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3년작이네요. 1시간 31분짜리이고 장르는 웃음기 하나 없는 궁서체 호러. 스포일러 없게 적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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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나마 보기 덜 부담스럽고, 스포일러 없는 포스터 이미지로 골랐습니다)



 - 시작부터 문제의 '그 숲'을 헤매는 여자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리고 갑자기 나타난 두 남자에게 두들겨 맞고 기절해요. 깨어난 곳은 헛간 같은 곳인데, 무슨 마녀 같은 할매랑 본인 아버지, 그리고 괴이한 몰골의 사람 비슷한 것(?)들에게 둘러 싸여 있네요. 할매랑 아빠는 니가 니 엄마를 죽였다느니, 악마가 들렸으니 해결책은 태워 죽이는 것 밖에 없다느니... 그러고요. 계속해서 왜 이러냐,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며 눈물짓던 젊은 처자는 아버지가 자기 몸에 기름을 뿌리고 성냥에 불을 붙이는 순간 정체를 드러내고 아빠를 조롱하며 고함을 지르다 결국 불에 타고, 샷건으로 머리통이 날아갑니다. 그리고 갑자기 80년대스런 음악과 함께 80년대스런 폰트로 뜨는 타이틀롤.


 장면이 바뀌면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그 숲속 그 오두막'에 모입니다. 오두막은 도무지 놀러올만한 상태가 아닌데... 알고 보니 놀러온 게 아닙니다. 친구들 중 마약 중독에 빠져 버린 '미아'라는 녀석을 셀프 구제해보자고 모인 거에요. 그래서 모두 모이자마자 미아의 남은 마약 처단식을 갖고, 미아의 금단 증상이 어느 정도 완화될 때까지 여기에 가두어둘 생각인가봐요. 마약 중독 기록을 남기지 않기 위한 배려인지 뭔진 모르겠지만 참 단순 무식한 놈들...;

 하지만 바로 첫날 밤에 이 녀석들은 지하실에 뭔가 괴상하고 위험한 것들을 발견하고, 당연히 용감무쌍하게 그것들을 다 만져보고 확인하고 그러다가 괴상한 책을 하나 발견하겠죠.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그놈들 중 하나가 하지 말라는 짓을 굳이 저지르는 것이 인지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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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 주인들이 일부러 뜯어 없애버린 걸 굳이 찾아내서 굳이 소리내어 읽어주는 호기심쟁이. 너님이 악마보다 더 나빠요.)



 - 조기 교육이란 참 중요한 겁니다?

 생각해보면 지금의 제 영화 취향이 형성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영화들은 다 사춘기 청소년 시절에 접한 영화들이었어요.

 주말의 명화로 접한 리들리 스콧의 '블레이드 러너', 토요 명화로 본 테리 길리엄의 '브라질'. 그리고 마지막이 친구네서 비디오로 본 '이블 데드'였거든요. 이 세 편의 영화에 맨날 어두침침한 분위기의 SF/호러 내지는 폭주하며 막 나가는 영화들만 찾아다니는 4x세의 제 모습이 이미 다 담겨 있죠. ㅋㅋㅋ

 그만큼 좋아했던 영화들이라 수십번씩은 봤고 블레이드 러너 속편도 극장 개봉하자마자 달려가서 봤구요. 이블 데드 역시 1, 2, 3을 다 반복 감상했는데... 이 리부트작은 개봉 후 8년이나 흘러서야 볼 결심을 했네요. 왜냐면 일단 감독이 샘 레이미가 아니고, 주인공도 브루스 캠벨이 아니라는 것도 큰 이유였지만... 바람결에 들려온 리부트의 방향성이 문제였습니다. 개그 요소는 싹 다 걷어내고 고어를 엄청, 현지에서도 심하단 반응이 나올 정도로 격하고도 리얼하게 집어 넣었다는 얘길 들으니 볼 맘이 안 들더라구요. 그래서 한동안 망설이다 그냥 존재 자체를 잊어 버렸죠.

 그러고 지내다 며칠 전에 샘 레이미와 브루스 캠벨이 손을 잡고 이번엔 아예 그 숲도, 오두막도, 애쉬도 안 나오는 새로운 이블 데드 시리즈 제작을 결정했다는 뉴스를 읽으면서 이 영화의 존재가 떠올랐어요. 그래서 그냥 한 번 보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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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급 호러 팬들이라면 푸근함을 느낄만한 짤이겠죠. 마음의 고향이든, 그냥 엄청 익숙하든...)



