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 학당' 이야기, 3

2011.06.09 00:29

한이은 조회 수:1930

 

- 예고드린대로 그림의 네 번째 인물, 보에티우스에 대해 먼저 얘기하고 넘어가겠습니다, :) 흔히 보에티우스를 기점으로 고대와 중세로 넘어간다고 생각하시면 될겁니다, '마지막 고대 철학자'라는 별명이 있고, 훗날 스콜라철학으로 알려지게 될 중세철학에서 논쟁거리가 될 몇 가지 문제점의 단초를 제공한 사람입니다, 사실 그의 본명은 매우 로마인다운 이름, '아니치우스 만리우스 토르과투스 세베리누스 보에시우스'입니다만... 넘어가지요(길고 아름다워), 그의 대표작은 감옥에 있을 때 저술한 '철학의 위안'입니다, 이 제목은 움베르트 에코가 최근 저서에서 패러디하기도 했죠, 자신의 고통스런 상황에 대한 질문, '왜?'에 대해서 철학이 답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는 이 저작에 대한 해석이 한 때는 대유행하였던 적도 있고, 이교도 입장의 글이라고 비판받은 적도 있지만, 한 편의 문학작품으로서도 손색이 없다는 것엔 이견이 없습니다,

 

- 로마의 황혼기에 살았던 그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자, 로마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동고트족의 왕, 테오드리쿠스를 위해 일해야 했던 처지이기도 했죠, 테오드리쿠스는 흔히 생각하는 폭군은 아니었으나, 반역죄에 대해 그다지 너그러운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전 집정관 알비누스가 동로마제국과 내통했다는 이유로 고발되자, 보에티우스는 그에 대한 옹호를 법정에서 하게 되는데, 이것이 그가 반역 혐의를 받아 처형된 원인이 됩니다(잔인하게 고문당한 뒤 몽둥이로 맞아 죽었...), 훗날 레오 13세에 의해 시성되어 정식으로 순교자이자 성인으로 인정되는 그는, 철학의 순교자의 명단에 오른 수 많은 사람 중 하나입니다,

 

- 앞서 피타고라스 옆의 인물로서, 강력하게 보에티우스를 민 것은 그의 이러한 삶 때문이 아니라, 바로 그가 '산술'을 쓴 수학자이도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보에티우스의 수학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근대적 수학과는 다릅니다, 그는 신비주의적 신학 이론의 입장에서 수를 분류했고, 그러한 수들의 분석이 신학을 뒷받침하는 형식을 띄고 있었기 때문입니다(완전수 6은 신의 숫자일 수밖에 없는데, 6의 약수는 1, 2, 3이고 그 합은 6이므로), 바로 이러한 면이 '만물의 근원은 수'라고 일찌기 주장했던 피타고라스의 모습과 겹칩니다, 이러한 보에티우스의 수학은 중세 시기 표준 교과서였습니다, 피보나치가 등장해 수학을 화려하게 꽃피우기 이전까지는 보에티우스의 수학이 유럽을 지배했다고 볼 수 있겠죠, 중세가 암흑기라고 표현되어도 사실 할 말은 없는게, 토마스 아퀴나스는 희랍어를 할 줄 몰라서 아리스토텔레스를 보에티우스의 번역판으로 읽었습니다(...),

 

- 또 하나 그의 중요한 업적이자 폐해(?)는 앞서도 얘기했듯 중세철학을 지배하는 가장 중요한 문제, '보편논쟁'에 불을 붙였다는 것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보에티우스는 굉장히 능력 있는 번역가이기도 했는데, 사건의 발단은 그가 포르피리오스의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론 입문'을 번역했다는 것입니다, 이 책이 나오자 마자 학자들은 바로 이 문제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지요, 간단하게 말해 아리스토텔레스가 처음 던진 질문은 아래와 같습니다('범주론' 서문 중), '유나 종에 관해서 생각해 보건데, 그것은 과연 실제로 존재하는 것인가. 아니면 단지 우리의 오성 속에만 존재하는 것인가. 더 나아가 만약 그것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한다면 과연 그것은 물질적인 것인가, 정신적인 것인가등의 문제에 대해서 나로서는 답변을 회피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바로 이와 같은 성질의 문제란 매우 난해한 과제로서 여기에는 좀 더 면밀한 연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즉, 내가 눈 앞에 있는 어떤 '나무'를 보고 있다고 할 때, 나는 내가 '나무'를 보고 있다고 확실히 생각하지만, 과연 내가 보는 개개의 나무는 '나무' 일반이라는 관념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에 대한 물음을 던진 것이죠, 보에티우스는 이러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질문을 그대로 던집니다, '우리 감각과 사물의 실체는 일치하는 것일까?' 이러한 밥도 돈도, 애인 생기지 않는 질문을 무려 천 년간 주고 받으며, 박 터지게 싸운 스콜라 철학자들은 진정한 용자였던 것입니다(...),

