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13 00:29
'보슈'를 3시즌까지 봤습니다. 지금까진 만족하며 보고 있습니다. 며칠 전 글에 노리님이 말씀하셨듯 적당한 선에서 멈출 줄 아는 미덕이 있네요. 장면들을 선정적으로 만들지 않은 느낌이 있습니다. 분량도, 수사하는 과정도 적절 분량, 인물들 개인사도 적절한 분량으로 잘 배분된 것 같고 범죄자들 입장에서 개인사 설득하지 않는 것도 좋고.
오래 전에 재미있게 본 '와이어'라는 마약 수사 드라마는 범죄와 수사 과정의 세부가 매우 꼼꼼하게 전개되었던 기억이 있는데 그보다는 훨씬 소프트하면서 덜 피곤(?)하게 볼 수 있는 시리즈입니다. 보슈나 와이어같은 수준의 범죄 수사물 또 추천받고 싶습니다~
책에서는 보슈 캐릭터가 드라마보다 심각한 왕따에 궁상스러웠는데 여기서는 상사들 빽도 좋고 주변 사람들 사랑을 흠뻑 받네요. 독고다이 느낌이 좀 줄고 블링블링한 느낌이 좀 늘었습니다.
보슈를 보며 샛길로 빠져서 생각한 것인데 역시 인간의 성정은 환경의 영향 보다는 타고나는 부분이 더 크다란 점입니다. 어릴 때 겪은 엄마의 죽음은 커다란 정신적 충격이 되었고 보호시설에서 청소년기를 고통스럽게 보냈는데 저렇게 성숙한, 보수적인, 재즈를 좋아하는(이건 상관없나...) 인간으로 자랐으니. 1시즌에서 자신과 같은 성장환경이었던 살인마 얘기 중에 잠깐 언급이 나옵니다. 마음 속에 두 마리의 늑대가 있는데(개였나? 그새 헷갈립니다) 보슈 자기는 좋은 쪽을 택했다고. 선택이라고 하면 매우 의식적인 행위가 되는데 그게 뭐 단 한 번의 선택으로, 나는 좋은 늑대 골랐어, 한다고 그대로 좋은 인간이 되는 건 아니잖아요. 수십, 수백, 수천, 수만의 선택으로 지금 모습에 이르는데 그 선택의 순간을 마주하는 '자신'은 얼마만큼의 크기이며 질감인지, 이런 것이 타고나는 부분이 크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또 샛길로 빠져서 생각한 것은 보슈의 나이가 50대 중반쯤인데 여전히 소년기의 기억들에 사로잡혀 있다는 점입니다. 평생을 그 시기에 맺힌 것을 풀기 위해 살아가는 겁니다. 보슈의 경우 그때 큰 사건이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그걸 떠나서 일반적으로 그렇지 않을까 짐작합니다. 나이가 들며 가장 자주 들여다 보는 시기가 기억이 형성되는 때부터 십대에 걸쳐서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일종의 아킬레스건 같은 시기라고 봅니다. 아닌가요? 아니면 말고요. 제 경우는 그런 것 같습니다. 지금을 볼 때 그때의 꿈에 비춰보고 그때의 선량함에 비춰보고 그때의 고난에 비춰보고 기타 등등 기타 등등.
드라마 얘기 원래 이렇게 샛길로 빠져서 본인 얘기 하는 것....이지요?
2021.07.13 02:56
2021.07.13 09:35
보슈 보시고 올리신 게시물 덕분에 잘 보고 있습니다.
소설은 오래 전에 봐서 디테일까지 비교할 기억이 안 나는데 재미있게 읽었어요. 그러니 열 권 가까이 이어서 본 것 같습니다.
