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었지만 5.18, 생각나는 시 하나,

2011.05.19 02:00

한이은 조회 수:1575

 

- 일상에 쫓겨 바쁘게 살아가다 보면, 이런 날, 저런 날도 그저 수 많은 '하루'중 하나라고 느껴지곤 합니다, 그러다가 문득 '아' 하고 생각나는 어떤 날의 기억들, 추억들, 사건들... 그리고 시간은 흘러가고, 또 그렇게, 삶은 지속되겠지요,

 

- 인간에게 주어진 두 가지 특권 중, 기억(기록)이냐, 망각이냐를 택할 것은 우리의 자유입니다, 인간에게는 두 가지 다 중요하지만, 최소한 역사에서의 정의를 논할 때, 우리는 망각을 택해서는 안됩니다, 약한 피해자가 강한 가해자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고발이자 응징은 칼과 총이 아닌, 기억과 언어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바타이유가 사드에 대해서 말했듯, 폭력 행사자는 침묵합니다, 혹은 위선적인 언어를 사용합니다, 그러나 부당한 이유로 벌을 받는 사람은 침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 속물론에서 성매매론까지, 논쟁은 좋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거기에 한 마디 '말'을 보탤 때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은 바로 '거기'에 인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야기의 주체인 그 '인간'은 바로 '피해자'라는 것, '약자'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최근 들어 관심권 밖에서 멀어졌던 무라카미 하루키가 제 관심권 안에 다시 들어온 계기는 그가 '예루살렘 상'을 수상하면서 행한 연설문의 내용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정책을 지지하는 느낌을 주는 것을 원치 않았다고 하면서도 이 상을 수상하러 이스라엘로 온 이유를 그는 '직접 보고 판단하고 싶었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덧붙입니다, 자신은 항상 깨지는 '계란' 편이라고,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계란'일 뿐이라고 말입니다("우리 모두가 인간이며, 국적과 인종과 종교를 초월하여 개인들이며 시스템이라는 단단하고 높은 벽과 마주하고 있는 깨어지기 쉬운 계란이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아도 우리에게 승리의 희망은 없습니다. 그 벽은 너무나 높고 너무나 강력하며, 그리고 너무나 차갑습니다. 만일 우리에게 어떤 승리의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들 자신과 타인의 영혼의 절대적인 유일함과 대체불가능성에 대한 우리의 믿음과 영혼을 함께 연결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온기로부터 나와야 할 것입니다." - 무라카미 하루키)

 

- 삼십 여년 전 그 날, 그 곳에 있었던 사람들이 가장 필요했던 것도, 가장 기뻐했을 말도, 다름 아닌 '약자'이자 '피해자'인 자신들에게 보내는 같은 처지의 외부인들의 관심이자 응원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철저하게 고립되었고, 고독하게 패배했습니다, 긴 시간을 자신이 그 날, 그 곳에 있었다는 말조차 꺼내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사건이 재발하지 않게 하는 방법을 저는 모릅니다, 그것이 가능한지조차 의심스럽습니다, 하지만 이미 일어난 일을 최대한 '사실' 그대로 후세에 전해줄 수는 있습니다, 그것이 제가 그 시간, 그 공간에 같이 있지 못했던 미안함과 한계를 극복하는 하나의 방법입니다,

 

- 최규석의 100도씨에서, 대책 없는 우익 학생 영호가 운동권 학생으로 변모하게 되는 계기도 5.18을 접하게 되면서부터였죠, 우리는 이러한 '진실'의 힘을 아직 믿어야 합니다,

 

 

학살 3                    김남주

학살의 원흉이 지금
옥좌에 앉아 있다
학살에 치를 떨며 들고일어선 시민들은 지금
죽어 잿더미로 쌓여 있거나
감옥에서 철창에서 피를 흘리고 있다
그리고 바다 건너 저편 아메리카에서는
학살의 원격조종자들이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다

당신은 묻겠는가 이게 사실이냐고

나라 국경 지킨다는 군인들이 지금
학살의 거리를 누비면서 어깨총을 하고 있다
옥좌의 안보를 위해
시민의 재산을 지킨다는 경찰들은 지금
주택가에 난입하여 학살의 흔적을 지우기에 광분하고 있다
옥좌의 질서를 위해
당신은 묻겠는가 이게 사실이냐고

검사라는 이름의 작자들은
권력의 담을 지켜주는 세퍼드가 되어 으르렁대고 있다
학살에 반대하여 들고일어선 시민들을 향해
판사라는 이름의 작자들은
학살의 만행을 정당화시키는 꼭둑각시가 되어
유죄판결을 내리고 있다
불의에 항거하여 정의의 주먹을 치켜든 시민을 향해

당신은 묻겠는가 이게 사실이냐고

보아다오 파괴된 나의 도시를
보아다오 부러진 낫과 박살난 나의 창을
보아다오 살해된 처녀의 피묻은 머리카락을 잘려나간 유방을
보아다오 학살된 아이의 눈동자를

장군들, 이민족의 앞잡이들
압제와 폭정의 화신 자유의 사형집행인들
보아다오 보아다오 보아다오
살해된 처녀의 머리카락 그 하나하나는
밧줄이 되어 너희들의 목을 감을 것이며
학살된 아이들의 눈동자
그 하나하나는 총알이 되고
너희들이 저질러놓은 범죄
그 하나하나에는 탄환이 튀어나와
언젠가 어느 날엔가는
너희들의 심장에 닿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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