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는 이 영화가 2000년의 유지태와 하지원을 통해 "통통 튀는 신세대의 라이프 스타일!"을 보여주려고 너무 많이 노력한다는 겁니다. 캐릭터들의 말투나 행동, 스타일링 등등의 거의 모든 것들이 넘나 격하게 아주 총체적으로 그 시절 최신 유행 스타일(이라고 티비 속 연예인들이 보여주던 것)이라 지금 보면 여러모로 난감해요. 게다가 당연한 얘기로 그 안에는 어떤 '현실 세계의 인간'도 느껴지지 않구요. 마치 그 시절 신문들에 특집으로 나오던 '이것이 M세대다!!' 같은 기사들에 묘사된 캐리커쳐들 같습니다.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


 어차피 개봉 당시에도 페티시의 공간이자 대상이었던 1979년과 그 안의 캐릭터들은 차라리 좀 낫습니다. 그 시절 기준으로도 지금 기준으로도 어차피 다 흘러간 세월이니 특별히 촌스럽거나 거북스러울 건 없는 거죠. 물론 감독은 이 1979년도 최대한 비현실적으로 예쁘장하게 꾸미려고 노력하는데, 2000년처럼 '트렌디'한 아이템이 등장하지 않으니 특별히 보기 민망한 건 없습니다. 김하늘의 캐릭터도 뭐 걍 옛날 로맨스 소설 속 여주인공이다... 라고 생각하고 대충 납득하게 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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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기 김민주님은 이 영화 전에 '학교2'에서 나름 얼굴을 알리셨었죠. 거기 하지원도 나왔었구요.)



 - 거기에 덧붙여서 '시월애'에도 있던 문제들이 고스란히 이 영화에도 들어 있습니다.


 일단 시간 여행(...은 엄밀히 말해 아닌데, '시간 소통'은 좀 이상하잖아요?)이라는 소재를 너무 하찮게 다룹니다. 그냥 로맨스를 짜내기 위한 부분만 취하고 나머지는 싹 다 내다 버려요. 대표적으로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요 싱기방기한 상황을 통해 현실을 바꿔 보려는 시도를 아예 하지 않습니다. 동시에 이 시간 여행 상황은 이미 결정된 사실들에 정말 0.1도 영향을 미치지 않아요. 시간 여행을 소재로 삼으면서 이렇게 이야기가 전개되는 영화가 또 있을까요? 제가 본 중엔 없습니다. 나름 기특한 부분이라면 초반에 둘이서 '우리 이걸 개인적인 욕심에 쓰지 말기로 해요'라는 매우 착한 약속을 함으로써 나름 알리바이를 마련한다는 겁니다만. 다시 한 번, 아니 정말 그럴 거면 왜 시간 여행을 소재로 삼냐구요. ㅋㅋㅋㅋ


 심정이 납득 안 가는 캐릭터들의 문제도 마찬가집니다. 예를 들어 유지태는 김하늘과 딱 몇 분 통신을 한 후 바로 다음 날 관련 서적을 주겠다며 약속을 잡죠. 그러고선 약속 장소에서 장대비를 맞으며 두 시간이 훨씬 넘는 시간을 기다리다 하지원이 옆에 와서 깔짝깔짝 대니 그제사 철수합니다. 아니 도대체 왜요. 생전 모르는 사람을 두 시간 넘게 기다리는 것도 이상하지만 그 빗속에 그걸 다 맞으며 버티는 건 그냥 정상이 아니죠. 그리고 그 이유야 뻔하죠. 걍 비 맞으며 하염 없이 기다리는 멜로 갬성 그림을 만들고 싶었던 겁니다. 앞뒤 맥락 따윈 신경 안 쓰고요. 그래서 그 장면은 영화에서 보면 그냥 어이가 없고, 저 위에 올린 편집 영상에선 상당히 폼이 납니다. 


 근데 그나마 영화 속의 공들인 '명장면들' 역시 문제가 많습니다. 센스가 구려요. 왜 그 유지태랑 김하늘이 손으로 벽을 쓸며 걷는 장면 있잖아요? 그 장면도 저 뮤직비디오 속에서나 낭만적이지 영화로 보면 되게 웃깁니다. 사람의 향기가 어쩌니 하는 김하늘의 새벽 두 시 일기장 갬수성 폭발하는 나레이션과 함께 그 짓을 하는데요. 처음엔 그럭저럭인데 잠시 후에 유지태가 걷는 걸 보다 정말 육성으로 웃었어요. 아니 두 발짝 뒤에서 하지원이 따라오며 똑같이 벽을 쓸고 있지 뭐에요. ㅋㅋㅋㅋㅋ 게다가 그 장면 내내 흐르는 기나긴 김하늘 나레이션 목소리엔 노래방 에코까지 들어가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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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 근데 대체 쌩뚱맞게 벽은 왜 손으로 쓸고 다니는 건데요.)



 - 그래도 22년 전엔 재밌게 봤던 의리로 괜찮았던 부분을 꼽아 보겠습니다.


 일단 아이디어 자체는 괜찮았던 것 같아요. 시간 여행도 시간 여행이지만 나름 유니크한 구석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여기서 김하늘과 유지태는 사랑하는 사이가 아니라는 거? 각자 연애지사가 따로 있고 이들의 무선 통신을 통한 대화는 그냥 서로 격려하고 위로해주는 역할일 뿐이죠. 이 부분을 좀 더 제대로 팠다면 꽤 괜찮아질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사랑과 운명' 얘기 하느라 그럴 시간이 없었던 게 아쉽구요.


