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어릴 때, 학생 시절에 아르바이트로 조사원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한 저녁 7시쯤에 어떤 아저씨네 집으로 조사한다고 찾아간 적이 있는데

문 두드리고, 나오시길래 인구주택총조사 한다고 했더니 하시는 말씀이

'김대중이가 이런 걸 조사해서 어디다 써먹으려고 그러는지 의심스럽다'면서

되게 화가 난듯 큰소리를 내면서 이야기를 하는데 뭐 한마디로 빨갱이

정부에서 하는 이런 조사 의심스러워서 못 하겠다는 거죠.

그 뒤로 그 집에 다시 조사하러 찾아가지는 않았습니다. 다른 조사원이

찾아갔었는데 마침 그 아저씨가 안 계실 때라서 잘 하고 오셨다고 들었어요.

인구주택총조사 같은 건 기본적으로 국가의 운영 시스템의 문제인 거지,

정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인구주택총조사에 대해 문제제기를 할 때

주민등록-지문날인 제도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것과 같은 차원의 문제제기라면 모르겠으되

그것을 시행하는 주체를 정권으로 보는 건 핀트가 조금 빗나간 거죠.

 

제가 기억하기로 인구주택총조사를 했을 때 각 조사 대상자들에 대해

조사원들이 기억할 수 있는 건 거의 없었습니다. 간혹 어떤 집으로 조사하러 찾아갔는데

연예인 아무개가 나오더라... 이런 경우를 빼면요. 그런 경우에도 조사원이 기억하는 건

연예인 아무개가 우리 동네에 산다는 것 외에는 없었고요. 쉽게 얘기해서 여러분이

길거리에서 사람들에게 서명을 받거나 앙케이트 조사를 한다고 했을 때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앙케이트에 응해서 뭐라고 답했는지, 그 사람의 이름이나 얼굴, 주소 같은 것들을 나중에

기억하실 수 있겠습니까? 인구주택총조사가 문항이 많고 조사 내용이 까다로워보이지만 그것도

결국은 양적 연구이며 심층적인 것은 아니고, 적어도 제가 조사할 때는 그것이 함부로 새어나가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다만 지금 생각하면 조사 자체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조사에 응하지 않겠다는

소신을 누군가 가진다면 그것은 어느 정도 인정할 수 있는 거겠죠. 예전에는 그런 사람들이

참 힘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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