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냄새

2011.01.14 15:03

flower 조회 수:2530

출장길에서 올라가는 열차안.

창밖 풍경도 지겨워져 책을 손에 쥐었는데 그도 얼마 지나지 않아 열차는 어느 소도시의 역에 정차합니다. 혼자 자리에 앉아가고 있었는데 그 역에서 타신듯한 한 할아버지께서 승차권을 살펴보시더니 제 옆자리를 채워 앉으시려 하십니다. 서울 아들네라도 가시는 것인지 보자기로 꽁꽁 싼 박스 하나랑 터질듯한 종이 쇼핑백 하나를 머리위 선반으로 올리시는데 버거워 보여서 제가 좀 거들어드립니다. 이내 둘 다 자리에 앉고 저는 다시 책을 읽습니다. 그런데 낯설면서도 익숙한 냄새가 옆자리 할아버지에게서 납니다. 몇 십 년은 찌들어 묵혀진 담배냄새, 매일같이 가마솥에 쇠죽을 끓이면서 밴 시골냄새, 그리고 소똥 냄새. 뭐 이런 냄새들이 칼로 자르듯 구분되어 맡아지지는 않지만 대략 그런 조합입니다.도시인들에게 그리 유쾌한 향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저는 옆에서 괜히 코를 크게 벌리고 할아버지의 냄새를 조금 더 자세히 음미합니다. 사실 옆자리 할아버지의 냄새는 이미 돌아가신 울할아버지의 냄새와 신기하리만큼 닮았습니다. 눈을 감으면 마치 옆에 울할아버지가 숨쉬고 계신 것같습니다. 머리는 이 냄새에 찡그리고 있는데 가슴은 그리워하고 있네요.

제가 사회생활을 시작한지 6년이 되었습니다. 더불어 할아버지를 보내드린 것도 6년이 되어갑니다.
오랫동안 각인된 기억은 수이 지워지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아직도 이렇게 또렷이 남아있다는 것이 신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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