과거로 돌아가도 내가 내니 별로 달라질 건 없을 거예요. 근데 정말 성향인지 저는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과거나 막연한 미래를 더듬는 경향이 있습니다. 잘 돌아보지 않는 성격이시라니 부럽습니다아^^
2021.07.13 10:53
벌써 시즌 3이라니 부지런히 달리셨군요!! 전 시즌 2까지 본지 2년 된 것 같은데 나머진 언제... ㅋㅋㅋㅋ
말씀대로 안 그런 척하면서 은근 소프트하죠. 인물들도 다 개성 있고 강렬한데 또 의외로 (시즌 메인 빌런 제외하면) 스트레스 안 주는 쪽으로 조율이 잘 되어 있구요.
하드보일드 수사물인 척하면서 보기 편하고 캐릭터들이 정이 간다는 거. 그게 제일 큰 장점이었네요 제겐.
...물론 두 시즌 밖에 안 봤지만!!! ㅋㅋㅋㅋ
2021.07.13 11:21
나름 부지런 좀 떨었습니다.흐흐.
하지만 제 경우엔 보다가도 이건 아니다 싶으면 중단하곤 하는데 요거는 전개가 거칠지 않고 싫증도 안 났습니다.
말씀대로 캐릭터들이 개성과 상식의 적절한 조율로 안심할 수 있달까요.
다만 보슈네 집은 불만. 파트너가 자연재해위험을 즐기는 사람이 좋아할 집, 이런 비슷한 농담을 하는데 정말 산사태 걱정에 그 햇빛 노출하며...저는 이해 불가였어요.ㅋ
2021.07.13 11:43
저도 그 집은 참 이해가 안 가는데, 미국 영화 보면 그 동네 집들 중에 그렇게 지어 놓은 게 많더라구요. ㅋㅋ 그런 집을 처음 본 게 리쎌웨폰 1이었나 2였나였는데. 주인공이 그 받침대(?)를 이용해서 집을 무너뜨려 버리는 전개여서 이후로 그런 집을 보면 늘 무너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2021.07.13 12:01
ㅎㅎ 더구나 엘에이도 지진대역이라고 알고 있는데 말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도시를 내려다 보는 경관에 큰 감흥이 없어요. 아파트도 고층이 좋다 하고 도쿄 여행 가는 사람들이 스카이트리가 보이는 호텔이나 야경을 엄청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도 이해가 좀... 뭐 보이면 좋겠지만 안 보여도 그만이라. 저는 나무나 숲이 보이면 최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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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족스러우시다니 다행입니다. 원작 소설도 읽어보신 모양이네요. 소설은 철저히 보슈에게만 집중하고 주변 인물 묘사가 거의 없다시피 하다고 해서 볼지말지 망설이는 중입니다. 소설은 소설대로 재밌을 거란 생각은 들지만요. 보슈 상사인 어빙의 경우 소설과는 캐릭터과 꽤 다르다고 하던데 캐릭터나 보슈와의 관계 설정이 잘 각색된 것 같습니다. 완전 나쁜 놈도 아니고, 되게 착한 것도 아니고, 기회주의자인 듯도 하지만 본인 나름의 선과 원칙은 있고, 근데 그게 또 권력 앞에서는 유동적인 능력있는 상급자. 캐릭터가 잘 빚어져서 시즌 내내 협력과 적대를 오가는 보슈와의 미묘한 긴장관계도 볼거리죠.
타고나는 거야 뭐, 이를테면 내성향이 외향성으로 바뀌거나 그 반대의 경우는 잘 못본 것 같습니다. 그나마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어느 정도 조정 또는 약간 바뀌는 정도 아닌가 싶네요.
과거를 잘 돌아보지 않는 성격이고, 타임머신 타고 과거로 간다면? 이런 질문에도 전혀 흥미가 없습니다. 그냥 사람마다 다른 성향인 듯 하네요 ㅎㅎ 다만, '요즘 젊은이들은 왜 저래?'류의 생각을 하는 스스로를 보면서 경험이 충분치 않았던 때 요즘 젊은이(?)들보다도 미숙하고 서툴고 바보같은 선택을 했던 나 자신의 모습을 종종 떠올려야겠다고 생각합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