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막화란?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의 배변 방식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가장 일반적인 형태는 응가나 쉬야를 누면 굳어지는 응고형 모래를

화장실에 부어놓고 제때 퍼내는 방식입니다. 응가는 맛동산, 쉬야는 감자 모양으로 굳어져서 배변치우기는 '감자캐기'로 불리죠.

'사막화'란 고양이가 이 모래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고 나올때 발이나 몸에 이 모래를 묻혀 집안 온 바닥에 입자가 흩어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이것은 뭐랄까, 고양이의 미친듯한 털빠짐과 함께 고양이 모시는 사람들이 감당해야만 할 일종의 숙명과도 같아용. '털 

덜 묻는 이불 재질'과 '사막화 방지 비법'은 고양이 관련 커뮤니티의 단골단골상단골 질문이기도 하죠.

  

 저는 루이죠지를 키우면서 털빠짐과 사막화 때문에 스트레스 받은 적이 없습니다. 네;; 원래 깔끔한 성격이 못 돼요. 그냥 눈에 보이는

털과 모래를 떼고 치우면 어차피 같이 사는 거 집안 곳곳에 털과 모래가 있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여기며 둥기둥기 옹냐옹냐 

살아왔지요. 


 그! 런! 데!


  저의 '인간다운 생활'파트를 담당하고 계시는 싸부(애인님)께서 이 둘은 징글징글징글해 하심미다. 루이죠지 본 지가 곧 4년인데, 

내내 털과 모래튐을 해결하기 위해 으찌나 다방면 공사를 거치셨던지. 뭐랄까, 이른바 '화장실 보완계획-_;;;'.

  첫 시도는 09년 11월 29일. 딱 만 3년 전이군요.

(3년 전에도 싸부는 고양이 문제로 씨름하고 있었는데 올해도 그랬어;; 내년에도 그럴까)





2. 실패작들


   이곳은 저의 첫 독립 서식지였던 쌍문동 모처의 쪽방. 침대 놓으면 사람 둘이나 겨우 일자로 누울 만한 공간이 남았죠. 여기서 고양이 둘이랑 복작복작

사는 꼴이 거시기했던지, 어느 날 싸부는 '인간과 고양이의 잠자리가 같아서는 안 된다'며 앵글을 끊어와선 이층침대를 뚝딱, 만들었어요.  이층은 침대,

일층은 책상, 이라는 구조. 하지만 그때만 해도 저와 루이죠지랑 만난 지 얼마 안 됐던 때라, 고양이라는 동물이 얼마나 점프를 뚝딱, 잘 해내는 동물인지

몰랐던 거죠. 땀을 뻘뻘 흘리며 다 만들고선 '자 이제 루이죠지는 절대 못 올라오...'하는 순간 


<우리를_뭘로_보고.jpg> 저때 루이죠지는 한살! 근데 뭐 네 살인 지금이랑 별 다를 바는 없;;;


  이 실패 이후에도 대따 큰 리빙박스에 구멍뚫린 채반을 케이블타이로 입구에 연결해 모래를 좀 털어내게 한다든지, 이사 온 후에는 

반려동물용 철창에 인조잔디까지 동원해 어떻게든 화장실 동선을 복잡하게 만들어 모래의 안방 유입을 막아보려 했으나 어차피 엥간히

큰 집이 아니라면 무리. 너는! 똥과 오줌이 묻은 모래가! 침대까지 딸려오는데! 너란 년은! 왜! 아무렇지 않아 하는 것이냐! 썩을 년!

소리를 하도 들으니 아무리 천연싸쏘패인 저라도 조금쯤은 신경을 쓰게 되어 사부작사부작 청소 날짜를 늘려 본다든가...등등의 소극적

대응을 해 왔는데, 어느날!!





3. 진짜다! 진짜가 나타났다!


   어쩌다가인지는 모르겠지만, 약 50일 전, 저는 이런 물건을 발견하게 됩니다.


http://www.healthypet.kr/product/detail.html?product_no=32&cate_no=1&display_group=2



  우와, 2층인데다 화장실에서 나오기까지 모래를 세 차례에 걸쳐 털어낼 수 있는 시스템! 가격은 좀 깡패지만 이거라면 싸부의 스트레스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저는 곧바로 보고 뒤 싸부의 '지르삼!' 컨펌을 받아 5개월 무이자;;;로 단숨에 지르기에 이르렀습니다, 질렀는데....







