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 2003년입니다. '2009 로스트 메모리즈'와 '예스터데이'가 나온 바로 다음 해구요. 런닝타임은 1시간 53분. 이번에도 스포일러는 마지막에 흰 글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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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이 영화는 제목을 듣는 순간부터 망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포스터를 보는 순간 그 느낌은 x2.)



 - 시작부터 검은 화면에 오골미 폭발하는 소녀 감성 자막들이 뜨며 보는 사람을 불안하게 합니다. 잠시 후 보이는 예쁜 바닷가 벤치에 앉은 젊은 남녀의 모습도 그렇구요. 다행히도 그게 실제가 아니라 유료 자연 체험 시뮬레이션이라는 걸 보여주긴 합니다만 아무튼 불안불안.

 암튼 간단히 세계관을 정리하자면 그냥 블레이드 런너입니다. 핵전쟁 일어나서 지구 황폐해졌구요. 우주 식민지로 떠나자는 광고 흘러나오는 비행선 둥둥 떠다니구요. 경찰들은 바퀴 접히며 날아가는 자동차를 타고 다니고, 안드로이드 아닌 사이보그가 잔뜩 만들어져서 사방팔방에 쓰이구요. 얘들한텐 안전 장치로 짧은 수명이 설정되어 있구요. 그 와중에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거스르려는 전투형 사이보그가 설치기 시작하구요. 사이보그 범죄 전담 특수 부대인 'MP'의 전설의 요원이었다가 지금은 망가져서 엉망진창으로 살고 있는 요원이 주인공이구요... ㅋㅋㅋㅋㅋ 이쯤 되면 영향을 받은 영화가 아니라 그냥 허가 받지 않은 외전이라고 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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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꺄악~ 스피너다!!!!)


 암튼 그 요원님이 바로 유지태구요. 이 양반 삶의 목표는 술집 섹시 댄서로 일하는 사이보그 '리아'를 영원히 데리고 사는 겁니다. 그리고 그걸 실현하기 위해 동네 주민이자 매드 사이언티스트인 '닥터 지로'에게 줄 돈을 열심히 모으고 있어요. 그 과정에서 자기 동료들의 희생까지 쿨하게 감수할 정도로 완전히 썩었군요.

 문제는 그 닥터 지로라는 양반이 제시한 사이보그 영생의 방법이라는 게, 살아 있는 멀쩡한 인간의 뇌에 사이보그의 기억을 덮어 씌우는 방식이라는 겁니다. 당연히 희생자가 필요하겠죠. 그래서 닥터 지로가 지목한 희생자는 '시온'이라는 성매매 여성. 유지태는 뭐 어쩔 배째라는 식으로 시온에게 접근해 수작을 거는데 시온은 자기에게 관심을 가지는 줄 알고 기뻐하구요.

 하지만 그 와중에 갑툭튀 전투 사이보그 '싸이퍼'라는 녀석이 난동을 부리고 다니기 시작하는데 아무리 봐도 이 놈 하는 짓이 뭔가 수상쩍고. 당연히 그 일은 우리 유지태 요원님의 소박한(?) 계획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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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격하게 따라한 게 아닌가 싶긴 하지만 뭐 그 전에 이미 일본에서 이걸 넘는 수준으로 막 베껴댄 터라... ㅋㅋ)



 - '블레이드 런너'를 아주 대놓고 카피한 영화인데 비주얼은 괜찮지만 이야기가 완전 시궁창이더라. 라는 평을 당시에 들었던 기억이 있어요. 근데 비주얼은 뭐 2003년 기준 괜찮았던 게 지금도 괜찮을 리가 없겠고. 그 시절 시궁창이었던 스토리는 당연히 지금 보면 더 시궁창이겠지. 아마 '예스터데이'의 좋은 적수가 되지 않을까... 라는 아주 상식적인(?) 예상을 안고 틀었는데요. 아니 이게 예상을 많이 빗나가네요. ㅋㅋㅋ 미리 말하자면 꽤 좋은 쪽으로 빗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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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지어 블레이드 런너 2049도 베꼈습니다!!!!!?)



 - 일단 핵심은 비주얼입니다. 이게 지금 봐도 썩 괜찮습니다? ㅋㅋㅋㅋㅋ 아니 정말 놀랐어요. 진지하게 '정이' 예고편 초반에 나오는 도시 모습이나 메카닉 묘사가 해상도 빼고 이 영화보다 나을 게 뭐가 있나 싶었거든요. 물론 '정이'의 비주얼이 훌륭한 수준이 아니긴 하지만 이건 20년 전 영화니까요.

