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 당첨금, 친구

2021.06.04 09:06

여은성 조회 수:763


 1.꿀꿀한 목요일이네요. 나이가 들었으니까 사실 어느 날이든 꿀꿀하지만요. 나이가 들면 내가 내 돈 쓰고다니는 게 가장 처량한 일이예요.


 남자는 나이들면 자기자신이 좋은 걸 누리는 것에 아무 감흥이 없거든요. '나'는 쫄쫄 굶어도 '내 사람들'이 좋은 거 먹고 좋은 거 입고 좋은 곳에 사는 걸 보는 게 행복인 거예요. 



 2.그러니까 나이가 든다는 건...그런 거예요. '로또에 당첨되는 걸 원하나? 아니면 로또에 당첨되었을 때 반으로 나눌 수 있는 친구를 원하나?'라고 누가 물어보면...어렸을 때는 당연히 전자였겠죠. 


 하지만 나이가 들면 로또 당첨보다는, 로또에 만약 당첨된다면 서슴없이 돈을 나눠줄 수 있는 사람이 더 귀중한 거예요. 혼자서 로또에 당첨되어 봤자 인생에 뭐가 남겠어요? 혼자서 로또에 당첨되는 것보다는 콩 한쪽을 나눠먹을 사람이 옆에 있는 게 좋은 거죠.


 

 3.뭐 그래요. 로또에 당첨은 안 됐어도 '언젠가 로또에 당첨되면 이 사람과 반으로 나눠야지.'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인생이 좋은 거죠. 그런 인생이라면 로또에 당첨되는 날이 오지 않아도 행복하게 살 수 있거든요. 하지만 로또에 당첨은 됐는데 당첨금을 나눌 사람이 없이 사는 건...당첨금을 나눠가지고 싶은 사람을 만날 때까지는 행복하게 살 수 없는거죠. 


 문제는, 다른 거 없이 로또에 당첨만 되면 그건 사람을 매우 괴팍하게 만들어버린다는 거죠. 그런 사람이 당첨금을 나눠가지고 싶은 사람을 과연 만날 수 있을까? 글쎄요.



 4.휴.



 5.나이먹으면 또 그래요. '행복한 일'같은 게 딱히 없거든요. 나이먹으면 '내가 행복한 일'보다는 '내가 없으면 안되는 일'을 찾게 돼요. '내가 없으면 좆되는 사람' '내가 없으면 좆되는 일'같은 것들 말이죠. 


 그래서 남자는 '네가 필요하다.'라는 말에 약한 거죠. '이 일엔 네가 있어야만 해.' '네가 없으면 안돼.'같은 말들 말이죠. 남자는 나이가 들면 놀고 먹고 마시고 섹스하고 다니는 것보다는, 무언가의 장치...없어서는 안 되는 장치가 되어 살아가는 삶을 추구하게 되는 거죠.



 6.그리고 사실, 여기서 더 말초적인 쾌락을 추구하려면 남은 건 불법밖에 없거든요. 나이먹으면 그럭저럭 돈도 생기고...불법 이하의 일들이나 아슬아슬하게 불법인 일들까지는 충분히 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나이들면 행복한 일을 굳이 찾게 되지 않아요. 여기서 (말초적인)행복감을 느끼려면 불법이 아닌 영역에서 확실하게 불법의 영역으로 넘어가야 하니까요. 그리고 문제는, 설령 불법적인 쾌락을 얻게 되더라도 거기서 또다시 더한 불법의 영역으로 선을 넘어가야만 하는 시기가 올거고요.



 7.어쨌든 그래요. 나이가 들면 자신의 초라함에 좌절하거나 분노하게 되죠. 낮에는 편하게 쉬고...사우나에 있다가 밤에는 여자를 만나러 가는 삶은 어렸을 때나 가능하거든요. 나이가 들면 '내가 필요한 곳 어디 없나?' '내가 없으면 안되는 사람 어디 없나?'하면서 두리번거리게 되니까요.


 하지만 그런 사람이 되어 있으려면 어렸을 때 능력이나 인덕을 많이 쌓아놨어야 하는 거거든요. 그래서 남자는 나이가 들면 후회하곤 하죠. 어렸을 때 노력하지 못한 것...사람들을 챙기지 못한 일들에 대해 말이죠.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5386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3943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2531
116195 노스텔지어와 데자뷔 [3] 어디로갈까 2021.06.29 529
116194 DOOM (1993) (이드 소프트웨어) catgotmy 2021.06.29 282
116193 미 연준이 비트코인 통화화폐가치 생길 수 있다고 언급하긴 했네요 [2] 고요 2021.06.29 540
116192 요즘듣는 아무음악 7곡 [2] sogno 2021.06.28 344
116191 요즘 본 영화들에 대한 짧은 잡담.... [8] 조성용 2021.06.28 795
116190 유자왕 [1] 가끔영화 2021.06.28 8739
116189 '황혼의 사무라이'와 '작은 집' 짧은 글. [8] thoma 2021.06.28 477
116188 [독서기록] 으제니 그랑데(3) [2] 스누피커피 2021.06.28 238
116187 바낭 - 아이맥을 주문했는데 북한으로 간 썰을 보고 [4] 예상수 2021.06.28 575
116186 [정치바낭] 윤석열 파일 [3] 가라 2021.06.28 868
116185 유로ㅡ 날강두 떨어졌군요. [11] daviddain 2021.06.28 508
116184 [영화바낭] '이블데드' 리부트를 이제사 보았습니다 [8] 로이배티 2021.06.28 507
116183 횡설수설 [19] 어디로갈까 2021.06.28 828
116182 触れた、だけだった (2020) [2] catgotmy 2021.06.28 341
116181 월요일 잡담... [1] 여은성 2021.06.28 296
116180 [독서기록] 으제니 그랑데(2) 스누피커피 2021.06.27 468
116179 정말 재밌게 읽은 소설의 속편이 나왔는데 기쁘지 않아요 [3] forritz 2021.06.27 689
116178 극장에 가는 게 점점 힘들어집니다ㅠ [21] Sonny 2021.06.27 904
116177 미 UFO 보고서 공개 [3] skelington 2021.06.27 578
116176 [넷플릭스바낭] 훈훈하고 따스한 사무라이 영화, '황혼의 사무라이'를 봤습니다 [15] 로이배티 2021.06.27 984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