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타를 보고 왔습니다.

2012.09.08 01:55

menaceT 조회 수:4141

 

김기덕 영화를 중학생 때 케이블 TV에서 본 이후 처음 봤으니 굉장히 오랜만에 봤네요.

극장에서 본 것도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러니 김기덕 영화의 특징이랄 만한 것들을 거의 모르고 본 셈입니다.

 

김기덕 특유의 연기 지도 스타일인지 어딘지 뻣뻣하고 굳어 있는 듯한 연기가 처음에는 거슬렸습니다.

군데군데 상당히 낯간지러운 대사나 상황들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어느샌가 집중해서 보게 되더군요.

 

생각보다 굉장히 친절한 영화라 놀랐습니다. 김기덕 영화가 원래 이런지 새삼 궁금하더라고요.

제 편견인지는 몰라도 전 김기덕 영화가 굉장히 극단적이고 불친절하며 난해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거의 핵심 상황들에 밑줄 쫙쫙 그어가며 떠먹여 주는 식이더군요.

보통 그런 영화를 썩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 '피에타'는 상당히 좋았습니다.

 

(이 아래로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일단 강도와 여자(크레딧에 이름이 나왔는데 까먹었습니다.)가 가까워지는 과정을 그리는 부분이 꽤 인상 깊더군요. 강도가 돈을 갚지 않은 사람들을 찾아가는 과정이 강도와 여자가 가까워지는 과정과 함께 그려지는데, 그 흐름이 의미심장하게 보였습니다.

 

처음 강도가 찾아간 곳엔 부부, 그것도 성교 중이던 부부가 있었습니다(이전 장면에서 강도는 여성과 섹스하는 꿈을 꾸며 사정하는데, 이와 크게 대비되는 바입니다. 혼자 혹은 같이.). 영화는 의도적으로 셔터문을 사이에 두고 남녀가 번갈아가며 강도와 마주하게 합니다. 강도는 여자와 셧터 안에 있다가 남자 쪽으로 여자의 브라를 던집니다. 그 뒤 남자가 들어오자 강도는 남자의 팔을 망가뜨리곤 셔터를 올려둔 채 여자가 남자의 그 꼴을 마주하게 합니다. 자신이 혼자인 것처럼 그들 남녀 사이도 의도적으로 갈라 두었다가 하나하나씩 괴롭힌 뒤에 그 흔적을 진열하죠.

 

이 뒤에 강도가 처음 여자를 마주합니다. 남녀가 함께 있었고 그 사이를 의도적으로 갈라두고 해를 끼쳤던 강도, 그의 옆에 여자가 자신이 '어머니'라며 다가옵니다. 이젠 강도가 있는 그 자리가 남녀가 함께 있는 자리가 되어갑니다. 카메라는 일부러 강도와 자신을 '어머니'라 주장하는 여자 사이를 뚝뚝 끊어가며 보여주는 샷을 많이 넣는 듯 보이더군요.

 

두 번째에는 모자가 같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강도가 문지방을 사이에 두고 어머니와 아들을 갈라두더니 일부러 어머니 앞에서 아들을 때립니다. '어머니'라 주장하는 여자로 인해 '어머니의 부재'를 더욱 실감한 그는 이런 방식으로 나름의 화를 풉니다.  이 때 강도와 아들을 사이에 둔 채 두 어머니가 마주 서서 이 상황을 지켜봅니다. 그리고 강도는 아들을 멀리 데려가 일을 마무리짓습니다.