 물론 '블레이드 런너'를 비롯해서 다수의 일본 사이버 펑크류의 만화들, 몇몇 헐리웃 영화들의 레퍼런스가 지나칠 정도로 노골적이라는 문제가 있긴 합니다만. 그냥 기술적인 부분과 또 '어쨌든 보기 구린가 구리지 않은가'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이 '내츄럴 시티'의 비주얼은 정말 그 시절 한국 영화들 중에선 갑툭튀 군계일학이라 할만 합니다. 실제 제작비로는 '2009 로스트 메모리즈'나 '예스터데이'를 훌쩍 뛰어 넘었다고 들었는데, 그냥 돈을 더 쓴 것 뿐만 아니라 훨씬 효과적으로 쓴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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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도 열일 하시는 액션스타 정두홍님. ㅋㅋㅋ 이 영화 보고 다음 영화로 넘어갔더니 거기에도 또 나오시더라구요.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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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알~ 생겼다!!!)



 - 액션 장면은 뭐랄까... 일단 준수합니다. 잘 찍었어요. 다만 시작부터 끝까지 패턴이 좀 반복되긴 합니다. 어둑어둑한 좁은 공간에서 중화기를 쓰며 싸우는 MP들을 신출귀몰 무림 신공(...)으로 상대하는 사이보그. 계속 이런 구도로만 가요. 전투 장면 자체는 긴장감 살려서 잘 연출되어 있는데 ('에이리언' 시리즈의 전투 분위기를 많이 따라한 듯 합니다) 다양성이 없어서 아쉽달까. 뭐 그랬구요. 또 이게 많이 나오질 않습니다. ㅋㅋ 도입부에 한 번, 결말부에 한 번 찐하게 나오고 중간엔 걍 살짝 양념으로 들어가는 정도. 근데 그렇다면 이 적지 않은 런닝타임을 무슨 이야기로 채우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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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겁니다. 이런 영화에요!!!)



 - 정말로 1도 공감이 안 가는 재미 없는 연애담입니다. ㅠㅜ


 그러니까 주인공 R(유지태 캐릭터의 이름입니다)은 리아를 살리기 위해 시온을 희생하려 하고. 시온은 R에게 살짝 호감을 가진 채 험한 꼴을 겪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고. 이게 중심 스토리인데요. 일단 주인공이란 놈이 생사람 하나 잡아 가며 사이보그를 살리려 든다면 당연히 그렇게까지 하게되는 과정이나 사연 같은 걸로 공감을 얻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게 없어요. 보긴 봤는데 공감이 안 되는 게 아니라 그냥 존재하지 않아요. 그래서 관객은 아무 영문도 모르고 1도 공감이 안 되는 상태로 주인공의 그 집요한 뻘짓거리들을 봐야 합니다.

 거기에다가 우리 리아 공주님은 한 술 더 뜨는데요. 이 분은 훼이크 주인공입니다. 대사도 거의 없고 출연 분량도 적으며 하는 일도 결말에서 한 장면 빼면 거의 없다시피 해요. 이게 어느 정도냐면, 전 결말 직전까지 그냥 유지태 혼자만 방방 뜨고 이 사이보그는 유지태에게 별 감정 없는 줄 알았습니다(...) 


 이러니 주인공이 뭔 짓을 하든, 둘이 어떤 위기에 빠지든 간에 정말 공감과 이입은 커녕 관심이 1도 안 생깁니다. 재밌는 이야기가 나올 수가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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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들끼리만 난리 치지 말고 같이 좀 슬프자. 응???)



 - 그 외의 조연이나 빌런들도 마찬가집니다. 이 영화의 빌런인 싸이퍼에게서 로이배티와 같은 카리스마나 매력 같은 건 애초에 기대하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그래도 워낙 블레이드 런너 비슷하게 흘러가길래 막판에 뭐 한 장면이라도 기대를 했는데. 막판의 반전 하나가 그 실낱 같은 가능성까지 다 날려 버리고 끝까지 무매력 살인 기계로 남습니다. 덧붙여서 여기엔 조라와 프리스를 합친 것 같은 포지션의 여성 사이보그도 하나 나오는데, 나름 막판에 중요한 장면을 하나 맡긴 하지만 역시나 그동안 빌드업이 하나도 없어서 쌩뚱맞다는 기분만 안겨주고 끝이에요.


