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5년이면 생각보단 오래 안 됐네요. 런닝타임은 2시간 6분. 어차피 저 빼고 보실 분은 다 보셨겠지만 스포일러는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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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 카일 리스는 어디갔죠. 그래뵈도 이 편에선 분명 주인공인데... ㅠㅜ)



 - 카일 리스 어린이가 터미네이터에게 쫓기던 걸 존 코너가 나타나 구해주는 걸로 시작합니다. 그 뒤는 다들 아시는대로이고, 결국 카일 리스가 타임머신을 타는 순간 동료인 척 숨어 있던 터미네이터가 존 코너를 덮치는 모습을 보며 카일 리스가 1984년으로 떠난다는 게 다르네요. 이후부터는... 음. 스토리 요약이 의미가 없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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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이 맡은 캐릭터를 언제나 철저히 지워버리는 천재 수비수(?), 자이 코트니 배우님께서 카일 리스 역으로 수고해주셨습니다.)



 - 듀나님께서 되게 적절하게 한 마디로 표현해 주셔서 그걸 훔쳐 쓰겠습니다. 이 영화의 스토리는 터미네이터 1,2를 소재로 쓴 팬픽이에요. 정말 이것보다 적절한 표현이 없네요.


 카일 리스가 1984년에 도착하는 그 순간부터 영화는 1편의 초반 명장면들 패러디처럼 흘러갑니다. 그럴 수밖에 없잖아요. 결국 1편 도입부랑 완벽하게 똑같은 이야기니까요. 그런데 잠시 후... 이야기가 꼬이기 시작하죠. 그 유명한 터미네이터의 불량배들 옷 강탈하기 장면에서 (이 부분에서 아놀드 할배는 cg의 힘을 빌어 리즈 시절 비주얼과 몸매를 뽐냅니다!) 갑자기 늙은 아놀드 배우님 비주얼 그대로의 늙은 터미네이터가 또 나타나서 젊은 자신과 싸움을 벌이고. 노숙자 옷 훔쳐 입고 경찰에게 쫓기던 카일 리스는 이병헌의 몸을 카피한 T-1000에게 쫓깁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또 1편과 2편의 명장면과 명대사들이 인용되구요. 결국 그러다가 카일 리스가 맞게 되는 진실은... 이미 과거가 바뀌었다는 겁니다. 스카이넷은 9세의 사라 코너에게 이미 자객을 보냈고, 인간들은 이미 T-800 모델의 아놀드 터미네이터를 보내서 지켰어요. 고로 카일 리스가 만난 사라 코너는 이미 본인의 도움 따위 별로 필요 없는 여전사 모드를 완성한 상태입니다. 심지어 1997년으로 가서 스카이넷의 숨통을 끊어 놓기 위해 일회용 타임머신까지 완성해놨네요. 아 정말 어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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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매가 리즈 시절 아놀드를 닮은 대역 배우로 촬영한 후 얼굴을 그려 넣는 식으로 만들어냈더군요. 사실 되게 자연스럽진 않았습니다.)



 - 이 영화에는 정말 아이디어가 많습니다. 이전작들의 명장면, 명대사 재활용을 위한 아이디어도 시작부터 끝까지 끊이지를 않구요. 또 성실하게도 이 '제니시스'만의 스토리를 위한 아이디어도 많이 만들어 놨어요. 초반엔 정말 할 일이 없어진 듯한 카일 리스에게 새로운 계시(!)를 던져줘서 할 일을 주는 동시에 영화가 단순한 1, 2편 종합 패러디 무비로 전락하지 않게 만들어 놨구요. 그렇게 새로운 스토리가 진행되는 도중에는 또 계속해서 낯익은 장면들, 캐릭터들이 다 조금씩 뒤바뀐 설정을 갖고 나타나서 조립되고, 사건을 만든 후, 해체되고 사라집니다. 


 아마 이런 영화의 성격 때문에 팬들에게 반응이 엄청 갈렸을 것 같아요. 진작에 이 시리즈에 대한 진지한 기대를 접은 사람들에겐 그냥 킥킥대고 웃으며 가볍게 즐길만한 영화가 되었을 수도 있고. 시리즈의 화려한 부활의 서곡이 되길 바랐을 팬들에겐 원작 모독이자 부관참시를 시도하는 불경한 영화가 되었을 수도 있구요. 그리고 뭐, 양쪽에 다 속하지 않는 관객들이라면 그냥 본인의 취향에 따라 갈렸겠죠. 이 얄팍하고 가벼운 유희가 취향에 맞느냐 아니냐. 뭐 전 그 어떤 소감도 다 그럴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3편 이후로 시리즈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접은 사람으로서 (그래서 그 이후로 나온 그 수많은 터미네이터 컨텐츠들 중 단 하나도 본 게 없습니다. 이게 처음이에요) 저는 그냥 시시콜콜한 즐거움을 느끼며 적당히 만족스럽게 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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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다른 터미네이터인데 얼굴은 계속 이 얼굴. 알고보면 스카이넷의 이상형 얼굴인가 봅니다.)



