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T&E 소프트에서 내놓은 어드벤처 게임입니다.

82년에 시에라 '미스테리 하우스'를 모방한 일본판 '미스테리 하우스'가 나와 일본에서 어드벤처란 장르를 개척했고, 한동안은 '미스테리 하우스'를 흉내낸, 단순 보물찾기류의 게임이 많이 나왔다가 차츰 스토리에 신경쓰는 게임들이 나오게 되고, 그러던 중에 나온 이 게임은 그당시 치고는 컬러풀했던 그래픽, 그시기에는 보기 드물었던 장대한 SF 설정과 스토리, 대용량(테이프 3개)이 화제가 되며 소년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대히트해 어드벤처 장르의 인기가 확산되는 데도 기여했다고 하고, 처음부터 타이틀에 '1'을 붙이고 나왔던 게임이니 시리즈가 3편까지 이어져 '스타아서 전설'은 일본 어드벤처의 여명기를 대표하는 시리즈가 되었습니다.


한 행성이 외계 세력에게 침략 당해 망하게 되었을 때, 간신히 혼자 도망쳐나온 스타아서라는 소년이 메피우스라는 별에 숨겨져있다는 전설의 신검을 찾아다닌다는 내용입니다.
제목인 '스타아서 전설'은 걍 스타워즈와 아서왕 전설을 합친 거예요. 스타워즈에서는 SF 오페라라는 장르와 제목에 에피소드 번호를 붙이는 마케팅을 빌려왔고 아서왕 전설에서는 아서라는 이름의 소년이 칼을 하나 줍는다는 이야기를 가져왔습니다.


게임 스토리가 장대하다...라고 했습니다만, 그게 게임 플레이에 녹아있는 건 아니고... 이 게임의 장대한 스토리는 거의 설정으로만 존재합니다. 실제 게임 플레이로 진행되는 내용은...... 사전 정보 얻고 준비물 챙겨 장애물 몇가지와 미로를 통과하면 끝입니다. 그러니까 이 게임도 실상은, 보물찾기 게임이예요. 보물찾기 게임에다 거창한 설정을 붙여놓은 거죠. 실제 게임에 들어가면 보물을 찾는 과정만 있지 게임 플레이를 통해서 밝혀지는 스토리 라인은 딱히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 과정의 디테일만으로도 당시의 일본 게이머들은 다른 게임들에 비해서 더 몰입감 높고 더 충실한 스토리라고 느꼈다나봐요. 어쩌면 장대한 배경 스토리와 제목에 붙은 '1부'라는 문구가 실제보다 더 커보이는 효과를 준걸지도...ㅎㅎ


주목할만한 점은, 이 게임이 텍스트 입력 방식 어드벤처이면서 초보적인 포인트앤클릭의 요소가 있다는 겁니다.
어드벤처 명령의 기본 형식이 '하고싶은 일(동사) + 그 일을 하려고하는 대상(명사)' 형태의 문장입니다. 플레이어는 사용할 동사와 명사를 각각 짐작해야하고 이걸 떠올리는 데에 사실상 게임 플레이 시간 대부분을 보냈습니다ㅎㅎ
이 게임은 일단 게임에서 사용하는 동사 갯수를 제한했습니다. 그래서 동사를 떠올리는 수고를 생략하고 그중에 하나만 찝어서 써넣으면 됩니다. 그다음에는 화면에 나온 포인터를 움직여서 화면에 있는 물체에 대고 클릭(마우스는 안쓰던 때니까 키보드로)합니다. 그래서 명사를 떠올려야할 필요도 없게됩니다.
'두드린다'라는 명령어를 치고나서 포인터를 벽에 갖다대고 클릭하면 벽을 두드립니다.

