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스트림 커뮤니티

2021.05.29 15:45

Sonny 조회 수:1558

어차피 다들 아시겠지만, 모 커뮤니티의 모 운영자가 회원들을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로 강퇴시켰다고 합니다. 본인이 직접 올린 바에 의하면 강퇴당한 회원들은 트위터 등의 sns에서 조직적으로 음해 공작을 펼치기 위해 커뮤니티에 들어온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모든 회원들이 그를 목적으로 가입한 것도 아니었고 강퇴당한 회원 중 한명은 레벨이 30 이상이었음을 직접 인증하며 그 말이 틀렸음을 증명했죠. 특히나 강퇴당한 회원의 한 댓글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다양성을 높이 고려한다는 온건한 설명뿐인 댓글이었음에도 운영자가 말이 안통하는 사람이니 강퇴시키겠다고 직접 대댓글을 달았죠.


더 재미있는 것은 애초에 논란이 됐던 글이 여성영화인들이 공모전에서 가산점을 받는 것이 불합리하다는 글을 "가입하자마자 쓴" 어떤 회원이 있었고, 그 회원이 일간베스트에 동일한 글을 이미 올렸던 사람이라는 점이었습니다. 글의 논리는 일단 차치하고, (무슨 글이든 올릴 수는 있습니다) 운영자가 회원을 강퇴시킨 논리가 문제가 됩니다. "트위터 등 sns"라는 해당 커뮤니티의 외부적 공간과 "극렬 페미니스트"라는 사상을 정체성으로 규정하며 그런 회원들은 커뮤니티에서 회원활동을 할 수 없다고 못을 박았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동일한 규칙을 가산점 역차별 글을 쓴 회원에게도 적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외부적 온라인 정체성과 사상이 문제가 된다면 "일베"라는 외부 활동이력과 "반여성주의"라는 사상은 강퇴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운영자는 여기에 다른 기준을 적용합니다. 다른 어떤 외부 사이트를 하든, 어떤 사상을 가졌든 그걸 검열해서 강퇴시킬 수는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렇다면 되묻게 되죠. 트위터란 공간은? 페미니스트라는 사상적 정체성은 무슨 문제가 있기에...??


파시즘이 논리정연할 수 없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어찌됐든 내부집단을 결속시키는 '우리'라는 굳건한 인식은 논리의 문제가 아니라 소속감의 문제니까요. 그 소속감을 건드리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용서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하필이면 그 결속감을 느끼는 상대가 일베 회원이고 외부인으로 배척하는 상대가 페미니스트라는 사실은 어떤 편향성을 갖고 있는지 선명하게 보여주는 지표가 되긴 하겠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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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의아했던 것은 과연 그 커뮤니티에서는 수많은 파시즘 비판 영화와 성차별 영화들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하는 점입니다. 내집단의 규칙이 공고해질 수록 완전히 닫힌 세계가 되어서 외부 비판에 더 박해받는 피해자의 위치를 공고히 하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래도 사회적 텍스트를 담은 영화들을 보면서 어느 정도는 자기 성찰이라든가 영화 바깥의 현실에 적용할 수 있지 않나요? 제가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남산의 부장들>이었습니다. 닫힌 세계에서 아무리 합리적 충언을 하고 윗사람에 대한 애정을 비춰도 결국 윗사람의 독선과 이기심 때문에 배신을 결심하게 된다는 이야기잖아요. 그 커뮤니티 회원들도 박통을 욕하고 폐쇄적 사회의 수직적 폭력과 그에 터져나오는 반발적 폭력을 보며 어떤 감상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그 커뮤니티는 운영자가 아무리 비논리적인 말을 해도 다들 맞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같은 말밖에 하지 못하더라고요. 정상적인 논쟁 자체가 이뤄지지 않을만큼 엄청난 수직적 위력이 작동하는 세계입니다.