4. 진짜진짜 험난해



  제가 이러저러한 것을 질렀다, 고 트윗이며 가가에 나불대자 모 듀게인께서 '아는 목수를 소개해줄테니 견적받아보라, 훨씬 쌀 것' 요런 강같은 제보를.

넙죽 받아 견적물으니 자재비 7만원 공임비 5만원 도합 12만원이라는 은! 혜! 로! 운! 대답을 해주시어 낼롬 입금해드리고(사실 싸부가 연말 선물이라며 내주;;) 

주문은 취소하고 목수아즈씨가 약속하신 시월 말만을 목을 빼고 기다렸지요.


  그런데..................................시월 말에 연락했더니 '아, 다른 작업이 바빠 잊고 있었네요, 다음주까지 해드릴게요'라기에 약속한 날짜에 연락하니

몸살이 났다 해서 주중 아무때나 좋은 날짜에 가겠다 하니 문자 세 개 연속 씹은 뒤 일요일로 약속. 그러나 당일 차 끌고 공방까지 찾아갔는데 연락두절에

본인은 공방에 없음. 다음날 아침 깜빡 잊었다며 본인이 내일 저녁 배달해주겠대서 주소 알려줬으나 그 이후 5일간 연락두절. 소개해준 분까지 동원해

달달 볶아 겨우 연락이 닿고 첫 통화. 환불할까 했으나 이미 물건은 다 만드셨다기에 그럼 배송기사 수배해서 보내달라, 하고 날짜 정한 뒤 기다렸으나

약속한 날 비가 와 예정된 기사분이 못 가실 듯하다며 그 다다음날로 수배했고 여의찮으면 본인이 직접이라도 갖다주겠다 해 기다렸음. 그러나 약속 당일

'두 달 전 약속한 체험강사 일이 있는 걸 잊고있었다'며 그 다음날 직접 갖다주겠다 했고, 일을 나가야 해 정확한 시간을 조율하려 했으나 문자 전화 계속 씹음.

그리고 역시 그 다음날 연락 없^^.............................................................


  이 모든 일이 약 40일간 진행되었고, 진짜진짜 웬만한 일로 스트레스 받는 일이 없는 성격의 제갘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정말 어찌나 짜증이 솟구쳐 피가 마르던짘ㅋㅋㅋㅋ

결국 소개해주신 분을 통해 쇼부를 쳤고, 환불을 받았죠. 3만원을 더 넣으셨던데 돌려드릴라다 계좌도 모르는데 또 연락하기 싫고 그간 쫄깃했던 생각이 나

싸부랑 동네맛집 제이크더레스토랑에서 맛난이 파스타와 마르코폴로를 냠냠. 목수님 잘먹었어요. 심성이 나쁜 분 같진 않던데 영문 모를 베짱이근성은 이제 ㅂㅂ하시길.

소개해주신 분이 미안하다고 술도 한 잔 사주심. 잘먹었어요.



 


5. 그래서 다시, DIY다



   이 모든 일이 일어나는 동안 저의 멘붕을 생생히 지켜본 싸부. 결국 본인이 만들기로 합니다. 일주일 전, 이런 도면을 드려와서 보여주더군요.



  일러스트레이터로 꼼꼼하게도 해왔스빈다. 본인 일을 저렇게 열심히 했으면 돈 많이 벌었을 텐데 클라이언트가 된 느낌적인 기분. 돌려받은 12만원

내에서 견적을 내보겠다며 청계천이니 을지로니 부지런히 왔다갔다하며 자재를 준비하는 듯하더이다. 


  아무래도 견적을 맞추자니 원목은 무리가 있어서(원목 좀 괜찮은 걸 쓰자면 차라리 사이트에서 주문하는 게 나을 지경) MDF로. 두께는 15mm. 

MDF랑 재단비랑 바니쉬랑 아크릴 자석 시트지 약간 어쩌저쩌 해서 9만~10만원쯤 들었어요. 싸부는 보쉬 직소기와 드릴을 가지고 있는 남자이므로-_;;

큰 재단만 목공소에 맡기고 디테일한 구멍뚫기 가공은 직접 하기로 했습니다. 이걸 맡기게 되면 구멍당 몇천원씩 받으니까요.


  차에 자재를 실어 와 내리고, 즈이집 마당에서 싸부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조수. 

싸부의 신묘한 DIY 능력은 물리도록 봐 온 터라 새삼 놀랄 것도 없다 생각했지만, 이건 분명 아마추어가 도전하기에는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죠. 