85년에 나온 MSX 버전은 여기에 명령어 선택 형태의 인터페이스까지 도입되어서(애초에 사용하는 동사의 갯수를 제한했다는 데서 이미 명령어 선택방식의 기초를 잡고있었다고 할 수도...) 명령어를 아예 타이핑하지 않고도 화면 구석에 쫙 깔려있는 명령어-동사들 중에 선택하고는 포인터로 목표물을 지정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조금만 더 편의성을 발전시킨다면 대략 루카스 방식의 포인트앤클릭 인터페이스와 비슷해집니다.

미국에 포인트앤클릭 어드벤처가 처음 나온 게 매킨토시가 나온 뒤인 84년이고, 루카스의 scumm 인터페이스가 87년에 발표되었으니까, '메피우스'쪽이 양측 모두 보다 앞서게 됩니다. 만약에 T&E가 자신들이 만든 참신한 방식을 좀 더 편리하게 유지발전시키고 그걸 다른 게임들도 따라해서 유행하게 되었다면 일본이 미국보다 먼저 포인트앤클릭을 정립했다고 큰소리칠 수 있었을 지도...?

그치만... 포인트앤클릭이란 게 마우스가 없으면 더 불편해지는 거라서 그랬던지... '메피우스'가 히트하고 이후 게임들에 큰 영향을 끼쳤음에도 이 게임의 이런 참신한 입력방식은 다른 게임들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했습니다. 이 게임 뒤로도 '스타아서 전설' 후속작들 정도 말고는 대부분의 게임들이 기존의 방식의 텍스트 입력을 그대로 썼고, 곧이어서 찍기..'명령어 선택방식'으로 패러다임이 넘어가기 때문에..

10년쯤 지나 서양에서는 포인트앤클릭이 완전 정착되고 일본에서도 마우스가 필수장비화 되는 무렵에야 이 게임과 비슷한 시스템을 채택한 게임들이 여럿 나오게 되는것 같은데... 단절기간이 너무 길어서 그 게임들이 '스타아서'의 영향을 직접 받았다고 보긴 애매할 것 같아요. 혼자만 너무 앞서갔던 듯...?





전 이 게임을 컴퓨터학습이던가... 잡지에서 보고 처음 알게되었습니다. 잡지에 실린 게임의 그 장대한 배경 스토리를 보고는 상당히 충격을 받았더랬어요. (체감 느낌으로는) 거의 단편 소설 하나 분량의 이야기였던 것 같아요 그때는 저도 아직 어드벤처 게임이란 게 뭔지 잘 몰랐던 때라서 어떻게 게임에서 이런 스토리가 나올 수 있는지 이해를 못했습니다.

일본 게임이 한국 컴퓨터 잡지에서 다루어진 건 물론 국내에 나왔기 때문이죠. MSX 버전이 무판권(당시에는 관련법이 없어서 불법은 아니었던 듯...)으로 한글판(명령어 입력은 영어로 하도록 바뀌었습니다) 패키지가 제작되어 당당히 대형매장에서 팔렸습니다. 나중에 제 친구가 그걸 샀고 전 빌려서 했는데... 시작하고 나서 세시간인가... 만에 끝을 봐버렸어요.(제가 처음으로 끝을 본 어드벤처죠.ㅎㅎ)

'어라? 전에 봤던 배경 스토리는 참 거창했는데 게임은 이게 뭔가...' 하고 좀 허무했죠. 그리곤 내내 아주 쉬웠던 게임이라고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하아안참 후에 인터넷에서 일본사람들이 이 게임을 회고한 글들을 보고서는 깜짝 놀랐어요. 다들 극악의 난이도에 치를 떨었던 게임이라고, 그시기에 나왔던 게임들 중에 난이도로 끝판왕이었다고들 하는거예요.
어 난 쉽게 끝냈는데...? 내가 했던 게임하고 같은 게 맞나...? 이해가 안되서 좀 자세히 알아봤더니, MSX 버전은 난이도가 좀 하향되어 있었다는군요. 글구 이 게임이 악명높은 건 미로에서의 운발x망게임 속성 때문이었던 것 같은데 제가 운이 좋았나 보죠ㅎㅎ 그게 아님 한글판으로 나오면서 난이도가 더 낮아졌다든가...?




