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년 영화지만 한국엔 올해 개봉했었죠. 1시간 56분이고 장르는... 그냥 시대극이라고 해두겠습니다. 스포일러 없게 적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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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이 내용과 안 맞습니다만 사실은 맞습니다?)



 - 1940년 일본입니다. 살랑살랑 바람이 불고 매우 구로사와 기요시스럽게 불길한 느낌으로 나무가 흔들리는 가운데 어떤 영국인이 일본 군인들에게 체포되는 장면이 나오네요. 그리고 군인들은 어떤 젊은 사업가를 찾아가요. 스파이 혐의로 그 놈 잡아 넣었는데 너랑 친하지 않니. 앞으로 행실 조심하렴. 

 장면이 바뀌면 갑자기 고색창연한 복면을 한 아오이 유우가 살금살금 무슨 금고를 열려다가 어떤 남자에게 붙잡히는데... 영화 촬영 중입니다. 상업 영화는 아니고 취미로 집에서 찍고 있어요. 무려 그 시절에 가정용 카메라라니!! 갑부!!! 인 것이고 아까 그 사업가의 취미였네요. 둘은 부부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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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았지롱! 진짜 스파이물인 줄 알았지롱!!)



 연도가 연도이다 보니 일본은 이미 신바람나게 식민지 놀이를 즐긴지 한참 됐고, 슬슬 미국이나 영국 같은 나라들과 대립각이 본격화 되는 중인가봐요. (제가 역사치라...;) 그래서 일본 국내에도 긴장감이 올라가고 있는데 그 와중에 우리의 주인공 부부는 걍 럭셔리한 삶을 즐기며 유유자적하는 거죠. 정부에서 뭐라고 하든 나는 나의 스타일을 지키겠다! 나는야 코스모폴리탄!!! 이라는 남편의 자신감과 자부심이 눈에 띄구요. 그러다 이 양반이 본격적으로 전쟁 터지기 전에 대륙 구경 좀 하겠다며 중국을 다녀오는데... 다녀온 후로 남편의 행동이 영 이상하고 또 수상한 사건도 벌어지고 그럽니다. 그래서 마음이 불안해진 아오이 유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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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동 주연 아님. 제가 원탑입니다!!!)



 - 제목이 '스파이의 아내'라고 해서 무슨 긴장감 넘치는 국제 첩보물 같은 걸 기대하시면 큰일 납니다.

 네이버에서는 이 영화를 서스펜스라고 소개하고 구글에서는 로맨스, 드라마라고 소개하는데 구글 쪽이 정확해요. 소재가 소재이다 보니 서스펜스가 없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구글 쪽이 맞습니다.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이 영화의 주인공은 아오이 유우, 아내 쪽이에요. 그리고 이 캐릭터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남편 바보'. 세상에 둘도 없이 사랑하는, 자기 인생과 목숨까지 바칠 수 있는 남편이 갑자기 의심스런 짓을 하고 다니는 걸 알게 된 아오이 유우가 느끼는 두려움과 불안, 근심과 걱정이 영화 런닝타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구요. 대략 상황이 밝혀진 후... 에도 역시 중심은 아오이 유우의 남편에 대한 감정입니다. 미쳐 돌아가는 세상에 대한 분노와 절망 같은 게 꽤 큰 덩어리로 섞여들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 '스파이의 아내'님께선 남편 바보이고, 끝까지 그게 중심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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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럭지 좋은 빌런! 도 빌런이지만 약간 영화가 아오이 유우 패션쇼 느낌도 납니다. 예쁜 옷들 많이 입어요.)



 - 보다보면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한국 드라마들 생각이 많이 납니다. 배경이 일본 본토일 뿐 시대가 같고 소재가 그러하니 아무래도 비슷한 점이 많을 수밖에 없죠. 그런데... 결정적인 차이 하나가 있는데요.

 이 영화에도 일제 강점기 한국 드라마들처럼 정의로운 대의를 위해 헌신하는 인물들이 나옵니다만. 뭔가 그 인물들의 캐릭터가 확 달라요. 말하자면... 이 영화의 주인공들에게선 한국 드라마의 독립 운동가들이 보여주는 그 궁서체의 비장함과 처절함 같은 게 별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일단 처한 상황이 다르기도 하죠. 침략 당해서 민족(!)의 목숨이 사그라들어가는 처지에 내몰려 생존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과 '우리나라지만 잘못은 잘못이야!'라고 굳이 안 해도 되는(?) 일에 나서는 사람의 처지나 태도는 다를 수밖에 없잖아요. 게다가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갑부들이라 사는 것도 참으로 넉넉하기 그지 없구요. 


