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15 13:23
- 2019년작이고 런닝타임은 2시간 24분. 장르는 느와르이구요. 스포일러 없게 적겠습니다.
(제목을 영어로 보니 좀 임팩트가... ㅋㅋㅋ)
- 때는 1950년대, 배경은 제목대로 뉴욕 브루클린입니다. 주인공 에드워드 노튼씨는 브루스 윌리스씨 밑에서 일하는 좋게 말해 사설 탐정, 정확하게 말해 흥신소 직원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보스가 좀 위험한 일을 맡았다... 싶더라니 백주대낮에 어이 없이 살해당합니다. 고아원에서 꿈도 희망도 없이 자라던 자길 거둬주고 인정해주며 성장시켜준 보스에게 넘나 좋은 감정을 갖고 있던 우리 노튼씨는 진상을 파헤쳐 그 나아쁜 놈들을 벌 받게 하겠다는 일념으로 1950년대 뉴욕의 거리를 배회하기 시작합니다. 당연히 술과 담배, 재즈 음악과 함께요.
...그런데 몇 가지 기억해둬야할 점이 있어요. 우리 노튼씨는 한 번 보거나 들은 건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 놀라운 기억력의 소유자인 동시에... 뚜렛 증후군을 앓고 있습니다. 어딜가도 사람들 주목을 끌고 뜻대로 거짓말도 제대로 못하는 이 양반이 그 험한 50년대의 브루클린에서 과연 뜻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
(카메라 정말 예쁘지 않습니까!!)
- 제작/감독/각본(정확히는 각색)/주연 에드워드 노튼입니다. 아무리 영화가 집단의 예술이라지만 이 정도면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내 뜻대로 만들겠어요'라는 선언이라고 할 수 있겠죠. 본인이 직접 다 하진 않아도 결국 모든 걸 다 컨펌하는 역할이었던 거니까요. 듣기로는 에드워드 노튼이 좀 촬영 현장에서 지나칠 정도로 의견 개진을 많이, 적극적으로 하는 배우라고 하던데. 결국 성질 못 참고 저질러 버린 거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그래서 그런가. 영화를 보다 보면 가끔 그런 생각이 듭니다. '아니 이 장면은 별로 안 중요해 보이는데 왜 이렇게 길지? 아... 그냥 노튼이 이런 거 하고 싶었나보네.'
미리 전체적인 인상을 간단하게 말하자면 이래요. 전반적으로 준수하게 잘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뭔가 임팩트가 없고 살짝살짝 아쉬운 구석들이 많아요.
(여기선 제가 갑인 것 아시죠? 라는 듯한 제작자 겸 감독님과 왠지 군기 들어 보이는 브루스 할배)
- 원작 소설이 있습니다. 전 당연히(?) 안 읽었구요. 나름 유명한 작품이라는데, 어차피 노튼이 많이 뜯어 고친 것 같네요. 일단 확실한 건 시대 배경을 옮겼다는 겁니다. 원작은 그냥 현대가 배경이라는데 영화는 50년대가 배경이에요.
왜 그랬는지는 짐작이 갑니다. 스포일러가 아닌 선에서 말하자면 이게 결국 인종 차별에 대한 이야기이고, 그것도 도시 개발 계획과 관련된 인종 차별 이야기입니다. 뭐 현대로 설정을 해도 같은 얘길 하기가 어렵진 않았겠지만 (애초에 원작도 그럴 테니까요) 50년대로 가 버리는 게 여러모로 더 편했겠죠. 최근의 사건을 소재로 삼는 것보단 부담도 적고. 이야기의 스케일도 훨씬 키울 수 있고. 갈등도 훨씬 심플하면서도 선명하게 표현할 수 있고요. 거기에다가... 영화를 보고 나면 아무래도 노튼이 재즈 덕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것 역시 그 시절을 배경으로 삼는 게... ㅋㅋㅋ
(재즈!!!!)
