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여행 후기 (아이 사진 주의)

2012.10.27 04:24

카페人 조회 수:4554

지난 번에 이런 글을 올렸습니다.

http://djuna.cine21.com/xe/?_filter=search&mid=board&search_keyword=%EC%A0%9C%EC%A3%BC&search_target=title&document_srl=4842680

 

다행히 여행을 잘 마치고 왔습니다. 다들 감사드려요.

 

처음 숙소로 들어서며 감탄했던 것은 석양이었습니다. 랭보와 모네를 떠올리게 하는... 태양이 녹아드는 바다.

숙소가 협재 해수욕장 인근이었습니다.

 

 

제주에서의 첫 식사는 연우네였습니다.

 

4인상 33000원입니다.
들깨드레싱의 샐러드, 도토리묵무침, 들깨녹차수제비와 옹심이, 산채비빔밥, 메밀전, 그외 국과 찌개, 밑반찬 등이 나옵니다.

제주 공항 근처에 작은 한옥인데, 입구 왼편은 식당, 오른편은 다실입니다. 아마 평소 다도 교육을 하고 차 관련 도구를 판매하는 곳인듯 해요. 식당 좌석이 모두 좌식이라 엄마가 앉기 불편해서 염치 불구하고 입식인 다실을 빌렸습니다. 덕분에 아주 장사가 잘되는 곳인데도 불구하고 호젓하게 식사를 즐길 수 있었습니다. 엄마 말로는 제주에서 먹은 식사 중 가장 맛있었다고 해요.
들깨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좋아할 만한 깔끔한 맛입니다. 양 적은 여자 넷, 남자라면 세 명 정도가 먹을 분량이 나와요.
조미료를 거의 쓰지 않아요. 주인 아주머니의 인상처럼 음전한 맛입니다.

 

이튿날 아침에는 여미지 식물원에 갔습니다. 아이가 떼를 부려서 제대로 보지는 못했어요. 아이와의 여행은 시한폭탄을 안고 달리기 하는 것과 비슷한 것 같아요.

하지만 예기치 못한 순간에 큰 기쁨을 주기도 하고요.

천제연폭포도 들렸습니다.

 

 

강정마을에도 들렸습니다. 포구에 앉아 배를 구경하는 아들.

 

 

점심은 벚꽃동산님이 알려주신 광동식당에서 먹었습니다.

돼지두루치기가 1인분에 7000원이에요. 무제한 먹을 수 있는 시스템이지만 먹다보면 그렇게 많이 먹게 되진 않아요. 원래 비계를 안먹는데 여기 비계는 쫀득해서 다 먹었어요.

붉은 양념을 한 돼지고기를 넣고 볶다가 거의 다 익으면 무채와 김치, 콩나물 등을 넣고 한데 섞어 먹어요. 제주의 돼지고기는 상당히 맛있는 편이에요. 냄새가 적고 육질의 감촉이 뛰어나요.

고기를 찍어먹는 자리젓갈이 매우 맛있고 돼지고기와 잘 어울려요. 상추 대신 갓과 배추를 주는데 야채 본연의 맛이 진하고 고기와 안성맞춤.

아주머니가 혼자 모든 식당일을 다하는데 상당한 구경거리예요. 엄청나게 손이 빠르십니다. 본인의 음식에 자부심이 강하시고요, 인심도 후해 우리에게 귤을 서른 개 넘게 싸주셨어요.

카드 결제는 기피합니다.

 

오후엔 제주 민속촌에서 놀았어요. 전 용인민속촌도 안가본 촌년이라 상당히 재밌었어요. 외국인이나 민속촌 처음 가보는 분들에겐 괜찮은 곳일 것 같습니다.

아이가 달릴 만한 장소가 많아요. 살아있는 동물들(돼지, 닭, 소, 말, 타조 등등)을 볼 수 있고 만질 수도 있어서 굉장히 좋아해요.

 

다시 중문관광단지쪽으로 가서 점보빌리지라는 곳에서 코끼리쇼를 보았어요. 아이가 잠들어서 어른들과 남편만 보고 저랑 아이는 차에 있었어요.

사실 이런 종류의 쇼가 내키지 않긴 한데 어른들은 하루에 한가지 정도(?) 이런 볼거리를 넣어드리면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마침 아이도 민속촌에서 하도 달려서 자야했고.. 

 

저녁엔 모슬포 항 주변의 도매상  '그린수산'에서  10kg이 넘는 큰 방어를 30000원에 회로 떠왔어요. 시어머니가 추천해주셨던 집이에요. 이제 막 잡아들이기 시작하는 제철 방어의 맛이 단연 최고에요.