 근데 그보다 더 큰 차이는... 이 영화의 정의의 용사들은 되게 낭만적입니다. 영화에서 이 사람들을 낭만적으로 그린다는 게 아니라, 그냥 사람들 기질이 낭만적이에요. 남편의 '나는야 코스모폴리탄!!!' 드립도 그렇고, 그저 사랑하는 남편과 모든 걸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불타는 아오이 유우의 모습도 그렇고... 거기에다가 이 양반들의 유복한 환경과 고르져스한 취미도 한 몫을 하죠. ㅋㅋㅋ 한국식 일제 강점기 영화, 드라마에 익숙한 관객의 입장에서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뭔가 그냥 세상 물정 모르고 멘탈에 랑만만 만땅으로 채운 채 정의감에 불타는 꼬꼬마들 같은 느낌이 좀 들어요. 특히나 남편의 분노에 찬 연설 장면 같은 걸 보면 어라... 사람이 왜 이리 어설퍼... 이런 기분이 확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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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5년 일본 최후의 로맨티스트!!!)



 - 재밌는 건 영화의 태도입니다. 일단 이 낭만 전사들에게 특별히 몰입하진 않습니다만. 그렇다고해서 무시하거나 비꼬는 것도 아니고 살짝만 거리를 두고서 보여주는 식이에요. 그리고 영화는 이 사람들 묘사 못지 않게 당시 일본의 미쳐 돌아가는 사회적 분위기를 묘사하는 데도 공을 들이거든요.

 그러다보니 주인공들이 아무리 어설퍼도 결국 이들은 의로운 사람들이고 크나큰 용기를 내서 남들이 못할 결단을 내린 좋은 사람들인 겁니다. 그래서 특별히 고깝다든가 우습다든가 그런 생각은 들 수가 없구요. 결국 그냥 응원하게 되죠. 뭐 실제 역사를 뒤바꿀 생각은 전혀 없는 영화이니 결말은 시작부터 대략 뻔하지만요. 그래도 결국 응원을 하며 지켜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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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국에 정의를 찾겠다는데 격려하고 응원해주진 못할 망정!!!)


 제게 있어서 이 영화에서 가장 재밌었던 부분은 결국 이거였어요. 예상되는 뻔한 소재를 특별히 괴상한 설정이나 전개 없이도 묘한 어색함 내지는 위화감이 드는 분위기로 풀어내는 태도요. 사실 소재가 제 취향이 아니라서 구로사와 기요시 영화라고 해도 얼른 챙겨볼 맘까진 안 드는 편이었는데. 결과적으론 보긴 잘 했다는 기분. 스타일이나 정서 면에서 상당히 아주 특이하고 개성적인 사극입니다.



 - 클라이맥스에 도달할 때까지 영화와 필름이 극중에서 꽤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당연히도 극중에서 이 양반들이 만드는 영화는 그 시절 갬성 터지는 고전 흑백 영화인데... 재밌는 건 이 '스파이의 아내' 자체가 뭔가 좀 헐리웃 고전 영화 느낌을 풍긴다는 겁니다. 정확히 말하면 대체로는 그냥 드라마 느낌입니다만. (다들 아시겠지만 애초에 드라마로 만들어진 걸 편집하고 좀 고쳐서 극장판으로 만든 경우죠) 뭔가 중요한 포인트가 되는 장면마다 갑자기 헐리웃 고전 영화, 스튜디오 시스템 전성기 시절 영화 느낌이 나거든요. 심지어 이런 장면에서는 배우들도 살짝 오버액팅을 하는데... 그게 좀 절묘하더라구요. 진짜로 배우들이 '오버 액팅'을 한 건지 잘 모르겠어요. 원래 일본 영화들 보면 배우들이 한국 정서 기준으론 상당히 오버를 하지 않습니까? 그냥 딱 그 정도의 오버에요. 그런데 그게 헐리웃 고전 영화 분위기 속에 들어가니 흑백 시절 헐리웃 배우들 흉내처럼 보인단 말이죠. 도대체 감독의 의도는 뭔지... ㅋㅋㅋ


 암튼 그래서 이것도 '영화에 대한 영화'라고 우겨볼 수 있겠습니다. 동시에 고전 영화들에 대한 오마주라고 볼 수도 있겠구요. 이래저래 비평가들이 많이 좋아할만한 영화라는 생각도 들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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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작비가 없어서 창밖이 안 보이도록 환하게 날려 버렸더니 고전 영화삘이 뙇!)