 - 리메이크가 아니고 리부트이기 때문에 설정 변화가 은근히 많습니다. 모여 있는 멤버를 봐도 대충 인원수랑 성비는 맞는 것 같은데 캐릭터 설정들이 다 달라져 있죠. 원작의 캐릭터들에겐 설정이란 게 거의 없다시피 했으니 '달라졌다'는 말은 좀 안 맞지만요. ㅋㅋㅋ

 그리고 결정적인 차이는 '드라마'의 존재입니다. 네, 이 영화엔 나름 드라마가 있습니다. 일단 얘들이 모이게 된 동기부터가 다르고, 멤버 구성원 중엔 어려서 집을 나가 미아 혼자 개고생하게 만든 죄책감을 갖고 있는 미아 오빠가 있습니다. 이 둘의 관계를 연료 삼아 진지한 드라마가 전개되는데... 뭐 그렇게 깊이 있거나 울림이 있을 정도로 다뤄지진 않지만 그래도 할 건 다 하고 마무리까지 잘 맺어줘요. 괜찮은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원작과 다르게 이 리부트는 시종일관 진지한 분위기로 전개되기 때문에 이런 드라마라도 없었음 걍 무의미한 고어 파티 같은 느낌이 들었을 것 같거든요.


 그리고 이런 드라마 측면에서 각본에 신경을 많이 썼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단 '미아의 마약 중독 치료 모임'라는 설정이 숲속 외딴 오두막에 젊은이들이 모여든다... 라는 이야기에 그럴듯하게 당위성을 부여해주기도 하구요. 또 미아의 상태가 그렇기 때문에 1번 타자로 미아가 악령 들렸을 때 좀 개연성 있게 긴장감 있는 전개가 가능했기도 해요. 미아가 뭘 보든 뭘 당했든 다들 금단 증상으로 인한 환각이라고 생각하고 태평스럽게 지내면서 일을 키우는 식.

 또 캐릭터들 사이에 대화량이 살짝 늘어나서 영화의 몰입감도 올라갑니다. 역시 뭐 딱히 깊이 있는 대화 같은 건 없지만 적어도 얘들도 다 살아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줄 정도? 그래서 하나하나 죽어 나갈 때마다 조금은 안타깝고 안됐다는 느낌이 들어요. 역시 이 리부트의 톤에는 잘 어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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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마의 책에 낙서 하려면 저 정도 손글씨는 가능해야 합니다.)



 - 그럼 달라진 점은 그렇다 치고 원작 재현도는 어떠냐... 하면. 그것도 상당히 훌륭합니다.

 그냥 '원작을 진지하게 만들려면 어떻게하면 될까?'라는 목표로 만든 영화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원작의 유명한 장면들은 그냥 다 나와요. 숲속을 빠르게 부유하며 사람을 쫓는 카메라. 도망가는 사람을 붙들고 결박하는 나뭇가지. 지하에 갇힌 채로 출입문 틈새로 고개를 내밀며 사악한 말을 내뱉는 악령. 한밤의 삽질에다가 잘려나가는 누군가의 팔과 전기톱 등장까지. 바뀌어버린 영화 톤에 실망한 팬들도 이런 부분에선 아마 만족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나름 재치 있는 비틀기들이 들어갑니다. 그러니까 장면 자체는 똑같은데 상황이 다르다든가. 특정 상황을 당하는 인물이 뒤바뀐다든가... 하는 식으로 조금씩 조금씩 비틀어서 원작 팬들이 열심히 기억을 되살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해 주고요. 마지막엔 나름 커다란 비틀기를 시전해서 신선한 느낌도 주고 그래요. 영화에 대한 평가가 어찌 되든간에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 '이블 데드'의 열성 팬이었거나, 최소한 정말 성실하게 분석해서 뜯어 고쳤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려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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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혐짤 죄송... 그런데 이 영화는 이런 짤 말곤 도무지 구할 수가 없어요. 그나마 수위 약한 거니까 양해를. ㅋㅋㅋ)



 - 근데 제일 중요한 건 이런 게 아니라 '그래서 영화가 어떻냐'는 거겠죠.

 심플하게 말해서 잘 만들었습니다. 긴장감 넘치고 무섭습니다. 

