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

 

이십몇년 넘게 살면서 이런 단어와 마주할 일은 없을거라고 생각했어요.

직장동료의 배신? 겪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친구의 배신만은 없을거라고 생각했어요.

소설에서나 보고 영화에서나 보겠지… 쉽게도, 순진하게도 생각했어요.

 

그런데 제게 벌어졌어요.

당연한 얘기지만 친구들끼리 얘기하다 정말 오해가 생겨서 뭐 서로 잠깐 토라지는것과는.. 전혀 다른 일이었어요.

 

뼈 아픈 배신, 그런 문장을 볼 때마다 아 정말 너무나 고루하고 상투적인 수식어아냐? 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저는 이제 그 표현에 너무나 공감해요.

그 사람을 잃었다, 생각하는 순간 정말… 뼈가 아스라지는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너무 너무 아팠어요.

 

제 인생에서, 그것도 대학 내에서는 특히 몇 안되는 '내사람' 이라고 부를만한 사람이었어요.

마음이 잘 맞는 차원을 떠나 나를 나누어 가진듯한 느낌이었어요. 이성으로서의 느낌은 전혀 없는데, 이상하게 그저 너무나 가까운거죠.

언제 연락해도 아쉬울거 없고 미안할거 없고 당연한 사람이었어요. 정말 깊이 아꼈고 좋아했어요.

믿었어요. 누구보다도 믿었어요. 어쩔 땐 남자친구보다도, 심지어 친구보다도 더 믿었어요.

그 사람도 그랬어요. 저를 누구보다도 믿는다고, 평생 보고 싶다고 할만큼 그런 말

 

그런데 그 모든게 끝났어요. 날아간거에요. 그렇죠. 날아간거에요 정말...

마치 처음부터 그렇지 않았던것처럼. 처음부터 이 사람은 내 인생에 아무것도 아니었던것마냥…

이건 배신이야, 철저한 배신이야. 라는데 생각이 미치는데… 제가 할 수 있는게, 없었어요.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처음 근 일주일은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지?"라는 생각만 들었어요. 혹시 꿈이 아닐까. 사실 그런 일 따윈 없었던게 아닐까.

일주일이 흘러 이 주째 되는 날에는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 탓이라는 생각. 내가 부족해서야.. 라는 생각.

삼 주째 되니 분노만 남아요. 저주스러워요. 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 같은 절망감만 남아있어요.

길에서 언뜻 마주치면 순간 몸이 떨려요. 소름이 확 끼쳐올라서 저도 모르고 뒤돌아 도망가고 있어요. 목소리만 들어요 역겨워요.

태연하게 전화하고 웃는걸 보면 넌 어떻게 그렇게 웃고 있는거지… 악마같기만 해요.

 

이야기를 들어준 남자친구와 다른 친구들이 곧장 저를 보듬어주었지만 그 고마움과 그때의 안정감은 잠시였어요.

혼자 있으면 다시 고통스러운 기억들이 몰려왔어요. 미친듯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들이 연장되어갔고

이불펴고 누웠다가도 다시 일어나서 멍하니 벽을 노려보는 일만 늘어났어요. 편히 잠에 들 수가 없었어요 무서워서…

왜 이런 일이 생긴거지, 왜 이렇게 된걸까. 왜 내가 뭘 잘못해서 이렇게 된걸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새벽이 왔고 저는 학교에 갔어요.

 

생활이 전부 송두리째 망가졌어요. 밥도, 그 무엇도 제대로 먹히지 않고 학교 수업도..

저를 지켜보던 언니 한 분이 지나간 시간을 어떻게 복구하려고 그러냐고 그만 네 생활을 찾으라고 해서

그래 그깟 놈 때문에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서 어제 도서관에 갔는데 거기서도 얼마 못 있다가 나와 벤치에 앉아있었어요.

벤치에 앉았는데 옛날 그 사람과 이 벤치에 앉아 재밌게 이야기하던 일들이 생각났어요.

그 생각이 울컥 드는데, 시렸어요. 낮이었는데... 모든게 시렵고 차가웠어요.

 

그 사람은 저를 밀어버린거에요, 예고도 없이…

저는... 떨어질 수 밖에 없었어요…

 

순간 가슴이 터지는것처럼.. 눈물이 났어요. 

방 안에 홀로 남겨졌을때처럼, 잠들 수 없어서 새벽에그랬던것처럼, 울컥울컥 눈물이 났어요.

많이 울었지만 많이도 울어봤지만 그렇게 울어본건 처음이었어요.

눈물은 기다렸다는것처럼 미친듯이 흐르는데 너무 괴로워서 제대로 엉엉 우는것도 힘들어서 겨우겨우 나는 울음소리..

 

그렇고 울고 있는데… 너무나도 외롭고 고독했어요. 세상이 나를 버린 느낌.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싶은 기분.

그렇다고 누군가의 앞에서 엉엉 울고 싶다, 그런건 아니었는데 말이지요. 그럴 마음, 이젠 나지 않는데.

 

사실.. 사실요. 분노 하나였다면 이렇게 힘들지 않았을꺼에요. 욕하면 그만이니깐. 미친새끼라고 해주면 그만이니.

그런데 배신에 대한 분노 못지 않게 저를 압박하는건... 사람을 잃었다는 상실감과 고독감이었어요.

 

너무 특별했어요. 그 특별한 사람을 잃었는데... 멀쩡할 수 없는거잖아요.