 

이 뒤에 여자가 '섬집 아기'를 부를 때 둘 사이의 모종의 관계가 형성되는 듯한 장면이 나옵니다. 강도는 그녀를 집에 데려옵니다. 그는 여자의 입에 자신의 살을 '삽입'하고 여자의 성기에 자신의 성기를 다시 한 번 '삽입'합니다.  강도는 지금까지 늘 혼자 일을 처리했고 일이 끝나면 여자의 나체를 그린 그림에 꽂아두었던 칼로 고기를 손질해 먹고 그 뒤에 다시 그림 속 여자의 살에 칼을 꽂아 두곤 했습니다. 가족이 있는 자들을 해한 뒤, 자신 속의 허함을 채우듯 고기를 먹고, 자신에게 부재한 여성(어머니이든 아내이든 어떤 역할이든 '여자'.)의 상징에 칼을 꽂는 습관. 그는 그녀의 어머니에게 자신의 살을 먹임으로써 자신의 습관을 어머니로 하여금 재현케 해 동질감을 형성하고, 나아가 성기를 삽입함으로써 여성으로서의 그녀의 존재를 확인하고 나아가 일체감을 느끼려 합니다.

 

세 번째에는 남자가 혼자 있습니다. 강도가 찾아갔을 때 그는 이미 자살한 뒤입니다. 강도는 자살한 그의 사진을 찍더니 집에 홀로 있던 그의 어머니를 찾아가 그 사진을 보여줍니다. 여전히 위악적으로 굴지만 나름의 배려가 슬슬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이와 동시에, 이쯤 되면 강도와 여자의 관계가 가까워질수록 그가 해하려 찾아가는 사람들과 그들의 여자 사이의 물리적 거리가 점차 늘어남이 보이게 됩니다. 처음에는 성교 중(아예 일체)인 남녀(이들은 강도에 의해 셔터문을 사이에 두고 갈라짐), 그 뒤에는 한 방 안에 있던 모자(이들은 강도에 의해 멀찍이 떨어뜨려짐),  그리고 그 뒤에는 아예 남자 홀로 남아있는 모습을 보게 되고, 오히려 그와 여성의 존재를 강도가 사진으로서 이어주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역할의 반전. 강도에게 부재한 것들이 주는 상실감을 강조시켰던 그 과정이 어느새 강도와 동질적으로 변해가기 시작합니다. 다만 이때 강도는 여전히 위악적인 모습이 잔존해 있어 그 할머니의 유일한 가족이나 다름없는 토끼를 그 집에서 데려옵니다. 나중에 어머니라 주장하는 여자가 그 토끼를 풀어주고 그 토끼는 차에 치여 죽습니다. 뒤에 이어지는 '그 여자에 의한 가족의 죽음'의 복선이죠. 더불어 여자가 강도에게 먹으라 준 장어(여자의 이름과 번호가 태그로 붙어 있습니다.)를 강도는 키우는데 여자가 요리로 만들고, 이를 강도는 먹지 않고 여자 혼자 먹는 것도 복선이라 할 수 있겠네요.

 

네 번째 경우에도 남자가 혼자 있습니다. 이제 여성의 존재는 남자의 전화 통화를 통해 유추할 수 있을 뿐입니다. 강도가 찾아가는 대상과 그 대상의 여성 간 물리적 거리는 더욱 멀어졌지만,  이전 경우들의 요소들(부부, 어머니와 아들)이 합쳐져 아버지-어머니-아이의 구도로 이루어진, 아마 강도가 무의식 중에 바랐을 가장 온전한 가정의 형태를 띄고 있습니다. 강도는 여기서 아예 해를 가하기를 포기하고 그에게 부럽다고까지 말하죠. 더 이상 위악적으로 굴기를 포기합니다. 그러나 그 남자는 가정을 위해 스스로를 해합니다.

 

다섯 번째 경우에는 남자가 혼자 있을 뿐 아니라 그 어떠한 여성의 존재도 유추할 수 없습니다. 그 역시 스스로 생을 포기합니다. 강도의 변화 양상을 따라 그가 만나는 대상들도 점차 바뀌어 오며 바로 이전 단계에서는 가정의 형태까지 갖추고 있었는데, 여기서는 왜 혼자일까요?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를 확보했다 여긴(세 번째 단계와 동일) 강도가 그 이상의 가정의 형태까지 동경하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네 번째 단계) 그 이후를 보여주는 게 아닐까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게 복선이더군요.