 또 뭐 '시월애'랑 1 vs 1로 붙여놓고 비교하지만 않으면 나름 아이디어 괜찮고 예쁜 그림들도 꽤 나옵니다. 뽀송뽀송한 김하늘, 유지태, 박용우의 모습들도 보기 좋구요. 그 덕택에 저 뮤직비디오가 수작이 될 수 있었던 거죠. ㅋㅋ


 그리고 아마도 장진이 손 댄 부분이 아닐까 싶은 나름 괜찮은 드립들이 좀 있습니다. 박용우랑 밥 먹다가 노스트라다무스 얘길 듣고 "안 망한대요~ 걱정마세요. 하하하." 하는 김하늘의 모습 같은 건 다시 봐도 웃기고 귀여워요. 박정희 죽은 뉴스가 나오는 동안에 다른 일로 슬퍼하는 김하늘을 보고 엄마랑 아빠가 다가와서 안아주는 장면 같은 것도 좀 웃겼고. 차라리 코믹 요소를 더 많이 넣었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해요. 사실 이 영화의 김하늘 캐릭터는 꽤 웃기거든요. 그냥 순수 발랄 사랑스러움을 캐릭터 컨셉으로 잡았던 것 같은데 그게 영화 내내 쭉 일관되게 과해서 웃깁니다(...) 어차피 웃길 거면 개그를 시켰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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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쨌든 예쁜 배우 캐스팅한 보람은 충분히 찾아 먹습니다.)



 - 암튼 참 희한한 이야깁니다.

 좋게 말해서 운명론자들을 위한 로맨스에요. 멀쩡히 연애 잘 하다가 '미래에 그 남자 니 절친이랑 결혼한대'라는 말 한 마디 듣고 바로 퇴각하며 향기 드립만을 남기는 김하늘이나. 본인 감정이나 생각은 영화 끝날 때까지 한 마디도 드러내지 않고 걍 졸졸 따라다니는 하지원을 방치(?)하다가 마지막에 결국 받아들이기만 하는 유지태나. 스스로 뭘 하겠다는 의지는 1도 없는 괴이할 정도로 수동적인 인간들이죠. 영화의 마지막 장면도 그렇지 않습니까. 굳이 거기까지 찾아가서 그냥 눈 한 번 마주치고 오는 건 대체 뭐하자는 플레입니까. ㅋㅋ 당연히 둘이 연애를 할 건 아니지만 하다 못해 제대로 마주보고 웃으며 인사 나누는 식의 엔딩이기만 했어도 이토록 맥아리 없는 스토리라고 생각하진 않았을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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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거 보고 싶으면 보시면 됩니...)



 - 결론은요.

 임재범 인생 히트곡의 뮤직비디오 제작 소스를 제공했다는 점에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영화 되겠습니다.

 사실 이렇게 까댔지만 그 시절에도 나빴다는 말은 못 해요. 그 땐 저도 재밌게 봤으니까요.

 그 때 감성으론 괜찮은 로맨스였지만, 나이를 곱게 못 먹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혹시 예전에 재밌게 보셨던 분이라면 다시 볼 생각 하지 마시고 저 위에 올린 뮤직비디오를 영화 런닝타임만큼 반복재생하시는 게 낫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으로 마무리합니다. ㅋㅋ




 + 네이버에서 '영화 동감'으로 검색하면 여진구가 나오는 이상한 영화 정보가 뜨는데요. 이게 뭔가 했더니 올해 리메이크 된답니다. 예전에 듀나님이 꽤 호평하셨던 '초인'이란 영화를 만든 서은영 감독이 직접 각본 쓰고 연출한다네요. 아니 뭐 이런 걸 다... 라는 생각이지만 뭐, 본편을 다시 보고 나니 최소한 이것보단 괜찮은 로맨스가 나오지 않을까 싶구요. 근데 이걸 지금 만드니 아마도 2022년의 여진구가 2002년의 여자와 대화를 나누는 식으로 '응답하라' 갬성의 영화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 시월애와 마찬가지로 과거와 미래를 이어지는 도구에 대해선 일절 설명이 없습니다만. 첫 통신이 이루어지는 날 굳이 쓸 데 없이 개기 월식 얘길 하는 걸 보면 그거랑 엮어서 상상해보라는 것 같구요. 근데 이후에 이어지는 '전원 코드가 빠진 채로 통신함'이라는 설정은 웃겼어요. 이건 호러 설정이잖아요!!



 +++ 극중에서 박용우는 팔이 부러지고 김하늘 절친은 다리가 부러지죠. 깁스한 사람들이 자꾸 보이니 팔이 더 아픈 듯한 기분이... or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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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용우 선배! 어깨에요!! 어깨 스트레칭을 미리 틈틈이 해두셔야 합니다!!! ㅜㅠ)


 

 ++++ 다들 아시는 거겠지만, 임재범의 저 노래는 이 영화 주제가가 아닙니다. 걍 유지태랑 하지원이 별 일 없는 시시껄렁한 대화 나누는 카페 장면에서 몇 초 나와요. 진짜 주제가는 영화 끝날 때 나오는 게 따로 있는데, 뭐 어차피 아무도 기억을 못...



 +++++ 근데 이 글 적으면서 짤 찾느라 이것저것 검색하다 보니, 지금까지도 이 영화에 대해 좋은 기억 간직하신 분들이 참 많군요. 그래서 반성해야겠다... 는 생각이 들고 막 그렇습니다. ㅋㅋ 죄송합니다. 제가 20년간 되게 삭막하게 늙었나봐요. 엉엉. 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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