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보실 분은 당연히 안 보셔야 합니다?

 

 

 

1. 에디트 피아프와 최정원, 그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에디트 피아프의 음색은 독특해요.

그녀의 음악을 들을 때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저는 이런 고음을 어떻게 이렇게 시원하게, 뻥 뚫린 것처럼 부르나, 그것이 항상 기묘하였습니다.

 

성악가 조수미처럼 목구멍에 달랑거리는(그걸 뭐라고 하더라요), 그게 없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있었죠.

또한 제가 에디트 피아프 전문가는 아니지만, 그녀의 사생활도 재미있죠.

 

그래서 에디트 피아프를 최정원씨가 맡아서 한다는 걸 알았을 때 큰 기대를 하게 되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에디트 피아프 특유의 음색을 최정원 씨가 어떻게 보여주실까, 라는 궁금함이 섞인 염려도 되었지요.

에디트 피아프를 따라하면, 자칫 단순한 성대모사가 될 수 있을 터이고.

에디트 피아프를 따라하지 않으면, 에디트 피아프 연극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어쨌든 눈으로 확인하자 해서, 연극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최정원씨를 보이면 "계모임"이 생각나요.

돌아가신 할머님이 최정원씨의 어머니 되시는 분과 같이 계모임을 하셨었거든요.

그래서 제가 어렸을 때 그 얘기를 할머님이 엄청 하시던 기억이 생생...-_-;;

 

 

 

2. 연극의 연출만을 본다면 전반부는 음...

 

 

 

이 연극이 전반부와 후반부, 그 사이에 휴식시간이 있는 순서였습니다.

 

전반부는 재미없었어요.

산만함 그 자체였습니다.

 

에디트 피아프의 일대기를 그리기 위해 극의 전개 속도를 무진장 빠르게 한 것 같다, 라는 생각을 했는데 실제로 그렇더군요.

관련기사를 보고 확인했습니다.

 

저는 정말 전개 속도를 빠르게 하는 것이 싫었습니다.

 

한 장면, 어떤 캐릭터에 집중이 될라치면 휙휙 바뀌고 사라지고.

 

다른 관람객의 후기를 보고 공감한 것이, 에디트 피아프의 일대기를 모르는 사람이면 이거 원 불친절해서 극 흐름을 따라잡을 수는 있을까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또한 이건 전반부, 후반부 (?)의 문제만도 아닌 것이, 대사가 가끔 너무 작거나 해서 안 들리는 경우가 있었어요.

 

 

그래서 어쨌든 휴식시간이 되었을 때 아 좀 잘못 선택한 것 같다, 라는 생각을 할 정도였습니다.

 

게다가...

 

 

 

3. 영화 라비앙 로즈...와의 관련성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전개가 현재에서 과거로 가서 다시 거슬러 올라가는 구성, 마를렌느 디트리히의 등장, 그리고 결정적으로 미국의 쇼걸들을 비웃는 장면(엉덩이에다 깃털을 꽂은 여자들을 흉내내며 꼬꼬꼬).

 

이거 라비앙 로즈에 나오는 거잖아요....;;

 

그리고 대미를 no je ne regrette rien이 장식하는 것도 그렇고....

 

 

일종의 음모론이라고 생각하셔도 좋습니다.

 

실제로 에디트 피아프가 마를렌느 디트리히와 친해서 그런 걸 수도 있고. 미국의 쇼걸들을 비웃는 에디트 피아프가 화제가 되어서 한 걸 수도 있는데...어쨌든...

 

라비앙 로즈와 비슷한 장면이 많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또한 에디트 피아프라는 인물에 대한 해석도 라비앙 로즈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물론 해석이 꼭 달라야 한다는 법칙은 없지만서도 라비앙 로즈의 한국판...을 봤다는 생각에 뒷느낌이 솔직히 깔끔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후반부가 좋아서 많이 상쇄가 되었죠.

