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6~028. 신부이야기 1-3


영국 메이드와 귀족의 비현실적인 사랑 이야기를 아름답고 포근하게 그렸던, 메이드 인형 모으기 취미가 있는 <엠마>의 작가 모리 카오루의 신작입니다.  내용은 제목 그대로예요. (엔하위키에 따르면 19C 중후반 우즈베키스탄 언저리의) 유목민들의 '신부'들 이야기지요. 


1,2권은 아미르라는 20대 초반 아가씨가 12살짜리 꼬마신랑(크르르크)에게 '시집 간' 이야기입니다. 이들의 결혼 이야기는 아름다운 동화와 같습니다. 


첫 이야기의 신부인 아미르는 청순하고 순진하면서도 글래머인 미녀 전사라는 비현실적 조합의 여주인공입니다. 아름답지만 강하고, 단순하지만 지혜롭고, 진하고 풍성한 흑발 머리의 풍성한 글래머지만 아직도 남자에게 사랑을 느껴본 적이 없는 순진함을 갖춘, 사냥 솜씨가 기가 막힌 천하 명궁이지요. 그런 여자가 12살짜리 꼬마신랑에게 서서히 연심을 느낍니다. 네. 환타지입니다. 거의 완벽한 그녀의 한 가지 흠은 나이가 많다는 것. (20살-_-;;;;)  그녀의 아름다움과 툭 하면 선보이는 목욕신을 생각하면 독자 입장에서는 오히려 메리트지요. <엠마>의 여주인공이 메이드라는 것이 이야기 속에서는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을 위한 넘기 힘든 흠이지만, 독자들에게는 환타지의 현현 그 자체였듯 말입니다. 그녀의 꼬마 신랑인 크르르트는 신부 나이가 많은 것 때문에 주변에서 떨떠름해하는 낌세를 느끼자 '아미르가 나이가 많아도 나는 전혀 상관 없어.'라고 아미르에게 직접 말하며 그녀를 위로하고, 실제로도 그녀를 좋아하는, 나름 현명하고 흐뭇한 꼬마신랑이에요. 그래봤자 여주인공의 신랑이지만. 


하여튼! 이 둘은 결혼까지 했으면서도 섹스는 커녕 서로 뒹굴고 노는 것이 애정 표현일 정도로 아이들같이 사랑을 키워갑니다. 그리고 그들 주변사람들도 다 선하고 정의롭습니다. 아름다운 신부와 현명한 꼬마신랑, 그리고 착한 사람들이 포근한 사랑과 소박한 삶을 이어나가며 만드는 아름다운 생활. 저는 경험해 본 적 없지만, 혹여 아름다운 유년기라는 것이 실제로 있다면, 그걸 형상화시켜놓으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비현실적이고 일견 퇴행적일 수 있지만, 그럼에도 매력적이고 포근한 세계지요. 


3권에 가면, 1,2권에 주변인물로 나왔던 영국인 탐험가 (내지 인류학자)인 스미스씨가 꼬마신랑네 집을 떠나 여행을 떠나고, 그에 따라 처연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새로운 신부가 등장합니다. 앞으로도 아름답고 매력적인 여성들이 '신부'로 줄줄 선을 보일 것이 눈에 보이더군요. 각양각색의 여성들이 여친(섹스)상대로 줄줄 등장하던 할렘물이 이렇게 아름다운 신부이야기로 변할 수 있다니, 작가가 여자라서 가능하긴 했겠지만, 하여튼 참 훌륭한 덕력 승화사례인 듯 합니다. 탈라스는 남편이 죽으면 그의 남동생과 결혼하는 당시 유목민의 풍습에 따라 한 집안 4형제와 모두 결혼을 했지만, 신랑들은 다 죽고  시어머니와 단 둘이 사는 외로운 신부입니다. 우리나라라면 '남편 잡아먹은 년'이라며 구박 받으며 살겠지만 모리 카오루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는 그 정도의 팍팍한 현실은 없습니다. (메이드인 엠마를 성폭행하려는 부잣집 아들네미따위가 없었던 것 처럼요.) 그녀의 시어머니는 며느리의 행복을 위해 그녀에게 새로운 남편감을 찾아주려고 무진 애를 씁니다. 그런 와중에 탈라스는 여행 온 스미스씨와 얽히게 됩니다. 뭐 이런 식입니다. 고통스러운 현실도 적당한 수준까지만 고통스럽고, 전반적으로 아름답고 처연하고 사랑스럽습니다.