 

 

여자는 아들의 죽음에 복수하기 위해 강도에게 가족을 잃은 슬픔을 고스란히 안겨주려 했고, 그래서 그에게 '어머니'를 만들어 주고 그 '어머니'를 죽이고자 했습니다(이 반전이 드러나기 전에 시계가 거꾸로 잡힌 장면이 한 번 나오는데, 반전이 드러난 뒤엔 시계가 제대로 선 모양으로 다시 잡히더군요.). 그러나 그녀도 어느새 그가 자신에게 부재한 것들 때문에 더욱더 악하게 자신을 포장해 왔음을 이해하게 된 겁니다.

 

여자가 아들의 생일날 강도를 떠났을 때 강도가 어머니를 찾던 중(강도는 어머니가 사라지자 자신이 해했던 이들을 하나씩 찾아가게 됩니다. 본의 아니게 자신을 되돌아볼 기회가 생기죠.) 여자의 아들이 죽은 바로 그 휠체어에 앉아 눈물을 흘립니다. 그때 그 여자가 강도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며 경고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건 뒷부분을 보면 아시겠지만 일종의 환상 장면이죠. 그런데 이 환상 장면이 꽤나 의미심장합니다. 강도가 그 휠체어에 앉기 전에 여자가 그 휠체어에 앉아 '섬집 아기'를 부르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전에 '섬집 아기'는 강도가 여자를 집에 들여오게 되는 일종의 계기가 된 바 있습니다. 그 섬집 아기가 다시 나오고, 둘은 같은 휠체어에 번갈아 앉고, 그때 실제라면 불가능한 둘의 대면이 이루어집니다. 둘이 이미 어떤 의미에서 완전한 동질화를 이뤘음이 드러나는 장면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는 나중에 여자가 자살 직전에 아들에게 하는 고백에서 한 번 더 드러나고, 강도가 여자의 아들의 옷을 입은 채 여자와 그 아들의 시체 옆에 나란히 눕는 장면으로 제대로 형상화되죠. 여자와 그 죽은 아들이 이어진 것처럼, 강도는 이미 여자와 거의 하나라 해도 될 정도의 교감을 나눈 뒤이며, 그렇게 '또 다른 아들'이 된 채 그 옆에 나란히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일체성은 마지막 강도의 자살로서 완성됩니다. 강도는 여자의 아들이 죽은 그 갈고리를 자신의 목에 건 채, 자신이 해했던 이들의 손을 빌려 자살합니다.  자신의 행위의 벌을 받고, 동시에 자신에게 없었던 그러나 새로 생기게 된 가족에게로 돌아가는, 이중적 의미의 죽음입니다.

 

(한 편, 여자와 강도가 죽기 전에, 두 번의 복수 시도가 있었습니다. 두 번째 과정에서 만난 그 모자가 시도한 복수였습니다. 아들은 강도의 어머니(로 추정되는 여자)를 인질 삼아 강도가 스스로 죽게 하려 하는 반면, 그 어머니는 강도의 어머니(로 추정되는 여자)를 죽임으로써 강도를 파멸에 이르게 하려 하죠. 그 어머니의 시도가 강도 앞에서 자살하는 여자의 모습과 겹쳐 그 의미를 몇 갑절 더합니다. 또한 강도가 어머니를 찾아 헤매던 중 다시 만난 부부는 강도가 남편을 다시 해하는 듯 보이자 그 아내가 소주병으로 맞서고, 어떤 부자는 강도가 아버지를 협박하자 그 아들이 연필로 강도를 찌르죠. 이 영화 안에서 시도되는 복수들은 모두 '가족'이란 울타리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영화는 어머니의 복수, 그리고 한 남자의 자기 성찰의 과정을 청계천 상인들의 모습과 대비시킵니다. 기계들이 즐비한 남성성의 공간, 그 안의 남성들, 그들 옆의 여성들, 가족들... 강도의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그들의 이야기는 점차로 강도의 이야기, 어머니의 이야기와 하나가 되어 갑니다. '돈'의 권력의 하수인으로 일하며 그들을 괴롭혀 온 강도, 강도에게 부재했던 가족, 그리고 그가 해했던 상인들과 그의 가족들, 복수조차도 '가족'의 이름 아래서 이루어지는 상황들. 김기덕 감독은 강도와 어머니의 이야기에 더불어, 청계천 상인들과 그 가족들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여보라 외치고 싶었던 게 아닌가 싶어요. 사람들이 강도에게 내뱉는 저주의 말들은 결국 청계천 상인들을 가차없이 대했던 자본 논리로 향하는 저주들이나 다름 없었죠...