 - 앞서 말했듯이 이 '제니시스'는 기존의 터미네이터 시리즈들이 쌓아 올린 이야기들을 와장창 소환해다가 다시  써먹으며 한 없이 가볍게 만들어 버려요. 진짜로 가볍게 농담으로 써먹는 장면들도 꽤 되고, 진지하게 재활용되는 부분들도 역시 원작을 가볍게 만들어버리기는 마찬가집니다. 마치 루프물의 무한 루프 중 125번 루프 같은 느낌이 들어 버리니까요.


 다만 솔직히 전 이게 이 시리즈의 스토리들을 바라보는 관점 중 하나로서 꽤 설득력 있는 시각이라고 봤습니다. 

 1편의 스토리가 뭡니까? 결국 일종의 타임 루프물이잖아요. 다만 1편의 경우엔 그 루프를 닫아 버리며 완결이 되는 이야기였죠. 근데 여기에다가 속편을 만들어 버리면 닫아 버렸던 그 루프를 다시 열어서 반복 시키는 셈이 됩니다. 말하자면 관객들은 터미네이터 시리즈를 보면서 1번 루프, 2번 루프, 3번 루프... 이렇게 여러 회차의 루프를 감상하고 있는 거에요. 그렇다면 타임 루프물의 속성상 전작들의 요소들이 변형되어 재등장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팬들 입장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영화라는 건 이 영화가 존 코너를 다루는 태도를 보면서 납득을 했습니다. 이건 그냥 신성 모독이죠. 혹시 한 때 터미네이터의 팬이었다가 질려서 탈덕한 양반이 살짝 악의를 품고 쓴 각본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이 영화에서의 '구세주 존 코너'에 대한 푸대접은 정도가 심해요. 저도 보면서 굳이 이럴 필요까지 있었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만.


 근데 따지고 보면 이 시리즈 자체가 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 시리즈는 속편이 만들어진다는 것 자체가 전편 주인공들의 노고를 다 수포로 돌려버리는 거잖아요. 1편의 카일 리스의 희생은 2편 등장과 함께 헛짓이 되구요. 2편에서 다이슨이 보여줬던 그 숭고한 희생 역시 3편이 나오면 헛짓이 됩니다. 매번 그렇게 전개되던 시리즈인데 구세주 존 코너님도 한 번쯤 굴욕 당해줄만도 하죠. 그렇게 화 낼 일은 아닙니... (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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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적으로 존 코너는 너무 성스러워서 흥미가 안 생겨요. 이렇게 직접 등장해서 굴욕을 당해도 마찬가지긴 했습니다만.)



 - 제가 이렇게 나름 쉴드를 쳐주며 봤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눈에 밟히는 단점들이 많은 영화였습니다.


 일단 영화가 참 여러모로 존재감이 약해요. 가뜩이나 이미 전생(?)을 거듭해서 임팩트가 다 사라져버린 우리의 주인공 캐릭터들인데 그 역할을 짊어진 배우들도 그렇게 존재감이 강하지 않습니다. 배우들이 나쁘다는 게 아니에요. 그렇게 강렬한 인상은 주지 못한다는 거죠. 특히나 이번 편의 주인공인 카일 리스 역을 맡은 자이 코트니는 정말... 음... '다이하드5'에서의 존재감이 오히려 훨씬 강력했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구요. 사라 코너를 맡은 에밀리아 클라크도 뭐 참 예쁘고 열심히 하지만 너무 동글동글 귀여운 인상이라 좀 미스 캐스팅 같구요.


 새로 등장하는 나노 입자 터미네이터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연히 시리즈 중 가장 강력하고 유능하긴 하지만 T-1000을 처음 접했던 사람들이 받았던 충격 같은 건 불러오지 못합니다. 관객들이 이미 수많은 영화들에서 이와 비슷한, 심지어 더 강력한 로봇들을 실컷 봐 왔으니까요. 그리고 어차피 갖은 핑계와 설정을 동원해서 우리의 40년된 친구 T-800에게 파괴될 팔자라는 걸 모두가 알고 있으니까요.