상추와 풋고추, 초장뿐인 단촐한 상이지만 기름과 살이 오른 방어를 먹다보면 유명 횟집의 스끼다시는 생각도 안나네요. 어른 넷이 다 못 먹어서 절반 이상 남겼어요.

 

셋째날엔 신제주 오일장이 열리는 날이었어요. 엄마가 몇 해 전부터 벼르던 장이라 아침 일찍 나섰어요. 2일과 7일에 열린대요. 엄청나게 큰 장이 서요.

만약 제주에서 장을 보고 싶으신데 날짜를 못맞춰 가셨다면 서귀포나 다른 읍에 열리는 장에 가시면 되요. 하지만 규모는 두번째로 크다는 서귀포도 신제주 장의 1/3 수준이래요.

할머니장터라고 해서, 시골 할머니들께는 자릿세를 받지 않고 물건을 팔 수 있게 제주시 측에서 마련해 놓았어요. 할머니들의 사투리가 심하셔서 흥정에 어려움을 겪긴 했지만 재밌었어요.

우뭇가사리, 고사리, 귤 등을 샀어요. 아들이 바나나를 따먹어서 결국 한 송이 샀어요. 바나나를 입 한 가득 먹고 햄스터 볼이 된 아들.

 

 

 

점심은 산지물 식당에서 먹었어요. 친정오빠가 추천해줬어요. 제주 수협 근처의 식당이에요. 이곳에서 자리물회(12000), 회덮밥(90000), 성게미역국(8000), 갈치호박국(10000)을 먹었습니다.

자리물회는 괜찮은 편인데 제 입에는 좀 달고 짰습니다. 이 집의 별미는 성게미역국. 네 사람 다 칭송했어요. 성게의 단맛이 미역의 깊은 맛과 조화를 이루어 시원하고 맛이 그윽해요.

갈치호박국은 고추를 넣어 칼칼합니다. 단호박으로 단맛을 내는데 갈치와 잘 어울립니다. 다만 이를 비리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셔서 호오가 갈릴 듯해요. 성게미역국이 더 안전한 선택.

 

오후에는 한림공원에 갔습니다. 엄마가 식물을 좋아하셔서 여미지와 이곳 두 군데나 들렸는데 그럴 필요까진 없었던 것 같아요.

식물원 한 군데를 들리신다면 전 여미지보다는 한림공원을 추천합니다.

아이도 쌩쌩하게 잘 돌아다녔어요.

 

 

그리고 더마파크에 갔어요. 말을 탈 수 있는 곳도 많고, 마상쇼를 하는 곳도 많은데, 둘 다 할 수 있는 곳을 골랐어요. 여기에서 어른들은 쇼를 보시고, 저희는 말을 탔습니다.

마상쇼는 약간 모로코의 판타지아 같은 느낌인가봐요. 사극을 방불케하는 액션 활극이 펼쳐져서 상당히 재밌게 보셨대요.

 

저녁은 숙소 근처의 하귀에서 먹었습니다. 하귀 주민인 대학 동창의 추천을 받아 갔는데요. 해녀의 집 가기 전에 보이는 '해변여행'이라는 곳이에요.

일층은 카페 겸 바, 이층은 식당이고 다른 층은 펜션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럭조림 대자가 33000원인데, 매콤하고 맛이 좋다. 쫄깃한 우럭에 양념이 잘 배어 식감이 그만입니다. 무와 감자도 맛있습니다. 밑반찬도 정갈하고 하나하나 맛있는 편이에요. 된장국도 간이 적당하여 아이에게 주기에도 부담이 없었습니다.

 

넷째날 오전에는 매직아일랜드라는 곳에서 마술을 봤습니다. 엄마는 아주 예전에 워커힐에서 보셨다고 하고, 나머지 세 명은 처음 보는 거였어요.

아이가 자지 않아서 데리고 들어갔어요. 울거나 돌아다닐까봐 걱정했는데 의외로 굉장히 집중해서 보더라고요. 아이도 신기했는지. ㅋㅋ

굉장히 흔한 마술들이긴 한데, 어쨌든 실제로 보는 건 또 색다른 경험이었어요.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어르신들은 1일 1쇼를 원칙으로... 쿨럭.

 

아침을 부실하게 먹어서 조금 이른 시간에 성미가든에 갔어요. 제주 조천읍 교래리는 토종닭마을로 유명하여 인근에 이런 류의 가든이 많습니다.

하지만 끊임없이 관광객을 실어나르는 집은 이곳뿐이에요. 너무 사람이 밀려들어서 일찍 가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에 닭가슴살과 내장을 포로 떠서 샤브샤브로 먹고 남은 부위를 백숙을 해주고, 그 국물로 녹두죽을 쑤어 가져다 줘요. 전부 주방에서 해오므로 그냥 먹기만 하면 됩니다.