 

(아침에 일어나니 또 생각나는 바가 있어서 거칠게나마 추가해 봅니다.)

위에서 말한 그 자본주의로 또 한 번 작품의 전체적인 흐름을 보면 또 재미있는 요소가 보입니다. 강도가 사람들에게 행한 행위는 자신에게 부재한 가족, 그 허한 내부를 사람들의 살과 뼈를 해한 뒤 고기로 채우는 행위예요. 전형적인 제로섬 게임, 자본 논리. '가족', 그 가족의 핵심인 '어머니', '여성'의 부재로 인한 그 내적 결핍을 그는 자본 논리를 통해 해소하려 하죠. 그 뒤에 그는 '어머니'를 되찾음으로써 그 자본 논리에서 벗어나 정신적 가치의 길로 향하나 싶지만, 자본은 그를 놓아주지 않습니다. 그가 어머니와 가까워질수록 그의 외부의 사람들은 점차 그들의 여성들과 멀어지는 그 양상 자체가, 그가 어머니를 되찾는 방식 역시 제로섬 게임의 논리를 담지하고 있음을 보여주죠. 그리고 그에게 찾아오는 복수 역시 마찬가지예요. 그에게 존재하지 않았던 어머니를 주었다가 다시 빼앗는 과정, 그 과정에서 한 어머니는 '자신의 진짜 아들'에게서 어머니를 빼앗아 강도에게 어머니를 선사하고 자살 과정에서는 다시금 강도에게서 어머니를 빼앗아 자신의 진짜 아들에게 다시 어머니를 돌려주죠. 한 쪽이 빼앗기지 않으면 한 쪽이 얻을 수 없는 이 철저한 자본주의의 공포, 강도가 타인에게 들이댔던 그 무시무시한 공포를 강도에게 돌려주는 것, 복수는 이런 식으로 찾아온 것입니다(이 과정에서 그 어머니는 강도를 '이해'하게 되지만 자본 논리가 지배하는 그 공간에서 그 '이해'는 아무 도움이 되질 않아요. 그녀는 복수의 완성을 위해 그대로 죽습니다. 그들의 이해가 어떤 의미를 갖는 순간은 강도까지 죽은, 그야말로 모두가 죽고 난 그 이후죠.). 강도는 어머니를 되찾고 싶어 하지만 자본 논리에 따르는 그 공간 하에서 무언가를 버리지 않으면 그는 어머니를 얻을 수 없습니다. 강도는 그 앞에서 자신의 목숨을 내놓습니다. 자본은 청계천이라는 공간을 그대로 제로섬 게임에 따른 하나의 경기장으로 만들었습니다. 고층 빌딩이 들어서기 위해선 기존의 상인들이 나가야 하는 공간이자, 누구 하나 나을 것 없이 부족한 사람들이 서로 빼앗고 빼앗겨야 하는 공간. '가족'이 주는 그런 정신적인 위안조차도 모두 자본의 논리로 변질시켜 버리는 그 가공할 공간. 김기덕의 '피에타'는 어떤 의미에선 자본주의의 망령, 그 악몽을 재현하는 시도로 보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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