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밤'을 보고

2023.02.18 21:21

thoma 조회 수:339

초록밤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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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챠에서 봤어요. 내용과 감상이 섞인 글이라 스포일러 있어요.


위 사진의 아버지, 어머니, 아들 이 세 명의 가족이 중심이 되는 이야기입니다. 

아버지는 아파트 야간 경비 일을 합니다. 영화 시작 부분에 아버지는 순찰을 돌다가 고양이가 매달려 죽어 있는 것을 봅니다. 오래 보여 줍니다. 이제 시작된 영화에 제 마음이 약간 뜨악해집니다. 그런데 영화가 진행되면 이 장면 뿐만 아니라 내용 전달상 필요와 관계없이 장면들이 예상보다 길게 고정되어 제시된다는 걸 알게 되고, 이 영화가 이야기를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장면들을 잇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야기를 시간순으로 따라가긴 합니다만 이야기에 급급하지 말고 화면 이미지에서 느끼시오, 라고 하는 것 같아요. 아버지는 고양이를 뜰 한쪽에 묻어 주고 경비 일이 끝난 아침에 집으로 와서 어머니가 차려 준 밥을 먹고 잡니다. 

30대로 보이는 아들은 장애인 활동지원사일을 하고 오래 사귄 애인이 있어요. 모텔을 전전하는 게 지겹지만 결혼할 여건은 안 됩니다. 이 가족이 전세로 사는 오래된 아파트마저 집 주인이 비워달래서 이사나가야 하는 상황이고요. 

그런 중에 시골에 홀로 살던 조부가 돌아가시고 장례를 치릅니다. 장례식장에서 두 고모가 머리채를 잡고 싸우네요. 원래 사이가 안 좋았는지 부조금 앞에서 기선을 제압하려는 것인지. 둘 다인 것 같아요. 지금까지 나온 가족 세 명의 숨죽인 듯한 일상과는 다른 장면입니다. 고모들은 그들 오빠(아버지)의 과묵함조차 '착한 척'으로 표현하는 거칠고 노골적인 면을 지닌 사람들로 보입니다. 부자는 아침이 되자 장례식장 인근의 목욕탕에서 목욕을 하는데 굳이 아버지의 벗은 몸을 보여 주며, 옷을 벗고 몸을 담그고 씼는 과정을 빠트리지 않고 제시하네요.

장례식, 불교식 수목장지 장면, 부조금 나누기까지의 과정이 끝나고 며칠 후 시골집을 처리하려 내려가니 집에는 조부와 함께 살던 할머니 한 분이 자고 있습니다. 가족들이 놀라는 걸 보면 존재를 몰랐거나 아직도 그 집에 머물고 있을지 생각도 못했거나 둘 중 하나인가 봅니다. 어머니가 나서서 집을 처분하려고 하니 떠나달라는 말을 전하고 다음 날 가 보니 갈 곳이 없었던지 할머니는 목을 맸습니다. 가족은 경찰에 신고한 후 귀경하는데 이번에는 국도에서 개를 칩니다. 개는 차에 피 흔적만 남기고 달아나고 없어요. 어머니는 그동안 억눌렀던 감정이 이 일을 계기로 폭발하며 아버지와 다툽니다. '일 생기면 나에게 다 넘기고 무능력, 소극적, 담배만 죽이면 다냐고!!' 그리고 숲으로 소변을 보러 들어갔다가 피투성이가 되어 나타난 개와 마주칩니다. 

며칠 후 어머니는 영화 초반에 다듬어 말린 고추를 빻고 김치를 담습니다. 위에 올린 사진의 장면이 나옵니다. 일상을 지속합니다. 그 일상의 지속에 가장 큰 역할은 어머니가 하는 것으로 보여요. 입을 꾹다물고 일상을 지속하는 것으로 보이던 아버지는 한밤 일터에 고양이가 죽었던 곳에서 자살을 시도할 유혹을 느낍니다. 

(혹시 여기까지 읽으신 분 계실까요. 저는 영화를 보고 되새김질의 목적으로 이 글을 썼지만 쓰면서도 글이 너무나 재미도, 재치도, 통찰도 없어서 혹시 읽으신 분이 있다면 미안한 마음이 드네요. 오늘따라 더욱 말이죠. )  


이 영화의 내용이 무엇이냐고 한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인물들이 일상 속에서 이런저런 죽음을 겪고 그 가운데 또 일상을 살아가게 되어 있음을 보여 주는 장면들의 연결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고양이의 죽음, 집에 와서 식사, 조부의 죽음, 부자의 목욕, 부조금 나누기, 시골집 처분, 할머니의 죽음, 개를 크게 다치게 함, 김치를 담그고 맛을 봄, 지인의 결혼식에 참석 후 애인과 또 모텔행, 아버지의 죽고 싶어하는 모습. 이렇게 진행되거든요. 누군가가 죽이기도 하고 자연사하기도 하고 내가 의도치 않게 누군가를 죽이기도 하는 것이 나날의 생활에 녹아 있는데 그런 일상과 죽음의 섞여듦이 '초록빛'으로 표현된 거 같아요. 금방 담은 김치를 맛보고 신문에서 세상 돌아가는 걸 읽은 평범한 날 저녁에도 죽고 싶은 마음이 든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며 생각했어요. 이 사람들은 왜 이렇게 가라앉아 있을까. 이 영화에서 죽지 못해 사는 듯한 아버지를 비롯한 주요 인물들의 의기소침함이나 잠시 등장하는 고모들의 그악스러움은 사실 돈 때문입니다. 영화는 화면의 색조와 음악으로 굉장히 분위기를 잡는데 인물들의 경제적 형편이 이들 우울의 가장 큰 이유라 생각하니 조금은 그런 분위기를 조장하는 장치들이 덜 쓰였으면 어떨까 싶기도 했어요. 경제적 이유처럼 중요한 것이, 생명이 오가게 만드는 중요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가 알고는 있지요. 그런데 비장한 음악이나 울울한 분위기를 부여하는 건 또 좀 다른 이야기가 아닌가 싶어요. 감독과 촬영, 미술, 음악을 맡으신 분들이 역점을 두고 그쪽으로 힘을 모은 것인데 거기에 의문을 표하는 것은 그냥 이 영화가 저와는 안 맞거나 아니면 이번에도 감이 부족해 놓친 부분이 있을 수도 있을 겁니다. 또 한 가지, 여성 캐릭터들이 그나마 활력을 지녔는데 그 활력이 부정적으로 느껴진다는 점입니다. 아들의 애인이나 두 고모, 어머니마저도 저에게는 아버지의 어깨를 짓누르고 아들에게 부담을 주는 역할처럼 보였습니다. 다친 개는 왜 다른 사람이 아닌 어머니 앞에 참혹한 모습으로 나타났는지.

화면을 보면서 이창동 감독의 영화가 생각나기도 했어요. 영화가 매우 진지하고, 아름다운 화면도 많아서 좋게 보신 분들도 많을 것입니다. 저와는 좀 안 맞았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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