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속한 계급, 더 정확하게 말하면 자신의 경제적 이익에 부합하는 투표 행위를 계급 투표라고 하고
그렇지 않은 투표 행위를 계급 배반 투표 행위라고 하겠습니다.
계급이라는 용어의 적실성이 의심스럽다면,
경제적(화폐적) 이익 투표 정도로 바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우선 사실관계부터 대충 살펴보는 게 좋겠죠.
한국에서 계급 투표 행위의 설명력이 어느 정도인지에 관해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데이터가 생성되고 있지만,
일단은 아래 글타래를 일람하는 정도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http://djuna.cine21.com/xe/13882

계급 투표와 관련해서 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소득하위계층의 투표인 것 같습니다.
소득상위계층의 투표는 대체로 계급투표의 설명력이 큰데,
소득하위계층의 경우는 그것이 상대적으로 훨씬 작기 때문이죠.

저는 손낙구보다 계급투표의 설명력을 훨씬 낮게 평가합니다.

여러 가지 근거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투표율은 이사 주기(주택소유여부)나 선거일 휴무 여부에 상당히 큰 영향을 받지만,
지지 성향은 그렇지 않은데도,
계급 배반 지지 성향을 흔히 관찰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 글의 목적상 논의의 범위는 계급 투표가 아니라 계급 지지 성향, 계급 배반 지지 성향으로 한정하겠습니다.


사실관계에 대해서는 이 정도만 얘기하고,
그 비율이 크든 작든,
이런 계급 배반 지지 성향을 어떻게 해석-평가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두 가지 가설이 유력하다고 봅니다.

1) 계급 지지를 하고자 하나 잘 몰라서 계급 배반 지지를 한다 (소위 '바보'설)
2) 계급 지지가 아닌 다른 준거에 기반하여 지지를 결정한다


------ 이하 외근 복귀 후 작성하여 어조 변경 -----------------------


2)가 훨씬 더 많은 부분을 설명한다고 본다.


"바보, 멍청하다"라는 표현을 긍정하든 부정하든 계급 지지를 옳은 것으로 전제하는 공통점을 볼 수 있다.
주: http://djuna.cine21.com/xe/2743206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계급 지지를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경제적-화폐적 이익 외 여러 가지에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외모도 그 중 하나이다;;)

계급 지지가 계급 배반 지지에 비해 더 옳거나 가치 있는 것도 아니다.
경제적-화폐적 이익이 다른 것들에 비해 본질적으로 더 가치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어떤 비일관성이다.
선거, 투표, 지지 정당을 벗어난 맥락에서는
화폐적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또는 화폐적 이해관계에 의해 예측되는 행동이 매우 흔하게 도덕적으로 비난받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대체로 진영 논리, 자기 이익 중심주의 때문이다.

일반적으로는 상대방이 자신의 화폐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나에게, 나의 진영에 손해가 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선거에서는 상대방이 자신의 화폐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나에게, 나의 진영에 이익이 된다.

어버이 연합을 조롱하고, 비난하지만, 그들은 철저한 계급 지지자들이다. 현찰을 받는다.
동시에 그들은 비화폐적인 준거로 봐도 충분히 한나라당을 지지할 가능성이 높다.
저소득 계층이 계급 배반 지지로 욕을 먹어야 한다면,
어버이 연합과 강남의 계급 지지는 칭찬을 받아야 할 것이다.

이런 이야기도 들린다.
그들이 욕을 먹어도 싼 것은 그들의 투표가 타인에게(도) 피해를 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불성설이다.
그런 논리라면, 나의 정치활동은 한나라당 지지자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에 나도 욕을 먹어야 한다.

나는 경제적-화폐적 이익 등에 기반하여 정당 (가)를 지지하고,
상대방은 다른 준거에 기반하여 정당 (나)를 지지하는데,
상대방이 나에게 피해를 끼쳤다거나, 상대방이 멍청하다는 주장을 하다니 참으로 놀라운 행태이다.

민주주의와 정의를 말하고 있으나, 결국
비 화폐적 준거로 판단하면 내가 옳고,
화폐적 준거로 판단하면 내게 이익이 되어야 한다는 믿음 외에 무엇이 남을지 생각해 봄직하다.

무조건적 상대주의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양비론도 아니다.
분명, 어떤 한나라당 지지자들의 입장은 다원주의, 정치적 다양성의 이름으로 존중할 수 있는 범위 밖에 있다.
그러나 그 비율이 더 작을 지언정
분명 어떤 한나라당 반대자들의 입장도 명백한 엥똘레랑스에 해당한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서 얘기를 주고 받을 때 빠지기 쉬운 함정을 조심하는 것이 좋겠다.

나 자신 
"자신의 (화폐적) 이익에 근거하여 의사 결정하라, 그리고 그것은 주민투표 거부이다"라고 쓴 바 있지만
나와 다른 선택을 하는 이에 대한 비난과 공격을 의도하지는 않았다.
이것이 리버럴의 철학, 자유주의의 공리이다.


