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트 로커]를 보고

2023.01.31 21:01

Sonny 조회 수:534

스포가 있습니다... (나온지 꽤 된 영화까지 이런 표기를 하는 게 좀 귀찮긴 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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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탄해체병이 폭탄 "하나"를 해체하다가 죽습니다. 바로 앞에서 터진 것도 아니고 터질 것 같다고 직감하자 몇십미터를 뜁니다. 방호복 덕택에 파편이 몸을 통과하지도 못했고 불길에 휩쌓이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폭발할 때의 터져나가는 그 바람이 도망치는 사람의 등을 강타합니다. 그는 헬멧을 쓴 채로 피를 토하면서 죽습니다. 그렇게 크게 다치지 않을 줄 알았는데 폭발이 사람을 "때려서" 죽여버립니다. 얼핏 보면 불이나 쇠가 직접적으로 해를 끼치지 않는 장면이 없어서 폭발이 마치 저주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 장면이 저한테는 충격적이면서도 좀 새로웠습니다. 폭발의 위력을 다른 식으로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요.


영화에서는 폭탄이란 게 늘 아슬아슬하게 해체되는 서스펜스의 장치처럼만 그려지죠. 그렇다면 현실에서도 그럴까요.[허트 로커]는 I.E.D 급조폭발물의 개념을 확실하게 뇌리에 꽂습니다. 폭탄이란 건, 하나만 터져도 죽습니다. 영화 초반부에도 첫 폭발 전까지 이들은 건들건들 농담따먹기를 합니다. 그런데 첫 폭발 이후 모든 게 다 바뀝니다. 폭발물이 발견되었다 싶으면 한참 멀리에서도 그 용감한 미군들이 다 숨어있습니다. 터지면 가까이에 있는 사람은 무조건 죽으니까. 멀리 있어도 반드시 다치니까. 현실에서의 폭발물이란 주인공이 땀 좀 흘리면서 집중하면 시간 딱 맞춰서 해체할 수 있는 그런 게임기구가 아닙니다. 정말이지 폭탄은 악의 그 자체입니다. 나는 당신을 죽이겠다는 그 의지를 가둬놓고 있다가 가장 정확하게 실현할 수 있는, 그런 주문이자 부적입니다. 


위의 장면은 폭탄이 딱 하나만 있는 줄 알았는데, 여러개가 한꺼번에 딸려나오는 장면입니다. 제가 영화를 보면서 이렇게 끔찍하다는 기분을 느낀 적이 없었습니다. 하나만 있어도 인간이 죽는데 그게 몇개나 딸려나옵니다. 당신을 죽이겠다는 그 적의가 몇배나 땅 속에 숨겨져있었습니다. 괴물의 형상을 한 것도 아니고 흉측한 쇠붙이의 모습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그 살의의 숫자가 훨씬 더 많아지는 순간 당연하게도 공포가 극심해졌습니다. 죽여버리겠다는 그 적의는 당연히 하나가 최대의 갯수인 줄 알았습니다. 그게 만약 터진다면, 그 희생자는 몇번이나 더 죽고 말 것 같은 그런 아뜩한 느낌이 있었습니다.


[허트 로커]에는 적이 분명히 나오지 않습니다. 미국인들을 미워하거나 전쟁에서 승리하겠다는 그런 의지를 가진 개개인이 보이질 않습니다. 남아있는 것은 인간의 적의와 거기에 피폐해져가는 다른 사람들 뿐입니다. 자신을 향한 살의에 대적할 수조차 없게 만드는, 그저 두려워하고 절망만 하게 하는 이 영화의 사무적 태도가 얼마나 을씨년스러웠는지요. 차라리 대적하는 사람들이 조금의 흔적이라도 남겼다면 대결 구도에서 상대방을 향한 적의를 똑같이 불태울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남은 것은 쇳덩어리들 뿐입니다. 누가 무슨 사연과 심정으로 설치했는지 아무 흔적도 찾을 수 없는, 그 폭탄덩어리들의 단순한 생김새가 보는 사람을 한없이 질리게 만듭니다. 