닭이 냄새가 전혀없고 살이 탄력이 있어요. 육지에서 먹을 수 없는 토종닭맛입니다. 색부터 달라요.(약간 진한 분홍빛)

곁들이 반찬으로 나오는 김치와 갓김치는 조금 양념이 진한 편이지만 백숙과 잘 어울립니다. 4인분 기준 55000원.

 

근처에 산굼부리가 있어요. 이번 여행에서 제겐 가장 인상깊은 여행지였습니다.

 

 

 이날 바람이 굉장히 거세어 좀 춥긴 했습니다만, 억새밭이 우거진 모습은 정말 장관이었어요. 아이와 함께 한참을 뛰놀다 왔습니다.

그리고 좀더 동쪽으로 가서 성산일출봉에 올랐습니다.  정상에서 본 제주의 모습이네요.

 

 

이날 바람이 너무 세서 우도에 들어가지 못한 게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산에서 내려와 세시 쯤 경미네 휴게소에 갔어요. 문어라면으로 유명한 곳이죠.

원 메뉴명은 해물라면. 오징어, 바지락, 문어 등 각종 해물이 풍성하게 들어있는 라면입니다. 단돈 5000원이고, 하나만 시켰더니 네명이라고 진짜 많이 줬습니다.

이거랑 문어 데친 것(15000원)을 먹었는데 그날 오전에 잡은 거라더니 과연 정말 맛있었습니다. 먹물이 막 쏟아지고 곱이 줄줄 흐르는 신선한 문어였어요.

옆에서는 족히 10kg는 됨직한 엄청나게 큰 광어가 헤엄치고 있었는데 오후 세시에 잠깐 간식 먹으러 들린 거라 차마 사지는 못하고 구경만 하고 있었습니다.

동네 아저씨들이 단돈 40000원에!!! 사서 소주랑 드셨습니다. 자연산 광어를 40000원에... 제가 태어나서 본 광어 중에 제일 컸습니다.

심지어 매운탕 먹기 싫다고 해서 머리도 막 버렸습니다. 주워오고 싶었으나 일정 때문에 두고 옴. ㅠㅠ

 

그리고 곶자왈로 갔습니다. 에코랜드로 탈바꿈한 곳이죠. 아이가 기차를 좋아해서 들렸는데요, 곳곳에 숨은 볼거리가 많은 곳이더라고요.

날씨가 많이 추워지고 잔디보수기간이라 두 군데 역밖에 정차하지 않지만 충분히 즐거웠습니다.

 

 

이날 저녁은 늘봄흑돼지에서 먹었어요. 공항 주변의 유명한 돼지고기집입니다. 이층으로 에스컬레이터까지 있는 거대한 건물이에요. 늘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습니다.

과연 허명이 아니라, 밑반찬이 전부 맛있고(고깃집 샐러드는 원래 안먹는데 그런 것조차 맛있음) 고기도 맛있었습니다.

삼겹살, 항정살, 가브리살을 먹었는데 고기를 두툼하게 썰어 서브하는 게 특징입니다. 삼겹살은 두께가 족히 1.2cm는 됩니다.

잘 익으라고 1mm단위로 칼집을 넣어놓았어요. 거의 끈적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쫀득한 질감의 돼지고기. 이것을 멸치젓에 찍어먹는데, 잘 어울립니다. 국과 찌개는 평범해요.

1인분에 14000원입니다.

 

어머님의 칠순, 남편의 생일, 아들 생일이 거의 비슷한 시기에 있어서 세 명의 생일을 한꺼번에 축하하는 자리를 가졌어요.

케이크에 초를 꽂고 파티를 하려고 하는데,

아이가 녹초가 되어 먼저 잠들어 버렸어요. ㅎㅎㅎ

간단하게 제주 조껍데기 막걸리와 맥주 등을 곁들여 케이크, 과일과 함께 먹었는데요.

나중에는 이상하게도 어머님들의 한풀이 비슷하게 되어버렸어요.

 

첨엔 시어머니와 친정엄마가 잘 여행을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많이 되었거든요.

성격도 무지 대조적이시고, 살아가는 방식도 전혀 달라서...

그런데 이상하게도 서로의 인생사를 털어놓으시다가 의기투합하셔서 장장 네 시간 동안 대하드라마를 쓰셨답니다.

남편이나 저도 처음 듣는 이야기도 많았고, 여튼 신기한 경험이었네요.

아 정말 우리 어머니 세대는 고생 많이하셨어요 ㅠㅠ

 

다음날 오전에 숙소 주변과 용두암 정도 둘러보고 점심 먹고 쇼핑 좀 하다가 저희는 김포로, 시어머니는 광주로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잠깐 제주도 사는 지인에게 들러 얘기 좀 하다 왔고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른이나 아이와 여행하시는 분들께 도움되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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