 이 '제니시스'를 위해 준비된 새로운 스토리도 그래요. 앞서 말했듯이 팬픽 느낌이 너무 강하기도 할 뿐더러, 그냥 별로 재미가 없습니다. 팬픽으로서 전작들 명장면 재구성 퍼레이드를 굴러가게 하기 위한 틀 이상의 느낌은 전혀 받지 못했습니다. 그 와중에 인물들 감정선 같은 것도 정말 대충이었구요. (결국 카일 리스와 사라 코너가 사랑에 빠지는 장면에선 육성으로 웃었습니다. 니들 갑자기 왜 그러니?)


 마지막으로 액션도 뭐, 나쁘진 않았지만 특별히 인상에 남는 장면도 없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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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기력을 떠나서 너무 동글동글 귀엽잖아요!!!)



 - 그럼 좋았던 건 뭐가 있었을까요.

 이미 언급한 부분이지만 시리즈의 성전인 1편과 2편의 장면, 대사들을 알뜰살뜰하게 챙겨다가 재구성하는 부분들이 뭐 그냥 추억팔이 정도의 재미는 충분히 주었습니다.

 '나이를 먹는 터미네이터'라는 핑계로 아놀드 할배의 캐릭터에게 개그 찬스를 많이 주는 것도 괜찮았구요. 다만 사람의 감정을 학습한다는 부분에 있어서는 뭐... 이미 2편의 결말이 있었으니 설정 파괴 같은 건 아닙니다만, 너무 가볍게 표현됐다는 기분이 들더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별 인사 장면은 나름 좋았던.

 음... 그냥 이 정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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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데 사실 이 표정 개그는 너무 자주 써먹어서. 세어보진 않았지만 최소 세 번은 나온 듯.)



 - 종합하자면.

 메타 픽션 느낌을 주는 느낌의 이야기였어요. 진지함이란 1도 없고 한 없이 가볍고 팔랑팔랑하지만 원작 재구성의 재미는 나름 충실했구요.

 끔찍한 비평 성적을 감안할 때 (현시점 기준 메타 38, 로튼 27입니다 ㅋㅋㅋ) 아주 살짝은 쉴드를 쳐주고 싶어지는 영화였습니다만,

 어쨌든 팬들의 원망도, 비평가들의 악평도 다 일리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나온지 6년이나 되었으니 원작 팬들은 이미 다 보셨을테고. 저같은 냉담자(...)라면 굳이 이제와서 보실 필요가 없겠구요.

 그러니 추천 같은 건 포기하고, 전 그냥 기대보다 재밌게 그럭저럭 잘 봤다는 소감으로 마무리합니다.




 + 몇년 후 제임스 카메론이 신작을 구상하면서 이걸 흑역사로 만들어 버린 심정은 이해가 갑니다.

 막판에 속편 떡밥을 남기긴 하지만 이야기 자체가 워낙 무매력이라 이걸 이어가느니 흑역사로 묻어 버리는 게 백번 잘한 선택이었던 듯.



 ++ 이 영화의 미래 예측은 정말 처참하게 실패했습니다. 2017년인데 사람들이 죄다 노키아가 만든 윈도폰을 쓰고 있어요. 핫핫하.



 +++ 병원에서 벌어지는 액션씬 와중에 MRI의 자력에 산소통이 끌려 날아와 달라 붙는 장면이 나옵니다. 최근에 실제로 있었던 안 좋은 사건 사고 하나 생각이 나더군요.



 ++++ 앞서 말했지만 주된 배경이 2017년입니다. 제가 지금 보는 중인 아놀드 할배의 '런닝맨' 배경이 2017년이구요. 우연의 일치라서 그냥 웃기기도 하고. 옛날에 그렇게 기대하던 미래가 이미 과거가 되어 버린 게 씁쓸하기도 (늘금!!! ㅠㅜ) 하고 그렇네요. 허허허. 특별한 일이 없으면 2049년까지도 제가 살아 있을 확률이 높으니 그때 블레이드 러너 재개봉이나 보러갈까... 하는 뻘생각을 해봅니다. 하겠죠 재개봉. ㅋㅋㅋ



 +++++ 내친김에 남은 터미네이터 영화 둘도 볼까 생각을 해봤는데 '미래 전쟁의 시작'은 정말로 볼 생각이 안 들어요. 부제대로 미래 전쟁이 배경이라는데 제가 막 사람들이 누더기 걸치고 하수도 같은 데서 개고생하며 총질하는 이야기를 안 좋아해서요. 시리즈의 숨통을 끊었다고 팬들이 비분강개하는 '다크 페이트'나 언젠가 한 번 봐야겠네요. 근데... 무료 되면 볼래요. 하핫. 넷플릭스야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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