 

 

 

 

4. 후반부 이야기를 하고 싶으셨던 것 같아요 연출하신 분이.

 

 

 

후반부에서는 훨씬 장면들이 안정적이고, 전개 속도가 짜증나게 빠르지 않습니다.

 

등장인물들을 더 많이 조명하죠. 빨리 안 없애버리고.

 

영화랑도 분명한 차별점이 생겨나고 재미있는 조연들이 많이 나오죠. (꽃을 벽에 던지며 짜증내는 목소리 잉잉 간호사, 머리가 엉망인 노동자 출신 이브 몽땅)

 

또한 최정원씨도 쇠락한 에디트 피아프에 훨씬 감정이입을 하신 듯, 근사한 연기를 많이 보여주셨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에디트 피아프의 마지막 남편인 테오 역할이 나와서 즐거웠습니다.

 

영화 라비앙 로즈 (은연 중에 제가 많이 그 영화를 의식한 것 같습니다)에는 아예 나오지도 않고 한 마디 언급되는 수준이었거든요.

 

 

그리고 사실 후반부 이야기가 더 강할 수밖에 없어요.

 

연출을 중간만 해도 에디트 피아프의 삶 자체가 워낙 근사하고 비극적이라서 어떻게 버티기만 해도 솔직히 중간은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막판에 no je ne regrette rien의 한국어 노래를 부르시는 최정원씨의 모습을 보며 저도 눈물이 맺히더군요.

 

그건 이제서야 안정을 찾은 장면들을 통해서 에디트 피아프의 핏빛인지 장밋빛인지 모를 삶을 느낄 수 있어서였죠.

 

어떻게 표현하는 게 좋을까요, 저는 no je ne regrette rien의 가사가 에디트 피아프의 마음을 설명해주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녀는 뭐 물론 죽은 사람이지만 그녀가 항상 열렬히 사랑을 했고, 자신을 파괴했고, 노래를 불렀다는 걸 보면...

 

한참 예전에 저도 한 번 에디트 피아프처럼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 이유는 그녀의 삶이 한 편의 드라마와 같고, 또 어떻게 보면 참 지치지 않고 사랑하는 운명을 타고난 사람 같아서였어요.

 

위의 가사는 그녀의 그런 운명을 잘 보여준다고나 할까요...

 

 

 

 

5. 노래야 뭐

 

 

 

최정원씨 노래야 잘하시는 거는 쓰기만 해도 제 손가락 손해겠지요. ㅎㅎ

 

맨 처음에 자신을 발굴한 사람이 죽고 나서 부른 노래, 마르셀이 죽고 나서 부른 노래가 저는 특히 좋았습니다. 제가 그거  원제목을 모르겠네요.

 

하지만 사실 저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no je ne regrette rien에서는 약-간 약했다고 생각은 합니다만, 뭐...그게 사실 제가 기대했던 것처럼 들으려면 최정원 씨가 에디트 피아프와 같은 음색이어야 하시는 게 조건일 텐데 그건 말도 안 되죠. ㅎㅎ

 

다만 에디트 피아프가 살아 있었다면 정말 그녀의 소위 라이브를 보는 것이 매우 대단할 것 같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가창력은 제 생각에는 정말 드문 것 같아요.

 

 

 

 

6. 조연 중에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그 누구죠 김혜성?이랑 사귀는 역할로 나왔던 박민영, 박민영의 어머니로 나오시는 분이 트완이라는 창녀 역을 맡으셨더군요.

 

어쩐지 계속 보다보니 어디서 많이 본 분 같다 했는데...

 

 

 

7. 그래도

 

 

막판에 관객에게 인사받으시고, 마르셀과 퇴장하는 모습은 흐응ㅠ 슬펐습니다.

결론적으로,

최정원씨 팬이면 확실히 좋아할 공연이었습니다.

저도...뭐 막판의 감동에 혹평할 의지는 사라지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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