- 근데 이렇게 사극(?)인 주제에 제작비가 2600만 달러입니다. 나오는 배우들 중에 네임드급이라면 노튼을 제외하면 알렉 볼드윈과 윌렘 데포 정도. 그리고 15분만에 광속 퇴장하는 브루스 윌리스 밖에 없고 결정적으로 주연이 제작자니까... ㅋㅋㅋ 암튼 헐리웃 영화치고 절대 돈을 많이 썼다고는 할 수 없는 영화이고. 그래서 그런지 영상의 때깔 측면에서 좀 아쉬움이 있습니다. 뭐랄까... 그러니까 좀 때깔이 생생하지 않아요. 구린 건 절대로 아니거든요. 근데 '진짜 그 시대 그 거리를 걷는 느낌'이라기보단 '그 시절을 정성들여 재현한 영상을 보는 느낌' 같은 게 강합니다. 연극 무대를 돌아다니는 듯한 기분도 들구요. 넷플릭스나 아마존 프라임의 돈 좀 들인 오리지널 시리즈 사극이랑 비교할 때 때깔은 확실히 모자랐네요.
배우들은 적재적소라는 느낌으로 캐스팅이 잘 되어서 괜찮은 연기를 보여주고요. 위에서 때깔 갖고 살짝 까긴 했지만 연출도 대체로 좋습니다. 이야기도 보다보면 그냥 부드럽게 잘 흘러가구요. 전체적으로 평작 이상은 되는 작품이고 취향에 따라 아주 맘에 들 수도 있을 거에요. 미쿡의 그 시절 배경을 좋아하고 필름 느와르 좋아하면 재밌게 볼 수 있겠죠. 그런데...
(이 배우를 '홈커밍'으로 알게 되는 바람에 영화 보는 내내 '그래서 언제 배신하는데?'라는 생각만 하고 있었습니다. ㅋㅋ)
- 뭐랄까. 영화가 좀 매력이, 그리고 재미가 덜합니다. '없는' 게 아니라 '덜 하다'라는 표현이 맞는 것 같아요. 괜찮은데, 뭔가 다 조금씩 아쉽습니다.
일단 이야기가 참 잘 흐르긴 하는데... 뭔가 기복 없고 포인트 없이 그냥 계속 잘 흘러가버려요. ㅋㅋ 과장된 빌런이나 과장된 액션, 스릴 같은 걸 넣기 싫었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되게 현실적으로 강렬한 것도 아니다 보니 그 결과물이 좀 밋밋하고 심심한 느낌이라 아쉽구요.
또 원작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암튼 미스테리도 별로 재미가 없습니다. 진상이 되게 뻔하진 않은데, 그 내용이 별로 흥미롭지 않아요. 그래서 막판에 '사실 진상은 이거였다!!!' 라고 극적으로 밝혀지는 장면도 임팩트 없이 걍 '아 그거였냐...' 라는 느낌.
거기에 덧붙여서 '뚜렛 탐정'이라는 설정도 좀 애매합니다. 굉장히 특이한 질환이긴 하지만 이미 예전에 다른 영상물 캐릭터로 접했던 터라 딱히 신선한 느낌도 없고. 그게 또 이야기 속에서 그렇게 큰 역할을 하지 않아요. 이것 때문에 큰 위기에 처하거나 아님 수사에 크나큰 장애를 겪게 되거나... 하는 식으로 써먹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없어요. 그냥 악당들에게 한 대 맞을 걸 두 대 맞는 정도? =ㅅ=
(심지어 빌런 조차도 주인공의 병을 놀리지 않습니다. 따스해...)
마지막으로 제겐 결정적이었던 게. 수사 과정이 그리 재밌지 않았습니다. 일단 주인공의 순간 암기 능력이 넘나 사기이기도 하지만... 그냥 너무 술술 잘 풀려요. 주인공이 세상에서 가장 운 좋은 탐정이든가, 아님 50년대 브루클린 사람들이 다 너무나도 상냥했든가. ㅋㅋㅋ
뭐 사실 엄밀히 따지고 들자면 필름 느와르 중에 그렇게 수사 과정이 기발하고 멋지고 그런 경우가 오히려 드물기도 합니다만. 그래도 느와르물 특유의 그 '분위기'라는 걸로 커버들을 하잖아요. 근데 이 영화는 시각적으로는 그렇게 적극적으로 느와르가 되려 하지는 않는 느낌이라... 음;
- 대충 결론 내자면 이랬습니다.