 그나마 봐 줄만한 캐릭터는 이재은이 연기한 '시온'인데요. 역시 별다른 배경 설명이 없긴 하지만 그래도 이 영화의 최고 경력 배우 이재은이 연기도 적절하게 잘 해주고, 또 워낙 시작부터 끝까지 격하게 박복한 캐릭터라 측은지심이라도 생기더라구요. ㅋㅋ 또 주인공을 갈구며 챙기는 옛 친구이자 동료인 '노마'와 그를 짝사랑하는 '아미' 같은 캐릭터도 나쁘지 않았어요. 다만 워낙 비중이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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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쨌거나 그나마 답답한 숨통을 틔워주던 우리 이재은님. 당시에 이미 데뷔 18년차!!!)



 - '블레이드 런너'를 대놓고 베껴 만든 영화지만 보다 보면 이야기와 감성 측면에서 헐리웃 영화보단 일본 애니메이션의 영향이 훨씬 크게 느껴집니다. 어쩌면 그것도 흥행 실패의 원인 중 하나였을 것 같기도 해요. 한국 관객들 주류에게 먹힐 갬성이 아니거든요. 물론 이야기가 재미 없다는 게 근본적인 문제지만 그런 부분도 있어 보인다... 는 얘기구요.

 암튼 분명 실사 영화인데도 애니메이션 같은, 그것도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장면들이 꽤 많아요. 주인공 R과 리아의 그 대책 없는 로맨스도 살짝 그런 느낌이고. 닥터 지로나 싸이퍼 같은 캐릭터는 생김새부터 성격까지 그냥 딱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그대로 꺼내왔다 싶었던. 또 등장 인물들 이름만 봐도 좀 그렇지 않습니까? R, 리아, 시온, 싸이퍼, 닥터 지로, 노마, 아미... 뭐 이름 하나하나는 그럴 수 있는데 이렇게 하나로 모아 놓으면 '뭡니까 이게. ㅋㅋㅋㅋ'라는 느낌이 좀 들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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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지태는 그냥 평소의 유지태 연기를 무난하게 보여줍니다. 근데 저런 의상을 입혀 놓고 보니 강동원보단 이 양반이 '인랑' 실사판에 훨 어울렸겠단 느낌이.)



 - 에... 뭐 더 할 말이 없습니다. 간단히 요약하면 시대를 선도한 비주얼로 엄청난 노잼 이야기를 들려주는 영화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저는 그럭저럭 잘 봤어요. '우왕, 2003년도 한국 영화가 이런 비주얼이 가능했구나!'라는 게 놀라워서 내내 그림에 집중해서 봤거든요. ㅋㅋ

 그리고 뭐, 리아 역의 신인 배우 서린씨를 제외하곤 딱히 연기가 거슬리는 사람도 없었구요. (게다가 어차피 리아는 비중도 대사도 거의 없...)

 뭐 이 정도면 기술적으로는 참 대단한 성취였고 연출도 기본은 충분히 갖췄다고 생각했습니다만. 뭔가 계산이 단단히 잘못되어 버린 극노잼 각본의 죄가 너무 컸습니다. ㅋㅋㅋ 당시 기준 순 제작비 80억을 들인 영화를 만들면서 이런 각본을 만들어 쓰셨다니 감독님 수고 하셨지만 좀 혼 나셔도 어쩔 수 없겠단 생각을.

 많이 아쉽기도 합니다. 이게 이 정도 기술력으로 이야기도 재밌게 만들어서 대박을 쳤다면 한국 영화판이 좀 더 제 취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었을 것 같아서요.

 하지만 과거를 뒤집을 순 없는 노릇이고, 전 그저 '생각보다 괜찮다'라는 느낌에 기분이가 나쁘지 않았습니다만. 여러분들은 안 보셔도 된다는 거. 

 끝입니다.




 + 이것저것 뒤적거려보니 후반부의 전투씬들이 같은 패턴 단순 반복이 되어 버린 건 이미 한참을 초과해 버린 제작비 때문이었다는군요. 새삼 안타깝구요.