작화가 훌륭합니다. 유목민들의 현란 의상을 철저한 고증을 거친 후 하나 하나 펜으로 옮겨놓은 그 장인정신이 만들어 낸 그림이 너무 황홀해서, 그림을 보는 것 만으로도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그리고 섬세하고 아름다운 그녀의 그림은, 안 그래도 포근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훨씬 더 세밀하고 우아하게 만듭니다. 아미르가 입고 나오는 의상 하나 하나, 착용한 귀고리나 악세사리 하나하나가 구경거리에요. 그리고 그 배경에는 철저한 고증이 있습니다. 아마 이런 엄격한 고증 덕에, 이야기가 생생한 현실감을 얻은 것 같기도 합니다. 


당시 유목민들 결혼 생활의 잔인한 현실을 미화시켰다는 비판 의식을 가동하지만 않는다면, 적어도 읽는 순간에는 행복해지고, 포근해지며, 즐거워지는 만화입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여자들과 훌륭한 복식과 배경을 감상하는 재미도 훌륭합니다. 







<>

029. 아프니까 청춘이다.


이 글을 쓴 후 듀게 miho님께서 빌려주셔서 읽게 되었습니다.

 

감상 하나. 마음씨 좋은 교수님이 서울대 학생들에게 들려주는 인생 이야기 정도로 생각하고 읽으면, 읽을 만합니다. 책을 여러 권 내셨고, 글을 잘 쓰고 싶은 욕심이 많으셔서 필사도 꾸준히 해 오셨던 분답게, 교수님이 글을 잘 쓰시더군요. 더구나 보통 교수님들보다 훨씬 많이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눈 경험이 있어서, 그 나이 때 아이들이 무엇 때문에 고민하는지 어느 정도는 알고 계신 분인 것도 확실합니다. 그들에게 본인이 해 줄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꼰대의 뻔한 잔소리로 들리지 않도록 조심해가며, 친밀하고 따듯한 어투로 써서 들려주고 계시고요. 더구나 본인 경험에서 우러나온, 혹은 수많은 학생을 상담하는 와중 느낀 이야기들이 많아서, 꽤 진정성 있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적어도 20대 초반 아이들이 들어서 해가 될 이야기는 없습니다. 책을 읽고 그네들이 얼마나 감동할지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만.

 

감상 둘. 네. 서울대학교 교수님이니만큼, 그 대학 아이들의 고민을 주로 들으셨지요.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당장 돈을 벌기 위해 일용직과 아르바이트 자리를 전전해야만 하는 아이들의 찢어지는 고통을 들으신 것이 아니에요. 당연히, 눈높이가 다릅니다. 미래가 불안해서 사법고시 행정고시 준비 하는 아이들에게 정말 네 꿈이 그것이냐 더 소중한 것이 있지 않으냐 묻는 것이지, 매일 생활비 마련을 위해 막노동판이나 야간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미래도 생각할 겨를도 없는 학생들에게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더구나 이 교수님 표면상의 최악의 커리어 실패는 서울대 법대에서 방황한 것, 행정고시 3년 준비하다 실패한 것, 그리고 교수 임용 지원했는데 떨어져서 1년간 고통스러웠던 것입니다. 주관적 고통의 크기는 원래 객관적인 상황에 비례하는 것이 아닙니다. 즉 그 당시 정말 고통스러웠을 수도 있고, 그 안에서도 아주 든든히 버텨내시기도 하셨으며, 그 때 쓴 일기를 (잘 쓰셨더군요. 일기를 그렇게..) 공개하시기도 하셨지요. 그리고 그때의 경험이 이런 책을 쓸 수 있는 바탕이 되기도 했을테고요. 하지만 아무리 현명한 사람이라도, 자기가 듣고 경험한 한도 내에서 생각하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교수님은 딱 자신의 인생경험을 토대로, 자신이 접한 (서울대) 학생들과 비슷한 부류의 학생들에게, 진지하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딱 거기까지 에요. 그것을 감안하고 읽는다면, 크게 실망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에게 필요한 교훈이 꼭 그들에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독자들이 이런 부분까지 세심하게 고려하며 읽을 것 같지는 않고 사실 그럴 의무도 전혀 없으니, 하루 생존하는 것이 힘겨운 사람들이 이런 책을 읽고 ‘나한테는 너무 배부른 소리밖에 없군.’하는 생각에 울화가 치밀더라도 당연할 것 같습니다.