'준수함'과 거기에 살짝 못미침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작품이라고 느꼈습니다.
거의 모든 분야에서 평범 이상은 되는데 확실하게 차별화되는 강점이랄까, 그런 게 없어요.
중간중간 자꾸 장황해지고 늘어지는 부분들이 있는 것도 감점 요인이겠구요. 최소 20분 정돈 쳐내도 괜찮겠더라구요.
그렇다고해서 못만든 영화까진 아니니 이런 장르(50년대 뉴욕, 사립 탐정, 음험한 악당들과 재즈가 흐르는 밤거리) 좋아하는 분들이면 한 번 큰 기대 없이 보실만도 하겠습니다만. 추천은 하지 않겠어요. ㅋㅋ
+ 그리고 정작 에드워드 노튼의 뚜렛 증후군 연기가... 못 한 건 아닌데, 옛날옛적 미국 드라마에서 봤던 다른 배우의 뚜렛 연기와 그냥 똑같더라구요. 그래서 제겐 별 임팩트가 없었습니다. '앨리 맥빌'에서 앤 헤이시가 그런 캐릭터였죠.
++ 사실 브루스 윌리스 때문에 봤습니다. '브루스 윌리스의 요즘 영화들 중 좀 멀쩡한 게 있다면 보고 싶다!!' 라고 생각해서 찾은 건데 조기 사망... ㅋㅋㅋㅋㅋ 연기는 뭐 평가할 게 없네요. 그냥 평소의 브루스 윌리스에요.
+++ 알렉 볼드윈은 사실 요즘이 전성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버는 돈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젊을 땐 그저 잘 생겼는데 느끼하고 연기는 잘 못 하는 스타라는 이미지였다면 요즘엔 그래도 꽤 믿음직한 배우 같은 느낌이라.
++++ 흥행은 시원하게 망했습니다. 미국과 글로벌 흥행을 다 합해서 제작비의 2/3 정도 밖에...
(네! 망했네요!! 허허허헣ㅎ헣허)
+++++ 뭔가 익숙한 목소리와 친숙한 분위기의, 영화 속에선 좀 이질적인 곡이 들리길래 뭔가... 했더니만.
톰 요크였네요. 허헐.
윈튼 마살리스 버전도 궁금하면 들어보세요. 둘 다 좋네요. 영화보단 이 곡들이 더 오래 기억에 남을 듯.
2021.07.15 13:39
2021.07.15 13:47
자막 처리 괜찮았어요. 이걸 언어 유희로 승화시키며 드립처럼 처리하는 장면들이 계속 나오는데 가끔은 뭐지? 라는 부분이 없는 건 아닌데, 대체로 빨리빨리 휙휙 지나가버리니 뭐가 어색해도 눈치채기 힘들겠더라구요. ㅋㅋ
전 직접 검색해서 찾아내기 전까지 이런 영화가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흥행은 둘째치고 화제성은 정말 낮았던 듯.
2021.07.15 15:53
기본적으로 작은 영화이기도 하고 한국에서 그리 인기 있을 만한 부류의 영화나 배우들은 아니었기에 더 묻힌 감은 있겠습니다만, 저는 [가라 아이야 가라]는 원작에 누를 끼치지 않는 훌륭한 하드보일드 탐정 영화라고 생각했어요. 아직 연출력이 눈에 확 들어온다기보다는 원작의 힘이 강해 보이기는 했지만. (참고로 영화를 본 시점에서 저는 벤 애플렉 팬은 전혀 아니었고 데니스 루헤인 팬이었고요.) 미국에서는 평도 좋았고 여기저기서 상도 잔뜩 받았고 물론 박스오피스 히트작은 아니었지만 미국 극장가 수익만으로도 본전은 건졌으니 실패작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요.
이후 차기작 [타운]이랑 특히 [아르고]까지 본 뒤에는 감독 벤 애플렉을 무지 기대하게 됐는데--저는 [아르고]를 보고 나서는 어쩌면 벤 애플렉이 21세기 할리우드의 존 스터지스까지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밤에 살다]에서 한 번 흔들리더니 새 연출작이 없어서 아쉽네요.
