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전에 하는 일 + 영시추천

2011.03.10 20:26

미루나무 조회 수:20471

잠들기 전에 보통 뭘 하시나요?


1. 전 어릴 때는 밤에 불 끄는 게 진짜 무서웠어요. 몬스터 주식회사에 나오는 것처럼 벽장문 열면 뭐가 튀어나올 것 같은 그런 기분 있잖아요.


집에 벽장 따윈 없었지만 그걸 아주 강렬하게 느꼈어요. 지금은 대체 왜 그랬는지 기억도 안 나는데 아무튼 밤에 잠드는 게 무서웠죠.


뭘 왜 그렇게 무서워했는지 모르겠지만 엄청나게 강렬한 공포감 때문에 잠들기가 두려웠던 건 간혹 기억이 납니다.


아리엘 도르프만의 회고집인 '남을 향하며 북을 바라보다'에 보면 어린 시절, 아직 블라디미르로 불리던 어린 도르프만이 그런 감정을 느끼고 두려워하는 부분을 읽고선


나만 그랬던 게 아니군 하고 은근히 안심했었어요.



2. 그런데 나이가 조금 더 드니까 잠들기 전에 누워서 이것저것 생각하는 게 좋아지더군요.


양이나 질면에서 모두 빨강머리 앤에 뒤지지 않을 엄청난 공상을 했죠. 빨강머리 앤 중에 다이애나네 할머니를 웃겼던 앤의 소설 있죠, 딱 그런 수준의 공상이었죠.


근데 그런 짓은 사실은 지금도 좀 합니다. 10년 넘게 머릿속에서 그런 로맨스나 환타지를 만들고 있으면 그게 자동이 되더라구요. 


어린 시절부터 워낙 공상쟁이여서 길을 걸으면서도 보도블록에서 같은 색부분만 밟아야지 다른 색을 밟으면 죽는 거야 하는 상상을 할 정도여서 로맨스 영화 한편이야 금새 뚝딱 나옵니다.


특히 고등학교 때 학교에 갇혀 있는 게 너무 답답해서 공상을 하도 많이 했더니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들어오시는 순간부터 제 머리속에는 다른 영화의 필름이 돌아가고 있는 거죠- 습관이 들어서 아무것도 생각할 거리가 없는 상태를 못 견디게 되었어요.



3. 그런데 공상할 에너지가 넘치는 10대때는 이 상태로 사는 것도 나름 재밌었지만 습관적으로 공상을 하면 집중력엔 참 안 좋은 것 같아요.


라식수술할 때 의사가 딴생각하면 동공이 위로 올라가서 안 된다고 절대로 딴생각하지 말고 집중하라고 신신당부를 했는데 그 버릇을 못 고치고 나도 모르게 다른 데로 생각이 흘러가서 엄청 야단 맞은 이후로 이거 좀 어떻게 해야 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게다가 이런 공상도 에너지원에 해당하는 공상거리가 꾸준하게 공급되어줘야 재밌는데 소설도 잘 안 읽고 영화도 안 읽고 하니 재밌는 생각도 안 나고 그렇다고 자기 전에 현실 문제에 대해 생각하면 그저 가슴만 답답해지고 편하질 않아서 방법을 하나 생각해 냈죠.



4. 기독교도는 아니지만 성경책을 자기 전에 서너구절씩 읽기 시작했습니다. 사실은 지금까지 문체가 따분하고 안 읽힌다고 다 읽은 적이 한번도 없어서요.


자기 전 조금씩 읽어서 신약을 떼고 교양인이 되자!, 더불어 잠도 편하게!'하는 마음가짐으로 시작했죠.


거기다 예전에 누가 성경공부 하자고 선물해준 성경책을 책만 받고 튄 전력이 있어서^^;;; 집에서 굴러다니는 국역본도 있고. 친절한 듀게분이 보내준 일본어 성경도 있고.


신약을 제대로 다 읽은 건 이때가 처음이었는데 생각보다 재밌더군요. 예수의 팬이 되었어요.


그런데 읽기를 관둔 건.









이런 이유는 아니지만...



신약의 슈퍼스타 예수가 죽고 나니 나머지는 별로 안 읽고 싶어져서. ㅠ_ㅠ


실은 밤에 죽는 장면 읽으면서 울었거든요. ㅠ   맘편하게 자려고 책 읽는데 눈물이 웬일이야......


주인공이 죽는 건 너무 치명적인 일이야 하고 새삼 느꼈습니다. 


종교경전이니 마음이 편해지겠지 했는데 -성경전에는 에크낫 이스워런의 '죽음이 삶에게 보내는 편지'를 잠깐 읽었는데


이 책은 별로 어렵지도 않건만 너무 맘편하게 만드는지 늘 한바닥도 못 읽고 잠들어버려서 진도가 너무 안 나가서 그만뒀어요-


성경의 선정성을 너무 얕보았던 듯.ㅠ


그래서 신약은 버리기로 했는데 구약은 그냥 비호감이라 뭔가 다른 걸 해야 겠다 싶었어요.



5. 그래서 뭘 할까 하다가 듀게에서 loving_rabbit님이 올리신 영시를 보면 이거다! 했습니다.


전 원래 외우기를 좋아해서 -초등학교에 시조암송대회라는 희한한 대회에 출전하려고 시조 100편을 외운 적도 있어요, 대회에선 80개밖에 못 써서 떨어졌어요.


1등은 100개 썼다던가-  영시를 외우면 되겠구나 싶었어요. 자기 전에 계속 외운 시를 머리속으로 중얼거리면 잡생각도 안 나고 좋겠다 싶기도 하고.


한국어시를 외워도 되겠지만 한국어시를 외우면 내용 생각을 너무 열심히 하고 정서가 직접적으로 와 닿아서 시내용에 너무 감동하면 큰일이다 싶어서요.


영어로 말하는 건 안 되도 외우는 거야 쉽겠다 했죠.


그래서 loving_rabbit님이 올려주신 앤 섹스턴의 시도 외우고 이 기회에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도 외우고 롱펠로우의 loss & gain도 외우고


윌리엄 스태포드의 the way it is도 외우고 사라 티즈데일의 let it be forgetten도 외우고....


그리고 이제 생각나는 영시가 없어요. ㅠ_ㅠ


애너벨 리는 너무 길고 내용이 슬퍼서 외우고 싶지 않아요. ㅠ_ㅠ 


loving_rabbit님의 영시를 기다리고 있었으나 노래가사를 올리주시고. 배신이십니다. ㅠ_ㅠ


아무튼 그래서 너무 길지 않고 잔잔한 내용의 영시 추천 좀 부탁드려요.


네이버에서 검색했더니 이것저것 나오긴 하는데 가끔 오타가 있던데 알기가 어려워서요. 이왕이면 시선집 같은 걸로 추천 좀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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