'혹성 메피우스'는, 83년에 FM-7용으로 발표되었고, 그 뒤 여러 기종으로 이식되었습니다.
84년까지 두편의 속편이 나와 3부작을 구성하게 되는데 1편은 온갖 기종으로 다 나왔지만 뒤로 갈수록 이식되는 기종들이 줄어들어 3편은 심지어 PC-8801로도 안나왔습니다.

85년에는 MSX 버전과 VHD 버전이 나왔습니다.
MSX 버전은 2년이나 있다가 나온 만큼 업그레이드가 되어있습니다. 하지만, MSX기 때문에, 원래도 구려..썩 좋지는 않았던 그래픽이 더 구려졌습니다. 85년이면 일본 어드벤처의 전반적인 그래픽 수준이 떡상한 뒤인데도 원본의 구시대 그래픽을 그대로 가져온 데다 MSX라서 생기는 열화까지 더해져서... 뭐 VHD 버전을 MSX에서도 돌릴수 있으니 그래픽은 그쪽을 보라고 한건지...ㅎㅎ

80년대 초에 오락실에서 '용굴'이나 '배드랜즈'나 '썬더스톰(코브라 코맨드) 같은 실제 셀 애니메이션을 삽입해서 만든 LD 게임이 유행했어서, '메피우스' VHD 버전도 그 흐름에 따라 만들어진, 풀 애니메이션이 실려있는 비디오 디스크로 구동되는 물건입니다. 게임 진행방식은 일반 컴퓨터 버전과 별 차이는 없고 정지된 그림이 '진짜' 애니메이션으로 바뀐 거죠. 토에이의 프로 애니메이터들이 제작한 영상이니 물론 컴퓨터 그래픽과는 차원이 다르지만... 뭐... VHD 하드웨어 자체가 보급이 안되어서 조용히 망했습니다.
10년쯤 뒤에는 비슷한 게임 유형에 매체만 CD로 바뀌는 소위 인터-액티브 무비 형태의 어드벤처들이 범람하게 되니, 이것도 너무 앞서갔던 듯...?

VHD는 JVC가 개발해서 80년대 초에 영상 매체의 주도권을 두고 LD와 경쟁한 믈건입니다. 뭐... 둘 다 VH'S'한테 밀렸습니다만... 그래도 LD는 (적어도 해외에서는) 많은 사람들의 추억 속에 한자리 차지하고 있기라도 하지, VHD는 그냥 망하고... 그대로 잊혀졌죠.
JVC가 MSX 연합의 일원이었어서 VHD를 제어할 수 있는 MSX가 나왔었습니다. LD 주관사인 파이오니어도 역시 MSX 진영이었어서 LD를 제어할 수 있는 MSX도 있었고 '배드랜즈' 같은 오락실 LD 게임이 MSX에서 플레이 가능한 LD로 나왔습니다. 그런 경쟁 속에서 T&E는 VHD를 밀었나본데... 줄을 잘못 섰다는... (LD도 컴퓨터 주변기기로서는 망했습니다만...ㅎㅎ)

여담으로... VHD는 LD에는 없는 3D 재생 기능이 있었고(좌우 그림을 번갈아 쏴서 특수안경으로 보는 방식. 그때 극장 3D 영화는 셀로판지 안경쓰고 보던 때인데... 근데 안경이 요새 VR 안경만 했던 거 같아요. 디게 무거워 보여서 오래는 못보고 있을거 같다고 생각했었습니다ㅎㅎ) 마침 그때 헐리우드에서 '죠스 3D', '13일의 금요일 3D' 같이 시리즈물 3편을 3D로 제작하는 붐이 있던 때라서 VHD는 그런 영화들을 3D로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는데... 어쨌거나 망했습니다. 뭐 그때 3D 열풍도 몇년 못가 시들해졌고 수십년 뒤에 다시 불어온 3D 열풍도 몇년을 못갔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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