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바낭] 사내정치의 유탄

2020.11.06 14:06

가라 조회 수:927


오랫만에 회사바낭입니다.


0.

기억하시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지만, 회사가 팔린지 1년이 넘었습니다. 

기존의 경영진은 대부분 날아갔고 많은 임원들이 내부 승진했습니다. 새 '회장'이 저희 업종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인원을 많이 갈아치우거나 외부에서 데리고 오는 건 일단 피했다고 합니다.


예전에 '방만한(...)' 경영을 하던 시절에는, CEO 아래에 크게 기술담당 부사장, 생산담당 부사장, 판매담당 부사장, 재무담당 부사장이 있었고 그외 잡다한 조직이 있었습니다.

망하고 나서는 CEO가 재무담당 부사장의 역활을 겸하고, 판매담당 부사장이 총괄 부사장으로 승진(?)을 했습니다. 기술, 생산 담당 부사장은 바이바이...


제조업인데, 엔지니어 출신 임원자리가 공장장, 연구소장, 품질이사 밖에 안남은거죠. 


젊은 엔지니어는 국내 경쟁사로 이직하고, 고참 엔지니어는 중국이나 동남아로 이직하고...  인력유출이 시작됩니다.

그 와중에 연구소장이랑 품질이사가 짤리다 시피 나갑니다. 하는 일이 없다고.. 그 뒤로 대행 체제가 됩니다.



1.

그러다가 회사가 인수되었죠.

다시 생산부사장, 판매부사장, 재무/지원 부사장 체제가 되었습니다. 대행 체제 였던 자리도 다 채워주긴 하더군요.

(기술 부사장은 만들고 싶어도 못했을거에요. 할 사람이 없어서..)


그런데, 정작 생산부사장을 영업 출신 상무가 승진합니다. 공장 현장과 기술을 모르는 분이 생산을 총괄하니 아래는 우왕좌왕할 수 밖에 없죠.

누구도 생산부사장한테 '그게 기술적으로는 이렇습니다.' 라고 말하지를 못해요. 내가 영업 출신이라고 무시하니? 라는 말 나올까봐.

생산부사장이 뜬구름 잡는 소리 하면 그 아래 공장장들과 연구소장, 기술팀장들이 우격다짐으로 끌고 가는거죠.

그러다 보니 전체적은 통일성이 부족하고 사업장별로 개인플레이를 하게 됩니다.



2.


들리는 소문으로는, (좀 과장되긴 했겠지만)


요즘 생산부사장이랑 판매부사장이 싸운답니다.

코로나 시국에 판매쪽이 나름 선방을 하면서 회장이 판매부사장을 칭찬하고 있는와중에, 판매부사장이 '우리가 품질이 안 좋아서 영업활동이 좀 힘드네요? ㅎㅎ' 라는 식으로 이야기 하고 다니는 바람에 생산부사장이 체면을 구겼다나...

사실 회사 망하고 제대로 된 설비투자도 못하는 와중에 엔지니어들 탈출하면서 공장의 수준이 떨어진건 사실입니다. 제조설비라는게 단순히 사람이 열심히 닦고 조이고 기름친다고 좋은 제품이 나오는건 아니니까요. 회장이 인수하고 공장에 와서 '이제 돈 없어서 사람이 직접 멘땅에 헤딩하던 시절은 지났다' 라고 했을 정도니...


생산부사장이 '영업에서 품질 얘기 다시 못 꺼내게 해라!' 라면서 직접 매주 팀장급까지 참석시켜서 회의를 합니다. 생산부사장이 이렇게까지 챙깁니다. 라는 걸 어필하려고요. 

그런데, 회사의 기술수준이라는게 부사장이 매주 모아놓고 구박만 한다고 올라가나요....


아무도 대놓고 말은 안하지만, 중론은 판매 vs 생산 부사장의 싸움은 생산부사장의 완패.  내년에 생산쪽 물갈이 될것 같다고 예상들을 합니다.

예전처럼 생산부사장 없어지고 판매부사장이 총괄부사장이 되던지...

생산부사장을 내부승진 또는 외부수혈을 해오던지...

(그런데, 업계 최저연봉으로 유명한 저희 회사에 누가 오려고 할지 모르겠네요. 정작 회장은 저희 많이 준다고 생각한다던데...  업계 최저연봉인데, 그룹사내에서는 고연봉..(...))



3.


이런 상황에서 제가 이 정치싸움의 유탄을 맞게 되는데...

저는 생산부사장 휘하가 아닌, CEO 직속인데, 생산부사장이 자꾸 뭘 시켜요.

뭐 시킬 수는 있어요.

그런데, 저희 업무가 아닌 것을 저희 업무랑 엮어서 시킵니다. 나중에 문제가 될 수도 있는 것들을.

생산부사장 아래 부서중 본사에 있는 팀들이 해야 하는 일들이지요.


그래서 저희가 여기저기 다니면 '그걸 왜 가팀장이 하고 있어?' 라고 놀라거나, 혀를 찹니다.


잘 돌아가면 자기가 시킨거고, 잘 안되면 자기 직속 팀이 다치지 않게 해야 하니 저희한테 던지는거 아니겠냐는...


그렇다고 부사장이 시킨걸 '저는 CEO 소속인데요' 라고 반사 할수도 없고... 

요즘 위가 많이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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