 그냥 원작 뜯어 고쳐서 재밌게 장난 쳐보자... 이런 게 아니라 그 원작을 갖고 한 번 21세기 관객들이 보기에도 제대로 무섭게 만들어 보겠다! 는 의지가 팍팍 느껴지는 영화였고 그 결과물이 상당히 성공적입니다. '상대적으로' 늘어난 제작비 덕에 리얼하게 변한 원작의 유명 장면들도 충분히 무섭구요, 리부트에서 새롭게 만들어져 추가된 호러씬들도 아주 적절하게 징그럽고 무섭습니다. 단순히 고어가 리얼해져서 무서운 게 아니라, 그냥 무서워서 무섭습니다. 고어 없이 겁주는, 원작에 없던 장면들도 대체로 다 괜찮거든요. 잘 만들었어요. 


 다만 문제는... 역시 고어입니다. ㅋㅋㅋ 벌써 여러번 하는 얘기지만 전 고어를 싫어하거든요. 그래도 이블 데드 같은 영화를 좋아할 수 있었던 건 이 영화가 워낙 돈 없이 만든 영화라 특수 효과가 매우 허접해서 보는데 부담이 없었던 건데. 이 영화는 그게 아우... 정말 징그럽습니다. 수시로 몸이 배배 꼬이고 손이 입으로 올라가고 그랬어요. ㅋㅋㅋㅋ 그나마 감독 완성본에서 5분을 잘라내고 개봉한 게 이 정도라니 무삭제판은 생각도 하기 싫으네요. 암튼 고어 장면에 내성이 없으신 분들은 길게 생각 마시고 그냥 스킵하세요. 영화란 게 본인 즐겁자고 보는 건데 일부러 시간 내서 고통 받을 필요가 뭐가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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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봐요. 그나마 멀쩡한 짤이 이렇다니깐요.)



 - 이쯤에서 대충 마무리하자면 이렇습니다.

 잘 만든 웰메이드 호러입니다. 원작의 핵심 요소들을 잘 살리면서도 원작과는 다른 방향으로 잘 완성해서 자신만의 존재 가치가 충분하구요. 고어씬에 나름 강한 내성을 장착하신 호러 팬이라면 꼭 한 번 볼만한 영화라고 할 수 있겠네요.

 다만 영화가 지나치게 진지하고 멀끔하다 보니 원작의 매력 중 상당 부분은 날아가버렸다는 거... 

 그러니까 1편의 재현이라기 보단 얼터너티브 버전 같은 걸로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애초에 '리부트'란 게 그런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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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거니까!!)




 + 사실 이 영화 관련해서 대표격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포스터 이미지는 매우 스포일러입니다. 근데 애초에 미국판 포스터도 그걸 메인으로 쓰던 걸 보면 그냥 제작진들이 그런 데 신경 안 쓰는 것 같기도 하고... 아. 그리고 크레딧이 다 올라간 후에 아주 짧은 쿠키가 있습니다. 그냥 팬서비스에요.



 ++ 막판에 몇몇 녀석들 시체 처리를 건너 뛰어버리고 넘어가는데, 보니깐 잘렸더라구요. 오리지널로 치면 부활하지 말라고 친구 묶어 놓고 사지절단하는 장면이 잘렸고, 무등급 버전에만 실려 있다고 합니다.



 +++ 원래 레이미와 캠벨은 이 영화 이후에 애쉬가 나오는 이블데드 영화를 한 편 더 만들고, 다음에는 애쉬랑 이 영화 주인공이 만나는 내용의 영화로 이어나가고 싶었다고 하더라구요. 근데 뭐가 문제였는지 이후의 영화들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흥행도 꽤 잘됐는데 말이죠. 이제 내년 개봉 목표로 숲, 오두막, 애쉬 하나도 안 나오는 고층 빌딩 버전 이블데드를 만들겠다는 걸 보니 정든 숲과 오두막, 애쉬와는 영원히 작별해야할 것 같네요.



 ++++ imdb에서 출연진을 검색해보는데 눈에 띄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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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an Davis라는 배우분. imdb 프로필 이미지가 저겁니다. ㅋㅋㅋㅋㅋㅋ

 이게 뭐꼬!!! 하고 구글 검색을 해보니 그냥 멀쩡하고 성격 좋아보이는 할머니시네요. imdb 왜 이랬니...



 +++++ 암튼 뭔가 기대보다 멀쩡하게 잘 만든 영화라는 느낌이 들어 감독님 연출작을 찾아보니 예전에 아주 재밌게 봤던 '맨 인 더 다크'가 이 분 영화였고 거기 주인공이 여기에도 나오네요. 이제사 알았습니다. ㅋㅋㅋ 또 그 '맨 인 더 다크' 속편이 바로 8월에 개봉이라는데... 맹인 할배를 제외하면 감독 포함 모든 캐스트가 다 바뀌었군요. 좀 아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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