2021.07.15 23:29
아. 전 '아르고'까지만 기억하고 있어서 평가도 좋은데 왜 감독 안 하지?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런 영화가 하나 있었군요. 찾아보니 평도 평이지만 흥행이 워낙 압도적으로 망해서 더 하기 부담스러워진 것 같기도 하구요. 제작에도 이름을 올리고 있네요.
2021.07.15 13:42
한글 제목을 보고 살인없는(murderless)이라고 생각했는데 엄마없는(motherless)이군요, 해석이 저렇게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엄마없는...' 이 제목이면 느와르가 아니라 눈물 나오는 영화처럼 보여서 흥행에 실패했을 수도^^
2021.07.15 13:48
그렇죠. 위에 수영님 말씀대로 '엄마 없는 브루클린 하늘 아래' 이런 느낌이라. ㅋㅋㅋ 극중에서 저게 한 번 언급이 돼요. 정말로 '엄마 없는' 주인공의 처지랑 연결되는 대사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2021.07.15 15:18
영화는 크게 관심이 안 가고, 알렉 볼드윈 잘생긴 얼굴만 눈에 들어오네요;
저도 볼드윈은 젊을 적보다 나이들어서가 더 눈에 띱니다.
2021.07.15 15:44
저만 그런 게 아니었군요. ㅋㅋ 젊었을 땐 진짜 관심 안 가는 배우였는데 나이 먹고 여기저기 비중 있는 조연들로 나오기 시작하는데... 괜찮더라구요. 심지어 살이 붙은 것도 역할에 어울리고 폼 나는 느낌.
2021.07.15 17:04
블루 재스민에서도 그랬죠. 젊을 때는 많이 느끼하기도 했는데요. <맬리스>,<겟어웨이>때의 미모는.
2021.07.15 16:22
이런 구식(꼭 나쁜 뜻은 아니고) 누아르물은 정말 완성도가 뛰어나다는 입소문이 아니면 굳이 안챙겨본지가 꽤 된 것 같습니다. 에드워드 노튼이 연출까지 한다니 궁금하기도 하고 출연진도 나름 탄탄하긴 한데 말이죠.
그런데 배티님이 딱히 추천하신 글은 아니지만 묘하게 한 번 시도해보고 싶은 마음도 살짝 생기고 그렇네요. 왜인지 스토리나 소재를 묘사하신 부분에서 끌리는 부분이 있어요 ㅎㅎ gugu mbatha-raw 개인적으로 참 호감인 배우인데 분량이 어느정도인가요? 남성미가 물씬 느껴지는 그런 느와르물에서 나름 여캐로서 제일 비중있는 역할인 것 같긴 한데
2021.07.15 23:32
그게 단순 분량으로 말하자면 적지 않아요. 어쨌거나 느와르물의 필수 요소인 (본의든 아니든) 주변에 피바람을 몰고 오는 히로인 역할이라서요.
다만 극중 역할로 말하자면... 2019년 영화치곤 당황스러울 정도로 수동적인 캐릭터입니다. ㅋㅋ 설정상으론 똑똑하고 정의롭고 용기있게 사회를 위해 싸우는... 이란 식으로 만들어서 커버를 해주는데, 극중 행적을 놓고 보면 뭐 그냥... 그래요. 보면서 저 배우분 매력적인데 역할은 좀 별로네. 라고 생각했습니다. 뭐 직접 보시면 다르게 느끼실 수도 있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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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을 때 제목을 보고 ...살인이 없는...그런 뜻인가 했다가 가만 보니 <엄마 없는 하늘아래>잖습니까.
번역자는 뚜렛 증후군 말투를 번역하느라 진땀을 흘렸다는데 저거 자막처리를 어찌 했는지 궁금하네요.
한동안 재미있게 읽었던 누아르/스릴러 소설들 중에 누구누구에 판권이 팔리고 곧 영화화! 이렇게 광고문구가 적혀 있어
기대감을 한껏 부풀었는데 화제성도 흥행도 그 결과물이 시원찮은게 더 많더군요
이 영화 말고도 <곤 베이비 곤>이라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