 

- 보에티우스는 보편자는 개별자로부터 추론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즉 보편자는 대상과 정신 속에 동시에 존재하고, 사물 안에 내재하는 것이 정신에 의해 사유되는 것이라는 입장을 취했습니다, 내가 여러 나무를 보면서 그것들을 나무라고 지각하는 것은 정신이 바로 그 나무들 안에서 '나무'의 보편적 요소를 발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그리고 이러한 입장에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 일부만 찬성하느냐, 일부만 반대하느냐, 혹은 양자를 짬뽕시키느냐(...)에 따라 중세의 내로라 하는 스타 철학자들이 입에 침을 튀겨가며 열변을 토합니다, 아일랜드 화폐 인물인 요하네스 스코투스 에리우게나, 스콜라 철학의 창시자 켄터베리의 안셀무스, 유명한 아벨라르의 스승 샹포의 기욤(이상 실재론), 그리고 이에 맞서 아벨라르를 유명론의 세계로 인도하는 로스켈리누스, 그리고 이 양자는 아벨라르에 와서 절충되어 종합됩니다(...언제 한 번 이 양반의 연애사에 대해서도 쓰고 싶지만...),

 

- 중세를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이 철학자 보에티우스의 말 중에서 하나 인용하며, 다음으로 넘어가겠습니다, '행복은 마음 속에 있거늘, 어찌 그대는 밖에서 찾는가?'

 

- 그리고 다섯 번째, 보에티우스와 함께 피타고라스의 작업을 어깨 너머로 바라보고 있는 이가 바로 이븐 루시드, 우리에게 알려지기로는 라틴어 이름 아베로에스로 더 유명한, 아랍계 철학자입니다, 사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도 아니요, 유럽인도 아닌 그가 이 '아테네 학당'에 한 자리 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그가 '미개한' 유럽을 깨우친 사람 중의 하나라는 것이겠지요, 앞의 글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죽어라 플라톤만 파고 또 파서 기독교 식으로 이해한 신플라톤주의만 공부하고 있던 중세 유럽인들에게 아리스토텔레스 모든 저작의 주석서를 완성한 그의 글이 전파된 순간은 철학자들에게 가히 '문화 충격'의 순간이었을 겁니다, 그 충격이 얼마나 광범위하고, 매력적이었는지, 아베로에스파학파가 만들어지기도 했으며, 그가 구분한 '능산적 자연', '소산적 자연'이라는 개념은 그대로 스피노자에게 이어져 '에티카'에서 부활합니다,

 

- '역사에 만약은 없다'라지만, 생각해 보면 재미있는 상상입니다, 만약 이슬람의 후우마이야 왕조가 코르도바를 수도로 삼지 않았다면, 코르도바에 서방 이슬람 세계 최대의 대도서관이 세워지지 않았다면, 이븐 루시드가 그 코르도바에서 태어나 활동하지 않았다면, 레콘키스타가 일어나지 않아 유럽인들이 코르도바를 수복하지 않았더라면... 물론 큰 영향이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앞선 아랍 세계의 학문적, 사상적 성과가 잠든 유럽을 깨우지 않았더라면, '르네상스'를 시작으로 한 유럽의 대도약은 수십 년, 아니 수백 년이 늦어졌을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해 볼 때, 라파엘로가 이븐 루시드를 그의 그림에 등장시킨 것은 이 거인에 대한 경의의 표시였을지도 모릅니다, 자크 아탈리 또한 그 경의의 표시로 이븐 루시드가 주인공인 역사소설을 쓴 모양입니다('깨어 있는 자들의 나라 - 12세기 스페인의 남부 안달루시아는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가 공존하던 평화의 땅이었다. 이슬람 제국이 지배했던 스페인은 관용과 개방성의 정신이 살아 있었다. 그러나 북아프리카에서 알모아데족이라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침입하며 오랜 공존의 시대는 깨어지고 만다. 처형과 살인, 혼란이 세상을 뒤덮고 하늘은 잿빛으로 물든다. 이 암흑의 나라를 피해, 어린 마이모니데스와 젊은 아베로에스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남긴 우주와 인류의 비밀을 간직한 책 『절대적 영원에 대한 논고』를 찾기 위해 먼 길을 떠난다)...만, 뭐 이건 상관 없겠지요;

 

- 어쨌든 중세와 르네상스 시기를 잇는 두 철학자인 보에티우스, 이븐 루시드 이 두 사람이 피타고라스와 함께 등장한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입니다, 이제 그 의미를 찾기 위해 다음 편을 준비해야겠지요, 이븐 루시드의 철학에 대해 못다한 이야기는 다음 편에 또 자세히 덧붙이며 계속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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