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완전바낭] 공상력의 결과

2021.10.08 16:51

가라 조회 수:577


회사바낭이긴 하지만, 정말... 완전히 바낭입니다. 


제가 다니는 회사는 몇년째 폭풍이 불고 있습니다.


회사 게시판에 인사발령 하나 뜰때마다 '어????' 하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자주 있고...

대체 이건 무슨 뜻인가... 하는 공상의 나래를 펴게 됩니다.


1.

정치싸움에서 져서 한직으로 밀려나서 제 직속상사가 되신 A 부사장...

요즘 저희한테 안오십니다. 못본지 한달 넘었네요.


소문에는 회장이 새로 회사를 하나 차리려는데, 그쪽 회사 준비 프로젝트를 맡으셨대요. 잘 풀리면 그 회사 사장으로 가신답니다.

처음 이 소문 들었을때, 와.. 몇달만 버티면 부사장 직속에서 벗어나는구나~ 잇힝~ 하고 춤을 췄는데..


이분이 우리 회사 사장에게 회사에서 50명 차출해서 데려가겠다. 라고 요구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누구, 누구, 누구는 확정이래...

저쪽일 해본 사람들 싹 끌려가는거 아냐?

사람들이 웅성웅성 하는데, 일단 제 주변에서 저 50명안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사람은 한명도 못봤습니다.

저라도 A부사장 밑으로 가고 싶지는 않거든요.


일단, 이 양반에게 선택권이 있다면 저를 끌고 가진 않을겁니다.



2.


최근에 ESG 경영이 트렌드입니다. Environment, Social, Governance

대기업들이 ESG 위원회네, ESG 본부네 하면서 친환경, 저탄소, 친사회 기업 경영을 하시겠다고 합니다.

원래 재벌 회장들이 이런거 좋아하잖아요.


국내 대기업 뿐만 아니라 글로벌 대기업은 더하고요.


그래서, 유럽 및 북미의 대기업 고객놈(...)들이 ESG 관련해서 여러가지를 요구하기 시작했고요. 국내 대기업 고객놈들도 '슬슬 준비하지?' 하는 시그널을 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기업도 ESG 경영 합네~ 하고 헤매고 있는데 저희 같은 중견기업은 ESG가 뭐임? 먹는거임? 하는 수준이거든요. 


영업은 고객이 뭘 요구하면 지들이 해결할 생각 안하고 생각없이 관련부서 찾아서 토스하는게 버릇인데...

이걸 토스할 부서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기저기 물어보고 우왕좌왕하다가 냅다 공장에 서브를 넣었는데, 공장에서 반사를 쳤습니다.

그렇게 여기저기 핑퐁 치다가 저한테 왔습니다.


저도 물론, '아니 우리가 E, S, G 셋중 대체 어느거에 해당 된단 말이오?' 하면서 못한다고 4개월을 버텼는데...

예전에 제가 6시그마 BB 할때 지도MBB 였던 공장장이 부르더만... '가팀장. 그냥 기초 조사만 해줘. 우리 회사에 이거 아는 사람이 어딨냐.' 라면서 저한테 떠넘겼습니다. 하....

이거 분명 내가 보고서를 쓰면 발목 잡히는건데...  하... 소보루...


그래서 조사해서 임원용 요약 보고서를 썼습니다. 사장에게 보고했습니다.

'이거 하긴 해야 하네.. 그런데 너네가 이거 하는게 맞니?' 라고 물어봅니다.

'당장은 주관부서가 없어서 제가 보고를 드렸지만, 저희도 ESG 추진실 같은 조직을 만들긴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라고 대답을 했지요.


그리고 두달동안 조용했습니다.

본사에서 제가 만든 5장짜리 요약보고서가 돈 모양이더라고요. 


그런데..

유럽 대기업 고객놈이 '응, 너네 내년부터 준비 안하면 거래 줄인다?' 라고 했습니다.

영업놈들 난리가 났습니다.

그래서 영업부사장한테 가서 '아이고, 부사장님. 이거 꼭 해야 되요. 빨리 해야 되요' 하고 징징댄 모양이더라고요.

그래서 한답니다.


영업팀장들이 전화 옵니다. 영업에서는 '응, 그거 가팀장네가 해줄거야.' 하고 있답니다. 지들은 움직일 생각 없는거죠.

그런데, 정작 제 직속상사인 부사장이나 다른 부사장들한테는 아무 언질이 없습니다.

수출팀장이 도리어 '어? 부사장님이 전화 안하셨어? 왜 안하시지? 이상하네..?' 라고 합니다.



3.


실무자나 팀장 레벨에서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제가 이 업무에 연루가 되는게 맞는거죠.

그런데, 저한테는 아무 언질이 없다.


그럼 누구 다른 사람에게 맡길 생각이라는 것이겠지요.

ESG 경영 트렌드가 탄소중립이나 친환경이랑 엮이면 나름 회사에서 한동안은 주목 받는 위치가 될 수 있을겁니다.

(물론, 많은 회사가 하는 시늉만 하겠지만)


굳이 사내 아싸에 주변머리 없는 공돌이인 저한테 이런걸 주면서 사람을 키울 이유가 없겠다.

사장이나 영업부사장이 키우려는 사람이 이 업무를 맡겠구나.. 라고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금도 일이 치이는데 새로운 일까지 떠맡지 않아서 다행이다... 생각했습니다.



4.


한달 넘게 얼굴도 못본 부사장이 갑자기 전화를 합니다.

'가라야, 이거 인비니까 다른 사람한테 말하지 말고.... 음.. 급하게 뭐 좀 조사해서 카톡으로 보내줘..'

허겁지겁 조사해서 카톡으로 내용을 보내고 PPT로 2장짜리 요약본 만들어서 보냈습니다.


사내 소문 쫙 났는데 무슨 비밀이야... 인비??? 대외비도 아니고 인비가 뭐야?

인사비밀도 아니고... 다른 뜻이 있나? 

찾아보니 인사비밀이 맞네요.


갑자기 공상력이 발동하면서 몇가지 사실이 눈앞을 그쳐 지나갑니다.


1) 부사장이 50명 차출을 요구했다. 부사장 성격이면 말단 사원 대리는 안 받을거다.

2) 부사장이 나 같은 주변머리 없는 성격을 좋아하진 않지만, 부사장이 날 싫어할만한 짓도 아직 하지 않았다.

3) 인비라고 언급하고 잠시 멈칫하고 본론을 얘기했다.

4) 본사 영업과 마케팅에서는 ESG 업무를 내가 할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경영진선에서 추가 보고를 하라거나, 두달동안 바뀐게 있냐라던가 하는 확인이나 언질이 없다.


아...??!!!

내가 50명 리스트에 있구나.

부사장이 일 시키려고 전화한김에 미리 언질 주려다가 멈칫해서 인비라는 용어를 썼구나..

경영진은 내가 새 회사로 갈걸 아니까 ESG에 대해 나한테 확인을 안하고, 누굴 시키나 고민하고 있는거구나

본사 팀장선까지는 아직 50명 리스트가 누군지 모르니까 다들 내가 ESG 하겠거니 하는구나...



아..... 

회사 떄려 칠까..


그냥 제 망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뭐, 인사발령은 뜨기전까지는 모르는거니까요.

같은 사업장내에서 인사이동은 뜰때까지 안알려주는 경우도 많고.. 사업장/사업부 이동을 하는 수준이 되어야 (이사를 해야 하니) 하루, 이틀전에 알려준다던데..


나중에 '하하 제 망상이었어요~' 라고 글 썼으면...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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