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랫만에 부부싸움(?)을 했어요.

사실 싸움이라긴 애매한게, 저혼자 일방적으로 서운해서 울고, 남편은 달래주고 끝났거든요.


저희 커플은 둘 다 이벤트 같은거 별 관심 없고,  맛있는거 먹으러 가거나 구경다니는걸 막상 가면 좋아라 하지만, 계획세우고 움직이는걸 살짝 귀찮아하는 편이예요.

둘 다 체력이 넘치는것도 아닌지라, 오래 사귄 기간에 비하면, 뭔가 추억 어린 데이트는 손에 꼽을 정도인거죠.

거기에 더해, 남편은 뭐랄까, 일반적으로 좀 차가운? 이성적인 사람이예요.

저에게 관심 가져주고, 챙겨주고, 사랑을 표현하는 등의 행동이, 사실 일반적인 '자상하고 다정한 남자의 이미지' 기준에서 보면 부족한 편이예요.

물론 저야 옆에서 보면서 그가 다른 사람을 대할 때와 비교하면, 저에겐 정말 엄청 잘해준다는 건 알고 있어요.


어제 사진을 정리하다 보니, 그가 절 찍어준 사진이 거의 없더라구요.

당시 자기는 나 사진 안찍어주고 싶냐 했을 때 카메라 무겁기도 하고 잘 찍지도 못하고 등등의 이유로 별로 생각이 없다 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났습니다. 그리고 사귀기 시작했을 때가 그가 디카를 산지 좀 오래되어서, 이제 사진 찍는 재미가 이미 시들했던 상태였고요. (정리하던 사진들도 대부분 디카 산 직후부터 저랑 연애하기 얼마 전까지의 사진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본인은 전혀 기억을 못하고 오히려 미안해하더군요.


근데 정리하다 보니, 카메라 처음 샀을 때가 그의 전 연얘가 끝나기 얼마 전이었나봐요. 전 여친 사진이 몇장 있더군요.

사진 있는거 자체가 기분나쁜건 아니었어요. 여러명의 친구들과 어울리며 막 찍던 중에 섞여있던거라, 특별히 의미를 두고 남긴게 아닌걸 아니까요.

그냥, 제 자신이 비교되었어요.

내 사진은 거의 없는데. 저사람은 사진도 찍어줬었구나.

그 때 나는 이해해준다고 그냥 넘어갔었는데, 이것저것 더 조를껄, 사진도 찍어달라, 맛있는거 사달라, 좀 더 조르고 귀찮게 굴고, 

튕기기도 하고, 요구도 하고, 그럴껄 하는 후회?? 아쉬움? 같은게 살짝 들었어요.

그사람도 나를 많이 참아주긴 했겠지만, 저도 정말 많이 이해하고 가능하면 맞춰주는 연애를 했었구나 새삼 깨달았달까요?

저도 관심 없다 하긴 했지만, 솔직히 다정하게 대해주고 이것저것 챙겨주고, 이벤트 해주는거, 공주님 대접 받아보는거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 전까지는 겉보기엔 내가 더 많이 양보하고 표현하지만, 내가 더 많이 사랑받고 있다고 추호의 의심도 없이 믿고 있었는데,

그것도 내 착각이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갑자기 저 자신이 바보같았어요.

난 나름 똑똑하고 대등하게 연애를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딱히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좀 무심한 남자인줄 알았는데, 정말 무심한 남자였구나.

등등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서, 그래서 진짜 바보같이 울어버렸습니다. -_-;


남편이 굉장히 미안해하면서 절 달래주려고 애를 썼고, 결국에는 마음이 풀리긴 했는데,

해뜨고 나니 이젠 제가 좀 미안합니다.

그는 처음 연애 당시에 비하면 많이 변하기도 했고, 사실 어제도 오랫만에 나들이 하고 들어와서 기분좋게 있다가 제가 우는 바람에 기분 망쳤었거든요.

음, 설명하기 어렵지만, 아마 그는 내게 최선을 다했다는건 정말일겁니다.

그의 마음의 크기가, 남에게 쓰는 부분이 100이면, 그중 한 90 이상을 저에게 줬을 거예요.

문제는 저의 일반적인 용량은 150~200정도 라는것? 그리고 그가 남을 어떻게 챙기고 배려해야 하는지 잘 알지 못했다는게 문제였겠지요.

 

앞으로 귀찮아하건 말건, 원하는게 있으면 대놓고 요구하기로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말하지 않으면 모르는 사람인거 내가 아는데, 이번처럼 지나서 후회하느니, 그냥 솔직히 다 요구할라구요.

사람은 쉽게 변하는게 아니긴 한데, 저도 노력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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