 ++ '유령'의 호평과 히트에 힘 입어 이 영화를 만드신 민병천 감독께선 이 영화의 폭망으로 인해 사실상 연출을 놓으셨군요. 이후 필모그래피가 2011년에 나온 '코코몽 시즌 2 - 음식을 남기지 말아요' 하나 뿐입니다. ㅠㅜ 아쉬운 마음에 이 분의 또 다른 대표작이나 한 번 다시 봤네요.



 이제 보니 영화에서 '노마'로 나온 윤찬 배우가 민병천 감독과 여기에서부터 인연이 있었던 거였군요. 

 1996년, 그것도 영화도 아닌 뮤직비디오이다 보니 cg고 뭐고 다 좀 그렇고 내용도 별 임팩트가 없습니다만. 1996년이었으니까요. ㅋㅋ 당시엔 큰 화제였죠.



 +++ 해외에서 덕후들에게 은근히 인기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한글 검색보다 영어 검색이 짤도 조금 더 많고 화질도 나아요. 해외 출시 디비디 커버 같은 것들도 막 나오고 그러네요. 근데 정말로 '은근히'만 인기 있었던 듯.



 ++++ 그래서 스포일러입니다.


 알고 보니 모든 게 '닥터 지로'의 음모였습니다. 영화 초반에 사살된 '싸이퍼'가 쌩뚱 맞게 부활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알고 보니 그게 개연성 오류가 아니라 떡밥이었던 거죠. 싸이퍼의 시체에 지로가 자신의 기억을 옮겨 부활했던 것이고. 닥터 지로의 목표는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 영생을 하는 것이었는데, 아무 몸으로나 옮겨탈 수 있는 게 아니라 유전자 조건이 맞아야 해서 싸이퍼의 몸으로 정부 데이터 베이스에 침입해서 찾아낸 다음 몸 후보가 바로 '시온'이었던 것. 그래서 R에게 리아를 살려준다는 뻥을 쳐서 시온을 잡아 오게 시켰던 거죠.

 결국 싸이퍼는 마지막엔 그 정체를 드러내고 시온을 직접 납치해서 사이보그 생산 공장을 향합니다. 거기에서 자기 기억도 시온에게 옮기고, 또 내친 김에 그 공장의 사이보그들을 전부 자기 동료로 만들어서 인간들을 아작내버릴 계획이구요.


 시온의 수명 종료일 날이 밝은 후에야 이 사실을 알게 된 R은 절망해서 그냥 리아를 데리고 우주선 타고 떠나려고, 가는 길에 리아가 죽더라도 뭐 다른 할 수 있는 일도 없으니 그러려고 했는데. (이거 생각해보니 '블레이드 런너' 극장 상영판 엔딩이네요 ㅋㅋ) 대합실에서 우주선을 기다리던 중에 싸이퍼를 제압하려 출동하는 노마의 간절하고도 절망적인 무선 연락을 듣고는, 결국 리아를 남겨 두고 친구를 도우러 떠납니다. 


 MP 대원들을 이끌고 사이보그 공장에 도착한 노마는 피터지는 혈투 끝에 싸이퍼가 공장 사이보그 전원을 전투 사이보그로 만드는 걸 막고, 또 시온의 몸으로 갈아타는 것도 일단은 저지합니다만. 확실한 마무리를 위해 공장 자폭 장치를(이런 게 왜 있는데;;;) 가동하구요. 부하들을 모두 대피 시킨 후에 혈혈단신으로 납치된 시온을 구하러 갑니다. 하지만 그 전에 이미 가동을 시작해버린 전투 사이보그들을 상대로 혼자 처절하게 싸우다가 중과부적으로 결국 사망... 하려는 찰나 타이밍 좋게 우리의 주인공이 나타나서 목숨을 구해주겠죠.


 그리고 최종 스테이지 돌입. R과 노마가 번갈아가며 싸이퍼에게 탈탈 털리다가 마지막으로 머리를 굴린 노마의 작전으로 싸이퍼는 폭사. 하지만 노마도 죽고요. 이미 중상을 입은 R은 시온에게 '꼭 리아를 찾아가줘'라는 유언을 남기고 시온만 밖으로 탈출 시킵니다. 그래서 공장 폭발과 함께 R은 사망. 그리고 시온이 찾아간 리아는 수명이 다 되어 망가져버리기 직전에 스스로 머리에 박힌 메모리칩을 뽑아 자살을 한 상태였네요.


 R과 리아의 유품을 함께 장례 치르듯 묻어준 시온이 머리 위로 날아가는 거대한 우주선을 바라보며 미소 짓는 걸로 엔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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