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깎이.

2010.09.28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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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에, 대략 올림픽과 엑스포의 중간쯤 되던 시기에 내가 촌에서 도시로 전학왔을 때의 일이다.

그 때 촌에서도 연필을 칼로 깎지 않았다 하면 도시 친구들이 되게 의아해했다.


"거기도 연필깎이가 있었냐?"


돌이켜봐도 별로 악의 섞인 질문은 아니었다. 그들의 눈빛은, 마치 어떤 일본사람이 아무런 생각없이 이 아무개라는 내 지인더러

"이(李) 상, 한국에도 이런 게 있어여?" 하며 캔커피 하나를 슥 내밀 때의 그것과 닮았으리라 여겨진다.

(그 일본 사람은 한국은 아직도 유교사회니까 양반집에서 머슴이 대문을 열어주는 줄 알고 있었다.)



- 어쨌든, 나는 촌놈치고 연필을 칼로 깎아 본 기억이 거의 없다.

이미 연필깎이라는 문명의 도구가 들어와 있었기 때문에.

그 때, 88 서울올림픽이 개최되던 그 때는, 엥간한 촌동네에도 전깃불이 하나 둘 들어와 있던 시절이었다.

서수남, 하청일 콤비가 선전하는 한일자동펌프가 논두렁마다 하나씩 달려있던 용두레를 쫓아내고

(하루종일 땡볕에서 수차 밟아댈 필요가 없으니 논에 물 대기 얼마나 편했을까!)

전교생 12학급, 면 내에서 가장 큰 초등학교에는 수세식 화장실이 완비되던, 뭐 그런 시절이 있었다.



유치원을 거쳐 국민학교에 입학하자 어머니께서 맨 먼저 사 주신 것은 연필깎이였다.

1월이 생일인 내게 그 선물은 학교 입학선물과 겸한 것이었다.

무려, 당시 TV광고까지 나오며 서울에서 최신식으로 유행한다던 '하이-샤파' 연필깎이였다.


사실 우리 동네에도 연필깎이 자체는 많았던 기억이 난다.

필통에 붙은 오십원짜리 휴대형부터, 구형 하이샤파까지.

하지만 내가 언젠가 선물받은 연필깎이는 촌동네 친구들에게 매우 특별하게 여겨졌던 것 같다.

그것은 양철이나 플라스틱제가 아닌 스테인레스제였다.

게다가 중후한 증기기관차 모양 디자인. (뭔지 기억 나는 분들도 많죠?)


무엇보다도 "88올림픽 공식상품"이란 딱지가 붙어 있었는데 이게 꽤 프리미엄으로 작용을 했던 것 같다.

언젠가 다른 글에 썼던 - "핼리 비디오"나 "황민구네 집에 골드스타 테레비 리모컨"의 그 기분을

나도 비로소 느꼈다.(.....) (울집은 네발달린 테레비에 비디오도 없었고 유선도 안 나왔다.)



부모님은 선생님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책이나 필기구 같은 것과 친해지기는,

다른 농군네 집안 친구들에 비하면 조금 더 쉬웠던 것 같다.

국민학교 1학년더러 소 먹일 꼴 베어다가 쇠죽 솥에 삶아라는 건 사실 좀 중노동이었으니까.

(아침에 그거 하고 나서 1교시가 끝나야 어정어정 책보따리 짊어지고 오는 놈들도 가끔 있었다. 이미 반쯤 도회화된 읍내에서

'슈퍼-카미트' 운동화가 장터에서 팔리던 시절에도, 그 친구들은 고무신을 끌고 다녔던 기억이 있다. 가끔 바스콘셀로스의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에 나오는 것마냥 유리에 발이 베어 읍내 구(具)의원에서 꿰매는 애들은 십중팔구 고무신이었다.)


어쨌거나 그러한 성장 환경의 제일선에서, 두 가지 선생님 아니 부모님의 엄명이 있었다.

첫째, 누나 쓰는 샤프 갖다쓰지 마라.

둘째, 연필 칼로 깎지 말고 꼭 연필깎이로 깎아라.


그때는 그런 명령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부모님이 좀 옛날 사람이라 은근히 엄하긴 하지만 이유 없이 강제하지는 않았었는데. 왜 그러시는 건지.

