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 전 본 영화들에 대한 잡담....

2012.01.20 14:11

조성용 조회 수:1664


[돌핀 테일]

친구 없는 외로운 소년과 돌고래... 이 둘만 언급해도 여러분들은 무슨 이야기가 나올지 금세 짐작 가실 것이고, [돌핀 테일]은 딱 그 정도입니다. 플로리다에 사는 주인공 소년인 소여 넬슨은 외톨이 신세로 여름 학기를 보내왔는데, 우연히 해변에 떠내려 온 부상당한 돌고래 윈터와 마주친 덕택에 그의 인생은 전보다 밝아집니다. 윈터가 치료와 보살핌을 받고 있는 수족관을 두리번거리는 동안 여자 친구도 사귀는 건 기본이고, (적어도 넬슨의 관점에서는) 윈터와도 가까워지지요. 한데 사정상 윈터의 꼬리를 절단할 수밖에 없게 되자 넬슨은 이에 대한 해결책을 찾고자 노력하고, 그리하여 재활 센터의 한 의수 전문가의 도움을 받게 되지만, 윈터에게 꼬리는 달아주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야기나 캐릭터들이 너무나도 전형적이니 실화를 부풀리고 당의를 입힌 허구라는 빤히 티가 나지만(한데 엔드 크레딧 직전에서 보여 지는 대로 정말 그런 일이 있었고, 문제의 돌고래는 영화에서 자기 자신으로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돌핀 테일]은 노골적으로 감정 쥐어짜려고 들지도 않으니 점차 제 호감을 얻어갔습니다. 가끔씩 CGI를 쓴 티가 너무 나서 거슬린 때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쓴 소리하고 싶지 않은 모범적인 가족 영화예요. (**1/2)

 




[Puncture]

[Puncture]의 도입부는 익숙한 설정의 실화 바탕 법정 드라마입니다. 미국 내 병원들에 물품을 공급하는 거대 기업이 간호사들을 병원에서 자주 일어나는 주사 바늘 찔림 사고에서 보호할 수 있게 고안된 플라스틱 주사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용 드는 게 싫어서 그 제품이 시장에 나오는 걸 막고 있다는 것이지요. 이 사실을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된 변호사 마이크 와이스와 폴 댄지거는 자신들이 지금까지 맡아온 푼돈 수준의 교통사고 부상 관련 소송들보다 훨씬 더 큰 건을 잡았다는 것을 깨닫지만 상대는 결코 만만하지 않고, 소송이 정식으로 시작되기 전부터 그들은 이를 금세 체감하게 됩니다. 가볍게 통쾌한 [에린 브로코비치]보다 진지하게 답답한 [시빌 액션]에 가까운 본 영화는 여러 면들에서 그다지 신선하지 않은 편이지만, 다행히 한 좋은 캐릭터를 갖고 있습니다. 가족이 딸린 현실적인 파트너인 댄지거를 늘 가슴 졸이게 만드는 변호사 와이즈는 술과 마약, 그리고 여자로 흥청망청 놀면서도 머리만큼은 잘 돌아가면서 나름대로 정의감을 가진 흥미로운 극단적 캐릭터이고, 크리스 에반스는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전혀 낭비하지 않았습니다. (**1/2)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데이빗 핀처의 신작인 본 영화는 1월 초에 미리 국내 개봉된 동명의 스웨덴 영화의 리메이크 작이고, 당연히 영화를 보는 동안 제 머리는 약 2년 전에 봤던 스웨덴 버전과 본 영화를 자동적으로 비교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줄거리는 크게 차이가 없지만, 리메이크 버전에선 여러 가지 차이점들이 여기저기 눈에 띱니다. 스웨덴 버전보다 원작에 더 가깝기도 하고(예를 들어 블롬크비스트에게 중요 단서를 주는 캐릭터가 다르지요) 혹은 변경된 결말에서 보다시피 원작에서 더 벗어나기도 하지요. 이야기와 캐릭터를 전달하는 데 우직하게 주력했던 스웨덴 버전과 달리 리메이크 작은 데이빗 핀처의 영화답게 스타일이 더 눈에 띠고 그러니 더 영화적이지요. 스웨덴 버전을 먼저 봐서 그런지 스웨덴인인 척 하면서 액센트 섞인 영어로 말하는 배우들이 좀 어색하긴 하지만 연기가 좋으니 문제될 건 없습니다. 누미 라파스의 연기가 워낙 강렬해서 그녀를 대체할 배우가 있나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루니 마라는 여주인공으로써 매우 좋습니다. 차가운 분노를 내뿜었던 라파스보다 덜 날이 섰지만 여전히 좋은 연기예요. 각자 나름대로의 장점들이 있으니 스웨덴 버전이 나은 지 리메이크 버전이 나은 지에 대해 딱 부러지게 말하기 힘들지만, 전 좀 더 직설적인 전자에 약간 더 끌립니다. 어쨌든 간에 후자는 핀처 영화답게 매끈하고 잘 만든 영화예요. (***1/2)

 



[장화 신은 고양이]

[슈렉] 시리즈는 1편만 있어도 크게 문제 될 게 없었습니다. 2편은 1편만큼 못해도 재미있게 봤었지만 동화 캐릭터들 뒤집기 놀이는 이미 신선도가 떨어져가고 있었고 가면 갈수록 이 시리즈는 지루하진 않았지만 심심해져만 갔습니다. 이러니 스핀 오프 영화인 [장화 신은 고양이]가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별 기대가 가지 않았지만, 결과물은 생각보다 괜찮은 애니메이션이었습니다. DVD로 직행했어도 아무도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겠지만, 최근 슈렉 속편들보다 재미있는 건 확실합니다. 별 두 개 반 주기에도 그러고 별 셋 주기엔 약하지만 장화 신은 고양이의 필살기에 홀린 제 판단은 결국 별 셋으로 기울어집니다. (***)