그리고 그분은, 상상 이상이셨스빈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한시간여 마당에서 재단헤 온 MDF에 구멍뚫기를 하고 나니 해가 지고 비가 내리기 시작;; 나머지 작업은 실내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톱밥을 제거하고 바니쉬를 바르는 과정이 2차. 전 톱밥을 제거하다 아무리 봐도 바니쉬 칠하는 싸부 쪽이 재밌어 보여서 바꾸자! 했는데 

바니쉬 칠하기가 더 힘들어요;; 지금 오른쪽 어깨가 빠질듯;; 게다가 참을성 없고 꼼꽁하지도 못해서 싸부가 바른 거랑 제가 바른 것의

퀄리티 차이가 극명합니다. 결국 시트지 안 붙인 부분은 싸부가 오늘 2차로 칠했지요, 손재주라고는 무쓸모 인간:-(


   이렇게 설계도를 옮기는 곳마다 붙여 놓고 작업했지요. 수치계산은 치밀하게 해가면서!



   바니쉬가 마르는 동안 저녁을 먹고, 돌아오니 열시 반. 이제 조립만 남았는데 싸부는 '놀면서 해도 한시간 반이면 끝남!'이라고 호언장담. 

그런데.................................



   그의 미친 완벽주의는 대충을 용납하지 않았고, 금자씨마냥 '무조건 예뻐야 돼'라며 피스 박히는 모양과 밸런스 등을

계산하며 시간을 지체하다 보니 시간은 새벽 다섯시를 넘김. 감밧떼 와인-_;;을 내왔고 그걸 마시고 발간 얼굴로 힘을 내 뚜시락뚜시락 완성한 시간은

아침 여섯 시를 넘겼죠. 두 면에 시트지를 붙이고, 마무리 작업을 기약한 뒤 쓰러졌습니다. 아, 그 와중에도 해쓱한 얼굴로 제게 '가습기 청소법'을 시연하시며 일주일에

한 번은 에틸알코올로 소독해야 한다는 말을 남기고 욕실로 사라져 들어갔어요. 이쯤 되면 이 잔소리랄지 꼼꼼함이랄지 아무튼, 이건 하늘이 내리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그리고 결국 다음 날 약국에서 알코올을 사 앵기셨음)




  인간들이 지들 때문에 뭘 하거나 말거나 먹고 자는데 여념이 없는 아들딸. 우리딸 졸리니까 짱 못생긴거 봐욬ㅋㅋㅋ

 

  그리고 오늘, 쬐끔 자고 일어나 마무리 공정을 마치니 오후 너댓 시. 작업을 시작한 지 28시간이 지난 후였죠.

그리고 원래 화장실 잡기들을 싹 치우고 자리에 갖다 놓았습니다. 


  꽁냥꽁냥. 관심을 보이는 아가씨.

   물끄러미.



 입구를 찾아서!


-쏙, 들어갔다면 몸치고양이 숯이 아니죠. 사실은 이건 나중에 입구 쪽 서성거릴 때 찍은 컷이고, 앞쪽 아크릴 뚜껑 떼고 바니쉬칠 할때 화장실 가고 싶은지

얼쩡거리길래 들어가길 기다렸다 들어가자마자 앞뚜껑을 뙇, 닫아서 가뒀습니다. 자! 나와봐!






  잠시 동그란 눈으로 아크릴 너머의 저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멘붕하더니, 좀 머뭇거리다 앞발판-위층1-위층2코스 돌아나오기를 성공했습니다.

다 만들자마자 실시간으로 이용행태를 보여주시는 고갱님!!! 이제 입구쪽으로 제대로 들어가는 것만 익히면 될 듯해요. 죠구리가 이용하는 건 

아직 못 봤군요. 빨리 싸라고;;; 한 달에 한 번 줄까말까한 간식캔까지 따줬는데 먹고 폭잠자는중-_;;



  



6. 결론



   사실 저 물건이 어마무지하게 필요했다, 갖고싶었다! 가져서 짱 좋다! 보다는 이걸 기어코 만들어주고야 마는 싸부에게 감명받아-___;;; 싸부가 

마르고 닳도록 노래부르는 대로 성실하게 살아야지, 다짐했스빈다. 재활운동도 열심히 하고 돈도 더 벌어야


  아무튼, 포근, 하게 누워 스르륵 잠드는 딸내미 사진을 마지막으로, 길고긴 DIY(그야말로 두 잇 '유어셀프'임, 내가 못 하니 당신이 해요-_;;) 수기를 마침미다. 

읽어주셔서 ㄳ. 남은 주말도 즐겁게들 보내시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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