내 잘못은 아니지만 잃고 나서야 알았어요. 그 사람이 얼마나 내게 큰 부분을 차지했고 내가 그 사람을 얼마나 신뢰했는지.

왜 그렇게 그 사람을 믿었을까.. 이젠 제 자신이 한심스러워요. 왜 그렇게 정을 줬을까.

 

예전에 예전에 아는 언니가 성숙은 그냥 얻어지는 아니라고 말했어요.

전 어른인척하고 싶어서 아 맞아요, 라고 긍정하는척 했지만 사실 성숙이 정확히 뭔지 몰랐어요. 지금도 잘 몰라요.

하지만 만약, 만약 제가 거치고 있는 이 과정이 성숙이라면..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정말 그건 너무나도 뼈아픈 변화라고 말하겠어요.

이런 일을 겪고 나니 더 이상 예전의 제가 될 수 없음을 느껴요. 예전처럼 웃을 수도, 울 수도 없고...

예전과 같은 시선으로 사람들을 바라 볼 수도 없어요.

더는 예전처럼 살아갈 수 없어요…

 

그런 생각이 드니 너무 힘들어요. 예전의 나를 송두리째 빼앗긴 같아요. 저는 저를 다 잃어버렸어요. 더 이상 예전의 제가 될 수 없어요.

이 변화를 어떻게 담담히 받아들여야 하는지.. 아니 담담히, 는 포기했어요.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는지... 변한 나를 문득문득 마주칠때마다 그 낯섦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그런데..그런데요. 그렇게 울고 있는데 너무나 우스운일이 생겼어요. 

인생이 뭐 이따윈지 모르겠어요 정말...ㅋ

 

어떤 사람이 지나가다 제 앞에 멈춰서 고개를 들고 쳐다보는데요.. 예전 남자친구가 제 앞에 서 있는거에요.

그렇게 넋이 나간 표정으로 줄줄 울고 있는데 그렇게 형편없이 있는데… 왜 니가 내 앞에 있는건지.. 왜 하필이면... 너인지. 

당장이라도 일어서야 할텐데, 움직일수 없었어요. 움직일 힘도 없었어요.

 

더 웃긴건... 왜 우냐고 무슨 일이냐고 묻는 그 사람의 말에 제가 답한 말이에요.

1분만 있다가면 안되냐고… 딱 1분만.

 

그랬더니 그 사람은 잠시 머뭇거리는가 싶더니.. 그냥 가더라구요. 미안하다, 라고 하면서…

그 말에 차마 잡을 수 없어 그렇게 있다가 순간 무슨 정신에 그랬는지 벌떡 일어나 그 사람을 쫓아가는데 그 사람은 이미 없어졌더라구요.

지금 생각하면 차라리 다행이었어요. 왜 쫓아갔는지는 지금도 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잡으면 무슨 일이나 벌어졌을까, 싶어요. 아무일도 안 일어났겠지요. 그냥 저는 울고 싶었을뿐이니깐 누군가의 앞에서.

그런데 왜 하필.. 그 일로 가장 비참해진 기분으로 그 어느때보다도 많이 울고 있을때  나타난건지...

 

아무튼 그렇게 앉아있다가 짐을 챙겨 다시 집에 와서.. 있는데..

친구가 전화를 해서 괜찮냐고 해줘서.. 괜찮다고 하고, 정말 조금은 괜찮아진 기분으로 통화를 했어요.

 

자려고 하는데 문자가 오더라구요. 전 남자친구였어요.

그렇게 두고와서 후회스러웠다고, 미안하다고. 많이 힘들어보이는데.. 괜한 참견이 될것 같아서.

니가 기댈 사람은 내가 아닌데… 그 사람보고 잘좀 하라고 그러라고.. 그렇게 말해주더라구요.

그 사람 사랑하냐고 해서 응이라고 했어요. 그러면 그렇게 외로운 표정으로 있지 말라고.... 하더라구요.

무슨 말을 해야 하나.. 뭐라고 답장해줘야 하다가 그냥 고마워. 잘자, 안녕. 이라고만 했어요.

아침에 일어나 생각해보니 답장을 아예 하지 말걸.. 이라는 생각도 드네요. 후회되요. 그 1분.. 뭐하러말했을까.. 얼마나 구질구질해보였을까요...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어요. 왜 하필 그 사람은 그 길을 지나가야 했던거죠…

이미 나는 벅찬 상태인데.. 짐이 하나 더 늘어버린 것 같아요. 그 사람의 문자는 지웠지만 잊혀지질 않네요. 외로워하지말라는 그 말...

그렇다고 그 사람과 다시 뭘 어쩌보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지만요..

다만 꼭 그 사람 지나갔어야 하는지 그 시간 그 길을...

 

인생이 원래 이런건가요? 이렇게 원래 우연이 꼬이고 꼬이고 꼬이는건지.. 물론 그 누구도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그런 우연따윈...

 

 

올 가을에는 안 겪어도 될 일을 너무나 많이 겪는것 같아요.

가을을 누구보다도 좋아하고 사랑했지만  이제는 잘 모르겠어요. 또 무슨 일이 닥쳐오려고 이러나.. 두려울 뿐이에요. 

이렇게 고독해져본적은 없었어요.. 이렇게 사람사이 때문에 힘들어본적은 없었는데..

이게 전부였으면 좋겠어요. 이제는 끝난거였으면 좋겠어요, 제발 끝난거였으면.

 

 

참..  비참하네요....

지금의 내가 떨어질 수 밖에 없다면, 그렇게 운명지어져있다면

그 끝에 바닥이 있었으면 할 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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