그 커뮤니티가 유달리 파시즘적인 건 맞지만, 그렇다고 다른 커뮤니티들은 여기에서 자유로운가 하면 그건 또 아닌 것 같아요. 이건 커뮤니티의 원초적인 한계이고 사회의 불가피한 약점이기도 할 겁니다. 다수가 원만하게 어울려 놀기 위해서는 어떤 합의와 규칙이 존재해야하는데 그 규칙을 적용하는 권력은 소수의 사람들에게 독점됩니다. 이걸 방지하기 위해서는 다수의 사람들에게 작은 권력을 분배해주거나 완전한 민주정으로 가야할텐데 이는 결국 다수의 사람들이 운영까지 열의를 보이기 힘든 구조상 어쩔 수 없는 소수의 통제를 허용하는 수 밖에 없겠지요. 결국은 그 개개인에게 내재되어있는 개성과 편향의 문제로 갈 텐데... 이 이야기를 길게 끌고 나가보니 사회라는 것 자체가 아주 성숙한 사람들끼리만 이룰 수 있는 하나의 현상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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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안티 페미니즘이 반지성주의와 연결되는 게 필연적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단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를 이해하고 이를 다시 기술하는 데 있어서 내적모순을 무시하기 위해 온라인적 제노포비아로 반드시 이어진다고 보거든요. 그 결과 현재 나타나는 것이 수많은 남초 커뮤니티들의 '손가락 게이트'일텐데, 이 허무맹랑한 음모론을 덥썩 물고 여기저기에 기분을 근거로 내세우죠. 현재 사회는 여성에게 차별의 불이익을 주고 있고 그런 사건들은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게 현실입니다.  이 현실을 애써 무시하려고 원래 있어야 할 현실적 인식과 주장의 자리에, 비현실적인 망상을 점점 채워넣습니다. 그 결과 페미니스트들은 무려 국가기관의 포스터까지 조작하며 남자를 조롱할 수 있는 전능한 존재가 되면서 교사들이 몰래 사상세뇌를 작당하는 비열한 존재가 됩니다. 이른바 마녀들이죠.


마녀는 과연 태어나는 것일까요 낙인을 받는 것일까요. 마녀사냥이 실제로 횡행했던 역사적 기록은 잔 다르크만 꺼내와도 딱히 부정할 것이 없으니 덧붙일 게 없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페미니즘을 미워할 뿐이고 남혐종자들을 처단할 뿐이지 성차별주의자는 아니라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다시 한번 그 커뮤니티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들고 싶습니다. 피씨함이나 다양성을 주제로 어떤 언급도 하지 말라는 게 과연 정상적인 논의의 장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요? 거의 모든 커뮤니티에서의 파시즘과 '메'카시즘은 안티 페미니즘에 기반하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여초커뮤니티도 독선적이고 말이 안통하죠. 그러나 그것이 양비론으로 이어질 수는 없을 것입니다. 최소한 손가락 모양으로 온 기업들이 남혐을 하고 있고 마녀들이 숨어있다는 망상을 하진 않으니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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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슬픈 것은 사람들이 그 커뮤니티의 대안을 찾으면서 듀게는 언급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하기사 이런 고색창연한 커뮤니티에 누가 일부러 가입을 하겠습니까? 글 리젠도 안되는데다가 양질의 글은 더더욱 적은데요. 영화 커뮤니티치고는 영화 이야기가 별로 올라오지 않으니 신규유입이 없다시피한 건 자연스러운 일이죠. 이렇게 말하는 저도 정작 트위터를 더 열심히 '하고 있는 것 같긴 합니다만....


양질의 영화 리뷰를 열심히 써주시는 분들께 늘 감사드리며... 저도 조금은 보탬이 될 수 있도록 짧은 글이라도 좀 올려야겠습니다. 거창하게 시작했지만 결국 듀게에 뭐라도 글을 열심히 쓰자는 딩초식 다짐으로 끝나게 되는군요...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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