 

P.S. 카이스트 학생 분들께선 클라이맥스 보는 동안 상당히 재미있어할 겁니다




[원스 어게인]

다큐멘터리 [원스 어게인]는 영화 [원스]의 깜짝 성공 이후의 두 주연 배우들 글렌 한사드와 마르케타 이글로바의 관계를 중점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만든 사람들은 원래 이들 밴드인 스웰 시즌의 순회공연을 소재로 삼으려고 했는데 정작 그들 카메라 앞에서 현실은 예상치 못한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었습니다. 영화의 성공으로 오스카는 물론이고 그에 따른 상당한 유명세를 얻은 탓에 한사드와 이글로바의 관계는 각자의 부담과 이에 따른 갈등으로 흔들려지고 많은 분들도 알다시피 그들은 헤어지게 되었지요. 다큐멘터리는 공연 장면들과 함께 서로와 소원해지는 그들의 모습을 흑백 화면에서 덤덤하게 담아내고 그러다가 그들의 씁쓸한 순간에 다다르게 됩니다. (***)



[부러진 화살]

영화는 2007년에 일어났던 석궁 테러 사건과 그에 따른 법정 공방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한 수학교수가 시험 문제와 관련된 일로 부당하게 해고되고 이에 대해 소송을 걸었는데, 소송에서 진 후 다시 항소를 할 때 담당 판사가 정당한 이유도 없이 기각하니 화가 나서 판사를 찾아가 판사를 석궁으로 위협했고 그는 곧 체포되었습니다. 한데, 재판이 시작되면서 이 사건은 그리 단순하지 않아 보입니다. 물론 무기로 상대방을 위협한 건 잘못하긴 했지만 여러 의문들이 나오기 시작하거든요. 하지만 검사나 판사나 교수에게 징역 선고하는데 급급하고 교수 본인은 강직한 원칙주의자로써 할 말 다 하면서 자신의 변호사보다 더 변호사같이 행동하면서 법대로 할 걸 요구하니(교도소에서 형법 공부했거든요) 그 결과 이들은 재판장을 부조리극 무대로 만들어버립니다. 이렇게 재미있는 법정 장면들에 비해 법정 바깥에서 영화는 뻣뻣한 대사들과 불필요한 조연들로 인해 비틀거리지만, 다행히 영화의 재미는 크게 망쳐지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현 시점을 고려하면 영화 속에서 보여지는 일은 우리에겐 단순히 우스꽝스럽게 보이지 않지요. (***)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

영화는 나쁘게 말하자면 뻔하고 좋게 말하자면 부담 없는 온화한 가족 영화입니다. 주인공 벤자민 미는 최근에 아내를 잃은 홀아비 아빠입니다. 자녀들을 위해 이사하기로 마음먹은 그는 적당한 집을 찾아보다가 이상적인 집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 집은 하필이면 바로 동물원 바로 옆에 있습니다. 웬만한 사람들이라면 다른 집들을 고려해 보겠지만, 어린 딸이 좋아하니 벤자민은 집을 사게 되고 조건에 따라 동물원도 경영하게 되지요. 본 영화는 감독 카메론 크로우의 전작 [엘리자베스타운]보다 약간 더 나은 편입니다만 그렇다고 [제리 맥과이어][올모스트 페이머스]를 기대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크로우는 좋은 대사들을 쓸 줄 아는 좋은 각본가이고 느긋한 이야기 전개 속에서 여러 좋은 순간들이 있는 가운데 사운드트랙도 좋지만, 보는 동안 뻔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내내들었습니다. 배우들이야 좋지만, 조연들을 그리 잘 활용하지 않은 것도 좀 실망스럽지요. 어쨌든 간에, 영화는 연휴 가족 영화로써 꽤 적당합니다. (**1/2)




[팅커 테일러 솔져 스파이]

본 영화를 보는 동안 작년 여름에 다시 알렉 기네스가 출연한 TV 미니시리즈와 즉시 비교되었는데, [팅커 테일러 솔져 스파이]는 얼마 전 나온 데이빗 핀처의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과 유사한 경우입니다. 듀나님 표현을 빌리자면, 우직하고 충실한 각색물이었던 TV 시리즈에 비해 영화 버전은 훨씬 더 영화적입니다. [렛 미 인]에서 보시다시피 추운나라의 캐릭터들에 대해 일가견이 있는 감독 토마스 알프레드손은 원작 소설을 쓴 존 르 까레의 소설들에서 쉽게 기대할 수 있는 그 우울하고 메마르고 편집증적인 70년대 분위기를 화면 속에서 잘 살려 내었고, 배우들 연기들도 훌륭합니다. 조지 스마일리를 맡은 게리 올드만은 당연히 알렉 기네스와 자동적으로 비교되는데, 올드만은 기네스만큼 조용하고 볼품없는 외관을 차분히 유지하면서 좀 더 냉혹한 버전의 조지 스마일리로써 이야기의 중심을 살며시 잡아갑니다(그 옛날에 자신의 호적수와 대면했던 때를 무덤덤하게 회고하는 순간은 특히 압권입니다). 원작을 이미 읽었기 때문에, 원작을 2시간 러닝 타임 안으로 압축한 영화를 보는 동안 감상에 그리 큰 문제는 없었지만, 원작을 안 읽으신 분들은 이 덤덤하면서 복잡한 내러티브 속에서 길을 잃기 쉬울 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어느 정도의 집중이 요구되는 게 문제이지만, 일단 기회를 한 번 주시면 실망하지 않으실 겁니다. , 그리고 이 첩보극은 제임스 본드 영화가 아니니 액션이나 강도 높은 서스펜스를 함부로 기대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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