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럽지가 않어

2022.06.25 13:31

Sonny 조회 수:644


작품의 개성은 늘 신선하거나 새롭게만 다가오진 않을 것입니다. 어떤 작품은 낯설어서 불편하기까지 하죠. 그렇게 불편한 새로움이란 기존에 전혀 없던 무엇이 튀어나온 당혹스러움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전통전 문법에 따르지 않는 당돌함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노래라면 이래야하는데. 가사는 이래야하는데. 멜로디는 이래야하는데. 일찍이 장기하가 뜨게 된 곡이었던 '싸구려 커피' 역시 그랬습니다. 대중가요라면 상업적으로 조금은 더 매끈해야할텐데 가사는 지나치게 일상적이고, 노래를 부르기보단 넋두리같고, 자기연민의 흔적은 있지만 그렇다고 자길 위로해달라거나 다같이 슬퍼하자는 적극성은 온데간데 없고. 올해 2월달에 나온 장기하의 '부럽지가 않어'도 장기하 특유의 궤 안에서 또 다른 낯설음을 던져주는 노래입니다. 전 이 노래를 최근에 들어봤는데 처음에는 뭐야... 하다가 지금은 떨쳐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노래가 좋아서 감긴다기보다는 거슬리는 느낌을 떨치지 못해서 그걸 해소하고자 듣고 또 듣는다는 느낌이랄까요. 


가사는 플렉스의 시대를 은근히 놀리고 있습니다. 각종 명품 브랜드와 외제차와 자기가 구입한 상품의 소매가를 다들 들먹이고 있는 힙합판에 특히 통렬하게 다가오지 않을까요. 롤렉스 시계를 20개를 차고 있어도 이 노래 하나만 갖다대면 정말 그냥 멍청이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입니다. 플렉스를 주된 테마로 삼는 모든 가사들은 자기 노래를 듣는 모든 사람들이 물질적 탐욕이 있고, 그 탐욕을 당당하게 뽐내고 싶을 것이라는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는데 세상엔 그런 사람들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냥 그런 사람들이 유난히 과대표되고 그걸 또 자기들끼리 승부처럼 겨루고 있고. 저는 돈이 많았으면 좋겠지만 로고가 큼직하게 박힌 트레이닝이나 번쩍거리는 시계 차고다니는 건 좀 촌스럽다고 생각하거든요. 한 때 돈다발을 뿌리고 다니던 디모 랩퍼도 요새는 힙합판에서 아예 보이질 않는데 한 때뿐인 돈자랑이 도대체 무슨 의미일지... 


'부럽지가 않어'가 유난히 꽂히는 이유는 이 노래의 관조적인 태도에 있는 것 같습니다. '디스'를 통해서 상대에게 직접적 모욕을 하고 상대의 모욕을 더 쎈 모욕으로 방어하는 힙합의 세계와 상반되는 태도죠. 요새 국힙이라면 "씨X X도 안멋있어 명품이 니네 인격까지 올려주냐 돈자랑으로 인기 끌어보려는 관종들 내가 다 쪽팔려" 이런 식으로 대상을 직접 저격했겠죠. 그런데 장기하는 그런 식의 대결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플렉스를 하는 가상의 상대를 다 받아주면서도 자신의 무관심을 계속 어필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마라는 게 아니라, 할테면 해도 되는데 자신은 전혀 거기에 동하지 않는다는. 물론 누군가를 놀리는 거니 완전한 무관심은 아니겠습니다만 그래도 모든 사람을 같은 속물로 상정하는 세계관을 반박정도는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정말이지 왜 저럴까 싶은.


기본으로 깔린 멜로디가 휘파람처럼 들립니다. 어떻게 보면 랩처럼 들리는 이 노래는 기존의 힙합문법을 벗어나서 구어체의 기묘한 박자를 따르고 있습니다. 자취를 해본적이 없다는 장기하 특유의 자기기만이 깔려있지만 (진짜 부러워할 게 없는 인간...) 그럼에도 이 노래를 듣는 게 즐겁습니다. 꼭 명품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일상을 늘 맛집과 여행과 다른 성취들의 연결로만 전시하려는 인스타 시대를 저격하는 것처럼도 들리네요. 어쩄든 이 기묘한 노래를 들으면서 점점 더 시원하고 나른해지는군요.




이덕화씨의 이 커버 영상도 엄청나지 않습니까. 노래 소화력도 대단하지만 노래의 테마에 완전히 부흥하는 내용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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