 - 또 한 가지 기억에 남았던 건...

 등장 인물들, 그리고 그들간의 관계에 뭔가 여분의 디테일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그 주인공들을 시종일관 압박하는 군인 청년인데요. 보면 아오이 유우와 어릴 적부터 알던 사이이고, 연심을 품었던 것 같고, 그걸 아이오 유우도 알고 있고, 그러다가 길을 잘못(?)든 것 같고... 이런 식의 디테일들이 있는데 무엇 하나 확실하게 밝혀지진 않아요. 아오이 유우가 어떻게 지금 남편을 만나게 됐는지도, 원래 어떤 사람이었는지도 다 뭔가를 슬쩍슬쩍 흘리면서도 결국 '안알랴줌!'으로 넘어가구요. 남편의 배경과 성격, 속마음도 다 보여주는 척하면서도 뭔가 좀 더 있을 것 같은데... 라는 느낌을 계속 줍니다.


 이게 어설프게 써먹으면 그냥 '설명이 부족해!'라며 관객들 불편하게 만들기 딱 좋은 스킬인데, 정확한 정도로 잘 쓰여서 사실은 좀 밋밋한 주요 캐릭터들에게 흥미로운 느낌을 심어준 것 같아요. 보니깐 각본도 직접 쓴 모양이던데 기요시 아저씨 훌륭하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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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생이 드라마이다 보니 이런 '관계도' 짤도 있더라구요. ㅋㅋㅋ)



 - 아. 마지막으로, 호러 영화 연작 시절 구로사와 기요시를 다시 보고 싶으신 분들이라면 마지막 몇 분 정도에 아~~주 조금만 기대하세요. 

 정말 딱 5분 정도? 나오는 마무리 장면의 분위기가 대략 그 시절 그 영화들 느낌이 나서 반가웠습니다. 반전 사극인데 에반게리온 생각이 막 나는 게 참... ㅋㅋㅋㅋ 진짜로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 끝장면 생각이 조금 나더라구요. 뭐 그렇죠. LCL이 된 인간들이나 사고를 정지하고 정부 하는대로 끌려갔던 당시 일본인들이나 그렇게 큰 차이는 없... 아. 너무 막말인가요.



 - 정리하자면 대략 이렇습니다.

 평이한 사극 드라마, 것도 티비 영상물처럼 흘러가는 영화인데 계속해서 묘... 하게 엇나가는 특이한 물건입니다.

 그 '엇나가는' 포인트를 즐길 취향이라면 재밌게 보시겠지만 거기에 별 느낌이 없다면 상당히 지루할 수도 있어요.

 워낙에 자극적이고 긴박한 사건이 잘 안 벌어지고 설사 그런 일이 벌어져도 그렇게 긴박하게 묘사를 안 하거든요. ㅋㅋ

 하지만 어쨌거나 전체적인 완성도 측면에선 깔 곳이 보이지 않는 작품이니 vod로 저렴하게 보실 수 있으면 한 번 보시는 것도 좋겠고,

 특히 '옛날 영화' 스타일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어지간하면 보고 후회하진 않으실 것 같은데...

 역시 적극적으로 추천하진 않을래요. ㅋㅋㅋㅋ 넷플릭스에 있다면 모를까, 유료템을 함부로 남에게 추천하진 않습니다. 전 소심하니까요.




 + 와. 어느새 아오이 유우가 30대 후반이에요. 세월~ ㅋㅋㅋㅋㅋ 

 연기는 괜찮았습니다. 기본적으로 잘 하기도 했고, 또 캐릭터나 연출이 그걸 잘 살려서 버프를 넣어주는 느낌이었어요.



 ++ 역시 다들 저보다 잘 아시겠지만, 내용이 당시 일본을  싸늘하게 까는 내용이다 보니 제작비 구하기가 힘들어서 엎어질뻔한 기획을 NHK가 투자해서 살려준 경우라고 하죠. 그래서 티비로 먼저 개봉(?)하고 그걸 영화스럽게 슬쩍 고쳐서 극장 개봉도 했구요.

 사정이 그렇다 보니 어지간한 돈 들어갈만한 것들, 그리고 표현 수위가 높아야할 것들은 다 대사로 때우거나 상상에 맡기는 식의 연출이 쭉 이어지는데 그게 꽤 괜찮습니다. 

 그리고 티비 방영 당시 일본 사람들 반응이 궁금하더라구요. 여기에 돈을 대 준 NHK가 훌륭해 보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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