이상과 같은 근거에서 나는 한나라당 지지자, 전면 무상급식 반대자를 바보라고 말할 수 있는 경우는 매우 제한적이라고 본다.
우선 상대방이 어떤 준거들에 어떤 가중치를 부여하여 정당 지지를 결정하는지 불확실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몇 가지 사례들을 통해 설득력 보강을 고려했으나 생략하기로 한다.
대신 유용한 일반론을 하나 덧붙이고자 한다.
사람들이 말하는 것, 사용하는 용어와 그들의 의중에 있는 것이 항상 잘 대응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어떤 정치인이 좌파라서, 빨갱이라서 혹은 다른 어떤 이유로 싫다고 하는 사람을 생각해 보자.
그런데 해당 정치인은 좌파가 아닌 경우 말이다.
이 때 우리가 그/녀에게 할 수 있는 비난(?)은 그/녀가 좌파라는 용어의 의미를 잘 모른다는 정도일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그것이 비난받을 일이라면, 그로 인해 비난받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매우 드물 것이다.)

그/녀를 바보라고 할 수는 없다.
바보의 의미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그것을 얻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이라면 말이다.
(다른 의미로 바보라는 용어를 사용할 수는 있겠다.)
왜냐하면, 그/녀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대체로 아주 잘 알기 때문이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과 싫어하는 정치인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녀는 이 실체적 차이를 정확하게 인지한다.
정확한 용어를 사용하여 자신의 가치를 개념화하지는 못하지만 말이다.
'좌파'라는 표현이 다소간 자의적으로 잘못 채택된 기표일 뿐, 그들의 선택에는 상당한 일관성이 있다.

"내 돈으로 부자애들 밥먹이기 싫다"는 언표도 비슷하게 해석할 수 있다.

이런 기표 오류(?)들은 사실 양쪽 모두에서 나타난다.
여러 가지 예가 있겠지만,
목하 논의 중인 '바보'가 그런 식으로 사용되기도 하는 것 같다.
말하자면, 
'당신은 바보야'라는 언표가 의미하는 바가
'당신의 입장은 다원주의, 정치적 다양성의 이름으로 존중할 수 있는 범위 밖에 있는 것 같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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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맥락에서 a, B맥락에서 b, C맥락에서 c를 비난하는 사람이 겹치는지는 모르겠다.
겹치는 사람, 혹은 특정 사례에 해당하는 사람을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나 자신이 포함되는 개혁-진보 진영에서 흔히 관찰되는 대세적 비일관성을 환기하고자 할 뿐이다.
어버이 연합을 비판하는 사람이 그들의 계급 지지를, 계급 지지만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알고 있다.
그들의 불법성, 폭력성, 엥똘레랑스에 대한 비판은 매우 정당하다.
비슷한 다른 유보 사항은 생략한다.

대강 정리해 보자.

계급 지지는 분명 예측력이 있으나 제한적이다.
계급 지지가 더 가치있는 것은 아니다.
한나라당 지지자든 반대자든 계급 지지와 비계급 지지(계급배반지지)를 섞어서 구사한다.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고 그에 기초해서 비교적 일관성 있는 선택을 한다.
교육-교양-언론이 그들의 선호에 미치는 영향도 분명히 있으나, 일방적이지 않다.
그들은 그들의 선호에 부합하는 언론을 택한다.
계급, 즉 경제-화폐적 이익으로 환원되지 않는 이 선호를 충분히 존중하고 잘 이해-분석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 점을 인지하지 못하고, 계급 배반 지지 = 멍청한 지지 로 뭉뚱그리는 것은 여러 면에서 옳지 않다.
끝까지 그들을 설득하지 못할 값에라도 시민적 미덕을 유지하는 것이 낫다.
개념과 용어를 둘러싼 논쟁, 특히 구호를 선점하기 위한 경쟁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매력과 대안(능력)이 더 중요하다.

'나의 입장과 당신의 입장은 매우 다르다. 나는 당신의 입장에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라고 말해야 하는 상황에서
'당신은 바보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바보요 꼴통이다.
좌든 우든 바보와 꼴통은 되지 말자.
결국 내가 상대방에 대해 우위를 주장할 수 있는 것은 꼴통이 아니라는 것 뿐, 다른 차이는 공존, 존중해야 하는 것들이다.
당신이 자신을 개혁적,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든 말든, 개혁적 진보적 가치를 추구했었든 아니든
당신이 꼴통이라면 아웃이다.
꼴통아닌 보수보다 나을 것이 없다.

한국은 자유주의 만세 사회가 아니다.
한국 사회에 가장 필요하면서도 가장 결여된 것 중 하나가 '자유주의의 합리적 핵심', 즉 꼴통과의 명확한 차별성이다.
한국은 아직 "나님 짱, 너님 꼴통 바보. 끗."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비율이 너무 높다.

주: '자유주의의 공리'는 호레이쇼님의 표현, '자유주의의 합리적 핵심'은 진중권의 표현을 차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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