그 쇳덩어리들은 터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터지면 수많은 생명이 죽거나 다칩니다. 그러나 그곳에는 그것을 터지지 않게 할 어떤 조건이나 성명도 없습니다. 그냥 터진다, 는 조건 하나만 있습니다. [허트 로커]에서의 폭탄들은 그 추상성만을 담고 있기에 잔인합니다. 그 폭탄이 터지면 누가 어떻게 다치고 죽을지 아무런 고민도 없습니다. 어떤 개인이, 다치거나, 죽거나, 심한 고통과 충격을 받을 것이라는 그 구체적인 인간성이 싹 소거되어있습니다. 인간을 인간답게 이해하는 방법은 그의 구체적인 일상으로 접근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폭발물들은 그런 것들에 완전히 무심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제가 생각하는 비인간성을 제일 훌륭하게 구현해낸 작품입니다. 저는 악마라는 게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어디까지 무관심해질 수 있는가, 어느 정도까지 이입을 안할 수 있는가. 제가 볼 때 그것이 악의 핵심입니다. 사람들은 자꾸 창작물에서 비인간성을 아주 흉악하고 비열하고 악행을 즐기는 그런 쾌락중독자의 모습으로 그리는데 저는 그런 관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보통의 인간성이 50이라면 사악하다는 것은 10, 9, 8, 7 그 정도로 타인에 대한 관심과 감정이입을 한없이 낮추고 인간적 거리를 멀찍이 떨어트리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폭탄을 터트릴 것이다. 이 문장 자체가 폭탄이 터진 뒤의 모든 상황을 다 생략해놓은 잔인함을 이미 완성해놓았습니다.


그래서 주인공 제임스가 폭탄을 해체하러 갈 때마다 저는 이상한 고통을 느꼈습니다. 이 영화에서 폭탄은 누가 죽든가 말든가라는 무관심을 함축해놓은 상징입니다. 폭탄을 목격하자마자 우리는 그 무관심만큼 우리 자신의 죽음과 고통에 관심을 가지면서 두려워합니다. 공포는 자기 자신을 살리고 싶다는 가장 극렬한 신호입니다. 그런데 제임스는 폭발물을 보면서 그 공포를 추구합니다. 가장 인간적인 신호를, 다른 식으로 해석합니다. 공포는 삶을 위한 수단입니다. 살고 싶으니까 죽을 것 같은 상황에서 죽지 말아야한다고 자신이 보내는 신호입니다. 그런데 제임스는 거꾸로 그 신호를 느끼려고 자신을 죽음의 현장에 던져놓습니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폭탄이 터져서 자기가 너덜너덜해질지도 모른다는 그 공포를 목적으로, 삶을 베팅의 도구로 씁니다. 그는 살아야한다는 사람의 기본적인 본능마저 잃어버린 인간입니다. 그도 폭발물의 저주에 사로잡힙니다. 폭탄이 터져서 내가 죽든 말든.


이 영화의 끝에는 지독한 이라크 현장에서 돌아왔음에도 기어이 다시 파병을 나가는 제임스가 있습니다. 그는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는 그런 이상한 개차반 인간이 아닙니다. 그는 어엿한 가족을 가지고 있고 태어난지 얼마 안된 자식이 있는 "정상인"의 범주에 들어가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또 파병을 나가서 또 폭탄을 해체하러 갑니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그 공포를 그는 또 느끼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이 영화의 전쟁은 두가지 결말만을 보여줍니다. 전쟁에 적응하지 못해서 공포에 짓눌리거나. 전쟁에 완전히 적응해서 자신의 삶까지도 무심해지거나. 그 어느 쪽에도 전쟁에서 인간의 승리라는 건 없습니다. 어쨋든 미칩니다. 우리는 전쟁의 가장 큰 공포를 죽음인것처럼 여기지만 전쟁에서 계속 살아남는 것이 더 끔찍하다는 것을 이 영화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마 제임스는 전쟁터에서 폭탄을 해체하다 죽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직전까지도 폭탄을 해체하며 죽음의 스릴을 계속 즐길 것입니다. 


@ 임순례의 [교섭]을 보고 나서 일부러 다시 찾아본 영화입니다. 그가 반드시 캐서린 비글로우가 될 필요는 없었겠지만 그래도 전쟁영화로서 뭔가를 더 덜어낼 수는 있었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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