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살, 중학교 2학년 때 였다. 여름방학을 마치고, 덥고 늘어지던 여름날, 지루했던 수학시간. 지겹고 지겨운만큼 무심했던 수학책 앞에서 우리는 선생님께 첫사랑 이야기를 해달라며 졸랐다, 첫사랑 이야기도 좋고, 첫날밤 이야기도 좋고, 지리한 수학시간만 탈피할 수 있다면 무엇이라도 들을 자세가 되어있었다. 주뼛거리는 선생님에게 그럼 노래라도 들려달라고 애걸했고 선생님은 망설이다가 노래를 불렀다.

솔아솔아푸르른솔아, 셋바람에 떨지마라
창살아래 내가 묶인 곳, 살아서 만나리라

난생처음 듣는 노래, 어딘가 모르게 비장한 노래, 선생님은 몇 번이고 솔아솔아푸르른솔아 부분을 반복했다. 고개를 떨구고, 벌개진 얼굴로,

우리는 단지 수학시간을 벗어나고 싶었던 것 뿐인데, 왁자지껄했던 사춘기 소녀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도 고개를 들지 못했다. 아무리 고심해봐도 현대사를 거의 배우지 않던 중2짜리 소녀들이 그 노래가 담긴 의미를 역사를 알지 못했을 것 같다. 우리는 초등학교 들어가면서 이미 직선제를 통해 대통령을 선출했던 민주화 시대의 아이들이였으니까.

그런데 참으로 이상하지, 우리는 누구도 떠들지 않았다. 선생님처럼 아무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선생님의 노래를 들었다. 노래의 무게감은 그런것이였을까. 수업종이 치면서 선생님의 노래는 끝났고 그 묘한 분위기도 종식됐다. 그러나 그 날을 잊을 수가 없다. 살아남은 자의 부끄러움을 본 그 날을.


얼마전 회사에서 성희롱에 대해 항의를 했다. 나의 상사이자 실권자인 그에게 항의하기가 무척 어려운 일이였는데, 주말내내 갔던 시위현장이 떠올랐다. 100일을 넘게, 200일에 가깝게 크레인위에서 고공농성을 하던 김진숙이 떠올랐다. 시위내내 촛불시위가 이명박 정부의 막장을 잠시 지연시키기만 했을 뿐, 바꿀 수 없었던 이유에 대해서, 일상 속에서 투쟁하지 못했기때문이라는 비판을 했던 것이 떠올랐다. 거의 매일 시위장을 찾았지만, 나처럼 일상 속에서 투쟁하지 못했기때문에 우리의 시위는 어떤 구심점도 되질 못했기때문임이 떠올랐다. 여전히 해고에 대한 공포에 대해 떨고 있는 노동자들이 도처에 널린 이유는. 그래서 목숨걸고 시위할 수 밖에 없는 노조가 도처에 널린 이유는.
일상 속에서 투쟁하지 않았기때문에, 내가 퇴근 후 출근 전까지만 투쟁했기때문에...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때 항의는 살아가는 자의 부끄러움의 표시였다. 돌이켜생각해보면 별 거 아닌 그 항의가, 나로서는 최선이였다는 비겁한 변명으로 부풀려진다. 

김진숙 지도의 고공농성은 200일이 훌쩍 넘었고, 여전히 한진노동자들의 해고는 철회되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일상 속에서 투쟁하지 않고 있다.

그 여름, 수학선생님의 살아남은 자의 부끄러운 그 얼굴을 지금 내가 하고 있지 않나. 살아가는 부끄러운 얼굴로. 그 노래를 읊조리면서.
살아가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을 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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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희망버스가 이번주 주말27-28일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서 열립니다. 살아가는 자의 부끄러운 얼굴을 이고, 다시 거리로 향합니다.

시위에 참석하는 이유는, 머릿수를 보태기 위해서라는 말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게 부끄럽기때문입니다. 아니, 이 험악한 시대를 편안히 살아가고 있는 게 부끄럽습니다. 그 험한 시대를 편안히 살면서, 안도하기 위해서, 비겁하게 살아가는 게 부끄럽습니다. 일상을 담보하지 못한 부끄러움에 면피하고자 합니다.

2008년 광화문을 기억하면서, 그 광장에서 많은 분들과 함께 하면 좋겠습니다. 혼자 가기 쑥쓰러우신분, 같이가요. 쪽지주세요 ^^

 

 

일정은 아래와 같습니다.

1. “긴 말은 필요 없다” - 만민공동회 : 8월 27일(토) 오후 6시, 광화문 네거리

- 준비물 : 희망의 버스 승객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 자신이 만들고 싶은 프로그램을 준비해주십시오. 모두가 이야기하는 자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2. “세상을 여는 아침 산행” - 청와대 위에서 깔깔깔, 8월 28일(일) 오전 10시~12시, 청와대 앞산 인왕산

준비물 : 희망의 버스 승객들은 가벼운 등산복과 운동화, 그리고 물과 약간의 먹을 거리를 준비해주십시오. 그리고 소리나는 물건(호루라기나 부부젤라 등)을 갖고 오시면 좋겠습니다 

3. 거침없이 하이킥, 8월 28일(일) 오후 2시, 한진중공업 서울 본사

- 준비물 : 희망의 버스 승객들은 한진중공업 조남호 회장에 대한 불타는 분노와 반드시 김진숙과 정리해고자들을 살리자는 마음을 갖고 오시면 됩니다.

 

 

희망버스에 승차권이 있어요. 승차권을 구매 안하셔도 물론 오실 수 있지만 이왕이면, 구입하고 오시면 더 좋죠^^

구입 방법은 아래 은행계좌에 1만원 송금하시면 됩니다. 당연히 후원하시거나 더 송금하고 싶으면 더 하셔도 좋구요 ^^

■ 계좌 : 국민은행 702102-04-052110 문정현(희망버스)

■ 문의 : 070-7168-9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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