 

 

감상 셋. ‘니들 왜 이러니’ ‘요즘 애들은 하여튼’ 하는 부분이, ‘그러지 말고 이렇게 하라’는 내용 없이 좀 길어지면, 좀 지루해집니다. 요즘 애들이 그럴 수밖에 없는 시대 구조적 상황들이 분명 있는데, 그 부분에 대한 자세한 이해가 없는 듯 보일 때는 많이 허망하고 책의 힘이 떨어집니다. 그리고 개인이 변하면 어느 정도 해결이 가능한 문제들도, 구체적인 How to는 잘 없습니다. 그러니까 어머니, 아버지의 착하고 자랑스러운 아들, 딸로만 자라왔는데, 대체 어떻게 심리적으로 독립할 수 있는지,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음에도 자꾸 게임에만 몰두하게 되는데, 이걸 어찌 그만둘 수 있을지, 방법이 없어요. 이게 해 보면 알지만, ‘그만 해야지!’ 해서 쉽게 바뀌는 게 아니지요. 그래서 조심스럽고 친근한 어조라도 누군가는 꼰대소리로 들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런 문제는 원래 그렇습니다. 간단한 해결 방법이 없다고요. 게임 중독 좀 끊으려고 병원에 갔다가 자아를 싹 다 구조조정해야 해서 본격 심리상담을 받아야 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뻔한 소리가 진실에 근접한 때도 종종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이어트 하려면 ‘적게 먹고 많이 운동해야 한다.’는 게 결국 진리인 것과 같죠. 너무 자주 들어서 듣기 싫은 소리고, 막상 실천하려면 죽을 만큼 힘들고, 그래서 돈 주고 사람까지 붙여야 할 때도 있고, 그래도 중간에 포기하게 되어 도로아미타불 되기를 십수번 반복해야 되어서 그렇지.

 

이런 쪽 책을 오랜만에 읽어서 감이 좀 없긴 합니다만, 전 나름 잘 읽었습니다. 요새의 저라면 제 돈 주고는 안 샀을 것 같지만, 빌려 읽어서 그런가, 괜찮았습니다.  제가 원래 자기계발서나 내용 없는 베스트셀러 책도 상당히 많이 읽어치운 사람이고, 그래서 그쪽 책에도 너그러운 편이며, 사회 구조적 변화보다 개인의 변화에 우선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취향이라는 것을 감안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20대 청춘의 당사자가 아닌 것도 크게 작용한 듯 합니다. 원래 지내놓고 보면 '그때 그랬어야 했는데..'싶은 것들이 있지요. 학창시절로 돌아가게만 해준다면 죽도록 공부하겠다는 사람들이 막상 지금 일은 열심히 안 하는 것 처럼요. 20대 초반의 저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그래봤자 그때 저는 이 이야기를 들어먹지 않을 것 같아 씁쓸하긴 합니다만. 원래 다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6397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5000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3939
73444 왜 뜬금없이 고래잡이를 하겠다는 걸까요? [7] Planetes 2012.07.06 2629
73443 3달뒤 5km 마라톤 나갈수 있을까요.. [7] 블랙북스 2012.07.06 1903
73442 오키미키님 읽어보세요 [9] Weisserose 2012.07.07 2780
73441 (듀나인) 캐빈인더우즈 보신분들께 질문 [11] 울지마링 2012.07.07 2153
73440 오랜만이에요! 빠이입니다~ [16] 멍멍 2012.07.07 2298
73439 예의없는 사람 주위에 많지않나요? [11] 황재균균 2012.07.07 4053
73438 다이어터 정주행 했어요 [4] 난데없이낙타를 2012.07.07 5352
» [100권] 신부 이야기 (만화!), 아프니까 청춘이다 [4] being 2012.07.07 3571
73436 식전부터 솔로들 열받는 사진 [4] 가끔영화 2012.07.07 3871
73435 QPR 이적 도대체 누가 가는건가요... [12] 달빛처럼 2012.07.07 3554
73434 제가 듀게 추천으로 이 책을 읽는데 감상 포인트좀/ 운동 잡담 [12] loving_rabbit 2012.07.07 2290
73433 크로아티아 여행 가시는 분들을 위한 사소한 정보 [14] 열아홉구님 2012.07.07 5628
73432 최윤영 사건 말이죠 [3] 가끔영화 2012.07.07 4058
73431 국내 최고의 커피점 프랜차이즈 랭킹 [15] 무비스타 2012.07.07 6683
73430 톰밀러 나비효과.jpg [1] 자본주의의돼지 2012.07.07 4100
73429 마스터 셰프 코리아 11회 잡담..(탈락자 스포일러 있음) [11] 가라 2012.07.07 5464
73428 토요일 아침을 맞이하야... [1] Weisserose 2012.07.07 973
73427 (바낭)헤어진 사람을 만나러.. [1] 춘춘! 2012.07.07 2043
73426 [기사] 2040년 한국 [2] espiritu 2012.07.07 2045
73425 남자가 풀 수 없는 문제 기타 등등에 관해서 [15] 디나 2012.07.07 3460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