나중에 3학년이 되어 방학숙제로 한자공부가 나왔을 때, 획순을 매우 엄격하게 가르쳐 주실 때도

비슷한 의구심이 들었다. (획순이 틀리면 그 때마다 맞았다. 싸리나무 회초리는 따끔하고 말지, 당구 큐대는 쩝)


지금에 와서는 어머니께 굳이 여쭈어보지 않아도 내가 그 해답을 이미 알고 있다.

반드시 HB연필을 연필깎이로 깎아 쓰라는 건, 샤프펜슬을 어릴 때부터 쓰면

손목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필기 버릇을 망치기 때문일 것이다.

또, 그 때 당시에 막 열풍이 불기 시작한 '제도샤프' 유행에 내가 물들까봐 염려하셨던 것 같기도 하다.


1988년 처음 나오기 시작한 제도 2000은 당시 제일 잘 나가던 가수 '박남정'이 광고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인지 잘 팔렸고, 후속 모델인 3000을 지나서 이윽고 다음해에는 금빛 저중심 설계(...) 제도 5000까지

출시하기에 이르렀다. 촌동네 아이들마저 모두 부모님을 졸라 그걸 사 들고 다녔다.


그런 와중에도 샤프가 부의 척도가 되어버린 12학급짜리 촌 학교에서,

나는 다른 애들과 상관없이 유유자적하게 필통 안에 동아연필 일곱개를 잘 깎아서 들고다녔다.


도루코칼은 100원이면 살 수 있었고 딱지보다도 싼 물건이었다.

하지만 집에서는 칼로 연필을 못 깎게 했다. (이것도 어기면 맞았다.)

내게 그 해금이 떨어진 것은 4학년 때 4B 미술연필을 처음 손에 쥐면서였다.


왜 저학년에게는 칼로 연필을 못 깎게 했을까.

- 쓰다 보니 문득 생각나는데, 2학년 때에는 학급비를 털어서

교실마다 공용 연필깎이를 한 대씩 구비해놨던 것 같다. 

(우리 교실에 있던건 '2020 원더키디'의 로봇이 그려진 하이-샤파였다.)


그게 단순히 어린아이에게 커터칼이 위험하다는 이유는 아닌 것 같고,

지금 생각해보면 이것 또한 바른 필기습관을 기르게 하는 교육의 한 방편이지 싶다.

그렇다면 나중에 한자 획순으로 그렇게 선생님 아니 부모님이 까다롭게 굴었던 것도 대충 이해가 된다.

이를테면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는 것이다.

비록 타고난 악필을 어떻게 감추는 수준까진 못 되지만(그리고 컴퓨터 덕에 이젠 자필은 사인 외에는 필요없는 시대다),

바른 글씨, 나아가 바른 태도에서 사람이 바르게 큰다는 사상을 우리 윗 세대 선생들은 갖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이 학교 종이 땡 치는 순간 끝나는 게 아니라

살아숨쉬는 순간순간 자체가 교육이란 그런 생각을 어쩌면 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 그래도 폭력은 반대요, 좀 작작 때리시지. 지금도 당구장 가면 움찔움찔한대니까.



덧.
촌동네에 수동연필깎이는 많았지만, 전동연필깎이는 책에서나 봤던 물건이다.

이건 도시에 나왔을 때 처음 봤다. 도서실에 있는 학습백과의 사진으로만 봤던 전동 연필깎이를,

나는 내가 도시 아파트로 이사오고 나서 처음 사귄 친구네 집에서 봤다.

정말 신기했다. 그냥 집어넣기만 하니까 자동으로 드르륵 하고 깎여나온다. 우와.

하지만 그 신기함은 며칠 가지 않았다.

전동 연필깎이가 깎는 연필은 수동으로 깎을 때보다 좀 더 길쭉하게 깎았고,

연필심을 싸고 있는 나무는 수동 때보다 더 얇아서 심이 더 자주 부러졌던 것이다.

그 후로는 더 이상 전동 연필깎이를 부러워하지 않았다.


덧덧.

누나가 서울에서 사 왔던, 심이 연필만큼 굵은 철제 샤프(아마 제도용 필기구였던 듯)는 꽤 부러웠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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